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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논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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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연극in은 “과정-논쟁” 이라는 주제로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마지막 기사인 이번 호에서는 각자의 ‘과정’을 중심으로 창작을 실천하고 있는 창작자분들을 모시고 ‘과정’의 형태와 목적, 앞으로의 비전 등에 관한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 일시 : 2019. 9. 16. 월. 오후 3시
  • 장소 : 서울연극센터 2층 아카데미룸
  • 토론 : 김신록(배우), 박세련(연출가), 성지수(연출가), 윤서비(연출가), 이혜령(기획, 연출가)
  • 진행 : 정진세(본지 총괄에디터)
  • 정리 : 리봄(드라마터그)

 

정진세
기획 연재 ‘과정-논쟁’의 마지막 편으로, 다섯 명의 창작자분들을 모셨습니다. 오늘은 과정을 주목할 때 발생하는 미학,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과정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창작의 동력이 되는지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먼저 본인이 속한 팀에서 하는 과정 중심의 프로그램들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팀소개 #작업소개 #나와 우리 팀에게 과정이란?
김신록
김신록
배우 김신록이라고 합니다. 저는 주로 연기 메커니즘과 관련된 것을 탐구하기 때문에 어떤 연기적인 화두가 생기면 그걸 가지고 자체적으로 워크숍을 열기도 하고, 거기서 용어나 언어를 발견하기도 하고, 발견한 것을 리서치하고 공부하기도 하면서 확장을 시키고요. 그게 구체화가 되면 또 워크숍을 열어서 나누기도 합니다. 발견한 것을 적용하는 작품을 무대에 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작품을 올리기도 하는데요, 올 봄에 공연했던 <김신록에 뫼르소, 870×626cm>(이하 <뫼르소>)의 경우에는 과정에서 발견했던 것들을 프로그램 북이나 관객과의 대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나누기 위해 ‘워크-데몬스트레이션’이라는 공연 형식의 일종의 해설이자 후기 공연을 공연 후에 연달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 나온 일종의 비평 혹은 스스로의 기록, 잔상 같은 것들을 곱씹고, 거기에서 나온 확장되고 변형되고 전환된 생각들을 다시 워크숍으로 꾸립니다. 올해 초 올린 <뫼르소>는 2017년도에 제가 처음 착안했던 것인데, 여러 워크숍이나 수업을 통해서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면서 확장된 생각들이(구체적으로는 ‘Unfinished Body’라는 주제의 탐구가) 이번에 결실을 본 것 같고요. 최근에는 ‘육화된 시간으로서의 공간’이라는 화두를 갖고 있어요.
저는 이 전체가, 공연까지를 포함해 모두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계속 저의 화두, 저의 탐구가 진행될 뿐이고, 공연이라는 것이 워크숍보다 더 두드러지거나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과정을 논할 때, 지난 호에도 실렸지만, 과정이 마치 ‘공연’이라는 결과 대비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되는 것 같은데, 저는 이 과정이 공연을 포함한 전체로 인식됐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혜령
이혜령
제너럴쿤스트에서 기획도 하고 연출도 하는 이혜령입니다. 저희는 주제나 형식을 찾는 과정에서의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 주로 안무가나 음악, 사운드를 하는 분들을 프로젝트 단위로 모아서 같이 작업합니다. 현재 저희는 퍼포머 없는 공연을 지향하게 되었는데요, 우리가 아름답다고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신체나 훈련된 몸이 아닌 저 같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했을 때 발생하는 효과 같은 것에 관심이 있어서 훈련된 퍼포먼스를 대신해 관객이 참여하는 공연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워크숍이 많이 중요했어요.
앞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저도 공연을 만들기까지의 시간을 과정으로, 공연을 결과로 나누어 보지는 않았거든요. 과정 지원이나 리서치 지원 같은 형태가 제시된 후에야 이것을 조금 더 구분하는 관점으로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여전히 이분법적으로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고요.
