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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라는 십 년 고개를 넘어가는 법, 호명과 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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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즐겁게 살아남기] 첫 번째 이야기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관객 좌담시리즈 ‘연극, 관객이 완성한다’에 이어 이번 호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기획연재는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이라는 주제로 연극 활동의 새로운 시도와 공유의 방식을 확장하고 있는 움직임들을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최근,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연극은 극장 속 한 개인의 예술적 담론을 펼쳐내는 작업을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관객과의 공유지점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술가들 역시 단순한 ‘너와 나’의 협업을 뛰어넘는 연극의 창작과 활용, 소통의 방향성을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연극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고 있습니다. 즉, 자발적 연대로, 거점공간의 확장으로, 지역과 사회의 현장으로, 각각의 창작 환경에 적합한 활동을 통해 연극을 담는 판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에서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활동사례를 통해 연극이 얼마나 더 즐겁게 무대를 열고 있는지, 그것이 연극의 다양성을 어떻게 확장하고 있는지, 관객들과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홀로’ 연극하기에서 ‘함께’ 생존하기

한국의 현대연극은 각각의 시대별로 세대주체들이 활약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것은 ‘대학로’라는 장소에 기반한 ‘제도’가 정부주도로 설계되고 진행되었던 80년대와 다양한 주체들이 접속했던 90년대 그리고 안정화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왔다. 다소 거칠게 말하면, 유신 시대를 헤쳐 나갔던 전후 민주화 세대들이 대학로의 초창기를 담당했고, 그 뒤를 이어 386세대가 90년대를, 포스트 386세대(90년대 학번)가 2000년대를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2010년대 ‘대학로’를 접수해야 할 세대는 과연 누구인가?
도식적으로 말하면, X세대 다음의 ‘N세대’ 라고 불렸던 30대와 88년을 전후로 태어난 88만 원 세대에 이르는 20대가 그러할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이들이 대학로의 주인(?) 혹은 주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이데올로기에서 매체로, 그리고 경제논리로 호명된 세대주체는 ‘연극동네’ 에서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찾을 것인가.
연극예술을 한다는 이유로 불가피하게 ‘잉여’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젊은 창작자들에게 ‘대학로’는 맘껏 활개 치며 놀 수 있는 공간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대학로는 그들이 ‘감당’ 해야 하는 애증의 장소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맞서야 할 대학로의 기성세대와 제도권은 ‘연극의 위기’라는 동일한 어려움에 처해있거나, ‘잠시 출타 중’으로 인해 마주할 기회조차 드물다.)
다행히도 젊은 연극인들은 이러한 역설적 상황을 체념하고 우울해 하기 보다는 함께 어울려 노는 쪽을 택했다. 선배들과는 다르게 연극하는 삶의 방향이 ‘치열하게 예술하기’에서 ‘즐겁게 살아남기’ 쪽으로 조정된 까닭이다. 한편으로, 경제적 풍요로움으로 인해 성장기반을 (잠시나마) 갖출 수 있었던 90년대와 지원금의 확장으로 인해 성장발판을 마련했던 2000년대와는 지금이 완전히 다른 상황임을 직감했다.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 세대가 유일하게 힘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연대’뿐. 그리하여 이들은 동료가 불러주는 ‘호명’으로, 그리고 화려한 입성이 아니라 한 구석을 ‘점유’함으로, 서로의 존재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축제는 “화학작용”, “이십할 페스티벌” 그리고 “아오병잉 페스티벌”이다. 이 행사들의 공통점은 자발적 연대로 주최 측이 구성되었다는 점, 그리고 하나의 거점공간을 중심으로 축제적 형식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2014년, 봄과 여름, 그리고 겨울에 벌어진 이 축제들은 본질적으로 앞서 언급했던 ‘세대적’ 흐름에 입각한 공동체적 예술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십할 페스티벌과 화학작용이 각각 20대와 30대 연극인의 주체의식을 드러냈다면, 아오병잉 페스티벌은 세대적 취향을 강조하였다.
각각의 축제가 이러한 문제의식에 맞는 내용을 갖추고 이행했느냐는 살벌한(?) 질문은 다음으로 미루자. 이들은 가난하고 빈약한 자원을 최대한 끌어안고, 위계 없는 집단의 지성을 사용하여 유례없는 기획을 기회로 만들어냈다. 물론,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나 서울변방연극제, 혜화동1번지 동인 등 귀감이 되는 축제로부터 아이디어를 참조하고, 기존의 ‘젊은 연극제’나 청춘 타이틀을 내건 기성의 제도권이 주도하고 운영하는 축제를 타산지석으로 삼았음은 분명하다.

