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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875명의 빅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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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기획연재에서는 ‘연극인, 우리 스스로의 복지’라는 사업을 통해 진행된 연극인 실태조사를 담았습니다. 총 875명1)의 연극인들이 설문에 응하면서 다른 어떤 기관에서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중요한 데이터가 만들어졌다는 것, 그것을 실행하고 진행했던 주체 역시 연극인들이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연극in」에서는 두 번에 걸쳐 설문의 주요 내용을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33호에서는 주요 분석 내용과 그 의미를 짚어보고, 이어 134호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실제로 진행하고, 참여했던 분들의 좌담을 통해 프로젝트의 다양한 이슈를 함께 공유합니다. -편집자 주

연극인이 만든 연극인의 데이터

'연극인, 우리 스스로의 복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민간 거버넌스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2017년 하반기에 진행되었던 연극인 실태조사 사업이다.
단 열흘 만에 875명의 연극인이 설문에 참여하여 ‘한다면 하는 연극인’, ‘알고 보면 무서운 연극인’이란 유쾌한 소문과 ‘건국 이래 최대 연극인 단일 실태조사’라는 평을 이끌어낸 이번 조사는 ‘직업인으로서의 연극인’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연극인의 삶과 작업환경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진단하고 분석하여 연극인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기획을 통해 연극인 생태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기관이 현장 연극인 중심으로 만들어져야함을 절감했다.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고 예술인복지재단이 생긴 지 여러 해가 지났다. 하지만 ‘복지’라는 이름 앞에 선 우리를 가로막은 것은 낯선 용어들로 도배된 벽이었다.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를 논의하기도 전에 우리는 예술인임을 증명받기 위해 새로운 행정시스템에 적응해야했고 그 안에서 예술인의 직업적 자존감에 대한 관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인, 우리 스스로의 복지'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실태조사의 결과는 우리 스스로의 관점과 노력으로 그 해결책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출발이 될 것이다. 설문의 형식이나 방식은 기존에 경험해 왔던 것들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파격을 원했으나, 시스템을 새롭게 창조하기 위해선 금 안의 규칙 먼저 익혀야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설문의 가장 큰 의의는 연극인들 스스로의 방식과 방향으로 현실적인 데이터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이 데이터는 단순히 분석만을 위한 자료가 아니라 연극현장에 실행될 수 있는 제도의 근거로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29일, 문화체육관광부는 2019년 예술인 고용보험 시행을 목표로 올해 예술인복지법 등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최소한의 생활안전망을 위한 사회보장 확대(예술인 고용보험과 예술인 복지금고 도입)와 근로요건 개선 등 다양한 정책들이 제시되었지만 여전히 현장 연극인들에게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아스라하다. 고용보험이 시행되면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질까? 우리의 예술행위가 노동으로 인정된다면 직업인으로서 살 수는 있는 걸까?

<그림1> 지난 1년간 수입

막연히 그럴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이럴 줄은 몰랐다. ‘연극인, 우리 스스로의 복지’ 통계분석 결과를 마주한 우리의 심정이 바로 그랬다. 빅 데이터는 숫자나 그림으로 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우리의 삶이 그 안에 켜켜이 들어앉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데이터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다. 우리의 직업인 ‘연극’이 취미활동에 불과하다는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한해 평균 4.6편을 만들고 작품 한 편당 평균 70일을 할애하는데 연평균 총수입이 1,300만 원을 간신히 넘긴다. 1년 중 322일 동안 일하는데 겨우 100만 원이라니, 더 놀라운 사실은 그마저도 연극만 해서 얻은 수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수치는 예술과 무관한 활동을 해서 번 394만 원이 더해진 수치다.

<그림2> 작품 한 편당 준비기간

<그림3> 연간 평균 작품 수

이런 식이라면 총파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림4> 연극인 연령대별 희망연봉

희망연봉을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설문에 참여한 연극인들의 평균 경력은 13.1년이었다. 한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한 사람을 우리는 프로라고 말한다. 그런데 프로 연극인들이 희망하는 평균 연봉이 고작 3,000만 원을 넘지 않는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2017년 국세청 통계를 찾아보았다. 20대 직장인의 평균 연봉이 3,000만 원이다.

