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오프(off) 브로드웨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상업화로 변질된 뉴욕 중심 극장가에 대한 반발로,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연극을 시도하던 브로드웨이 외곽 지역을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서 오프는 ‘인(in)'에 대한 반대 의미로 사용된 것이지요. 대학로에서도 이러한 오프-대학로 개념이 있답니다. 이천년대를 지나면서 대학로의 여러 극장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올라버린 대학로 땅값과 비싼 극장 대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져 나름대로 살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러한 시도 가운데 오프 대학로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극장은 오프 대학로의 대표주자인 ‘선돌극장’ 입니다. 다소 귀여운(?) 느낌의 이름이지만, 선돌은 선사시대에 고대인들이 세워놓은 거대한 돌을 의미한답니다. 마치 번화한 중심가를 묵묵히 바라보는 경계의 입석 같지요. 선돌극장은 2007년도에 개관했으니 이제 어느덧 5년이 되었네요. 당시만 해도 혜화 로터리 부근의 극장 숫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몇몇 극장들이 더 생겨서 ‘작은’ 대학로의 느낌을 받게 된답니다.
선돌극장은 극장 나이로 치면 ‘어린’ 셈이지만, 그간 중심가의 공연장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답니다. 지리적 의미에서의 ‘오프’도 있겠지만, 공연 제작방식에 있어서도 기존의 방식을 ‘오프’하는 새로운 기획들을 선보였지요. 연중 내내 계속되는 ‘선돌에 서다’ 시리즈가 바로 그러합니다. 이를 통해 젊은 연극 창작자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여성 연출가들의 작품을 지원하며, 문학 장르와의 만남을 통해 관객들을 발굴한 것이 짧은 기간 이루어낸 선돌의 알찬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프 지역에 있지만 극장을 찾아가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한번 길을 알게 되면, 헷갈리기 쉬운 중심가보다도 낫지요. 지하철 혜화역 1번 출구에서 나와 로터리 방면으로 향해 갑니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주유소 왼쪽 차로를 따라 그대로 들어갑니다. 성북동으로 들어서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왼편에 미마지 아트센터 ‘눈빛극장’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 골목으로 꺾으면 선돌극장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극장의 티켓박스는 작은 소형 트럭을 개조한 것인데요, 작지만 개성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면 바로 극장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프 대학로이지만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설은 양호하고 깨끗합니다. 130석 가량의 객석은 좌석마다 등받이가 있고, 자리도 넉넉해서 관람하기에는 무리가 없지요. 다만 내부 출입구가 무대와 객석의 경계부분에 자리하고 있어서 지연관객일 경우에는 공연 중에 출현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초행길에는 조금 서두르시길 바랍니다.)
선돌극장은 블랙박스형의 아담한 공연장이어서, 배우들의 '말'이 중심이 되는 창작극, 번역극 등이 많이 상연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희곡들을 소개하는 실험무대로 제격인 것이지요. 관객의 입장에선 앞으로 ‘잘 나가게 될’ 작품을 미리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가능성 있는 작품들을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기쁨도 있구요. 그러고 보니 선돌극장은 새로운 연극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파트너 역할을 해왔습니다.
상연 목록들을 살펴보면, 최진아 작/연출의 <사랑, 지고지순하다>, 성기웅 연출의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 손기호 연출의 <감포사는 분이, 덕이, 열수>와 같이 관객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이어진 작품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극단 백수광부의 <야메의사>, 극단 골목길의 <레지스탕스> 등 기성극단의 사회 풍자적인 공연들도 상연되었구요, 윤한솔, 문삼화 등 실력을 인정받은 연출가들도 이 공간에서 신작을 올렸답니다.
최근에 선돌극장에서는 소설의 낭독극 혹은 신작희곡의 독회 등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물리적으로 좁고 작은 ‘소극장’의 한계를 오히려 특성화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구체적인 상상을 위해 빛과 소리를 조율할 수 있고,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소로는 소극장이 제격이니까요. 작고한 박완서 소설가에서부터, 신경숙 소설가까지 한국의 문학을 다채롭게 들려주는 작업을 해오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직접 가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대학로 중심에 속한 극장들이 ‘관객을 위한’ 극장이라면, 오프 대학로 극장은 ‘관객에 의한’ 극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조금의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하고, 조금의 시간을 더 내야하고, 조금의 발품을 더 팔아야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새롭고 특별한 공연을 맨 먼저 선보이고자 하는 선돌극장은 관객들을 존중해주는 괜찮은 파트너라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발전적인 관계가 궁금하다면, 여러분들도 시야를 넓혀서 오프 대학로의 공연들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작은 극장에서 크게 될 연극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