이십할 페스티벌 “이십할 혹은 이씨팔!”

[연극, 즐겁게 살아남기] 첫 번째 이야기

‘이십할 페스티벌’은 그 이름에서부터 20대의 분노와 열기가 느껴지는 축제다. 작년 12월 18일부터 28일까지 열흘 동안 마로니에 공원에서 15개의 작품이 길바닥에서 상연되었다. 한파를 피해갈 수 없었던 시기였으므로, 이를 버텨낸 것은 ‘열정’의 힘이 컸으리라. 1회 축제 때 대표를 역임했던 AND씨어터의 전윤환 연출은 12월의 축제를 위해 여름부터 ‘SNS를 통해’ 자신과 함께할 20대를 규합하고, 창작의 여건들을 마련했다. 개별적으로 참여한 20대 예술가들은 작가와 연출, 배우와 기획, 그리고 디자이너로 자기 파트를 맡으며 나름의 프로덕션을 구성하게 되었다. 일종의 강제적 ‘협업’이었던 셈이다.
스스로 주체성을 갖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던 만큼 실패할 권리와 과정을 누릴 권리는 오로지 그들의 몫이었다. 재미있었던 사실은 의도적으로 분노의 열기를 드러냈지만, 이를 진지하게 ‘위협적’으로 받아들인 기성세대는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는 전략이 실패했다기보단, 이들은 다른 세대가 20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20대가 기성의 눈에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증명해냈다.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착취의 대상으로 보지만, 이해관계가 없을 때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는 사실. 이러한 현실인식은 대학로의 새로운 연극주체가 어떻게 자기의 연극과 관객을 만들어갈지에 대한 성숙한 응답을 가능케 할 것이다.
올해 '제2회 이십할 페스티벌'(대표 양정현)은 "20대의 연극을 보여주자!"라는 모토로 진행된다. 상반기에는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는 선배 연극인 7명을 각각 초청하여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고, 하반기(11월)에는 본격적인 연극제가 선을 보일 예정이다.

화학작용 “하나의 유령이 세상을 배회하고 있다. 뜨거운 연극이라는 유령이”

[연극, 즐겁게 살아남기] 첫 번째 이야기

화학작용은 2014년 여름, 20명이 넘는 연출가들이 2팀1조의 릴레이로 자신의 연극을 선보인 축제이다. 이 작업은 ‘서울프로젝트’ 라는 도시를 다시보는 작업을 하고있던 민새롬(청년단), 이대웅(여행자), 오세혁(걸판), 유영봉(서울괴담), 전윤환(앤드씨어터) 등이 주축이 되어 촉발되었다. 이들은 상주극장인 선돌극장에서 본인들의 프로젝트만을 상연한 것이 아니라, 활동을 막 시작한 30대 연출가들과 함께 채워나가자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SNS를 통해서 혹은 주변의 증언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간접적으로나마 알았던 30대 연출가들이 서로의 정체를 확인하는 자리가 4월에 마련되었다. 스무 명에 달하는 연출가들이 서울괴담이 상주해있는 북정동 마을에 모여 서로 통성명을 하고, 축제의 취지를 나누며 막걸리를 돌려 마셨다. 대학로에서 이미 활약 중인 연출가도 있었고, 대학로 극장 경험이 일천한 연출가도 있었다. 하지만 연극을 업(業)으로 생각하고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생활인의 모습이 서로에게 귀감이 된 자리였다. 그 곳에서 ‘화학작용’ 이라는 이름도 만들어졌다. 제비뽑기의 방식으로 함께할 단체들이 매칭 되었고, 총 8주차 10회 차의 기간이 정해졌다.
개별적으로 각개전투했던 상황과는 다르게, ‘극장’이라는 시공간을 함께 나누며, 공연에 투입되는 기획/기술/디자인의 인력과 방법을 나눠쓰는 방식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축제 기간 중 가장 감동적이었던 점은 극장의 셋업과 철수를 자발적으로 서로 도와가며 해낸 것과 서로의 공연을 빠짐없이 보고 응원한 것이다. 경쟁이 아닌 협동의 원리로써 서로가 연극을 하는 창작주체임을 확인하고 확인시켜주는 그 과정은, 매우 드물고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화학작용은 공간을 마련해준 민간소극장에 대한 고마움과 존중의 표시로 “선돌편” 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신진연극단체와 민간극장의 ‘협업’ 모델이 계발되고, 젊은 창작자를 위한 새로운 채널이 열렸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앞으로 어떻게 이어져 나갈지는 미지수이나, 화학작용이 보여준 공유와 협동의 원리를 공감하는 장소가 있다면, 충분히 그 역할을 ‘함께’ 감당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오병잉 “시대에 무용한 예술을 하자”

