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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코트>

모르고 시작하다

2006년 극단 ‘즐거운 사람들’ 연습실에서 <세상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왕자>를 만들고 있었다. 극단 이름을 가지고 팀원들과 며칠을 고민하였다. “망신” 또는 “망신살”을 극단 이름으로 하고 싶었다. 그때 주변에서 반대한 분들이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마음은 간절하였다. 팀을 이끌어 본 적도 연출해 본 적도 없으니 계속 만들고 틀리면 망신당하자. ‘망신’이라는 자체가 아름다워 보였다. 상대가 숨기고 싶은 나의 속까지 들여다본다는 것으로 진정한 소통처럼 느껴졌다. 정직해보였다. 폼은 잡지말자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대형 어린이 뮤지컬 제작사를 위해 몇 개의 무대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다. 배우들이 쓴 1미터 가량의 캐릭터 탈이 객석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버라이어티했다. 강렬한 음악과 스모그와 영상 그리고 레이저 빔 등의 특수 효과에 밀려 정작 주인공은 사라지고 어느덧 소란스러운 성인 콘서트가 되었지만, 아이들은 의자위에서 들썩이면서 소리치고 흥겨워했다. 젊은 배우들이 열심히 진땀 흘리면서 연기를 하고 있지만 객석의 아이들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거나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배우들이 아이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관극 후 나오는 한 어머니 관객도 나와 같은 생각일거라 판단했는데, 오히려 내가 만든 무대뿐만이 아니라 조명도 더 화려했으면 하고 아쉬워했다. 비싼 표 값만큼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공연도 필요하지만, 전혀 다른 공연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 작품<세상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왕자>는 아이들이 노력하지 않으면 ‘개구리왕자’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관객들도 노력해주기를 바랬다. 지금 고백하기에 부끄럽지만, 그때 내 눈에는 아이들이 ‘갑’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물론 아이들과 사람을 좀 더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연극을 해오면서 나에게도 그런 눈과 마음이 생긴 것이다.

 

가장 행복한 삼각관계

‘아동극’보다는 부모 성인들도 같이 보는 공연임으로 “가족극”이라 말할 수 있다.
“가족극”의 가장 큰 행복은 삼각관계이다. 일반 연극처럼 관객과 배우와의 ‘일대일’ 반응이 아니라 가족극은 ‘삼각관계’가 형성될 때가 가장 아름답다. 배우를 보던 아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일어나면서 옆에 가족을 쳐다본다. ‘엄마도 저거 봤어’라는 공감을 나누는 미소를 던진다. 잠시 후 엄마도 고개를 돌려 아이에게 미소를 던진 후 “너도 봤니” 라고 나누는 모습이다. 서로가 느낀 것을 공유하면서 그들은 더욱 행복해진다. 그들은 서로 미소를 나누고 다시 무대로 고개를 돌린다. 그들은 무언가를 나누고 있다. 이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걸 본다.

늘 뒤집어졌다

극단 ‘망신살’이 아닌 극단 ‘하땅세’는 그 후에 <붓바람>, <오버코트>,<작은 악사>와 얼마 전에는 <거인 이야기>를 올렸다. 많지 않은 공연 경험이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공연을 올리기 전에 연습실에서 지인들을 통해 몇몇 가족들을 연습실에 불러 비공식 시연회를 하곤 했다. 아쉽게도 그 설익은 시연회를 본 기억때문인지 그때 방문한 가족들은 대부분이 실제 공연장에는 오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점점 작품은 놀랍게 달라졌지만 완성되지 않은 시연회가 미래 관객을 망친 경우이다. 덕분에 첫날 공연 관객들은 좀 더 안전한 관람을 하게 된다.

이런 시연회를 통해 나의 잘못된 방향이 드러난다. 이번 공연을 위해 일단 후퇴하고 더 용감한 시도는 다음 공연으로 미루자고 팀원들을 설득한다. 늘 급하게 ‘작전상 후퇴’라고 하면서 궤도 수정을 한다. 이때 많은 배우와 스텝의 실망과 때로는 안도의 소리가 들린다.

같이 만드는 창작방법

1. 아이들의 눈높이를 예측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야기가 가족극에 적합하면 만드는 방식은 온전히 우리가 가능한 모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해 본적은 없는 듯하다. 작품을 만들면서 우리가 좋아하고 흥분한 것을 아이들도 공연에서 그대로 발견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려서 지식은 적을 수 있지만, 누구보다도 지적이다. 모든 걸 빨아들이고 더 열려있다. 이해력과 적응력이 뛰어나고 성인들보다 집요하기까지 하다.

