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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풍경들_미래의 시간에게 건네는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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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어느 대형 전시의 철거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다. 부서진 전시 구조물들은 굴착기에 담겨 트럭에 수차례 실렸다. 산산조각 난 잔해들은 마치 마구 파헤쳐진 숲속의 벌목 현장 같았다. 지켜보다가 폐기물들의 먼지와 파편으로 인해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며칠 지나 다시 방문한 전시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하얗게 표백되어 있었다. 그해 대형 전시는 소위 대박이 났고 젊은 관람객들의 SNS를 도배했다. 반짝이고 화려한 이미지들에 열광했지만, 그 이미지들 이후의 장면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작업을 할 때마다 버리는 것들이 많아졌다. 작업실이 없기에 좁은 집에 보관해야 했는데, 그럴 때면 전시나 공연에 사용했던 설치물의 마지막 거처는 쓰레기장이었다. 이러한 고민 이후 작업은 활동, 무형, 비물질, 사라지는 양식을 띄는 방식으로 점점 변화해갔다. 예술가 이전에 영화마케터로 직장생활을 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마케터로서의 삶은 너무 많은 물질, 정보, 연결, 노동에 둘러싸인 환경이었고, 대체로 과정과 결과가 모두 숫자로만 치환되는 일이었다. 그 속에서 생산된 것들은 세상에 잠시 반짝 나타난 후에 급속도로 버려지고 잊혀졌다.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극장에 버려지는 수많은 영화전단지와 광고 POP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이미지의 시대는 현재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는 현재라고 호명하는 순간에도 바로 과거가 되어 타임라인의 시간처럼 아주 먼 과거가 되어버린다. 연결과 접속이 중요한 이미지의 세계에서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읽고 소비하기 쉽다. 하지만 그 이미지 너머의 것을 읽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삶은 거대한 이미지의 환영에 잠식당할 것이다. 예술가로서 그동안 이미지를 통해 질문을 건네는 작업을 해왔다면 2020년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더 이상 예전의 방식으로 작업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대면할 수 없는 시대에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라는 문제와 더불어 내 안에 또 다르게 촉발된 것은 세계의 구조와 욕망, 작동 방식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러한 시기에 기후변화 레지던시 참여작가 모집공고 소식을 보고 지원하게 되었다. 개인으로서 혼자 고민하기보다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 활동가들, 연구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지금의 문제들과 대안을 함께 모색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간 미디어로 연결된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관계망과 환경들, 생태적인 시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고민을 적극적으로 마주하고자 했다. 도시 생활에서 비롯되는 감상적인 자연관이 아니라, 풍경을 하나의 생태계와 삶의 터로서 읽는 연구와 실험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참여작가로는 시각/다원예술 작업을 하고 있는 필자를 포함해 구지민(시각), 이승연(시각), 김보람(다원), 이혜원(연극), 문박예진(연극/다원) 총 6명의 작가들이 선정되었다. 이후에 강원도 화천에서 7월 23일부터 28일까지 5박 6일간의 1차 공통리서치가 진행되었다. 이번 레지던시의 특이점은 개인 리서치 외에 모두가 함께 모여 연구하는 공통리서치가 총 3회에 걸쳐 진행된 것인데, 낯선 사람들과 긴 시간 고민과 연구의 과정들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 작가들 외에 前국립기상과학원장 조천호 박사, 생태미학연구소 유현주 대표, 생명다양성재단 김산하 박사가 참석하여 ‘기후변화’, ‘환경’에 관한 강연과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조천호 박사는 ‘기후변화와 지구의 위기’를 주제로 현 상황의 심각성을 객관적인 지표를 토대로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지구의 온도가 10,000년 동안 4도가 올랐는데, 100년 동안 1도가 상승한 예를 들며, 지구가 급격한 이산화탄소 배출을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이제 8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상위 10% 국가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49%에 반해 하위 50% 국가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10%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국토 포기를 선언한 투발루 공화국, 2010년 러시아 대가뭄, 4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시리아 내전 역시 결국 기후위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에 놀랐다. 시리아 내전을 촉발시킨 것은 러시아 밀 생산 지역의 가뭄으로 인한 밀가루 가격 급등이었다. 세계의 불균형과 자원의 독점, 자본의 논리가 대량 소비와 폐기를 부추기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에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현주 대표는 <화성에서 온 메시지>라는 전시를 통해 ‘환경과 관련한 예술가들의 작업과 실천 사례들’에 대해 소개해주었다. 이 전시는 기후변화가 심각해져 화성으로 예술가들이 이주한 상황을 가정하여, 지구의 기후변화 문제를 예술의 언어로 표현했다. 참여 작가들 중에 아비바 라마니(Aviva Rahmani)의 <The Blued Trees Symphony>가 인상 깊었다. 지구의 해수면 상승 이후의 변화된 대륙에 주목하며 새로운 지도와 낯선 소리로 풀어낸 작업이었다. 해외의 좋은 사례들을 접하면서도 기후변화 문제를 한국에서는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아직은 막막하기만 했다. 한편, 김산하 박사는 ‘기후변화와 공존의 문제, 생물 다양성, 생물 보존성’을 주제로 “동물은 다른 관계다. 하등한 관계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야생동물을 생태적, 시적 존재로 바라보는 생태적 감수성이 절실한 시기라고 했다. 많은 야생 동물들이 포획되며 로드킬에 위협 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강연과 토론 이후에는 수달연구센터, 화천농부들 로컬 카페, 토속어류생태 체험관, 산소길, 동구래마을 숲길 등의 환경 투어를 통해 화천의 현재 이슈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중 모두가 공감하고 가장 안타까워했던 이슈는 화천의 산천어 축제였다. 원래 산천어가 살지 않는 화천에 오로지 축제를 위해 전국 17개 업체로부터 ‘외래종’인 산천어 36만 마리를 납품받게 되는데, 이동 과정에서 수많은 산천어가 죽거나 기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하지만 반생태적이고 비인도적인 산천어 축제를 두고 이에 항의하는 환경 보호주의자들과 축제를 통해 생계를 겨우 꾸려나갈 수밖에 없는 지역주민들의 문제는 복잡한 사안이었다. 이 외에도 생태 축제를 표방하지만 탄소 배출과 폐기물 및 쓰레기를 유발하는 많은 지역의 축제들은 그 이면에 환경 파괴를 조장하는 자본주의 경제 논리가 너무나 공고했다.

