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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예술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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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머메이드, 김은한

“청년예술가를 만나다” 기획연재를 계기로 필자는 지금껏 세 명의 ‘청년예술가’를 만나 총 세 번의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물로 현재 세 번째 기획 글을 작성하는 중이다. 그런데 글을 쓰다 문득, 다소 유쾌하지 않은 기시감이 들어 두드리던 키보드를 놓아버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버렸다. 이유인즉슨 이번 회에도 역시나, 새삼스럽지도 않게,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연극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주인공이다. 마치 한 편의 자본주의 통속극과도 같은 이 이야기에서 ‘연극인’이란 역할을 맡은 우리의 젊은 인물은, 여타의 ‘청년예술인’이 그렇듯, 각종 지원사업에 그리 친숙하지 않아 고군분투하며 작업 환경을 조성해가고 있으며, 연습실 대관에 드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집에서 또 때로는 강둑에서 연습을 진행한다.
이 익숙하고도 씁쓸한 반복을 어떻게 변주하여야 할까. 아니, 과연 변주하여야 할까. ‘청년’ 더하기 ‘예술가’라는 조합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상상력을 발휘하여야 할까. 빈곤하고 알아주는 사람도 관객도 몇 없지만 나름의 삶과 작업을 열심히 이어가고 있는 일군의 젊은이들, 같은 것? 명색이 대표적인 연극 웹진에서 몇 주에 걸쳐 ‘청년예술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왜 빈곤한 상상력의 필자는 소위 ‘청년 포르노’를 다시금 재생산하고자 하는 것인가. ‘청년예술가’는 왜 ‘청년’ 두 글자를 떼어버리고, 그러니까 그 지긋지긋한 고난의 서사를 떼어버리고,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드러내지는못하는가. 다시 말해 왜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사코 ‘청년’이어야 하는가?
이 길고 긴 서두는 일종의 자기반성이며, 오늘은 다른 결의 글을 써보겠다는 다짐이다. 동시에 자신의 작품으로써 세상과 마주하고 있는 한 사람을 오롯이 보자는 일종의 제안이다. 그래서 글을 돌려 다시. 청년, 예술가, 김은한을 만났다.

프린지페스티벌과의 만남

2015년부터 2017년 올해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꾸준히 한 편씩, 도합 세 편의 작품을 프린지페스티벌(이하 프린지)에서 발표해 온 은한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축제와의 만남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2014년, 그러니까 프린지가 상암의 월드컵경기장으로 그 터전을 옮기기 1년 전, 홍대에서의 마지막 축제를 진행하던 때에 때마침 홍대의 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은한 씨는 자신의 일터 앞에서 진행되던 ‘팝업 프린지’ 퍼포먼스를 계기로 프린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극영화과 전공생은 아니지만 대학 시절 꾸준히 극회 활동을 해왔고, 나아가 졸업 이후에도 친한 친구들과 극회 공간을 빌려 연극을 상연할 만큼 연극을 좋아하던 은한 씨였기에, 프린지라면 연극의 장과 더불어 보다 다양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장이 되지 않을까, 적잖은 기대감이 들었다고 한다.
다만 학교를 졸업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기에 프로덕션을 꾸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거니와, 무엇보다 감당해야 할 제작/인건비에 대한 걱정 또한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불가능성의 조건들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좌절시키기보다 그 조건들을 십분 활용하여, 혼자서 모든 과정을 꾸려가는 1인극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작품의 기획 단계부터 시작해 작/연출, 연기와 공간 활용 등 모든 역할과 요소들을 망라하며, 자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재미난 무언가를 만들어보자는 결심으로, 1인 프로젝트 ‘매머드머메이드’는 시작되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1인 극장’

자신이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은한 씨는 자신이 무얼 할 수 없는지 또 무얼 하기 싫어하는지와 같이, 연극의 어떤 요소들을 제거해야 할지부터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문교육과 훈련을 거친 능숙한 배우가 아니었기에, 우선 춤과 노래와 더불어 훈련된 신체를 요구하는 사실주의적인 테크닉들을 제외하기로 하였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연극이 더 이상 관객에게 100%의 몰입을 요구할 수 없다면, 어둡게 톤다운 된 조명은 오히려 사람들을 졸리게만 만들지 않나 싶은 생각에 조명 역시 제거하였다. 또 무대에 서게 되는 사람은 결국 오늘날의 자기 자신이란 생각에, 원작의 구체적인 시대상을 나타내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동시대성을 덧붙여 현재의 사건으로써 작품을 관객과 마주하게끔 만들었다.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될 수가 없잖아요”라는 통찰을 무심한 듯 뱉어낸 은한 씨는 대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연극의 여러 요소들을 추려낸 만큼, 자신이 하나의 ‘극장’이라는 생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빈 부분들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였다. 연극이란 결국은 같은 시공간에 있는 관객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납득시키고 또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는 그는, 능숙한 배우들처럼 깔끔한 동작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잘하고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이상한 연기 내지는 못하는 연기로 여겨지는 연기들을 ‘긁어모아’ 나름의 방식으로 양식화하였다. 혼자 만들어가는 작품은 그 작업 과정에 피드백의 계기가 없다는 이유로 한 번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서면 계속 그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두려움을, 오히려 자신의 원동력 내지는 재료로 삼아작품을 만들어가는 식이다.

