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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장애예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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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연극in은 “장애예술”을 주제로 총 6번에 걸쳐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장애예술의 실제 현황을 확인하고, 현재 연극계(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의미한 활동들을 짚어보고 진단함으로써 장애예술에 대한 창작자와 관객들의 관심과 이해를 더하고자 합니다. - 웹진 연극in 편집부
  • 일시:2019. 10. 27. 일. 오전 11시
  • 장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 다목적실
  • 참석: 성수연(배우), 신원정(다이애나밴드), 정소은(독립기획자), 최선영(창작그룹 비기자)
  • 진행:문영민(장애예술 연구자)
  • 정리: 강보름(본지 편집위원)

 

#물들어온 장애예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 #누가 매개자인가
영민
최근 다양한 예술가들이 장애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올해 초 서울문화재단에서 개최한 장애예술포럼 ‘같이 잇는 가치’가 그러한 흐름을 가시화했고, ‘연극in’에서 장애예술을 기획연재로 다루게 된 것도 그런 흐름을 반영한 것 같아요. 이번 기획연재에서는 장애인 창작자분, 장애인 창작자들과 협업하는 비장애인 예술가들, 이른바 ‘매개자’들과 만나고, 또 관객들이 이 변화를 어떻게 감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흐름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갖는지, 이 흐름을 마냥 긍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우려되는 점은 없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수연
저는 주로 배우로 활동하는 성수연이라고 합니다. 오늘 ‘매개자’라는 이름으로 저를 불러주셨는데, 사실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장애를 다룬, 장애인 배우와 함께 하는 작업에 네 차례 정도 참여했습니다.
선영
저는 ‘창작그룹 비기자’ 소속이고, 시각예술을 하다가 지금은 기획자의 일을 하고 있어요. 예전부터 특수학교, 장애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활동을 오랫동안 하다가 발달장애 창작자들과 같이 활동하는 비영리예술단체 ‘로사이드’에서 있었어요. 창작 개념으로 장애인 분들과 만났고, 현재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장애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혹은 예술씬에서 어떻게 논의를 확장할지 고민하면서 연구나 기획 활동을 하고 있어요.
원정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인 ‘다이애나밴드’로 활동 중입니다. 저희는 미술, 다원으로 분류되고 있어요. 매체, 몸과 감각을 궁금해하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각자 다른 다양한 몸들이 어떤 감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 공통 감각에 대해 고민하면서, 매개할 수 있는 물건, 사건, 사람, 관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4년 전부터 ‘노들장애인야학’이나 ‘서부 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분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고, 같이 놀면서 소재나 물질에 관해 탐구해왔어요. 오늘 그 경험을 나누려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소은
몇 년 전까지 아르코에서 일하면서 예술교육 프로그램과 여름 축제를 담당했었어요. 지금은 독립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장애를 소재로 한 웹툰을 보고 관심이 생기던 중 작년에 ‘0set 프로젝트’의 공연과 워크숍을 접하게 됐어요. ‘0set 프로젝트’는 관객 입장에서 볼 때 재밌고 의미 있는 작업을 한다고 느꼈는데, 올해 운 좋게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어요.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넓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 깨지기도 하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문영민
영민
‘매개자편’이라는 타이틀을 쓰긴 했지만, 그게 아직은 낯선 개념인 것 같아요. 이전에 최선영 작가님과 장애예술 연구 프로젝트를 같이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매개자’라고도 부를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던 것인데요. 이 또한 당사자 중심의 언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선생님들은 본인 작업을 하시면서 장애인 창작자들과 결합하는 건데, 뭔가를 매개한다고 했을 때 굉장히 큰 부담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을 모신 것은, ‘0set 프로젝트’의 작업을 같이하면서 비장애인 예술가들은 여기서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가? (장애인인) 나는 재밌는데 과연 (비장애인인) 저들도 재밌는가? (웃음) 이런 질문이 생겼고, 의미와 가치를 찾나, 아니면 재미도 찾는 것인가가 궁금해서 얘기를 꼭 나눠보고 싶었어요.
먼저 최선영 선생님께 ‘매개자’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자신의 작업과 장애예술을 매개하는 것이 어떤 작업인지,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 설명 부탁드려요.
