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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두 번째 이야기막무가내종합예술집단 진동젤리 <법앞에서>

무대 위 인물들이 낯설다. 많이 보던 배우들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낯섦' 속에 '익숙함'이 씌워지기도 한다. 현실 속의 사람들이다.
몇 년간 이루어지고 있는 공연의 사람들이다. '변방연극제'를 통해 보여졌던 <숙자 이야기>,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맴돌았다>, <올나이트>, <똑바로 나를 보라> 등은 배우들이 아닌, 일반인으로 통칭되는 당사자들이 직접 출연하는 공연이었다. 관객들이 접하게 된 새로운 만남은 이뿐만이 아니다. '재능교육 사태'의 해결과 희망을 촉구하는 혜화동1번지의 <아름다운 동행>도 당사자들의 출연은 아니었지만, 기존의 연극과는 다른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이번 회에서는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의 두 번째 기획으로 연극이 사회와 삶의 현장과 만나는 활동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그 중 '막무가내종합예술집단 진동젤리(이하 진동젤리)', '극단 애인', '노란봉투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모색의 과정과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 이름들 또한 낯설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다.

"구일도 길어. 하루만 했으면 좋겠어"
막무가내종합예술집단 진동젤리

"끊임없이 유연한 운동성을 가짐과 동시에 명확한 실체를 갖기를 원한다."는 의미의 진동젤리. 통통 튀는 이름만큼이나 이들의 공연은 기존의 연극문법을 뛰어넘는다. <수유너머>의 연극 동아리 '광인들'에서 시작한 '진동젤리'는 이주노동자들과의 연극, 카페연극, 주차장을 마을공연장으로 만드는 프로젝트 등을 통해 일상예술의 작업을 쌓아오던 중에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구일만 햄릿>이 만들어졌다.
콜트콜텍은 기타를 만드는 회사다. 2007년 정리해고 및 공장이 폐업되면서 시작된 콜트콜텍의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은 최근 3000일을 넘겼다. 그 긴 시간동안 안 해본 방법이 뭐가 있었을까. 공장점거, 천막농성, 고공농성 등 그야말로 해볼 만큼 다 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선택은 예술과의 만남이었다. 기타를 만드는 회사여서 가능했을 이들의 콘서트는 여러 만남을 통해 '진동젤리'와의 연극하기로 이어졌다.
선왕의 망령으로 등장한 망가진 기타. 현수막, 노조 조끼, 배지 등으로 만들어진 의상. 그리고 연극 <햄릿>과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보여지는 현실의 교차를 통해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극 속의 인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현실 속 그들의 고민이 중첩되면서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구일만 햄릿>은 햄릿의 분노와 노동자들이 7년 동안 싸우며 쌓아온 아픔이 만난다. 그리고 이들이 먼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 속의, 내 옆의 사람들이었음을 직시하게 된다.
"하루만 했으면 좋겠다"며 연극을 만들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던 이들의 9일의 공연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에게 어떠한 기억으로 남게 됐을까. 분명한 것은 이들의 연극과 공연은 쉬어가는 과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예술과의 만남을 통해 싸움의 기억을 함께 하는 연대의 손길이 늘어나는,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확장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과정은 <구일만 햄릿>에서 그치지 않는다. 2014년 '진동젤리'는 <법앞에서>를 통해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과 갑작스럽게 건물에서 나가라는 건물주의 통보를 받고 싸움을 시작한 카페 '그'의 임차상인들을 무대 위에 등장시킴으로써, 법의 본질 및 법 앞에서의 개인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연대'임을 보여준다. "연극은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라는 '진동젤리'의 말이 다시금 확인되는 순간이다. 이들의 무대는 힘들게 싸워온 사람들의 고독, 분노, 절망, 사랑을 넘어서 '관계 맺음'으로 인한 확장의 공간이 된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두 번째 이야기극단 애인 <고도를 기다리며>

"마지막 순간을 위해 작은 것도 대충해선 안 되지"
극단 애인

"연극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들의 이름은 '장애인'에서 '장'자를 빼고 이루어지는 말이기도 해서 묘한 느낌을 준다. 2007년에 만들어진 극단 '애인'(대표 김지수)은 지체, 지적 장애인들로 구성된 장애인극단이다. 장애인극단 '휠'에서 활동했던 김지수 대표와 '휠'의 운영위원을 맡으며 장애인 연극을 꾸준히 만들어온 극단 '산' 윤정환 대표의 오랜 만남을 통해 활동을 이어온 '애인'은 장애인전문극단을 표방하고 있다.
장애인전문극단이라는 표현이 어색한 느낌이 있다. 극단이라는 이름을 걸었음에도 전문이라는 표현을 넣는 이유는 뭘까.(물론 이 표현은 말로 소개할 때에만 사용하고, 활자화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러한 표현을 쓴 이유는 이들의 단체 소개를 통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애인은 장애인만의 움직임과 표현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 장기적으로는 장애인 극단이 다양한 공연의 흐름의 한 분야로 자리매길 될 수 있도록 장애인의 고유성을 살리고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발굴하는데 힘쓰고자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들의 이러한 고민 속에서 이루어졌다. 무대 위에서 장애인들의 삶을 그린 창작극은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부족한 지점을 희곡에서 메꾸고, 무대 위에서만큼은 '장애인'이라는 수식어를 제거하고 싶었던 이들의 염원에 따라 고전 중에 선택된 '애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엇이 진실인지를 확인할 수 없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을 통해 고도를 기다리는 두 인물의 고통과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몸짓과 눈빛이 만나 진정성 있는 무대를 보였다.
<함께 부르는 노래>, <손님>을 통해 비장애인 배우들과의 만남을,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에서 각자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자신과의 만남을 가져온 '애인'은 최근에는 장애인극단 '휠'과 극단 '산'과 함께 협업과정을 통해 <제물포 별곡>을 공연했다. 이러한 만남의 과정들은 스스로를 확장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다가가고자 했던 것은 '고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다림의 진행형에서 보인 이들의 성실한 과정이었다. "마지막 순간을 위해 작은 것도 대충하지 않으려"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던 블라디미르처럼 이들의 삶과 무대를 향한 열정은 진행형이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두 번째 이야기노란봉투 프로젝트

