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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함께 지켜봐주고 성장해가는 삶: 연희단거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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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6년 5월 23일 7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사회: 오세혁
참석: 이윤택, 남미정, 김소희, 오동식, 윤정섭
구성 및 편집: 김슬기

* 연희단거리패는 1986년 부산 가마골소극장에서 시작된 실험적인 흐름으로부터 우리극연구소의 대중적인 작업들을 거쳐, 현재 밀양연극촌에 이르기까지 한국연극계의 굵직굵직한 문제작들을 선보여 왔다. 매해 여름 개최되는 밀양여름예술축제와 2006년 창단 20주년을 맞이해 대학로에 개관한 게릴라극장에서는 젊은 연극인들을 위한 열린 기회의 장을 제공하는 한편, 김해에 도요창작스튜디오를 열어 연극을 넘어선 다양한 장르의 실험을 모색하고 있다. 오는 9월 새롭게 시작할 30스튜디오에서는 보다 폭넓은 층의 관객들과 만나고 대화하면서 이 시대 연극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오세혁

오세혁
웹진 <연극인>에서 이 시대 극단의 의미와 역할을 짚어보기 위해 창단 30, 40주년을 맞은 극단들의 지나온 길과 앞으로의 방향을 함께 들어보는 기획 좌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선생님과 가마골소극장 시절을 함께 하신 남미정 선생님, 그리고 김소희 배우님과 오동식 배우님, 윤정섭 배우님 자리에 모셨는데요.
지금의 연희단거리패가 있기까지의 역사와 현재 고민하고 계신 것들에 더불어 젊은 연극인들 및 한국연극계와 어떻게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작업하실지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해서 1년 내내 기념사업들을 진행하시잖아요. 먼저 어떤 프로젝트들을 계획하고 있는지 말씀해주시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해봤으면 합니다.

20세기 연극 미덕의 실천

김소희

김소희
사실 작년에도 29주년을 맞이해서 기념 프로젝트를 계속 했었고, 그 전에도 저희 나름대로는 언제나 그래왔어요. 그런데 30주년이 되니까 조금 더 정리하는 느낌이 있지요. 오는 9월에는 30스튜디오도 개관을 앞두고 있고, 무엇보다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하지 않나, 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무엇을 하든 그걸 함께 할 수 있는 단원들이 충분히 있으니 어떤 사업을 벌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내실 있고 소박하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30스튜디오로 옮겨가고 난 이후에 <오구> 공연을 시작하는 것에서 크게 다시 정리를 해보는 기간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마골소극장에서부터 시작한 30주년을 정리하는 출판 작업을 계획하고 있고요.
오세혁
지금 말씀하신 가마골소극장은 부산에 있는 작은 극장이었잖아요. 이윤택 선생님께서 그곳에서 처음 연극을 시작하실 때의 전반적인 시대 분위기나 사회 풍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윤택
저는 1980년대부터 1999년까지 그 시기가 한국연극의 르네상스라고 봐요. 물론 1차적인 르네상스는 70년대 초라고 할 수 있지만요. 무엇보다 그때는 먹고 살 수가 있었어요. 연극해서 떼돈 버는 사람도 있었고요. 돈도 되고 생업이 된다는 차원에서 예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업과 예술의 두 축을 붙들고 갔던 것이 20세기 연극이었어요. 아직까지 인문주의가 삶의 기준이고 사회 통념의 준거였던 시대였으니까요.
남미정
가마골소극장 시절을 생각해보면, 사실 전문 배우가 몇 없었고 다들 직장이 있어서 저녁에 와서 연습하고 공연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힘들었다기보다는 늘 깨어 있었고 즐거웠던 기억이 많아요. 저도 아직 학생일 때였고, 다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삶의 가치관이 온전히 형성되기 전이었거든요. 그때 선생님께서 역사적이고 문화사적인 얘기들을 많이 해주셨고, 덕분에 언제나 살아있는 느낌이었죠. 다들 시인이었어요. 내가 재능이 있어서 연극을 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도구로서 연극을 선택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이윤택
가마골소극장에 있던 친구들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대학극 출신들이 많았어요. 연극영화과를 나온 전문인들이 아니라 외인부대들이었고, 그래서 그들을 데리고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집단의 작업정신과 방식들이 필요했던 거죠. 그러한 작업이 서울에서 인정받았던 게 <산씻김>, <시민K>, <바보각시>, <오구> 네 작품이에요. 무지막지한 집단주의의 힘이었죠. 지금도 그 작품들이 연희단거리패를 가장 빛나게 해준 연극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만들었던 대부분의 배우들이 너무 힘들어서 다 도망갔죠(웃음).
오세혁
그런데 부산과 서울을 오가면서 활동하시다가 돌연 밀양으로 들어가신 이유가 있으셨나요? 게다가 밀양여름예술축제를 시작하셨잖아요.