선영
5년 전에 서울시 문화정책 중장기 로드맵을 짜는 연구자를 만났는데, 제가 그때 센터를 짓고 제도를 개편하는 것보다 매개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었어요. 지금 예술씬이 비장애 중심이니까 활동하는 비장애인 중 장애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장애인과 창작 자체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매개자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이후 제가 창작의 영역에서 빠져나오면서, 직접적으로 협업, 창작하는 분들 포함 연구하거나 고민하거나 교육활동을 하시는 분들까지 매개자의 범위가 넓어지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어가 새롭게 대두될 때마다 그에 대한 불편함이나 그 정의가 엄밀해야 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생기는데요, 이번 좌담회 타이틀처럼 장애인 예술이 활성화되면서 어떤 개념이 필요하게 된 거죠. 장애인들의 경우 예술씬 이전에 기본적으로 삶에서 불평등한 경우에 놓여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매개자 분들이 필요하다고 봐요. 중요한 단어라기보다는 그러한 용어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도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비장애인 중심의 행사를 장애인이 올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것, ‘배리어프리’나 장애라는 단어를 달지 않는 것까지도 고민하는 걸 포함하는, 인식의 확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매개자를 문화예술적 감성이 있거나 경험, 역량이 있는 활동보조인 정도로 생각하는데, ‘장애 이슈, 개별성, 다른 몸이나 삶에 대해서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로 확장하는 논의가 필요한 거죠.
영민
매개자라는 용어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공연 관람 활동보조인을 매개자라고 부르기도 하거든요. 사실 장애인 창작자 위주의 단어가 아닌가, 계속 그렇게 부르는 게 실례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간 창작자, 매개자로서 어떤 작업을 하셨고,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신원정
원정
저 같은 경우 창작자나 예술의 범주로 얘기하는 것보다 매개자가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제가 미술 수업, 손놀이 수업, 진(Zine)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장애인들도 특수학교 등을 통해 미술 수업이나 그림 수업을 많이 받으시더라고요. 그런 만남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새로운 소재를 제시하거나 형식을 제안하는 거예요. ‘내가 미술을 좀 아니까 같이 하시죠’라는 가르치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당연히 취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림으로 그리면서 소리도 내는 공감각적인, 감각이 다른 분한테 계속 페인팅을 해보라 할 수 없으니 소리로 작업할 수 있게끔 미디어적인 부분을 좀 쉽게 만드는 방식 등으로 매개하는 역할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 단어가 저한텐 딱 달라붙었거든요. 장애예술의 창작을 시작했다기보다는 만남을 시작했다고 이 자리에 이야기하러 왔어요. 그런 방식으로 그분들의 공감각을 훔쳐보고 ‘오 나도 그러는데’ 하기도 하고요. 같이 만나면서 어떻게 작업하는지 보고 다르게 만들어보기도 하고, 더 하기 싫다고 하면 그만합시다, 하고 다음에 다시 만나고 그런 방식이에요.
왜 그런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냐면, 제 몸이 있고 세계가 있을 때, 인터페이스로 인해 소리가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것처럼, 내가 생긴 모양대로 지각하고 세상과 만나 관계하잖아요. 물고기는 눈이 옆에 달려서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본대요. 다른 식의 몸들이 있는 거죠. 비장애인들은 컵(cup) 모양이 딱 시각적으로 떠오르거나 사전적 의미가 떠오르는데, 컵 하면 다른 감각이 떠오르는 분들이 궁금해서 만남을 갖게 됐어요. 그런 과정에서 도구가 필요하다, 감각을 인정하는 게 필요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언어로 말해져야 한다 등등의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성수연
수연
외국인들과 작업할 때 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으니 다른 언어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수어를 배우게 됐어요. 청각장애에 관심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고 언어적인 접근이었는데, 배우다보니 너무 당연하게도 청각장애에 대해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그때 교육이나 정보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는 농인들, 청각장애인들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니까 이 사회가 너무 불공평한 거예요. 그때 ‘0set 프로젝트’의 제안이 있었고, 그것을 수행하는 작업이 즐거웠어요. 장애인 창작자와 만나서 내가 몰랐던 감각을 발견하게 된 건데, 사실 지금은 기뻐하고 있다는 걸 감추고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것에 몰두할 경우에 뭔가를 잘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제 안으로만 즐거워하고, 다른 것을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매개자라는 언어를 써본 적은 없지만 제가 하던 고민과 결이 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인 창작자와 함께 무대에 설 때, 같이 뭘 할 수 있고, 뭘 하는 게 좋을까, 나의 조건을 어느 정도 위치에 포지셔닝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아무리 페어(fair)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해도 그냥 눙치는 거 같더라고요. 극장에서, 연극에서 구성한 세계 안에서는 동등하다지만, 극장 문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비장애인인 나에게 훨씬 더 유리한 세상으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극장 안에서 동등한 척할 수는 없겠다는 결론이 쉽게 나지 않는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이어오게 됐어요.