"괜찮아, 니 잘못이 아니야."
노란봉투 프로젝트

2015년 5월 10일. 연극 <노란봉투>의 마지막 공연, 연우소극장의 무대와 객석은 눈물로 가득했다. 극의 마지막에 고공농성을 준비하는 '병로'에게 실제 당사자(노동자 및 활동가)들이 출연하여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는데, 이날의 출연자는 쌍용자동차 해고자인 복기성씨였다. 그는 "잘 다녀오라"는 말 대신 "올라가지마"를 연달아 외치며 병로를 끌어안았다. 현실 속 그의 고통과 아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연극 <노란봉투>는 "손해배상가압류(이하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라는 이름의 '손잡고'의 '노란봉투 캠페인'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손배가압류 개선 및 노동삼권 보장을 위해 노동과 시민의 분리를 좁히려는 노력에서 시작했다는 <노란봉투 프로젝트>는 이효리, 노엄 촘스키 등의 유명 인사들의 이름과 더불어 오랜만에 대학로에 노동연극이라는 이름을 꺼내게 되었다. 한홍구 교수의 제안에서 시작된 연극 <노란봉투>는 이양구 작가와 전인철 연출이 대학로 연극인들과 함께 만나서 강연과 스터디, 여러 층위의 만남을 진행하는 과정을 통해 무대화되었다. 공연의 특수성 때문이었을까. 연습 과정에서 이루어진 노동자들과의 만남, 집회에의 참여, 노동조합 사무실 방문은 이들의 무대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연극의 주요한 지점은 극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현실의 인물일 것이다. 공연기간 내내 매일 새로운 출연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의 출연은 <노란봉투>가 극장 안에만 머물지 않도록 우리의 눈과 마음을 현실에 놓여지게 했다. 공연임을 알면서도 뜨거운 눈물과 포옹으로 무대 위 인물들을 걱정하고, 다독이며, 공감했던 그들의 모습은 다시금 '연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연극이 끝난 후에 진행된 출연자와 관객과의 대화는 <노란봉투>가 연극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혜화동1번지'와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 <노란봉투>의 무대는 단촐했다. 벽면에 여러 겹의 노조 인쇄물과 몇 개의 낡은 의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오랜 시간 쌓여온 노동의 역사가 있었다. 실패한 파업 이후의 노동자들은 산 자와 죽은 자, 해고자와 해고되지 않은 자(누가 산 자인지, 죽은 자인지는 알 수 없다.)로 나눠지며 힘들어하지만,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라"며 자신을, 서로를 위로한다. 그리고 빨간 현수막 위에서 배우들은 너울너울 춤을 추며 사라진다. 이들의 춤사위는 현실의 당사자들의 싸움 또한 힘있게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쌍용자동차 사태로 촉발된 <노란봉투 프로젝트>는 제2, 제3의 연극 <노란봉투>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많은 손배가압류 사업장들과 곳곳의 고공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란봉투 프로젝트>는 여전히 유효하다.

[연극하기의 확장, 새로운 모색들] 두 번째 이야기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는 자들이 아니라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들이다. 아울러 그런 말과 행위가 이루어지는 극장은 일상 속에서 억압된 자유가 비로소 발생하고 공유되는 공적영역이자 정치적 공간으로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이들 공연들을 기존의 전통적 관점이 아닌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경미, <한국 연극의 새 발화주체> 中

기존의 연극문법이나 언어로 보기에 이들의 공연은 낯설다. 그동안 작품의 소재로만 등장했던 이들의 출연은 다름을 인정받는 과정이 된다.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직접 말하고 움직이며, 존재함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보여진 진정성이 '낯섦'을 넘어서는 동력이 될 것이다. 더 이상 대상적 인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발화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를 드러냄으로써 고통의 피해자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또한 '낯섦'은 이내 즐거운 연대의 과정으로 관객과 만난다. 관객들은 기존의 공연에서 만들었던 희곡의 상황과 배우의 연기가 만들어낸 단단함이 아닌 어딘가 모르게 발생하는 '틈' 속에 '끼어들기'를 하며, 이내 현실에 대한 직시와 사유를 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연극이 현실 속에서 확장됨을 느낀다.

오랜 시간 연극인들과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리였던 극장과 대학로 안에 새로운 만남이 이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연극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현실이 만나는 공간이다. 그래서 대학로의 새로운 모색이, 연대가, 연극이 확장되고 있다.

[사진: 각 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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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이연주 연출가
연극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극단 애인과 활동했으며, 최근에 <전화벨이 울린다>로 작업을 시작했다. 세상에 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신하고자 한다.
작_<너는 나다>
연출_<삼풍백화점>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스트립티즈> <고도를 기다리며>
thukushi97@daum.net
제75호   2015-09-0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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