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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칸, 칸이 있는 곳, ‘평화문화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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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문화진지에 가면 도봉산과 수락산의 시원한 풍광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의 역사는 흥미롭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공용으로 여행하는 관원들을 위한 숙박시설이었답니다. 1969년, 북한의 재침에 대비한 대전차 방호시설이 들어섰고, 그 위로 4층짜리 시민아파트가 올라갔다가 2004년, 노후화로 철거되었습니다. 이후 건축자재 적재 장소로 쓰이며 흉물로 전락했다가, 2017년 가을에 비로소 문화창작공간으로 리모델링되었고 도봉문화재단이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2018년엔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노출된 묵직한 콘크리트 벽체 등 방호시설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건축물은 여전히 유사시엔 실제 군사시설로 전용된답니다. 앞으로 아기자기한 생태공원(창포원), 뒤로 축구장까지 갖춘 종합 체육시설(다락원 체육공원)이 접해있는 것이 장점이지만 각 시설끼리 협조는 잘 안되는 편입니다. 평화문화진지로 들어가려면 창포원 내부의 구불구불한 길을 통과해야 하지만 표지판 등이 전혀 없어 입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차량의 경우 다락원 체육공원 주차장을 통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공원 측이 허락해주지 않아 화물 운반 시 자주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현재 별도의 진입로 공사가 진행 중이고 지하철 출입구도 하나 더 생긴다고 하니 점차 개선되리라 생각됩니다.
(사진 출처: 평화문화진지 페이스북)
도심과는 거리가 있지만 1, 7호선이 만나는 도봉산역이 3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주변의 인프라는 매우 부족합니다. 도봉산 등산로 입구에 식당이 밀집해있긴 하지만 대부분 등산객을 위한 곳들이라 메뉴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인근 아파트 단지에 편의점이 있지만 거리가 멉니다. 체육공원 내 매점(안내판엔 편의점이라고 쓰여 있습니다.)에서 간식이나 음료를 살 수는 있습니다. 지하철역에 분식점, 빵집, 카페가 있고 창포원에도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하지만 작업을 하다 보면 수시로 찾게 되는 문구점이나 철물점 등을 찾으려면 차로 움직여야 합니다. 주차는 다락원 체육공원 유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야외에 탱크가 전시되어 있어 군사시설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깊이 약 10미터, 넓이 약 240미터의 긴 단층건물은 몇 개의 동(시민동, 창작동, 문화동 등)으로 구분되고, 각 동은 다시 큰 방, 작은 방, 작은 방..., 큰 방, 작은 방, 작은 방... 으로 쪼개져있습니다. 전시에는 그 방마다 전차가 한대씩 들어가서 북쪽으로 뚫린 창문을 통해 화기를 쏘게 됩니다. 각 방은 입주 작가 스튜디오, 목공실, 전시실, 연습실, 공연장, 세미나실 등으로 꾸며져 있고 전망대도 있습니다. 향후 카페테리아도 들어설 예정입니다. 중앙에 있는 평화광장에는 기증받은 베를린 장벽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자료 제공: 윤서비)
저는 지난 1년 동안 평화문화진지에서 사계절연극제를 진행했습니다. 6명의 연출가가 기획, 운영, 연구, 창작의 전 과정을 함께하며 계절마다 공연을 올리는 축제입니다. 2017년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입니다. 연간 지속되는 축제 특성상 안정된 공연장소 확보가 필수적인데 작년에는 아라리오뮤지엄 공간소극장의 장소 후원이 있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초 새로운 공연 장소를 물색하던 중 개관한지 4개월 남짓한 평화문화진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2017년 10월 개관) 당시 평화문화진지 운영진은 장소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창작자와의 만남을 통해 창작공간으로써의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하던 터라 평화문화진지 구석구석을 공연장소로 활용하겠다는 사계절연극제의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계절연극제 봄 공연 <유령 live stream>(하수민 연출)은 평화문화진지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으며 다양한 장소에서 실험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야외, 좁은 통로, 옥상, 전망대 순서로 이동하며 공연) 그러나 여름이 되면서 운영진 인사 변동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사계절연극제와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급기야 여름 공연에 일정, 장소, 장비 사용 등에서 차질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후 새로운 운영진과 협의하여 가을, 겨울 공연 진행에 문제는 없어졌지만 운영상의 탄력성이 있었던 개관 초기와는 달리 운영의 기조가 조금 변하기 시작했고 시설 이용에 대한 자율성이 떨어졌습니다. 