한편으로는 기후변화가 계급, 인종, 시스템 등의 다양한 문제와 연결되어있기에, 보이지 않는 구조와 욕망을 대면하고 질문을 던지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레지던시를 통해 특정한 누군가가 자원을 독점하고 소유하는 형태가 아니라, 서로의 경험이 어떻게 연결되며 그 경험들이 삶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바꾸는지 실험해보고 싶다. 그러한 실험들이 이제껏 가보지 못한 길을 내디딜 수 있는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삶의 방향과 속도를 돌아봐야 할 때다. 코로나 사태 그리고 역대 최장기간 장마를 통해서 기후변화와 기후위기라는 말을 이전보다 더 언급하게 되었지만, 급격한 대재난을 경험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아주 먼일이라고 생각한다. 존 버거의 <풍경들>을 다시 읽다가 무심코 지나쳤던 구절이 새롭게 다가왔다. “자연은 에너지이고 투쟁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인간이 자연을 하나의 장, 무대로 생각한다면 자연을 선(善)뿐만 아니라, 악(惡)에게도 스스로를 내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연이 보내는 위기의 신호들을 어떻게 잘 읽을 수 있을까? 그리고 예술가로서 어떤 이야기를 다시 건넬 수 있을까?

[사진제공 ⓒYong-seok CHOI]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 기후변화2020_ 화천에서 환경을 말하다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기후변화’는 화천 예술텃밭의 새로운 레지던시로, 2020년 ‘화천에서 환경을 말하다’를 시작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와 우리 삶의 위기에 대해 지속적인 탐구와 예술적 활동을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7월부터 12월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하는 6명의 작가들(연극, 다원, 시각 등)이 기후변화와 기후위기를 주제로 화천 지역과 함께 연구한다. 프로듀서그룹 도트와 문화공간 예술텃밭이 공동 기획하며 참여 예술가의 공통 리서치 프로그램, 개별 리서치, 지역 커뮤니티 워크숍 등을 통해 12월경에 시민들과 함께 하는 오픈 스튜디오가 열릴 예정이다.
https://www.facebook.com/producergroupdot

태그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 기후변화2020_ 화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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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영

허나영 시각/다원예술가
아무도 의뢰하지 않는 [영적인 탐구 여행사], [멀리까지 여행하는 방], [표류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탐정이 되는 것이다.
movingoffice.detective@gmail.com
제185호   2020-08-20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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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철
심각합니다. 공감합니다. 뉴스공장 등에서 같은 이야기를 새삼 거론하고 있어서 더 절감하고 있었는데. 영화나 연극 미술 등에서도 더 적극적인 미니멀과 단순화 디지털화가 필요하겠네요. 과잉과 부족의 불균형을 넘어 절멸을 앞두고 아귀다툼이 더 끔찍합니다, 시리아처럼 . 연극계에서도 다른 관계론이나 존재론은 이제 허튼 소리가 되겠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2020-08-25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