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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움직임과 상상의 힘을 찾아서
[서울연극센터 연극인 교육 프로그램] 참가후기① 기본 연기론 실습을 중심으로

김정훈_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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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하일 체홉 연기 워크숍’은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 매우 귀중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론이 아닌 몸으로 체험한 수업이기에, 체홉의 여러 훈련법들은 내 몸 깊숙이 새겨졌으며,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양질의 수업을 위해 힘써주신 디엌 파트베엌, 윤혜림, 김선영 선생님에게 감사드리며 짧은 글을 남길까 한다.

체홉의 연기 훈련법은 배우로 무대에 섰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배우가 알고 있다고 믿으면서 종종 간과하게 되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연기는 놀이여야 하고, 배우는 그 놀이를 즐겨야 하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놀이가 직업이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놀이를 즐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면 잘 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놀아야 하며, 어린아이처럼 놀이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과 활동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일상생활에 관한 잡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놀이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첫 번째 준비운동은 ‘내 중심을 바로 세우기’, ‘등 뒤의 공간 - 뒷공간을 인식하고 내 몸을 지탱하기’, ‘뒷공간에서부터 내 팔을 끌어안으며 가져오기’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두 번째 준비운동은 ‘반짝이는 외투 입기’로 내 정신과 몸을 제로(0)상태로 만들고 나서 호흡과 함께 마치 옷을 입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이 때 체홉의 준비운동은 동작에 대한 긴장 없이 단순 체조동작으로써 움직일 것을 요구한다.

이 준비운동을 하면서 내가 ‘아차!’ 싶었던 점은 ‘뒷공간’에 대한 인지였다. 현대사회 안에서 우리는 자꾸 앞만 보며 달려가고, 더 빨리, 더 많이 알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주위를 살피기보다는 스마트폰에 집중하게 되어 개인의 영역이 점점 좁아지고 한정되고 있다. 무대 위에도 보다 많은 기술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조명이나 영상, 음악, 무대 세트 등에 슬며시 기대어 배우로써의 책임을 전가하려 한 적은 없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인간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편리하다’는 명목 아래 인간 스스로가 가진 능력치를 퇴화시키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체홉의 테크닉은 인간이 가진 능력 중 ‘몸’과 ‘상상력’에 대한 탐구와 개발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훈련법은 놀이를 통해 시작한다. 공을 가지고 서로 주고받으며 내가 속한 공간을 인지하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감각을 열게 된다. 다음 단계는 '제스처'에 대한 탐구이다. 인간의 움직임에 네 가지 원소의 속성을 대입시켜 보는 것이다. 물, 땅, 불, 공기의 특징을 잡아 움직여보고 캐릭터에도 접목시켜 다른 원소의 사람끼리 만나보기도 하는 것이다. 또, 인간의 움직임 중에 가장 많이 쓰이는 '원형동작 5가지'(끌다, 밀다, 내려치다, 들어 올리다, 던지다) 훈련은 여러 가지 응용이 가능한데,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행위가 원형동작 ‘끌다(끌어당기기)’에 해당하는 것 등이다. 이렇게 가장 원시적이고 원형적인 움직임을 반복 훈련함으로써 움직임 자체가 가진 본래의 속성과 힘을 체득할 수 있게 된다.

  • 체홉 연기 워크숍

이제 '상상력 훈련'의 단계다. 이를 위해선 내 몸의 뿌리, 중심을 찾아야 한다. 내 중심이 어딘지 알고 있어야 역할을 맡았을 때 그 인물의 중심을 찾아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중심 찾기가 끝나면 상상의 힘으로 차가운 돌 옮겨보기, 따뜻하고 말랑한 것 만져보기, 빛나는 구슬가지고 움직이기, 사진으로 본 조각상 눈앞에 세우기, 조각상 안에 들어가서 움직여 보기, 무거운 공기 속에서 걸어보기, 반대로 가벼운 공기 속에서 걸어보기 등의 훈련으로 발전 된다. 체홉은 직관을 가지고 이미지를 ‘상’으로 눈앞에 세우고 움직일 것을 제안하는데, 이 때 상상력만이 그 세계를 이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상상력의 훈련에는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 공연 포스터 공연 포스터
  • 워크숍 마지막 날에는 희곡 <리처드 3세>로 훈련했는데 첫 날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이미지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상상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연습실 내 책상과 큐빅으로 관과 기둥을 만들어 놓고 공간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상상력의 힘으로 장소의 ‘상’을 만든 후 ‘리처드 3세’가 되기 위한 움직임 훈련을 했다. 리처드 3세는 왼쪽 팔과 다리가 짧은 인물로, 걷고 뛰면서 점점 그 인물이 느꼈을 몸의 불편함과 콤플렉스, 욕망 등의 감각이 몸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그리고 리처드 3세라는 인물로써 공간에 들어가 상대 배역(앤 부인)을 만났다. 어떻게 볼까, 움직일까에 대한 생각 없이 오로지 직관에 의지해 걷고, 공간을 보고, 상대와 만나고, 제스처를 취하게 되었다. 이 상황극이 내 몸과 내가 상상한 이미지의 힘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체홉의 테크닉 연기 훈련법은 배우가 가진 몸과 정신, 영혼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며, 그것만으로 어떤 연기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체홉의 훈련법이 직접 봐야지만 믿을 수 있는, 또한 보고도 믿지 못하는 현대 인간이 가진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었으나 잊고 살았던 원형의 움직임을 찾아내고, 상상의 힘으로 볼 수 있는 능력만 갖춘다면 우리가 도달하지 못할 세계는 없다. 그 세계는 창조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무한한 세계일 것이다.

    [사진]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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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미하일 체홉, 서울연극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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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김정훈 배우
주요작품 l 연극 : <맥베스,樂으로 놀다><메데아><오장군의 발톱><사천가> <소년이 그랬다><로미오와 줄리엣> 외 다수
무용 : <귀신의 집><귀신의 집-2>
웹진 5호   2012-08-0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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