죽은 작가들과의 공동작업

무대 위에 오른 배우로서의 자신을 하나의 ‘극장’으로 정의한다면, 작가이자 연출로서의 자신의 작업은 ‘죽은 작가들과의 공동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그의 말 또한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2015년의 첫 작업은 이오네스코의 <왕은 죽어가다>를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왕은 홀로 죽어가다>라는 작품으로 각색하였다. 대학 졸업 이후 취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불현듯 죽음에 대한 공포가 샘솟기 시작했다는 은한 씨는, 이오네스코가 원작을 ‘죽음에 대한 연습’이라고 밝힌 점으로부터 착안하여, 연극으로 그 두려운 죽음을 연습해보자는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죽음이란 결국 혼자서 외로이 이어가는 내면의 싸움이란 생각에 위에서 밝힌 대로 홀로 1인극에 도전하게 되었고, 연극에서의 죽음은 현실로의 회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죽어가는 왕의 대사를 현실의 ‘김은한’으로 돌아오게끔 하는 식으로 각색하여 구성하였다고 한다. 작품을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단일한 신체의 현존에서 불거지는 배우와 캐릭터의 이중성이라는 연극성을 작품에 활용하여, 여러 모로 ‘홀로’ 죽음과 싸우는 연습을 하였던 작품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그 다음 해에 발표한 작품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기반으로 ‘공동작업’한 <변신하지 않음>이란 작품이다. 사람에서 벌레로의 변신이 중요한 작품이니만큼 유수의 극단들이 벌레의 표현에 치중하는 반면, 이 작품은 그 변신을 부정함을 제목에서부터 전면에 드러내었다. 이는 사실주의적인 연기를 배제한 은한 씨 나름의 연기관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밝힌 동시대성에 대한 해석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오늘날의 청년 세대는 굳이 변신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벌레인지 인간인지, 인간이라면 이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는’ 인간이기는 한지 수도 없이 자신을 낮추고 회의하지 않는가. 심지어 ‘-충’이라는 말이 범람하는 자조와 자괴의 시대이니 ‘변신하지 않음’으로의 방향전환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올해 발표한 작품은 <성(聖) 알마의 비즉흥극>이라는 제목으로, 이오네스코의 <알마의 즉흥극>을 각색한 작품이다. 앞선 두 작품이 ‘청년’으로서의 김은한의 고민을 연극적으로 표현했다면, 이 작품은 ‘청년예술가’ 김은한의 고민이 그 내용과 형식에 두루 드러난 작품이다. 원작에서는 비평가가 끊임없이 문으로 들어와 극본을 읽으며 작가의 글을 공격하는 원환의 구조를 띄는 반면, 막 시작한 신진 연극인인 ‘김은한’의 공간에는 아무 비평가도 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회귀하는 원작의 구조와 달리 이 연극은 애초에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이러한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안내의 형식으로 이어갔다). 거기다 나름의 방식으로 양식화한 그의 연기 메소드, 즉 ‘못하는 연기’가 덧붙여졌으니 이 작품 또한 여러 모로 ‘못하는 연극’이 아니었을까 싶다.

