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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거대한 모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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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연휴가 끝난 5월 7일, 권리장전 연극제 기획단과 공연팀들은 ‘적폐투어’를 다녀왔다. ‘원조적폐’라는 2019 권리장전 주제에 맞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 광화문거리 ― 민주인권기념관(남영동 대공분실) ― 남산 일원 ― 제헌회관 및 청와대 뒷길]을 순회하며 적폐의 흔적들을 찾는 코스였다. 우리는 대학로에 모여 “적폐는 청산될 수 있다. 그것을 가리킬 수만 있다면”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적힌 현수막을 내건 전세버스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우리 공놀이클럽은 바로 전날까지 전세버스를 타고 같은 길을 다녔다. 서울관광재단의 의뢰를 받아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서울을 구경하며 버스킹 공연을 즐기는 관광 사업을 기획,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광은 말 그대로 보고 즐기는 것이다.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우리의 서울”을 전시하는 것이 우리가 의뢰받은 일이었다. 모순과 혼돈, 아픔의 역사가 끼어들 여지는 애초에 없었다.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역사의 흔적들을 이번 투어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어쨌든 우리의 버스투어는 정확하게 두 번 반복되고 있었다. 한 번은 ‘관광’으로, 한 번은 ‘다크 투어’로.
대학로, 창경궁, 창덕궁, 안국을 지나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버스는 달렸다. 식민지를 건설하며 일제는 제일 먼저 이 도로를 놓았다. 경성제국대학교(대학로)에서 총독부(광화문)를 잇는 이 도로를 따라 매년 봄이면 수십만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창경원의 벚꽃놀이를 즐기며 박람회 유람을 다녔다. 평일인데도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이 도로를 산책하고 있었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못 뵈었지만 고인이 가던 길 앞에 있으니 아니 갈 수는 없는 노릇인가. 이상은 <오감도>에서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 이 도로가 “무섭다고, 무섭다고” 토로했다. 이 평화로운 도로가 왜 무서웠던 것일까?
버스의 첫 종착지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광화문 맞은편에 서 있다. 이 건물은 1961년 미국의 원조를 받아 미국 대사관과 똑같이 건설되었고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경제기획원으로 사용되다가 2012년 지금의 모습으로 개관하였다. 대한민국의 ‘올바른’ 근현대사를 조명하려 했던 당시 정권에게 미국 대사관의 쌍둥이 건물이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가 조국 근대화의 기치를 세우던 이 건물만큼 ‘역사홍보관’으로 적당한 곳은 없었을 것이다. 뉴라이트의 홍보관은 정권교체 이후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하였을까? 우리는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열린 특별전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을 관람하였다. 전시는 건국절 논란을 충분히 의식한 듯 임시정부의 법통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 운동사를 다루고 있었으나 그 뿐이었다. 여전히 공화국의 도슨트는 “고종황제께서 하사하신 태극기”를 해설하고 있었다. 여전히 당시 독립운동 세력의 과반수를 차지하였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모른 체하고 있었다. 여전히 공원과 동물원으로 바뀐 창경원의 벚꽃놀이를 보기 위해 매년 봄 수십만의 인파가 몰려들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박물관을 나와 광화문 거리를 걸었다. 평일인데도 한복을 맞춰 입은 관광객들이 많았다. 원래 이 거리에는 육조가 있었다. ‘육조거리’를 밀고, 일제는 도로를 내고 광화문통이라 이름 붙였다. 해방 후에 이 거리에는 세종로, 태평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관동군 장교였던 박정희는 일본도를 찬 이순신 동상을 세웠고, 오세훈은 광장을 조성했지만, 세종대왕 동상을 세워 시민들이 모일 수 없게 했다. 그러고 보니 광화문거리야말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보다도 훨씬 생생한 적폐의 지층을 수평으로 눕혀 전시한 곳이 아닌가. 광화문 거리 끝, 노란 리본을 단 세월호 추모관을 지나며 문득 적폐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이 단어가 갑자기 우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14년 세월호 사건 직후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적폐 청산을 다짐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통령의 한 마디에 아주 오랫동안 혼란스러웠다. 어떤 과거가 문제인지 대통령은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적폐 청산은 권력자들이 입만 열면 되풀이하는 개혁의 의지적 표현에 다름 아니었으나 적폐라는 말은 힘이 셌다. 적폐 청산은 요술 지팡이었다. 사실 이 땅의 모든 것은 누적된 것일진대, 작은 폐단이 없는 곳이 있으랴.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남대문을 지나 남산을 향했다. 버스는 민주인권기념관이 들어선 그 무시무시한 남영동 대공분실에 들어섰다. 87년 안기부가 대학생 박종철을 고문 치사한 취조실, 김근태가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았던 취조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고문의 흔적이 아니라, 취조실의 원형이 이미 훼손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남영동을 나와 남산 곳곳에 위치한 중앙정보부 분관, 안기부 분관들을 답사하였지만 대부분 사라졌거나 리모델링된 후 용도 변경되어 있었다. 표지가 없다면 이곳이 모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가리킬 수 있다면 청산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도시에 가리킬 것이 없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우리는 반성의 시간 없이 청산을 반복해왔다.
적폐투어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이 도시에서 적폐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애써 보지 않으려 해서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발견할 것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시대를 거쳐서 이곳에 왔는지 알려주는 단서들이 대부분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반성의 시간 없이 섣부른 청산을 반복했다. 권력을 잡은 세력은 과거 폐단의 흔적을 철저하게 파괴하였고, 새로운 기치를 내건 도로와 건물이 들어섰다. 짓고, 파괴하고, 다시 짓는 순환 고리는 지금도 꾸준하게 작동하고 있다. 무엇을 추억할 것인지, 추모할 것인지, 기념할 것인지, 기억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또한 함께 청산되었다. 서울은 어느 때보다 역사적인 도시이면서 역사에서 이탈한 무서운 도시가 돼가고 있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을 것이다. 연극이 인기 없는 이유가 다 있었다. 이 도시는 거대한 모델하우스다. 세트장에서 우리 모두 연극하면서 살고 있었다.

[사진제공: 2019 권리장전]

태그 적폐투어,강훈구,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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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구

강훈구
<공놀이클럽> 회장. 전위적발라드하드락듀오 <정권교체> 리더. 주로 하는 일 없이 바쁘고. 가끔 희곡을 쓰고, 아주 가끔 연극 연출을 하고, 아주 아주 가끔 노래를 합니다.
saboramigo@naver.com
제160호   2019-05-3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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