저는 2018년도에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지원을 받아 ‘여성의 신체를 포함해 억압되고 거부당하는 몸’을 주제로 리서치 프로그램을 1년 동안 진행했어요. 그때 리서치를 진행하며 알게 된 것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퍼포먼스의 스코어(score)가 억압되고 있는 몸들을 더 소외시키는 형태가 되더라는 것이었고 결국에는 그게 계속 질문으로 남았어요. 올해 서울변방연극제의 ‘워크룸’이라는 1개월간의 과정 공유 프로그램 안에서 그걸 다시 화두로 삼아서, 관객의 참여가 하나의 명령에서 출발한다는 퍼포먼스를 했고요.
사실 리서치 지원이라는 것이 기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기존에는 공연이라는 것으로 지원을 받았었는데 과정이라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이것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지난 호 기획 기사를 보니까 과정 공유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하신 연출가 분이 “다시는 과정 안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웃음) 저는 오히려 공연의 형태로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지원 제도를 이용해서 과정이라는 이름하에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2년 동안 연속된 관심사 안에서 작업했던 것들이 어쩌면 큰 맥락에서 하나의 과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윤서비
윤서비
열혈예술청년단에서 연출하는 윤서비라고 합니다. 제가 과정에 중심을 두고 작업을 하는 창작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결과를 생각하지 않은 과정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부터 무용이라든지 미술 등을 섞어서 장르 간의 혼합 프로젝트를 했고, 2004년부터는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공연해 볼까?’ 하는 생각으로 요즘 ‘사이트 스페시픽(Site-specific)’이라고 부르는 작업을 했어요. 그 후 ‘불안하다’ 시리즈를 5년간 하면서 연극이 불안한 상태라는 것, 무대와 객석 간 ‘제4의 벽’은 투명 랩처럼 아무리 해도 깨지지 않는다는 생각들을 발전시켰어요. 이후 2014년부터는 몇 년간 ‘로봇’에 관한 이야기를 연작으로 다뤘는데요. 무대에서 로봇과 인간을 싸움을 시키는 거죠. 8개월 동안 “네가 로봇보다 연기를 잘해? 네가 로봇보다 얼마나 잘하는지를 증명해 봐.” 배우들한테 시비를 걸었어요. 배우들은 5~10분짜리 장면을 연습할 때마다 가져와요. 그러면 저는 그 장면들을 30개 정도 모아서 콜라주 형식으로 공연을 했어요. 같은 콘셉트로 ‘정의가 무엇인가’에 관해, 또 재작년에는 ‘사랑’을 주제로 다뤘는데요, 3, 4개월 동안 매일매일 무언가를 하는 과정을 했으니까 그게 아마 결과를 만들어내는 가장 주된 방법론이었던 것은 분명하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결국 20년 정도 연극을 하게 됐는데 그 모든 과정을 쭉 보면 전부 사실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거였어요. 그러다 보니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제가 스무 살부터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했는데요, 학생 때부터 동료들과 같이 만드는 것으로 연출 작업을 이해했기 때문에 연출가가 비전을 가지고 이끌어가는 구조가 사전에 세팅되어 있던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과정을 중시한다는 특징은 열혈예술청년단이라는 단체에 내재해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과정이 보람 있다고 느끼는 지점도 있어요. 저는 계속 젊은 친구들과 작업을 하게 되고요, 그렇기 때문에 늘 새롭게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해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서로 많고, ‘상대와 어떻게 친구가 되어야 하지?’ 하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죠. 그것이 어떤 큰 범주에서 20년간 이어져 온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작업이라는 것을 매개로 사람을 계속 만나고 관계하는 것, 그게 과정이 중요하다고 봤을 때 제가 얻었던 것입니다.
성지수
성지수
콜렉티브 뒹굴의 성지수입니다. 이전 기사들 보면서 무엇을 과정이라고 부르는가가 다초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많이 이야기되는 과정이라는 말의 반대편에 있는 걸 결과라고 본다면, 저희는 항상 결과를 위해 작업을 했거든요. 저희 팀은 2012년에 처음 모인 후 ‘연극이 신성화되고 그 과정에서 삭제되어가는 무언가들, 그것만으로도 연극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 반발심으로 그러한 작업에 집중해 왔어요. 그렇다 보니까 ‘과정에 집중해야겠어.’ 하는 언어를 저희 내부에서는 사실 쓴 적이 없고요.(웃음) 그보다 ‘우리는 드라마를 연기하는 것 말고 다른 것들이 재미있는 것 같은데?’ 라든가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지금 우리가 느끼는 스펙터클을 관객과 어떻게 하면 공유할 수 있지?’ 라든가 ‘우리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감각들을 관객과 공유하려면 어떻게 유도해야 하지?’ 이런 작업을 주로 한 것 같아요.