이윤택

이윤택
21세기가 되면 더 이상 20세기의 시대정신이 유효하지 않을 거라고 본 거죠. 돈이 되려면 예술을 포기해야 하고 예술을 하려면 스스로가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999년에 나는 영원한 20세기 사람으로 남겠다는 선언을 하고 밀양으로 내려갔습니다. 21세기는 새로운 세대들이 꾸려가는 거고, 나는 20세기의 연극적 미덕을 유지하면서 축제를 벌여야겠다 했던 거죠. 밀양여름예술축제 모토는 인문주의고 20세기를 고수한 거예요.
오세혁
그렇다면 앞서 말씀하신 30스튜디오는 어떤 곳인가요? 어떤 기획에서 시작되었는지, 공간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되는지 궁금합니다. 연희단거리패의 여타 공간들과는 다른 목표를 가진 곳인가요?
이윤택
연극은 상행위가 아니고 컨퍼런스예요. 연극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극장에 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길 원하죠. 그러니까 아예 그런 장을 위해서 커피숍을 만들 생각이고, 공연이 가능한 공간이지만 공연은 일주일에 사흘 금토일 4회만 하고, 월화수목은 세미나나 워크숍 같은 행사들을 위해 열어두려고 합니다. 어차피 돈은 틀렸으니까 돈 안 되는 연극을 하는 곳으로 만들었어요.
오세혁
지금 말씀해주신 것처럼 연희단거리패는 이곳저곳에 근거지가 있잖아요. 단원들이 하루에도 전국 방방곡곡을 이동하면서 필요한 작업들에 참여하는 걸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그 시스템은 어떻게 가능한 건가요?
김소희
저희도 하면서 놀라곤 해요. 기본적으로는 계획을 세우는 단위들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가령 게릴라극장은 해마다 연초에 12월까지 한해 프로그래밍을 하거든요. 그런데 바꾸려고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좋을 만큼 순환이 빠르고 끊임없이 변동이 생기는 거예요.

남미정

남미정
저는 지금은 독립을 한 입장인데, 나와서 생각해보면 연희단거리패에 있을 때는 회의를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연습하고 작업하는 것만큼 회의를 하는데 그 상황에서 서로 생각이 조율되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다 파악이 되는 거죠. 분명 바뀌는 것들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회의들이 그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해줬던 것 같아요. 가장 막내 단원들 하나까지도 어디에서 뭘 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 구조니까요. 물론 방법적인 거긴 하지만 그런 관심들이 있어야 하는 것 같고요. 매일 새벽까지 끝도 없는 회의들을 하면서 지치기도 했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것들이 엄청난 작업들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삶과 연극의 일치, 공동체 안의 개인

김소희
연극을 하는 구조 자체가 좀 다르긴 하죠. 같이 살고 있으니 문제가 생겼을 때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체계가 있고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배우, 노동자로서의 예술가, 그게 항상 연결되어 있어요. 오전 연습이고 오후 작업, 기본 타임스케줄은 이렇게 돌아가죠. 보통 예술가는 작업에만 집중해야지,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저희는 배우는 또한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연기를 바라보면 오히려 더 좋은 다른 지점들이 보이기도 하고요.
이윤택
김소희 대표가 최근에 밀양 지역 축제에서 사회를 봤어요. 우리는 이런 걸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연극의 영역을 확장한다고 보거든요. <오구>를 팔순 잔치에서 공연한 적도 있고요. 물론 예술로서의 연극도 있죠. 하지만 우리의 기본적인 작업 정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의미를 줘야 한다는 거고, 그런 행위를 다 연극이라고 보는 거예요. 실제로 우리가 하는 작업 중 전체의 20%는 예술이고 80%는 생업을 위한 공연이에요. 온갖 것을 다하죠.
나는 젊은 연극인들한테 늘 얘기합니다. 빨리 지역 구민회관으로 스며들어가라, 그게 살 길이다, 거기로 가면 부담 없이 연극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많다, 거기 가서 먹고 살아라, 하고요. 그런데 젊은이들이 대학로를 떠나지 않고 예술을 하겠다고 하죠. 하지만 조금만 더 시야를 넓히면 얼마든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어요.
남미정
가마골 시절에도 연희단거리패의 작업이 있고 가마골극예술연구회 작업이 있었어요. 연희단거리패는 정신무장부터 해서 집중하는 거고, 가마골극예술연구회 작업은 삶과 연극을 동시에 하는 거였죠. 그 두 가지가 병행되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줬던 거죠.
이윤택
연희단거리패의 성격을 규정짓는 가장 명백한 것은 개인적 성취동기를 인정은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연기를 할 때도 개인이 얼마나 잘 할 수 있을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아요.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거죠. 연기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공동체의 작업이고, 모두의 약속 하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의 노동이니 내 연기와 내 인생에만 매달리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물론 그래서 힘들어하고 나가는 사람들도 그간 많이 있었죠.