창작공간으로써 자리가 잡히면서 평화문화진지 자체 기획 프로그램이 많아져 각 방의 사용 횟수가 늘었고 지역주민들의 참여도 활성화되어 그분들을 위한 장소 확보도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에는 빈 스튜디오나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빈 방 등을 공연 장소나 준비 장소로 이용하는 데 대해 운영진 역시 협조적이었으나 현재는 작가들의 입주가 완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방의 용도가 특정되어 전용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 전망대의 경우 흥미로운 장소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도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평화문화진지가 자체 행사를 진행할 때조차 시민들의 불만(행사 준비를 위한 출입통제 등에 대한)도 꽤나 생깁니다. 그러니 앞으로 사용하게 될 예술가들도 공연장, 연습실, 세미나실 등 온라인상으로 대관신청이 가능한 장소 외에는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민들의 이용도도 높은 편이고 자체 기획 행사도 많아 대관 가능한 장소 또한 날짜 잡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물론 평화문화진지의 장소적 특성을 십분 활용한 창작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닐 테니 다양한 변수에 대해 운영진과 충분히 협의해보시면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개관 초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현재의 운영진들 역시 이 장소의 가능성을 더 탐색하려는 의지가 충분히 있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공연예술가들이 가장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장소는 ‘공연장(도봉산역에 가까운 쪽 끝 방)’이라 구체적인 설명을 조금 덧붙입니다. 대략 10mx6m 크기이며 간단한 음향, 조명시설과 빔프로젝터를 갖추고 있습니다. 공연장이라기엔 매우 작은 장소지만 외부로 활짝 열리는 접이식 출입문과 계단, 측면 통창과 계단식 객석, 화기 발사를 위한 구멍(창문) 등을 잘 활용하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략적인 이해를 위한 그림이니 실제 사용할 경우 사전답사가 꼭 필요합니다.(자료 제공: 윤서비)
평화문화진지는 매년 입주 작가를 선정하고 작업장 등을 지원합니다. 이곳의 역사성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이나 ‘전쟁’, ‘평화’ 등을 주제로 한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시민 친화적인 작품,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됩니다. 날씨가 좋은 계절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사계절연극제 여름 작품은 어린이를 위한 연극은 아니었지만 공연장 앞에 붙은 포스터에서 <인형극장>이라는 제목만 보고 부모님을 조르는 어린이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창작공간을 이용하면서 늘 고민하게 되는 게 있습니다. 제 딴에는 특별한 장소에서의 과감한 실험을 모두 재미있어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저 혼자만의 생각이겠죠. 예술가들은 때때로 사람들 앞에 불편한 진실을 꺼내놓고 마주 보게 하고 싶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편안한 여가를 즐기고 싶어 합니다. 위험한 시도는 예술의 덕목이지만 안정된 관리의 역시 중요합니다. 이곳은 시민을 위한 장소인가, 예술가를 위한 장소인가? 그 둘의 아름다운 공존이 어렵다는 걸 매번 느낍니다. 이에 대한 고민이 충분하지 않은 채 단순히 장소의 매력만 보고 도전하면 상처받기 쉽다는 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평화문화진지의 야성에 걸맞는 대담한 실험성과 시민과 친근하게 교감할 수 있는 공공성을 겸비한 창작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계절연극제_봄 <유령 live stream>(하수민 연출), 평화문화진지 전망대(사진 제공: 사계절연극제)

태그 윤서비,평화문화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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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비

윤서비 열혈예술청년단
열혈예술청년단에서 18년간 연출을 했다.

장소특정적 공연을 많이 했고 뇌과학, 로봇, 인공지능 등의 주제를 주로 다뤘다.

최근에는 고전과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7세기 지중해에 집중하고 있다.

https://blog.naver.com/yulhyularts

제154호   2018-12-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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