지원사업은 2017년에 시작된 서울청년예술단에 3년째 선정되었습니다. 저희가 해오던 방식이나 주목해온 지점들이 지원 사업과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져서 ‘이것이 과정인가? 결과인가?’ 하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운이 좋았던 거죠. 그러다가 2018년에 미투 운동이 시작되면서 우리 내부에서 이렇게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연습실에 가둬 놓으면 갑자기 짠, 하고 멋진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삭제되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고, 그 삭제된 것들에 집중했을 때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어.’ 하는 지점들에 집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동료를 만나려면 잘 기록해서 잘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제일 처음 한 것이 자치 규약을 인터넷상에 공유하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공연을 보신 분보다 규약을 보신 분이 더 많아서, 도덕주의자가 된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치규약 2019년 버전에도 썼지만 저희는 철저히 예술지상주의자들이고 결과중심주의자들입니다.(웃음) 규약은 작품을 잘 만들기 위한 수단 중 하나고요.
한 동료의 언어를 빌리자면, 현재 주로 이야기되고 있는 ‘과정’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첫 번째는 완성되는 결과물의 중간 단계를 관객과 공유하는 것을 과정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피드백을 받아서 조금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고요. 두 번째는 창작자들이 가지게 된 새로운 고민이나 질문들, 이전에는 삭제되었던 무언가들에 주목했을 때 나타나는 쟁점들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에 주목하는 작업들. 저는 이 작업의 목적은 담론 생산, 나아가 창작 언어 개발이라고 생각해요.
박세련
박세련
창작집단 여기에 있다에서 연출하는 박세련입니다. 저도 앞에서 말씀해주신 이야기들과 조금씩 비슷한 점들을 작업 방식으로 두고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저희 팀은 롤(role)을 ‘너는 연출 역할이야.’, ‘너는 배우 역할이야.’ 이런 식으로 가지면서 공동창작을 하는데, 제가 연출 역할을 자주 맡지만, 같이 참여하는 창작자에게 자주 넘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의도치 않게 제가 맡아서 결정하는 것을 돌아보면, 저희도 그리 민주적인 방식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
작업 방식은 키워드를 하나 두고, 그것에 관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구체적인 생각, 경험, 기사 자료 등을 가져와서 다시 모이고, 또 이 재료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서 이 키워드에서 파생된 질문을 찾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 후 질문에 맞는 리서치 후 자료를 가지고 다시 모여서 우리가 어떻게 무대 언어로 만들어볼 수 있을지 찾아가면서 서서히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저희 집단은 과정과 결과를 두고 봤을 때, 명확하게 이건 과정을 위한 것이고, 이건 결과를 위한 것이라고 명시를 하는 편입니다. 관객들을 맞이할 때, 여러분들과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거기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그 다음 과정을 위한 워크숍 혹은 결과를 위한 완성 형태로 가져가는 프로세스로 진행하고 있어요.
저도 2016년에 처음 팀을 꾸렸는데, 그때부터 젊은 창작자들을 지원하는 붐이 일어나면서 생각보다 많은 기회를 얻게 되었고 지원의 테두리 안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결과를 위하는 과정이 되어가고 있다는 회의감이 조금 들더라고요. 우리가 하는 언어를 계속 실험하고 연구해보자는 취지로 과정-워크숍을 하는 것이었는데 잘 만들어져야 한다, 관객이 재밌어야 한다, 의 압박감이 있었어요. 그런 혼동되는 지점들을 겪으면서, 지원금을 받아야 공연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지는 못하고, 그래도 조금은 우리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계속 작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정 중심 창작을 둘러싼 비판들에 대하여 #창작자 각자의 방법론
정진세
정진세
이야기를 들으며 의문이 많이 들었는데요. 과정 중심의 창작은 ‘속도가 느리다’라거나 ‘결과물이 별로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일종의 성과를 빨리 내는 기존의 사이클대로 가지 않고 굉장히 긴 호흡으로 가는데도, 결과가 뭔가 특이한 것 같지만 기존의 관객들이 수용할 수 있는, 혹은 기존의 미학에서 즐겨할 수 있는 공연들은 아니다, 하는 비판을 받아보셨거나 접해보셨을 것 같아서요.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해명 또는 답변이 궁금합니다.