윤정섭

오세혁
그런데 새로운 단원들이 들어오면 극단의 시스템을 체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내셨는지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윤정섭
저는 극단에서 생활한 지 9년 정도 되었는데,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처음 할 때부터 저의 개인적 성취 같은 것은,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생님, 선배님들의 칭찬 한 마디로 충족이 됐던 것 같고요. 물론 더 발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긴 하겠지만, 그런 것들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소희
이를테면 저희 무대 제작하시는 김경수 감독님이 가장 좋아하는 무대 조수가 윤정섭 배우거든요. 연희단거리패에서 작업을 계속 하는 친구들은 그저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공동 작업을 견디는 거죠.
이윤택
윤정섭은 대학 졸업하고 바로 들어와서 연희단거리패의 방법론을 그대로 익힌 배우에요. 밖에서 제안이 많은데 우리 내부 작업 때문에 다 못하게 됩니다. 오동식은 독특한데, 우리 극단 들어오기 전에 연극적 방법론을 이미 익힌 배우죠. 해석적 연기, 소위 말하면 머리를 많이 쓰는데 이번에 메소드를 익히도록 했어요. 그런데 자꾸 연출을 하면서 내 패러디를 하더라고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물어보고 싶어요(웃음).

오동식

오동식
제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한테 야단을 많이 맞았는데, 유일하게 제가 옳다고 말씀해주셨던 분이 이윤택 선생님이셨어요. 엄청난 충격이었죠. 아, 나도 옳구나, 라고 처음 생각해볼 수 있었거든요. 그게 2008년인데 저는 제가 선생님께 받았던 것들을, 저 역시 학생들한테 줄 수 있는 것 같고요. 작품만 선생님 패러디를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실제로 그렇게 대하려고 해요(웃음). 그런데 지금까지도 저는 여전히 궁금증과 열망이 많아서 계속 배워가려고 합니다.
김소희
다양한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체질적으로는 힘들어 하지만 의식적으로는 완전히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서 가능한 사람도 있고요. 저도 한 1년 나갔다 온 적이 있는데, 밖에 나가서 보니 그 의미를 더 온전히 알겠더라고요.
이윤택
개인적인 인생은 불안하고 외롭잖아요. 한국연극의 노년들을 보면서 개인주의의 말로를 봐요. 연극은 개인적으로 가면 정말 쓸쓸하게 떨어져요. 공동체 작업인 거죠. 저는 배우의 연기 스타일까지도 개인적인 것보다는 집단 속에서 나오는 거라고 봅니다. 거기서 연희단거리패의 메소드가 나오는 거고요. 개인을 집단으로 묶어내는 연극인 거죠.

한국연극과의 접점 넓혀가기

오세혁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내적인 결속 이면에 이런 것들도 있는 것 같아요. 젊은 극단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연희단거리패를 찾아가려고 하거든요. 연희단거리패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시니까요.
김소희
저도 처음에는 우리 극단 안에 있는 식구들이 피곤해지는 일이 많아서 힘들다고 생각했죠.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점점 늘어갔으니까요. 정말 무조건적으로 지원할 때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다만 그 팀이 공연을 하는데 우리가 뭔가를 도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연희단거리패가 김해, 기장 이렇게 지역으로 파고 들어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에서 다른 장을 열어주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그런 영향을 주고받아서 자생력을 키우는 극단들을 보면 뿌듯하죠. 게릴라극장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이윤택
올해 밀양여름예술축제에서 예년과는 다르게 굉장히 다양한 작품들을 하게 됐어요. 중견 연출가들이 이끌고 있는 극단의 2세대 창작자들도 오지만 완전히 신진 친구들이 오는데 흥미로운 작업들이 많아요. 앞으로 우리 꿈은 이 축제를 프로듀싱 위주로 하고 가능하면 한국연극을 다양한 맥락에서 포괄하는 겁니다. 밀양 연극촌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니, 원로 선생님들, 중견, 젊은 연극인들이 다 같이 만나게 되죠. 이걸 더 오픈할 생각이에요.
오세혁
한편으로는 선배 세대들이 해왔던 게 있고 중견, 신진 세대들이 고민하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이제까지 연희단거리패가 해왔던 것을 지켜나가는 동시에 지금 시대에 맞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혹은 밖에서 만나는 동료들의 작업은 연희단거리패의 활동에 비추어 어떤 연장선상에 있는지 얘기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오동식
저는 극단 작업을 하면서 항상 사람이 변할 수 있다고 느껴요. 연희단거리패에서 작업하면서 깨우쳐가고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서로 격려하고 고민하는 모습들이 제가 해왔던 연극과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었거든요. 아직도 배우고 있는 중이고 저 또한 그런 것들을 누군가한테 전달하고 싶어요. 지금은 사람이 계속 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그 변화를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정섭
외부에 있는 다른 동료들과 어떤 얘기를 하는지 질문 주셨는데 저는 외부 작업을 할 때 다행스럽게도 연희단거리패를 좋아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다들 부러워하더라고요. 이 작업 끝나고 나면 돌아갈 곳이 있구나, 이런 말씀들을 해주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물론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삶은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래서 그런지 극단 생활 열심히 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걸 증명해내야 하는 임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선생님과 함께 생활하고 극단에서 작업을 하면서 이미 개인적으로도 부족할 것 없이 충만하거든요.