매머드머메이드

올해 프린지에서는 프로그래머의 제안으로 작품을 월드컵경기장의 여러 공간에서, 다시 말해 회마다 다른 공간에서 상연하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연극이란 결국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나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는 그의 한 마디가 연극과 삶에 대한 그의 태도를 드러내는 듯 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생(未生)이란 말부터 시작해 삼포세대 나아가 오포, 칠포세대 등의 말이 범람하는 시대이다. 덧붙여 청년 세대에 대한 말들은 많건만 정작 안정적인 ‘자리’는 주어지지 않고 그 담론들만 소비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와중에 매머드머메이드 김은한은, 끊임없이 연극의 시공간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있을 자리를 만들어가는, 연극으로써 ‘청년’ 나아가 ‘청년예술가’의 고민을 표현하는 예술인이 아닐까 싶었다.
매머드머메이드, 먼 옛날 빙하기 때 멸종한 거대 포유류와 전설의 존재인 인어. 다시 말해 있었다 사라진 것과 있는지 없는지 그 존재조차도 불분명한 것으로 만든 이름이다. 은한 씨는 좋은 어감과 더불어 사람의 생각 역시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으로 이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떤 생각들은 떠오른 뒤 금새 잊혀지기도 하고, 상상이나 망상들을 품게 만들기도 하고, 끄집어내지 않으면 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지 않은가. 기존 소통 방식의 이면에 있는 것들, 가려져 있는 것들, 심지어는 의뭉스럽게 여겨지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시공간 가운데 구현해내는 독창성은 어쩌면 끊임없는 그만의 존재 주장이 아닐까 하는, 조금은 거창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자리가 주어지지 않는 이 세계에서 어떤 ‘시작’을 기다리며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란 생각이.

[글: 송이원, 사진: 김은한 제공]



반짝이는 깊은 숲, 배우 현림

“현림玄林”. ‘깊은 숲’이라는 이름을 가진 배우를 만났다. '검을 현' 자는 불투명한 검은색이 아니라 우주처럼 깊은 빛깔을 뜻한다고 들은 적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어 문자를 보냈다. 예명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본명이라고 한다. 이 글은 그 숲 속에서 반짝거린 이야기들의 기록이다.

그녀의 숲으로 들어가는 길

눈에 띄는 빨간 머리, 색색의 패치워크 가방을 걸친 ‘힙’한 패션, 손목에는 세월호 팔찌. 그녀의 첫인상은 ‘숲’이라기보다는 ‘빨강’ 자체에 가까웠다. 등장만으로 자신에 대해 많은 말을 발산하는 사람.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것은, 그녀가 자기주장과 표현 이전에 자기 반추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녀가 연극을 선택한 이유 또한 ‘나를 돌아보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생각에 연기를 시작했지만, 하면 할수록 자신의 삶과 감정을 돌아볼 수 있기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돌이키며 극중 인물의 감정에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을 찾고, 그것이 또 관객과 ‘동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다. 그렇게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면서 점점 깊어지는 고민은 “세상에 어떤 연극으로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8월 집답회에서는 ‘공간제공’과 ‘네트워킹’ 등 외부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낸 그녀이지만, 이번에는 창작을 하며 자기 내부에서 무성해지고 있는 고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극, 설레임과 두려움

올해 1월 대학로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모든 경험에 놀라고 감사해하고 있다. 최초예술지원의 ‘사전연구형’ 공모 선정이 되었을 때는 친구와 함께 눈물을 쏟았다고 하고, 이번에 연극인 취재 대상이 된 점에도 매우 얼떨떨해 하고 있다. 학부 연극동아리에서 연기를 시작했으나 졸업 후 지금 준비 중인 <환도와 리스> 이전까지는 대학로에서 조연출, 오퍼만 다섯 차례 맡았다. 의미있는 작업들에 참여해 좋은 추억과 관계들이 남았지만, 배우로 직접 무대에 서기를 오래 기다려왔다.

설레고 즐거운 만큼 조심스럽기도 한 그녀는 이번에 또래 동료들과 ‘공연창작준비형’이 아닌 ‘사전연구형’으로 공모 지원을 했는데,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은 분야에 지원해 무대에 설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극단의 막내 뻘이거나 비전공자인 친구들이 모여 “우리 경력은 우리가 만들어보자”라고 시작한 것이 지금의 <환도와 리스> 팀이고, ‘사전연구형’으로 지원받는 200만원만 해도 그들에게는 엄청난 기회로 느껴졌다. 조금 더 자신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공연창작준비형’으로 공모를 했을텐데 돌이켜보면 자신감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녀는 ‘진심을 들여’ 지원서를 썼다고 표현했는데, 그 진심이 과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특별한 가치를 지닐지는 알 수가 없어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200만원은 일반적으로 공연을 만들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무대 경험 한 번이 절실한 지금으로서는 모두 인건비를 기꺼이 포기하고 극장까지 대관해 공연을 올리기로 했다.

언제까지나 열정만으로 작업을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이렇게 ‘어떻게든’ 연극할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현림은 연극에서 끝없이 재미를 찾고 있다. ‘이거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동료들을 모으고, 2분 지하철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식의 공연을 실행하는 데에 적극적이다. 희곡읽기, 스터디 모임에 참여해서 다른 이들의 생각을 듣는 것 또한 그녀가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방법이다.