박세련
작년에 사전준비-중간발표-최종발표를 거치는 1년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그때를 복기해보면 중간발표가 우리가 논의하는 과정의 한 단계라고 생각하는데요. 중간발표에는 심사위원이 있었고 즉 탈락자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였죠. 그런 상황에서 창작과정 자체에서 나오는 질문들에 대한 실험들을 꺼내어 보여준다는 것보다는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중간발표를 준비하는 내내 결과를 걱정했던 것 같아요. 결국 저는 팀 내 작업 방식대로 과정 중심의 실험을 했고 아까 말씀하신 ‘속도가 느리다’라거나 ‘결과물이 별로다’라는 이야기를 모든 심사위원에게 들었습니다. 이후에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과정’이란 개념이 모두에게 익숙한듯 하지만, 아직 정립되지 않은 낯섦도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과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거나, 과정을 바라보는 태도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생기는 오해이지 않을까 싶어요.
윤서비
저는 ‘과정’에 있어서 그런 피드백을 하는 사람들이 그것의 실체를 제대로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예상을 하는 것 같아요. ‘과정이 길면 흐지부지될 것이다, 속도가 안 날 것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사실 선입견에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압축적으로 작업한 작품들이 잘 된 경우와 과정을 중시한 작품이 잘 된 경우를 비율로 치자면 사실 비슷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왠지 이건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것 같고, 아마추어적인 것 같고, 그래서 선입견을 갖는 것 같아요. 사실 결과라는 말도 저한테는 와닿는 게 없어요. 시작할 때 결과는 없잖아요. 목표가 있죠. 목표는 아직 완성된 게 아니지만 추구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데, 그게 아직 결과는 아니잖아요. 과정 자체가 결과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쪽으로 과정을 이해하면 될 텐데, 그것과 결과를 헛갈려 하는 것 같아요. 개념이 어설프게 되어 있어서, 분명하지 않고 뭉뚱그려져서, 요즘에 막 우글우글 끓고 있는 젊은 작업들, 여태까지와는 달랐던 작업들을 자꾸 과정이라는 개념으로 ‘퉁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갑갑하단 느낌이 듭니다.
성지수
매우 동의하고요. 저희도 관습적인 형태의, 어떻게 만들면 성공하는지 잘 알고 있는 형태의 쇼잉(showing)을 하는 작업은 2주 만에 만들어서 빨리빨리 하는 편이거든요. 그리고 셈해 보니까 ‘관객을 만나는 작품’을 단위로 하면 뒹굴의 공연은 1년에 7, 8개 정도 됩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더디지는 않죠. 아마 ‘속도가 더디다’는 비판은 과정에 집중하는 게 너무 도덕적인 문제 아닌가, 윤리적인 것에 치중해 예술성을 잃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시각에서 비롯한 편견이라 생각합니다.
윤서비
하나만 덧붙이면, 저희 같은 경우 일주일에 3일 연습, 1일 4시간 연습을 해요. 효율적으로 연습하기 위해서 스케줄을 모아 모두가 되는 날 연습을 한단 말이죠. 제가 아는 어떤 선배 연출가는 이른바 ‘텐투텐’(10 to 10, 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하는) 연습을 두 달 해요. 그러면 사실 그게 더 느린 거죠.
정진세
공동창작에서 오는 의사 결정의 지난함 같은 것은 없나요?