" '왜 예술가들이 가난하냐고요? 그건 예술 자체가 지닌 높은 가치 때문에 예술가는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의 저자인 한스 애빙의 분석이다. 낮은 수입에도 계속 예술을 하려는 예술가의 '열정'이 예술가에 대한 착취 구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복지’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행복한 삶’을 뜻하는 복지는 사실 상대적으로 덜 버는 사람들에게 소득을 일정하게 분배하여 소비시장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자본주의 경제의 충실한 조력자다. 대다수 국민들의 소득이 보장되고 올라가야 소비시장이 활성화되고 자본주의 경제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복지 포퓰리즘이니, 내가 낸 세금을 왜 아무한테나 베푸느냐 하는 소리야말로 자본주의를 모르는 사람의 말이다. 제대로 된 복지정책은 경제를 성장하게 하고 소비를 활성화한다. 시장이 돌아가야 경제가 돌아가는 당연한 원리인 것이다. 국내 경기의 오랜 침체는 실은 개념 없는 ‘누군가가’ 수많은 돈을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빼돌렸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는 ‘복지’라든지 ‘분배’ 같은 개념이 ‘함께,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란 것을 몰랐던 것 같다.
복지는 의지와 철학의 문제라고 한다.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발 허가 하나로 5,500억이 생기는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세금이 부족한 게 아니라 탈세와 투기를 통해 얻는 불로소득만 복지로 활용해도 국가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인의 삶이 위태로운 건 예술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다. 또한 예술인 복지를 주장하는 것이 예술의 국가권력에 대한 복속을 용인하는 것 역시 아니다. 국가는 공공재를 분배하는 공동의 규칙이 실현되는 장이며 이런 규칙을 만드는 일에 개입하고 갈등하고 싸움을 하는 것은 예술가의 일이자 시민의 일이기도 하다." 2)

‘사회보험’이 무엇인지 아는가? ‘사회보험’이란 국가가 법으로 정해 국민들에게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제도다. 국가는 사회보험을 통해 질병, 사망, 노령, 실업 등의 위험에서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 그럼 이제 국민인 연극인의 사회보험 현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건강보험을 제외하면 미가입률이 경이로울 지경이다. 이 통계를 보면 ‘연극인은 국민이 아니다’라는 가설을 새로 정립해야만 할 것 같다. 늘 온몸으로 하는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산재보험 가입률 역시 20%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까?

월세를 전전하고 비혼율이 63%가 넘는 연극인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대학로에서 떠밀려 살게 된 성북구는 과연 우리를 지켜줄까? ‘문화지구’로 지정되면서부터 대학로는 연극인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 ‘대학로에서 연극이 사라진다’, ‘위기의 대학로’, 하루 이틀 들어온 것도 아닌데 이 말이 점점 구체적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대학로를 처음 만들었던 우리들, 연극인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려고 한다. 이번 사업의 가장 큰 의의는 전 과정이 연극인들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전체를 기획하고 구성하는 일부터 설문의 문구를 만들고 설문지를 배포하는 일, 결과를 모으고 분석하는 것까지 모두 연극인들의 협업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정부나 기관의 정책기조로 만들어지는 예술지원제도를 통해 예술계가 과연 발전했는가? 예술지원정책 역시 이제는 예술인들의 필요와 요구로부터 계획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예술인들의 필요에 의해 어떤 것을 지속시키고 개발시켜야 할 지, 무엇을 신설하고 폐지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보다 ‘예술행정’의 인식 변화다. 행정의 편의로 만들어지는 예술지원정책이 아니라, 예술인들의 활동을 돕고, 그것이 활성화되는 것을 목표로 가져갈 때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예술인들이 발견하는 문제의 원인과 개선의 방식은 정말 다르다. 다양한 감각과 상상력을 통해 개개인이 인지하고 변화하는 계기를 만들고, 나아가 공동체의 인식변화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이 이야기가 나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복지란 사실, 내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는 순간에 그 의미를 가진다. 복지란 혼자서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인인 우리에겐 ‘가난을 증명하지 않을 권리’3)가 있다. 예술인 지원은 그의 가난이 아닌 ‘예술’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최종 목표는 ‘생산성’이 아니라 ‘공공성’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변화의 계기가 되어 창조하고 저항해야 한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창조하라, 그것이 저항하는 것이다. 저항하라, 그것이 창조하는 것이다." 4)


1) 총 882명이 참여했으나 모호한 답변내용으로 인해 7명이 누락되었음.
2) 김상철 “예술인 복지, 무엇이 문제인가” 문화과학 No.84 (2015)
3) 바티스트 밀롱도 “조건 없이 기본 소득” 권효정 옮김, 바다출판사
4)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임희근 옮김, 돌베개

* ‘연극인, 우리스스로의 복지’ 설문은 구글 설문과 지면설문지를 이용해 유입된 875명의 설문 내용을 시각화 데이터 분석솔루션인 SPOTFIRE를 사용하여 분석하였다. 구글 설문과 지면설문지를 분석을 위한 데이터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설문 응답 내용 중 일부 오류가 발견되어 SPOTFIRE 분석을 담당하는 ㈜프리즘 엠아이텍과 본 설문의 기획팀이 함께 일부 설문의 응답을 삭제 또는 수정하였음을 밝힌다.

태그 연극인, 정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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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나

정안나 연출가
극작가, 연출가, 극단 수수파보리 대표. 대표작으로는 <처용, 오디세이>가 있으며, <히스테리카 파쇼>, <윤용하 음악회>, <비바라비다 인생만세> 등을 연출했다. 열일곱 살에 연극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후, 단 한 순간도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열혈 연극인이다. 예술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세상을 지켜주고 싶은, 연극을 통해 따뜻한 ‘함께’를 만들고 싶은 ‘마음연출가’다.
https://www.facebook.com/anna.jung.56679
제133호   2018-02-0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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