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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극장’,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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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전이다. 2007년 4월 즈음 이미 대 스타였던 배우 유지태가 제작하고 출연했던 연극 <귀신의 집으로 놀러오세요>를 보러 세실극장에 갔었다. 당시에는 이지나 연출이 누군지 몰랐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배우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도 꽤 많았고, 슬픈 스토리인데도 어딘지 신나고 재미있었던 느낌이 남아있다. 나는 맨 앞줄 구석 자리에서 거의 빨려 들어가다시피 공연을 봤다. 옆으로 뒤로 앉은 많은 사람의 입김과 웅성거리는 기대와 반응은 서로를 전염시키며 말 그대로 공연장을 뜨겁게 달궜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어설프게 공연계 종사자가 되어 화려한 대형 극장과 새카만 블랙박스를 오가면서도 종종 떠오르는 세실극장의 추억은 그날 그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내가 창작이 아니라 공간으로 처음 연극계에 발을 디딘 것은 어쩌면 극장이 통째로 감동이 된 그날의 경험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소중한 유산이다. 최근 정말 오랜만에 세실극장에서 공연을 봤다. 올해 1월 재정난으로 폐관했다가 4월 재개관한 세실극장은 이제 공공의 이름으로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 일찍이 세실극장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던 서울시는 세실극장의 '재생'을 약속하며 닫혔던 극장의 문을 다시 열었고, 운영은 서울연극협회에 맡겼다. 8월부터 본격적인 공연에 들어갔으니, 아직 반 년도 안된 새내기인 셈이다.
하얗게 새로 칠한 로비 벽과 대조를 이루는 검은 문들은 깨끗했고, 안전 관리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공개한 안내문은 단단히 정돈된 극장이라는 인상을 줬다. 외관이 반듯한 직선을 가졌다면 로비는 여러 각으로 꺾인 선들이 모여 만든 공간이었다. 한쪽 벽에 책상을 이용한 임시 매표소가 매번 차려지는 것 같았다. 별다른 안내없이 객석으로 입장했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세월을 말해주는 의자는 반가웠지만 공연장은 추웠다. 관객은 배우의 지인이 전부였고,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들어오자마자 다시 등장한 배우들은 무대를 가로질러 각자의 지인을 찾아갔다. 200석이 넘는 빈 의자들, 삼삼오오 모여 빠르게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극장이 그저 이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여 년간 이곳을 극장이게 했던 많은 연극인과 관객과 기획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언론에 소개되는 그 찬란한 이야기들과 지금 이 곳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람들로부터, 연극으로부터 극장은 소외되고 있었다. 앞서 로비에서 봤던 안내문이 비상사태에만 찾으라는 무관심한 경고로 느껴졌다. 나는 왜 10년이 넘도록 이곳에 다시 오지 않았을까? 서울시가 여기서 '재생'시키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뭐였을까?
사진: 필자 제공
세실극장의 무대는 폭(12m)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12.6m)과 맞먹고, 높이(4.5m)는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부(5m)와 비슷하다. 지난 6월 여기서 개최되었던 전시《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에서는 무대에 3개의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영상을 상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규모있는 무대, 234석의 작지 않은 객석, 시청 앞 덕수궁 옆이라는 위치는 여전히 세실극장의 자랑이다. 40여 년의 역사는 단지 기록이 아니라, 무수한 질문으로 현재와 만나고자 하는 세실극장의 요청이며, 우리의 응답이어야 하지 않을까. 문화재생, 도시재생, 역사재생이라는 거대한 수식어들로는 세실극장을 살릴 수 없을 것이다. 창작 에너지를 가진 연극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사실, 유서있는 극장으로서 이곳의 가치는 공공이 개입하지 않아도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속될 것이다. 때로는 뜻 깊은 장례식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이 반드시 어제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온기를 잃은 극장이 한참 슬펐다.

[사진 출처: 서울시 문화유산 홈페이지]

태그 유혜영,세실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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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영

유혜영
본지 편집에디터. 공연이 일어나는 공간을 좋아하고, 기록하는 일과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에 관심이 있다.
yoohy_87@naver.com
제154호   2018-12-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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