성지수
저희는 많은 부분을 함께 논의하는 팀이어서 ‘콜렉티브’라고 이름 붙였지만 모든 것을 다 함께 논의하진 않아요. 책임자가 있고 같이 논의할 수 있는 풀(pool)이 있어서 책임자가 확신이 없는 것에 대해 같이 논의를 해요. 그렇다고 다수결을 따르는 게 아니라 충분히 논의한 후에는 책임자가 결정하고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걸 혼자서 고민하고, 그래도 모르겠지만 그런 모습을 들키면 안 되니까 "한 번 더 해 봐." 마치 연출이 "다시." 이런 정도의 단어로 ‘퉁치면서’ 연습 시간을 길게 했던 것보다 더디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신록
그런 모든 혐의가 일종의 ‘과정’이라는 개념, 굉장히 다초점인 이 개념을 단선적으로 대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건 제도하고도 맞물리는 문제인데, 과정 지원금이 대부분 쇼케이스 같은 결과물을 요구하고, 기간이 한정되어 있고 날짜도 정해져 있고. 그러면 사실 충실하게 과정을, 어쩌면 더 장기적으로 과정을 이어오던 사람들 입장에선 이걸 맞추는 게 훨씬 힘들거든요. 반면, 과정을 공연을 위한 연습 과정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에는 맞추기가 쉬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과정’이라는 단어와 ‘과정 공유’라는 단어를 자꾸 혼동해서 쓰는 게 저는 불만족스러운데요. 과정 공유라고 하는 것은 그 과정을 거치는 팀이 피드백을 받기 위해 관객을 만나보고 싶다거나 워크숍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필요로 할 수 있는 것이죠. 저는 만약 과정이 충실히 이행되고 그것이 공유되는 방식이나 시기 등이 훨씬 유연해진다면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공유 방식이 나오리라 생각하고요. 그러면 관객도 재미있고 창작자들도 자기가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과정을 오픈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여지가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성지수
‘결과가 별로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결과가 낯설다’고 말해보고 싶어요. 저희 팀에 관해 얘기하자면 저희는 익숙한 혹은 관습적인 형태의 미학 체계 자체에 대해 ‘그게 맞아?’ 하고 도전하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낯설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눈엔 비어 보이고 누군가의 눈엔 이상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낯설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관객에게 낯선 것이기도 하지만 저희에게도 또한 낯설어서, 해 보고 ‘아, 이렇게 하면 매우 낯설어도 관객들이 좋아할 수 있구나.’ 하는 지점을 발견해나가고 있거든요. 새로운 미학이 필요하고, 과정 다음이 필요한 시점에 너무 성급하게 ‘별로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무엇으로 바뀌고 있고 무엇에 더 주목해야 하는가를 같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혜령
그런 피드백은 좋아하는 공연 형식 또는 미학적 태도가 달라서 생기는 판단일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낯선 것’, 그래서 ‘별로다’라고 하는 것을 실패라고 보는 거잖아요. ‘이 공연은 잘 못 만든 공연이네.’라고. 그런데 그런 실패들을 계속해서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유연하게 생겨나는 것, 지원 제도에서 과정이라고 부르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런 틀을 만들어주는 게 오히려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요.
정진세
아까 ‘낯섦’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런 낯섦의 감각들이 지금은 과정을 밟고 있는 팀들에게는 계속 제기되는 해결해야 할 문제 같아요. 이를테면 ‘별로다’라는 비평에 맞서 이건 낯선 것이고 새로운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기 위한 과도기이기 때문에 지금의 시기를 서로 잘 버텨내야 한다는 식의 응원, 일종의 동료비평과 메타비평 같은 게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혹은 관객들이 기존의 관습적 관극이 아닌 새로운 관극체험에 대한 기획, 배치를 새롭게 해보는 큐레이션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혹시 창작자 여러분들께서 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지, 각자가 직접 수행하는 방법론이 있을까요?
김신록
제가 하는 것이 몸으로 탐구하는 작업이지만 또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개념이나 언어를 명징하게 하려고 많이 시도하고 있어요. 제가 발화하는 때에나 글로 쓸 일이 있을 때, 공연을 만들면서 워크숍을 할 때 명징하게 언어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요. 그것을 공연으로 무대에 올릴 때도 이것이 어떤 연기적인 실험의 일환, 연기적 탐구의 일환의 한 매듭으로서 무대에 오른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홍보를 해요. <뫼르소>의 경우 ‘<이방인>을 가지고 연기적 실험을 한다.’고 한 것처럼, 내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과 의도가 무엇인지 알린 다음 그것을 목격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지원금의 시기나 기간을 따라가기보다는 저의 흐름을 지키려고 합니다.