김소희
저희는 기본적으로 나이가 늦게 드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네요(웃음). 지금 말씀하셨던 건 저희 세대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해요.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저나 이승헌, 김미숙, 조인곤 세대가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죠. 오히려 아직 입단 10년이 안 된 시기에는 연희단거리패의 본질을 알아가고 체질화하는 것에 몰두할 수밖에 없고요. 그 다음 운영의 문제는 현재 저희들의 숙제예요. 저희는 선생님과는 다른 사람들이지만 대신 여러 명이니 선생님이 혼자 하셨던 걸, 여럿이 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지 그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윤택
한편으로는 많은 분들이 우리 극단의 메소드를 논의하고 있는데 이걸 보편화시켜서 전파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하게 지키려고 하는 건, 작가에 대한 전격적인 개방이에요.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하면 주저 없이 그들에게 기회를 내주라고 하죠. 하지만 연출가들이든 극작가들이든 배우들이든 내려 와서 연극하겠다고 하면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남미정
이미 그렇게 하고 있죠. 문제는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작업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거라고 봐요. 이전 시대는 자기 일상을 조금 버리더라도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연극을 하면서 살아왔고 그게 귀감이 되었잖아요. 그러다보면 같이 할 일이 생기게 되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면서 성장해가게 되죠. 그런데 과연 현재 세대들이 그런 절박함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때는 현장, 평단, 관객까지도 정말 르네상스라고 할 만한 시대였는데, 지금은 다르잖아요. 저는 지금 연극을 꿈꾸는 사람들은 무엇이 절박한가, 어떤 방법들을 강구할 것인가, 그런 게 궁금해요.
김소희
저희로서는 지금 새로운 작가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숙제이긴 합니다. 아까 10편중에 8편은 삶과 연결된 작업이고 2편의 예술을 한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 두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긴장을 많이 하거든요. 그게 저희의 존재 증명 방편이니까 작가들도 연출가들도 계속 나와야 해요. 한편으로는 연극하는 것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관객을 얘기하기도 하고요. 저는 그것이 연희단거리패 메소드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대중적인 것이든 실험적인 것이든 관객을 생각한다, 자기를 얼마만큼 던져서 관객한테 나아가고 다른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가, 그런 게 관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윤택
제가 올해 예순 다섯인데 이제는 피곤해서 좀 물러나려고 해요. 많은 사람들이 이윤택 죽고 나면 연희단거리패는 어찌 되느냐, 물어보거든요. 이윤택의 연극 스타일이 있죠. 그러나 이 극단은 내가 없어도 아무 문제없이 내가 했던 연극들을 계속 할 수 있어요. 독일에서 <아르트로 우이의 저지 가능한 상승>을 보는데 여전히 브레히트 연출로 되어 있더라고요. 저게 영생의 길이구나(웃음),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그게 레퍼토리 작업이고요.
한편으로는 이 근래에 연희단거리패에 있다가 나간 친구들이 하는 작업을 보면서 우리 극단 작업과는 분명 다르지만 원칙은 지키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윤택이라는 망령은 벗어나서, 포스트 이윤택의 연극을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그건 꼭 연희단거리패 안에만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오세혁
네, 오늘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삶과 연극에 대한 연희단거리패만의 철학과 약속이 지금의 30주년을 있게 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리고 그 30주년이 비단 극단만의 성장과 내실을 다지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들을 발표하는 것으로 한국연극계를 풍성하게 하는 한편 다양한 연극인들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이어져 왔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좋은 활동들 부탁드립니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태그 연희단거리패, 창단 3040극단,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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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93호   2016-06-09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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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워

2019-08-26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