2. 표현하기 보다는 관객이 상상하기를 원한다.
무대에 페인트를 많이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가족극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려고 칼라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 아이들만을 위한 ‘인공의 세계’가 생긴다. 자꾸 예뻐지는게 걱정된다. 디즈니 만화 영화처럼 너무 많은 칼라는 따발총을 쏘는 것 같다고 어느 러시아의 만화가가 말했다. 예쁜 색채가 없거나 또는 화려하지 않은 무대라면 아이들은 자기들이 좋아 할 만 한 무언가를 무대 위에서 찾을 것이고, 그것에 집중하도록 할 것이다.

3. 시적인 그림책을 많이 본다.
그림책은 시적이고 감동적이다. 많은 표현을 쓰지 않고도 깊은 사유와 시선이 담겨있다. 종종 작업이 막히면 배우들과 스텝들과 다양한 그림책을 읽거나 전시회에 가서 영감을 얻는다. 한성옥 작가의 말처럼 그림책의 매력은 ‘한장 한장 독자가 책장을 넘기면서 자신만의 속도로 읽어가는 것’이다. 소중한 한 장 한 장의 책장을 넘겨주는 것처럼 차분한 호흡으로 관객이 따라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남자아이의 경우를 위해 한번 정도는 힘 넘치는 동적인 장면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4. 일단 해보고 우리의 눈으로 확인한다.
배우나 디자이너가 어떤 아이디어와 방향을 제시하면 무엇이든 해본다. 연출, 배우, 스텝들이 분업하지 않고 동등한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창조한다. 작품마다 필요한 ‘공통의 언어’를 찾기 위해서 초반에는 전문적인 영역을 고수하지 않는다. 토론하기 보다는 본능적으로 느끼는 ‘새로운 공통된 언어’가 생겨난다. 배우가 연습과정에서 빛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조명을 설치해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반대로 조명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배우들은 다음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공통의 언어’는 형성되기 시작한다. 팀원들이 자기 검열을 멀리하고 열려진 상태로 연습하는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5. 자유로운 집단 놀이의 방식으로 찾아진 ‘공통의 언어’를 활용한다.
예측하거나 정확한 분석에 의한 작업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모두 뭉쳐 하나하나 호기심 가득한 연습과정을 통해 생성된 ‘공통의 언어’를 가지고 유기적인 공연을 만들려 한다. 컨셉을 찾는 지적인 작업보다는 창작자들의 소통을 위한 ‘공통의 언어’를 만들려고 한다. 머리로 연구하기 보다는 더 원초적인 어린아이의 놀이의 과정으로 작업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놀이에 책임지거나 부담을 가지지 않는다. 문제점을 걱정하기 보다는 배우들의 본능을 믿고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하다보면 구성원들의 감각은 ‘공통의 언어’를 공유한다. 팀원들 사이에서 화학적으로 생성된 ‘공통의 언어’는 무대, 조명, 의상, 음향 등의 개념뿐 만 아니라 배우의 몸, 소리, 공간, 오브제, 건축적인 것, 미술, 추상적인 관념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작품에 맞는 놀이를 통해 우리의 몸 안에 ‘공통된 언어’가 저장된다. 배우들과 스텝들은 오브제를 같이 만들어 보고 바로 사용해보고 다시 부셔 버리기도 한다. 이 작품의 핵심을 꿰뚫는 소재는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오브제를 계속 사용하면서 몸의 감각으로 판단한다.

