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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정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대학로 연대기] ③표현의 자유-上

김석만_연출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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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연대기

1)미네르바 사건:
2008년 하반기 인터넷 논객 박대성 씨가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리먼 브라더스의 부실과 환율폭등,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예견하는 글을 올렸다가 허위사실유포혐의로 체포 및 구속되었다가 무죄로 석방된 사건.

2)박경신 교수의 '성기사진'사건:
남성의 성기 사진을 블로그에 게시한 혐의(정보통신법상 음란물 유포)로 기소된 고려대 박경신 교수 (41: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사건.

3)박정근 트위터 리트윗 사건:
북한 계정의 트위터 글을 리트윗한 내용을 국가보안법으로 기소 구속한 사건. 최종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 오늘날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사는가? 아마 많은 사람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 검열은 폐지되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로 되어 있고,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로 검열을 원천적으로 부정한다. 그러나 대선에서 야당 대통령 후보 지지연설을 한 연예인이 방송출연을 거절당했다는 폭로나 고발도 의미심장하고, 2008년의 미네르바 사건1)이나 최근에 논란이 일었던 박경신 교수의 '성기사진' 사건2)이나 박정근 트위터 리트윗 사건3)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우리에게 완전한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미네르바 사건 만평 [출처] 경향신문 2009년 01월 09,10,12,13일

    필자가 대학로에서 학교를 다닐 때 즐겨 불렀던 노래는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었다. 서울대 문리대를 다녔던 신명순 방속작가의 작사를 김희갑이 작곡하고 박건이 노래를 불러서 1971년에 크게 히트한 노래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 루~ /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셋째 연의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이 2절에 가면 '덧없이 사라진 다정한 그 목소리'로 바뀐다. '임자 잃은 술잔'과 '덧없이 사라진'이 주는 뉘앙스가 젊은 대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당시의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 둔 3월 1일 모처럼 가족과 극장을 찾은 시민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본 영화 시작 전 애국가를 상영하니 모두 기립해 달라"는 방송이 나온 것이다. 이날 서울 등 전국 도시지역 381개 극장에선 국내 처음으로 영화 시각 전 애국가를 상영했다. 문공부(현 문화관광체육부의 옛 이름) 지시였다. 관객들은 일부 앉은 채, 또 일부는 엉거주춤 일어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걸 지켜봤다.

    극장에서 애국가 상영은 길거리 국기 하강식에서도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모든 공공기관에서는 오후 5시 또는 6시에 국기 하강식을 하는데, 여기에 애국가를 크게 틀자, 지나가던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민간 자율로 시작한 하강식은 박정희 유신정부 아래서 전국적으로 의무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내무부는 1978년 10월 1일을 기해 국기 하강식을 범국민적으로 펴기로 하고 관공서, 공공단체, 학교 등은 매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지침을 전국시도에 시달했다. 이 지침은 "국기 하강식을 볼 수 있거나 애국가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모든 국민은 그 자리에서 차렷 자세로 국기를 향해 경례하고 옥내에서는 차렷 자세를 취하되 태극기 쪽이나 애국가가 연주되는 방향을 향하도록" 규정했다. 황지우 시인의 표현대로 군사정권은 전 국민에게 매일같이 단체기합을 주던 시절이었다. 그런 억지에 대한 통렬한 시가 바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다.
1970년대 초반의 풍경
1970년대 초반의 풍경
(위)경찰이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고 있다. (아래)경찰이 시민의 머리를 강제로 깎고 있다.



  • 1971년 봄, 서울 문리대생의 데모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끼룩 거리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매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통제와 검열은 박정히 군사독재의 '10월 유신'과 1980년 5월 '광주의 봄'을 진압한 전두환 세력에 의해 극에 다다른다. 1980년 5월 계엄사령부 검열지침 가운데 대표적인 부당한 사례를 살펴보면 당시의 분위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자료는 1980년 5월 한국기자협회가 입수한 자료로 이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한 자료이다.



    5월 16일 검열지침 (일부)
    1. 학생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거나 지지하는 식의 기사는 모두 불가
    1. 성대, 국민대 시위 중 구속자 가족 3명 선두행진 불가
    1. 학생 구호 중"부정축재 환수하라" "김일성은 오판 말라" "반공정신 이상 없다"등은 불가
    1. 시위 현장에 나왔던 일부 학생들은 교통정리까지 했다는 등은 불가
    1. 서강대생 8백 여 명 마포경찰서 마당에서 연좌시위 연행학생 2명 석방요구 불가

    이에 대해 기자들은 '국민여론을 오도하기 쉬운 강요된 검열결과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결의했다. 자유언론을 실천하기 위한 결의문을 만들지만 무자비한 탄압을 받고 언론과 방송은 검열에 순응되어 간다.
4)극장 취체법: 서연호, 한국연극사(근대편), 연극과인간, 2003 pp.39-48 참조.
  • 이러한 검열과 통제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영화나 연극의 검열 등 예술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검열의 역사는 놀랍게도 일제의 조선 침략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연극개량에 동조하는 한편 신연극운동을 하는 청년들을 탄압하는 악역도 맡았다. 당시 신연극 운동가들은 진보주의자로서 급진적인 정치적 자유를 위해 과감히 메이지 정부에 도전했다. 그들은 당시 장사(壯士) 혹은 서생(書生)이라 불렸고, 역사적으로는 자유민권운동가로 분류하는데, 천황을 중심으로 입헌군주제를 정착시키려 했던 이토 히로부미(당시 수상)에게 그들은 사회질서를 교란시키는 골치 아픈 운동권이었다. 이런 이유로 제정된 것이 동시대의 「극장 취체법」이었다.4) 1988년에 사라진 대한민국의 검열은 바로 일제의 침략시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대학로 연대기] 관련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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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대학로의 기원 - 下 왕조의 옛터에서 예술의 중심지로
    ② 한국연극과 에로티시즘 - 上 억압의 정치, 에로티시즘을 자극하다
    ② 한국연극과 에로티시즘 - 下 뒷골목 연극에서 미학적 도전까지

태그 김석만, 표현의 자유, 통제, 검열, 극장취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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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만

김석만 연출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극단 연우무대에서 활동하였고<한씨연대기>,<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최선생>,<가극금강>을 연출하였다. 최근 전통공연예술의 현재화에 관심을 두고 <영원한 사랑 춘향이>,정가극
<이생규장전> 등을 연출하였다.『연기의 세계』,『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가지 플롯』『연출가처럼 생각하기』를 냈다. 페이스북facebook.com/proksm
웹진 16호   2013-01-1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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