성지수
‘네이밍(naming)’과 ‘콜링(calling)’이 저희 팀에서 주력하는 작업 중 하나인데요, 이게 방금 말씀하신 ‘언어를 명징하게 하는 것’과 통하는 것 같아요. 아까 박세련 연출가께서 ‘이것은 과정이다.’라고 밝히고 관객을 부른다고 하셨는데, 저희도 비슷한 방식을 취하거든요.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고, 재미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려면 정확하게 불러줘야 하더라고요. ‘우리가 하려는 게 뭔데, 네가 왔으면 좋겠어.’ 작품과 관객을 특정한 방식으로 호명하는 순간 이미 작품이 시작된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올해 초 <제2회 흡연자인권대회>가 홍보 단계부터 아예 작품의 콘셉트에 맞게 호명한 사례예요. 그리고 젊은 비평가들의 성장에 저희도 주목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그들과 같이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비평집단 시선이 ‘관객과의 대화’를 지속하고, 이전의 연극 비평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대학 연극이라든가 퀴어 연극제 등을 비평하시는 것을 보면서 ‘낯섦’의 좋은 점을 함께 구체화해나가는 좋은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로사항 #저작권 #크레딧 #상호참조 #표절
정진세
작업하시면서 겪는 애로사항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도 궁금한데요. 이를테면 구체적으로 저작권이나 크레딧의 문제, 예술가의 상호참조, 표절 문제 등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성지수
최근 작업에서 저작권이나 크레딧 문제에도 집중을 해왔어요. 안전한 작업 환경은 마련했는데, 그다음에 관객과 만나는 과정 혹은 ‘이것은 누구의 작품’이라고 소개되는 과정에서 그 열매를 누가 딸 것인지의 문제를 작업의 주제로 놓고 2018년에 ‘카피레프트 프로젝트’라는 4개월간의 작업을 했습니다. 말씀하신 저작권, 크레딧, 표절 같은 문제를 소재로 하는, 4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진 전시 퍼포먼스였어요. 뒹굴의 1년 전 작품을 본 관객을 찾아가서 어떤 내용의 공연으로 기억하는지 인터뷰하고 재구성해서, 비슷한 영화나 드라마하고 병렬시키는 섹션도 있었어요. 그 이전에 삼일로창고극장에서 했던 공연에서는 크레딧을 개발해보기도 했는데요. 우리가 공연에서 한 역할을 작가, 연출과 같은 관습적 언어에 매몰되지 말고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다 네이밍 해보자는 취지였어요. 그랬더니 프로그램 북에 크레딧이 두 페이지가 나왔고 그것도 부족해서 뒤로 계속 미주를 집어넣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다음엔 순서가 문제가 되는 거예요. 사발통문을 써야 하나,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했었어요.(웃음) 또, <제2회 흡연자인권대회> 같은 경우는 저희가 환경 세팅을 했지만 실제로 발화를 한 건 모두 관객들이었기 때문에 공연이 끝난 후 ‘이게 우리 작품이야.’ 하고 손에 쥘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지니까 되게 허무하다, 혹은 이것을 다시 공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런 고민이 있었어요.
정진세
상호 참조와 표절 부분도 이야기해 주실 수 있는 분이 있을까요? 개념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동시대 창작자들이 느끼는 게 얼추 비슷할 수 있잖아요. 이를테면 개념을 시각화하거나 외화할 때 공유물들이 서로 닮아지는 거죠. 개념은 좀 더 이미지화하거나 좀 더 감각화하는 어떤 단계들이 필요할 텐데, 당장 발표를 하려 하면 급하게 머릿속에 있는 1차원적인 이미지가 구현될 것이고, 그렇다 보니 비슷하게 보여지는 것이죠. 그건 누가 보기에는 정말 표절을 연상시킬 정도로 닮기도 하고요. 과정 공유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도 보여지는데요.
김신록
워크숍을 하다보면 다양한 엑서사이즈(exercise)를 개발하기도 하고 활용하기도 하는데, 내가 배운 것을 그대로 재현할 땐 반드시 어디서 누군가에 의해 경험한 엑서사이즈인지 밝히고, 만약 그것이 내 것으로 완전히 소화되어서 관점이나 방식이 내 것이 되고 나면 원형이 있더라도 밝히지 않고 제 방식으로 소개를 합니다. 제가 한 수업을 누군가가 그대로 다른 곳에서 수업한 적이 있었는데, 내 것을 썼다는 것보다는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자꾸 공유하면서 소모하는 것이 문제인 거예요. 저에게는 명징하게 만든 이것이 너무 중요한데, 얼추 듣고 가서 약간 다르게 풀고 있는 것이 저한테 너무 속상한 일이에요. 출처를 밝히는 것, 자기 것으로 완전히 소화해 자기화하는 것에 좀 더 민감해졌으면 좋겠어요.