한계를 느끼며 침체기에 빠질 때도 자주 있다. ‘내가 이 인물에게 정말 다가가고 있는 걸까?’, ‘내 생각이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까?’ 확신할 수 없을 때. 그럴 때는 ‘너 저리 가있어’ 하고 모든 걸 밀어놓고 있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그래도 너를 보듬어야 해.’라는 생각으로 다가간다. 그러면 새로운 그림이 보이고, ‘유레카!’, 다시 신이 난다. <환도와 리스>는 동료들과 완성도 있는 공연 하나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데에 목적을 두었던 작업이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때 희열이 더 크다고 한다.

타인, 위로해주어야 할 상처들

페르난도 아라발의 <환도와 리스>에는 ‘딸르’라는 이상향으로 향해가는 인물들이 나온다. 현림은 그 중 소아마비로 유모차에 탄 채 ‘환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리스’라는 인물을 맡았다. 환도는 리스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요구와 폭력을 반복한다. 여정 중 만나는 ‘우산을 쓴 세 남자’ 또한 기이한 말싸움을 계속할 뿐이다. 리스에게 수갑을 채우고 채찍질을 하던 환도는 그녀가 죽자 약속했던 대로 꽃을 들고 개를 데리고 무덤에 나타난다. 이 잔혹한 부조리극을 통해 현림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녀의 답은 ‘상처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관객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는 것이다. 현림은 이 작품 속 인물들을 모두 ‘아이’와 같은 존재로 보고 있다. 극의 잔학성은 인물들의 순수함과 어리석음에 대비되어 세계의 부조리함을 드러낸다. 그 중 리스의 분노와 체념, 슬픔에 접근하고 표현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데,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배역이기 때문에 움직임의 제한이 큰 탓이 있다. 대신 리스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과거 회상 장면을 넣어 그때 그녀의 표정과 움직임은 어떤 것일지 상상하고 즉흥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진행 중이다. 춤과 움직임을 좋아하는 현림에게는 잘 맞는 장치이지만, 어떻게 해야 관객에게 설득력을 얻으면서 또 그들의 상상력을 열어줄 수 있을지, 고민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이전에 했던 작업들을 소개받으면서는 그녀가 연극을 통해 하고 싶은 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 그녀는 대학 동아리 때 연출을 맡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작품을 꼽았다. 결혼 생활의 파탄을 겪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스물한 살 배우들과 만들어가기란 쉽지 않았으나, 일대일 상담을 하듯이 배우들과 배역이 만날 수 있는 정서적 기억을 더듬어가고, 각자의 안에 있는 복합적인 감정의 응어리들을 발산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과정이 좋았다고 한다. 상처를 꺼내는 과정은 힘들 수 있지만 한번 드러내고, 씻어내면 치유될 수 있다고 그녀는 믿는다. 연출을 할 때는 무엇보다 배우들이 위로를 받기를 바랐고, 언제나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 배우-극중 인물들의 상처를 자신의 상처로 돌아보며 위로받기를 바란다. 그렇게 타인과 타인의 연결점을 찾고, 그들의 폐부를 관통하는 위로를 전하는 것이 현림이 연극을 하는 목적이자 방법이다.

더 큰 숲이 되는 꿈

“현림”이라는 이름의 뜻을 묻자 그녀는 ‘개인적으로 숲처럼 품어주는 사람이 되자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양한 나무들, 식물들, 사물들이 모여서 하나의 숲을 이루어 내듯이 저도 저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어우러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그녀의 꿈은 문자 그대로 ‘숲 속에’ 극장을 짓고 연극공동체를 꾸리는 것이기도 하다. ‘나중에, 나중에, 정말 만약에, 그럴만한 여건이 된다면’이라고 겸연쩍게 덧붙였지만, 그런 엉뚱한 상상력이 아직은 풍부한 사람이라고 자신의 장점을 말하기도 했다. 그녀의 상상력과 의지라면 그런 큰 숲을 일구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작업에서도 끝없는 대화와 반추, 설득과 조율을 통해 무대 위에서 발산할 힘을 쌓고, 그녀 자신과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를 받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글: 김진아, 사진: 현림 제공 &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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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
경계를 건너, 거리를 가로질러 만나는 시간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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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원
‘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

태그 청년예술가, 김은한, 현림, 김진아, 송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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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호   2017-10-2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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