6. 가장 중요한 공간은 연습실이다.
개인 극단이 온전히 연습실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지만, 제작비의 가장 많은 부분을 연습실에 더 투자하고 싶다. 대부분 습한 지하 공간이지만 배우들의 소중한 영감과 작업이 나오는 창조의 공간이다. 평등하고 안정된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의 지하 연습실 벽은 늘 연필과 매직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새로운 작업이 들어갈 때는 흰 페인트로 다시 덧칠한다. 벽에 작품의 구성을 적어 놓아 한눈에 장면들이 보이도록 한다. 장면을 적어놓고 연습 중에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기록한다. 온전히 이 공간은 점점 창작을 위한 새로운 우주가 된다. 우리 벽에는 십여 겹이 넘는 흰색이 칠해져있다. 습기와 냉난방에도 도움이 되는 느낌이고 새로운 작업을 위해 지난 것을 덮을 때의 기분은 최고이다. 온전히 우리의 아지트가 되도록 연습실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7. 결국 연극은 배우들에게 달려 있다. 연출이 아니다.
나의 역할은 연출이지만, 배우들의 생각과 판단이 더 현명하단 걸 잘 알고 있다. 배우는 관객과 직접 만나야하기에 리허설 과정에서 온 몸으로 장면을 연습하면서 더 깊게 고민하고 창작한다. 좋은 공연은 결국 배우에게 달려있다고 믿는다. 연출 한명의 능력과 비교하자면 작품에 깊게 몸을 담근 열 명의 배우들이 반드시 열배 이상의 더 좋은 장면과 작품을 만든다고 믿는다.

제1회 의자페스티벌 2017.5.20~21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억

올 초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연습실을 ‘라이트 씨어터’로 바꾸어 공연을 하고 있다. 첫 날의 설레임을 잊을 수 없다. 제한된 30명의 관객을 기다리면서 우리 극단 20명이 넘는 배우들이 골목길마다 표지판을 들고 안내를 하고 있었다. 차를 가져오는 관객들을 위해 주차 안내까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차할 곳이 없는 동네라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 부모들이 대학로도 아닌 여기 시장 거리를 지나서 아이들을 이끌고 정말로 찾아 올 것인가 걱정도 했다.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부터 아이들은 신발을 벗는다. 오히려 신발 벗고 들어가는 극장이라고 좋아한다. 30명을 위한 좌석 의자를 구매하고 싶지 않았다. 주변의 소품들을 이용해 다양한 형태의 의자를 만들고 모았다. 아이들은 엄마 곁을 벗어나 새롭고 다양한 의자에 앉아보고 싶어 한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콘크리트 광장에서 ‘의자 페스티발’도 열었다. ‘당신이 먼저 앉으세요’ 라는 부제로 시작한 작은 축제로 다른 사람이 먼저 앉을 수 있도록 버려진 의자나 종이 쪼가리 하나라도 가져오면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자신의 자리보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자리를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축제 기간 동안, 콘크리트 바닥은 다양한 재생 의자들로 아름다운 안뜰처럼 바뀌었다. 협소한 ‘라이트 씨어터’에서 객석을 어떻게 만들어야하는지를 고민하다가 얻어낸 아이디어였다.

‘라이트 씨어터’는 작고 열악한 공간이기에 우리가 마음껏 정성을 다해 준비할 수가 있었다. 건물주 눈치가 보여 티켓 박스는 문짝을 들고나가 잠깐 입구에 세워놓고 치워야 했다. 다행히 모두 찾아온 관객은 낯선 지하 공간에서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설레기도하고 긴장하기도 한다. 지금부터는 관객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정성껏 준비한 차도 처음에는 경계한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 마음을 열어놓지 않는다. 이 공간 안에서 만큼은 경계된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아직도 부모들은 티켓 비용과 극장 안에서 예상치 못하고 맞닥뜨린 우리의 서비스를 금액으로 계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에서는 만 원을 내놓으면 만 원 정도의 대가를 받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 공간에서 만큼은 표값에 맞는 공연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공연과 애정을 줄 수 있다.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어쩌면 경험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경험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들에게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억을 주고 싶다. 공연과 체험을 마친 후에도 때때로 1시간도 넘게 나가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다시 극장을 연습실로 바꾸는 동안에도 우리는 아이들을 내보내지 않는다. 부모들도 나가지 않고 미안해 하면서도 우리들이 하는 일을 들여다본다.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연습실의 이모저모를 설명해 준다. 호기심에 눈동자가 커지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본다. 매주 만나는 새로운 관객들이 큰 힘이 된다. 무언가 이번 주도 의미 있는 한 주를 보냈다는 자부심으로 배우들은 행복해 보인다.

[사진: 극단 하땅세 제공]

태그 아동청소년극, 하땅세, 윤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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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중

윤시중 극단 하땅세 대표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하였으나 희곡 작가인 아버지의 꼬임에 빠져 연극과에 들어간다. 노력해도 행복하지 않은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결국 이것저것 기웃거린 덕에 지금은 극단 하땅세에서 연출과 무대디자인을 하고 있다. 배우들과 가족극, 성인극 그리고 야외극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만들고 있다.
제122호   2017-08-1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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