윤서비
기획자들이 창작자들의 방법론을 차용해서 기획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그것에는 좀 불편한 감정이 있어요. 누군가만의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들이 극장을 벗어나 뭔가를 할 때, 그걸 본 기획자가 유사한 기획전을 만들어놓고 유명 연출가를 섭외하는 경우를 봤어요.
박세련
공감하는 게, 어떤 제도 안에서 이루어진 작품들은 시선이 가게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도 개발해왔던 것인데 크게 보이는 건 그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그걸 따라 한 것 아니냐, 하는 경우가 생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좀 서운하더라고요.
성지수
저는 이런 질문들 자체가 ‘새로운 미학의 발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동시에 ‘아티스트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예술 작품이라는 것을 오리지널리티로 설명할 수 있나?’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 같아요. 도덕성의 차원에서 ‘남의 것을 훔치면 안 돼. 참조한 것을 잘 밝혀야 해.’ 하는 것이 과도기에서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면, 결국 그다음에는 공연예술 작품이 내 것이라거나, 완결 가능한 것으로 표현한 수 있는 것, 단일한 개별적인 무언가로 말할 수 없는 작업이란 것을 인정하는 단계로 갈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면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문제들도 새로운 차원에서 답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기지 않을까요. ‘거기에 집중하는 게 아니야.’ 라든지요. 혹은 이젠 질문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라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앞서 말씀드린 카피레프트 프로젝트에서 이 이슈, '공연예술에 오리지널리티가 있어? 어디 있어?' 를 정면으로 다루었는데요, 이를 구체적으로 언어화하는 작업이 더 이어져야겠지요.
#기존 연극의 안티테제 #미래 비전 #전망
정진세
이번 기획 연재 글에 어느 분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는데요. 과정에 주목하는 이유로 “과거는 망했는데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을 때.”라고 한 줄로 정리해주셨더라고요. 오늘 모이신 창작자님들께서 일종의 안티테제로서, 기존의 연극을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문제 삼는다는 것인지는 잘 알게 되었는데요.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론이나 미래 비전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과정에 주목하는 현상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개인의 전망을 짧게 나눠 보고 토론회를 정리하겠습니다.
성지수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훨씬 덜 들이면서 취할 수 있는 쾌(快)가 많은 이 유튜브 시대에도 연극을 보러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희가 생각하는 방향은 ‘보는 연극’이 아니라 ‘만나는 장’으로서의 연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처음 시작할 때 팀명 앞에 붙였던 것이 ‘소통 프로젝트’였었는데요, 더 이상 ‘제4의 벽’, ‘눈’으로 관객을 축소하는 것이 연극에서는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살을 가지고 숨 쉬고 있는 관객과 배우가 만나는 곳을 만드는 게 연극의 역할이어야 한다는 것에 집중해서 계속 작업을 할 겁니다. 구체적으로 예시를 들자면, 무대에 어떤 디자인의 의자가 올라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객이 앉을 의자가 어때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뒹굴에게는 똑같이 중요한 창작의 영역에 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요새 ‘왜 나의 작업은 직업이 아닌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같은 분야에서도 ‘연기술’이라는 말은 어색하지 않은데, 연출가의 능력을 ‘연출술’이라 하지는 않잖아요. ‘연출력’은 써도.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면 창작 언어가 없었으니까, 방법론으로 구체화할 만한 것이 비가시화되어 있거나 낭만화, 신화화되어 있었으니까 힘이지 테크닉이 아닌 거예요. 과정에 주목하면서 낭만화나 신화화된 영역이 타파되고, 평가 가능한 방법론으로 저의 역할이 구축된다면 스스로를 ‘연출가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게 덜 부끄러울 것이라 기대합니다.
