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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운동과 소비창출의 경계에서
[대학로연대기] ⑤공연계에 불어온 마케팅 바람 - 上

김소연_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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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연대기

    대학로가 지금과 같이 소극장이 밀집해 있는 연극의 거리로 본격화되는 90년대는, 사회문화적으로 새로운 세대와 문화가 출현하는 변화의 시기다. 93년 문민정부 출범 같은 정치적 환경 변화, 세계경제질서의 재편과 맞물린 개방정책, 신세대, X세대 등 세대론과 함께 급부상한 문화담론 등은 이전까지 우리사회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변화들이었다.

  • 대중의 부상과 새로운 문화 환경

    이러한 변화는 직간접적으로 예술계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가장 두드러진 양상은 ‘대중’의 부상이다. 영화 등 대중문화의 성장은 물론이고 기존 예술계에서도 ‘대중’은 수동적인 수용층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과 주관적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데에는 컴퓨터통신과 같은 매체의 발전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다른 한편 90년대 예술계를 휩쓴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중적 미학은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구분과 위계를 무너뜨린다. 대중문화의 미학, 기법, 제작방식 등이 기존 예술계라 지칭되는 장에서 통용되는 작품에서도 종종 드러나기 시작한다.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변화라면 ‘문화’가 고부가가치 지식기반 산업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민의정부 ‘신지식’과 같은 정책드라이브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진 것이다. 물론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기초예술’과 같은 용어가 등장하는 것처럼,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에서는 세상의 이해관계에 무심한 채 예술혼을 불태우는 예술가를 연상시키는 ‘가난한 연극’이라는 말이 통용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획, 제작, 마케팅 등의 용어가 낯설지 않은 혼재된 현실은 90년대 사회 전반의 변화와 맞물려 시작되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순수연극(?)과 상업극을 나누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 경계가 어디인가에 대해 합의된 여론은 없다. 대학로 소극장들을 비롯해 명동예술극장, 남산예술센터, 국립극장, 예술의전당 등 공공기금이 제작에 투여되는 공공제작극장까지, 수익을 냈는가 아닌가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티켓을 팔고 사는 상업적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는 극장이나 공연은 없다. (거리극이나 공공프로그램으로 제공되는 몇몇 공연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근대극 도입 이래 연극 및 공연예술의 오랜 과제인 ‘관객개발’은 이제 계몽주의적 연극운동의 용어에서 소비창출이라는 마케팅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상업적 성공에 목표를 둔 상업극이 대학로의 한 모습을 형성하고 있는 한편, 또 어느 어름에서는 ‘좋은 연극을 더 많은 관객들이 보아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이념과 연극의 물적 토대 확보를 위한 수익창출이라는 경영적 관점이 데면데면 동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포스터 보고 공연 고르던 시절

    81년 문예회관(현 아르코예술극장)이 건립된 이후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30여 개의 소극장이 대학로에 밀집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대학로가 연극의 거리로 형성되는 즈음에 터져 나온 문제 중 하나는 아이러니 하게도 과다한 포스터 부착이었다. 월간 『한국연극』(한국연극협회 발행) 1993년 5월호 특집 좌담 “연극계, 이것만은 달라져야 한다”에서 연극계 현안으로 가장 먼저 꼽고 있는 것이 포스터 대량 제작 및 포스터 부착 과열 경쟁이다. 좌담에 따르면 포스터 제작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쇄물 비용이 인건비를 제외한 제작비의 30%에 육박하는 실정으로 대관료 다음으로 제작비 압박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이다. 대량으로 제작된 포스터가 일제히 대학로에 부착되면서 서로 더 잘 보이는 곳에 더 많이 붙이려는 과열 경쟁으로 이어지고, 대부분 불법부착물인 포스터들이 벽에 붙자마자 쓰레기가 되어 버리고, 포스터의 짧은 수명(?)은 다시 대량제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붙자마자 쓰레기가 되어 거리에 나뒹구는 포스터들은 연극인, 관객,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당시 이 문제는 여러 지면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질 만큼 연극계, 대학로의 골칫거리였다. 연극인들 스스로 자성을 촉구하고 지정게시판 운영 등의 제도적 장치를 낳게 된다.
무질서한 문화게시판
무질서한 문화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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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지가 되어버린 포스터 (문예회관 벽)
    받자마자 그 옆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