[연극, 즐겁게 살아남기] 첫 번째 이야기

아오병잉 페스티벌은 시기상으로 가장 먼저 발생(?)된 축제다. 2014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특수를 겨냥하여 대관하기도 어려운 서울연극센터에서 3일 동안 진행되었다. ‘아시아-오프-병맛-잉여’ 라는, 대학로와는 무관할 것 같은 주제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현실에 존재하나 작품으로 다뤄주지 않는 병맛과 잉여, 혹은 비(非)예술적 예술을 다뤄보자는 취지가 강했는데, 이는 동시대적 감수성을 포착하고 드러내는데 무능한 연극 장르에 대한 비판과 세대적 특질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무기력한 대학로 스타일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실제로 “연극은 시대의 겨울이다”, “이 시대 무용한 예술을 하자!”라는 식의 슬로건을 내세움으로써, 대학로에서의 연극과 차별화되고 싶은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아오병잉 페스티벌은 총 6개의 공연과 7개의 영상이 상영되었다. 정통연극, 렉처 퍼포먼스, 관객참여형 공연 등과 스크리닝, 그리고 학술대회라는 번듯해 보이는 축제의 외피를 썼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 참을 수 없는 의미의 가벼움을 유지하려고 했다. 모금하는 방식도 자체적으로 ‘텀블럭'을 고안해냈고, 다양한 공공기관과 예술단체로부터 받은 ‘기념품(Goods)’에 아오병잉 스티커를 부착해 재판매하는 식으로 소화해냈다. 일부러 작정한 듯, ‘눈속임’하는 놀이에 관객들은 결과적으로 즐거워했고, 대학로에서 보기 어려운 ‘취향의 공동체’의 일시적 출현을 반가워했다.
인상적인 면은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대학로를 찾은 ‘커플관객’들이 축제의 장소로 변한 서울연극센터의 공간분할로 인해 오히려 눈치를 보고 불편해했다는 점. 기이한 다양성의 일시적 충만으로 인해 익숙하고 진부한 대학로가 낯설어 질 때, 아오병잉 페스티벌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연극’이라는 단일한 종(種)으로부터, 특정한 메시지를 비슷한 방식으로 강요받는 지금의 대학로 스타일은 한계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로라는 고개를 넘어가는 법

각 축제들을 살펴보면 이들이 극복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 혹은 이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항목이 축제의 컨셉이나 제작원리로 드러나고 있다. 기성이나 제도권을 닮지 않으려는 노력이 나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장치로 나타난 셈이다. 이를테면, ‘이십할 페스티벌’은 집단이 아닌 개개인 간의 매칭과 네트워킹에 초점을 두었는데, 이것은 집단주의나 연줄 혹은 연극에서의 중심적 역할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현재의 20대 창작자의 절실함이 엿보인다. ‘화학작용’은 극단의 리더격 연출가들이 자신과 동료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젊은 연출가전’의 성격이 강했다. 이는 삼십대로 접어든 자신의 작품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동료를 경쟁상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마음을 동시에 드러낸다. ‘아오병잉 페스티벌’은 ‘오잉콜렉티브’라는 유사 기획자 그룹(전강희, 성지은, 정진세)을 만들어, 대학로에서 볼 수 없거나, 보기에 민망한 예술작품들을 프로그래밍 했다. 실험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통된 취향’과 ‘완성도’에 집착하는 경직된 대학로의 모습을 반추하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현실과 직면해야 한다면, 그것을 견디며 통과하는 순간만큼은 즐거워도 된다는 전략이, 포스트-대학로 주체들의 실천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소외 없는 협력이기도 했고, 경쟁 없는 연대이기도 했으며, 강요 없는 취향 공동체이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대학로를 파괴하거나 전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더욱 확장시킨다는 데에 의의를 둘 수 있겠다.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거나, 자기만의 의제를 개발하여 연극론을 발휘해야 한다는 살떨리는(?) 말은 다음으로 미루자. 이들은 겨우 서로의 이름을 불렀고, 연극을 생활화하는 몸이 기거할 자리를 찾았다. 이들에게 ‘아직’ 이었던 대학로는, ‘이제 막’ 대학로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각 축제 사무국 제공]

태그 대학로,호명과 점유,정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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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세

정진세 극단 문(Theatre Moon) 극작가.
연극원에서 연극이론과 서사창작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주로 홍대 앞에서 공연제작 및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jinse.j
제74호   2015-08-20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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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되는 시리즈네요

2015-08-21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