박세련
저는 최근 고민을 잃어버린, 고민하지 않고 과거로 회귀하는 한국연극에 대해 ‘극혐’ 수준의 상태에 이르렀고, 전통적 방식에 대해 거부감을 가져서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해보고 찾다가 ‘그런데 왜 사람들은 전통적인 것을 여전히 좋아할까?’ 하는 질문이 들더라고요. 나는 과거의 것이 너무나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새로운 것을 찾아보려 하는데 사람들은 왜 그걸 좋아할까? 하는 이 질문에, 최근에는 과거의 흐름을 역추적해가고 있어요. 망했다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과거에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테니 그것을 잘 분석해보면 새것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과정 자체가 한국연극에서 계속 유행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유행이 계속될 것 같으니 각 파트 예술가가 조금 더 공부면 공부, 연구면 연구를 통해서 새것들을 발굴해내는 힘을 키우는 시간을 지속해서 가지면 좋겠어요.
윤서비
아무래도 일반적이진 않은 작업을 하다 보니까 저희 안에서 먼저 질문이 나와요. “관객도 이걸 재미있어할까?” 그런 이야기를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저는 “그 관객이 대체 누구예요?”라고 물어요. 저는 그 관객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저의 관객은 ‘모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관객은 곧 나이고, 나와 동일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을 제 눈앞에 앉혀놓고서 연출을 하고 있어요.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해요. 당연한 것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과정을 중시한다는 것은 정책적 포장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공유란 말도 사실은 과정에 주목하다 보니까 결과나 발표라는 말을 쓰기 난처하니까 만든 궁여지책이라고 생각하고요. 결국에는 하던 것 계속하고 있는 것인데, 이제야 정상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혜령
제가 아이를 키우게 된 이후로 공연을 보러 못 가는데, 극장이 정말 심각한 여성 혐오 공간이라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어요. 미술관이나 장애인 전용 극장에는 유모차로 아이를 데려갈 수 있지만 대다수의 극장은 그러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극장 밖의 다른 공간에서의 공연이 정말로 유효할 수 있고, 거기에서 하는 공연을 잘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요. 또, 듣고 보고 감상한 것을 각자의 이야기로 가져갈 수 있는 경험을 만드는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방향을 향해서 해보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김신록
마치 새로운 것만이 동시대적이라는 감각을 독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2004년에 연극을 시작했거든요. 굉장히 아름다운, 극장의 환영(幻影)도 봤었고요. 그리고 정말 놀라운 일이죠. 유튜브가 그렇게 좋은데 우리는 왜 돈을 주고 연극을 볼까. 저도 <뫼르소> 할 때 비 오는 날에 신촌까지 찾아온 사람들을 보면서 ‘이분들은 다 여기에 왜 왔나.’ 그게 되게 중요한 질문이었거든요. 그 시간에 이 사람들이 한 시간 동안 여기에 앉아서 이걸 바라보거나 감각하거나 무엇이 됐든 그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나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존 한국연극의 안티테제란 말을 쓰셨지만 저는 안티테제란 말을 대상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뛰어넘으려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것을 경험했고, 그것을 경험하고 나니 내가 더 하고 싶은 것, 더 맛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뛰어넘어 그 너머로 가는 것으로 생각해요. 저는 바람이 있다면 과정에 대한 이해는 점점 세분되면 좋겠고, 대신 과정 지원 체계의 설계와 실현은 통합적인 방향으로 나갔으면 좋겠어요.
정진세
네. 저희가 3회에 걸쳐서 과정-논쟁을 진행했는데요. 사실 토론이기보다는 기존의 미학을 돌파하기 위한 서로 간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자리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전에는 한국의 연극이 굉장히 낭만화, 미신화되어 있었거나, 혹은 서구에서 비롯된 개념적인 것이었다면, 지금은 보다 우리다운 창작 방법론을 고민하는 것 같고요, 그런 의미에서 연극의 당사자적 목소리들과 주체적인 고민이 다양하게 많이 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정을 위한 노력은 기존의 결과 중심의 미학에서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방증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그동안 결과물과 만나왔던 관객분들께서는 과정을 경험하는 시간을 좀 더 참고 즐겨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결과를 미학적으로 판단해왔다면, 과정은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런 지점들이 ‘과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과제로 주어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렇게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태그 과정,논쟁,창작자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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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봄

리봄
연극학을 공부하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쓴다.
rheebom@gmail.com
제168호   2019-09-2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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