    [출처]『한국연극』1993년 5월호 21~23면
     
    물론 대학로 시대 이전에도 불법포스터 부착은 종종 문제가 되어왔고 지금도 대학로 거리에는 포스터들이 제도화된 게시판에만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이 문제가 특히 심각해진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일단 극장이 대학로에 집중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학로라는 한정된 공간에 공연장이 집중되고, 공연장 수가 증가하면서 공연 수도 증가했다. 90년대 초반 대학로 소극장 수는 30개를 넘어섰고 90년대 말이 되면 40여 개에 이른다. 매일 밤 대학로에서 오르는 연극만 30여 편이 넘는 것이다. (물론 대학로 소극장 100개를 넘어선 지금으로서는 이 숫자가 당시의 충격으로 체감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대학로에 부착되는 포스터 등 홍보물의 양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 양은 여타의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거기다가 신문이나 방송에 소개되는 공연은 극히 일부이다. 결국 별다른 인력이나 예산을 홍보에 투입할 여력이 없는 연극제작 현실에서 포스터는 유일한 홍보수단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포스터 과다 부착 문제는 대학로 거리정화와 같은 자성과 자구 노력이나 문화게시판과 같은 제도적 장치보다 초고속전산망이 구축되면서 상당 부분 해소된다. 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홍보수단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할인티켓, 잠재관객 유인이냐 가격불신이냐

    앞서 언급한 좌담에서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가격 할인권이다. 무작위로 배포되는 할인권이 티켓가격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다. 흔히 우대권이라 불렸던 할인권은 이전부터 공연홍보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주요한 관객층이 대학생들이었고 대학가 서점이나 카페에서는 할인권 등을 비치하거나 공연예매를 대행하기도 했다. 포스터가 기본적인 홍보수단이라면 할인권, 우대권은 티켓마케팅 수단이다. 우대권은 공연정보를 알리는 홍보수단이면서 가격할인이라는 혜택으로 잠재관객을 유인하는 효과를 갖는다.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할인제도라면 우대권이 거의 유일했다. 당시만 해도 거의 대부분의 극단은 관극회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대권은 관극회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혜택으로 특정한 타깃 관객층을 유인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90년대 내내 할인제도는 계속해서 증가한다. 우선 91년 ‘연극의 해’에 시행된 사랑티켓제도를 들 수 있다. 사랑티켓은 관객들이 일정 액수의 할인된 가격으로 티켓을 구매하면 그 차액을 공공기금으로 보전해주는 제도다. 관객지원제도라는 점, 불특정 다수가 아닌 실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연극관객 대부분이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층이라는 점에서 이 제도는 상당히 큰 호응을 얻는다. 그러나 티켓가격의 왜곡, 운영의 불투명성 등의 문제, 운영방식의 잦은 변화, 기금의 불안정성 등으로 점차 유명무실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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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티켓을 이용하는 관객

    [츨처] 한겨레 1995년 07월 01일

    연극계에서는 고가의 티켓이 관객 확대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사랑티켓의 성공은 이 오랫동안의 심증을 확증으로 굳히게 한다. 당시는 한국영화의 성장으로 작품의 성취는 물론이고 관객층이 확대되고 있던 시기였다. 성장하고 있는 영화와 비교하여 연극은 가격경쟁력에서부터 현격하게 불리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반액티켓’과 같은 파격적인 시도로 나타나기도 했다. 창작자 단체라 할 한국연극협회는 극단 대표자 회의를 통해 반액티켓에 대한 한시적 운영에 의견을 모으고 96년 7월 15일부터 8월말까지 시험시간을 거친 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오전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 마로니에 공원 옆 티켓박스에서만 판매되는 반액티켓은 시간과 공간의 한정에도 불구하고 시행 초기 호응이 높았다. 그러나 파격적인 할인가격이 제살 깎아먹기라는 비판과 가격불신을 초래한다는 비판도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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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액티켓

    [출처]『한국연극』1996년 10월호 34면

    공공기금의 운영이나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사업 외에도 개별 공연단위의 티켓할인은 다양하게 전개된다. 장기공연물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할인, 경품 이벤트가 마케팅수단으로 활용된다. 1천회 특별공연이라든가, 1만 번째 관객 경품, 혹은 특정한 날짜나 기간의 반짝 세일 등이 도입된다. 물론 이러한 이벤트 기획을 딱히 90년대적 현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케팅을 위해 적극적으로 할인이벤트, 경품이벤트를 기획하는 양상은 분명 새로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한 공연에서도 관객 유형별로 각종 할인 이벤트가 동시에 진행되기도 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 공연에 도입되는 이벤트는 더욱 다양화되는데, 커튼콜 후에 특별한 기념일을 축하하는 이벤트를 벌인다거나 더 적극적으로 공연 중에 프로포즈와 같은 이벤트가 삽입되기도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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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김소연, 대학로, 공연, 마케팅, 티켓,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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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연극평론가
연극평론가. 컬처뉴스, weekly@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을 보고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든다.
웹진 20호   2013-03-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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