정소은
소은
청각장애인 작가가 그린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정말 재밌게 봤어요. 내가 감각하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묘한 쾌감이 있었어요. 웹툰을 보면서 기존의 생각을 뒤집어서 바라볼 수 있게 됐죠. 가령 작가는 선천적 청각장애인으로 구화(口話)를 통한 소통을 배우며 자라왔는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퀸의 프레디 머큐리이고, 그의 노래들을 좋아한다고 해요. 그걸 보면서 ‘내가 너무 세상을 납작하게 감각하면서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도덕적 자책감 그런 차원은 아니고. 몇 년 전 사운드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스탭으로 참여하면서 어떤 작가분과 언제 기회가 되면 청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사운드 워크숍을 해보자 얘길 나눈 적이 있었어요. 그 이후에 ‘0set 프로젝트’의 워크숍이나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장애학 입문 수업을 들으며 생각이 확장되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어요. 간간이 멘붕과 함께 피씨함에 대한 강박으로 실수도 하고 좌충우돌하면서 재미있는 순간들을 겪고 있습니다.
수연
제가 장애인 창작자와 협업을 한 건 전부 연극 장르예요. 고민되는 지점이 있었던 게, 저는 연극 대학교육을 받았고, 데뷔해서 10여 년 정도고 무대 경험도 훨씬 많고, 연극을 더 많이 알고 있잖아요. 장애를 떠나서 연극 안에서의 전문성에 관련된 얘기가 필요한 때가 오는 거예요. 장애인 창작자와 전혀 모르는 다른 분야를 같이 했더라면 다른 고민을 했을 텐데, 장애인 배우 중에는 간혹 세컨드잡으로 연극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극장 공간 안에서 어떤 방법으로 친숙하게 같이 있을 수 있을지, 작품 안에서 하고자 하는 논의를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지, 이를 고민하는 것으로 제 자신을 포지셔닝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게 매개자 아닌가 싶고요.
최선영
선영
저는 장애인 분들을 집중적으로 만나게 된 계기가 전혀 자발적이지 않았어요. 작업실 월세를 내려고 알바 찾다가, 고양시 특수학급의 문화예술교육 촬영 담당을 하게 됐어요. 집중적으로 일주일에 다양한 장애 유형 중학생들을 만나게 된 거죠. 그때 든 생각은 동시대 사회에 나랑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왜 이 사람들의 존재를 몰랐을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어요. 그리고 작가 호칭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한 입장에서, 내 그림은 나만의 표현이 없는 것 같다는 고민과 답답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표현에 있어서 훨씬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발달장애인의 모습에 더욱 관심이 생겼어요.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설명하긴 힘들지만, 사회적으로 많이 소외된 분들과의 만남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긴 해요. 그분들 중에 장애인이 있는 거죠. 장애인이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와 분리된 채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면서 활동이 지속되는 것 같아요. 연결되어 있었는데 왜 내가 느끼지 못했을까, 내가 사회 일원으로서 창작자로서 고민의 폭이 넓어졌던 것 같고요. 저는 사회적인 부분에 관심이 있어요. 예술사회학으로 설명 가능한 영역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애를 규정하는 것도 사회적인 부분이 강하잖아요.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이 있는 인간을 가치 있게 보고, 빠르게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분리해서 아름답게 잘 보호해서 사는 사회인 것 같아요. 인간을 쓸모로 구분는 사회로 보는 것 같은 시선이 확장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자연스러운 장애인들의 욕망, 불안감을 마주하게 되면서 장애 자체보다는 감각을 넘어서 작동되고 있는 인식들에 관심이 커졌어요. 그리고 이것은 장애 유형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워요. 장애와 제 삶에서 연결되는 지점을 찾으며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알기 위해 한다기보다 질문을 계속하기 때문에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사회적 차별과 맞물려, 누군가의 삶이 중심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분리되어 있으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발견할 때, 그 안에서 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협업할 때 생기는 고민과 한계
영민
장애인의 삶과 분리된 채로 연결되어 있다, 무대 안에서는 동등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차별이 있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네요. 사회적 차별이 있는 상황 속에서 협업 구조를 만들 때 고려하게 되는 지점에 어떤 게 있을까요? 또 한계는 무엇일까요?
원정
저는 노들장애인야학과 서부장애인 복지관을 통해 발달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는데, 두 공간의 경향이 달라요. 노들은 탈시설 후 혼자 자립해서 노들 커뮤니티와 만난 분들이 많고, 서부는 가족관계가 굉장히 중요하고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스무 살 이상의 청년들이 많아요.
저는 다양한 유형의 삶을 목격하는 부분이 가장 좋았어요. 예를 들면 노들에서 만난 어떤 분은 책 넘기는 소리를 계속 듣고 계세요. 진(Zine) 수업은 그림 수업이라기보다 낙서하는 수업인데, 아무 의미가 없거나 좋아하는 색깔을 계속 쓰는 식으로 ‘행위’하는 방향을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그리는 것에 관심 없고 종이 소리를 듣고 계시는 걸 봤을 때, 내 작업이 위로받는 느낌이 있었어요. 오 나도 좋아하는데!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분이 오랜 세월 동안 그걸 좋아하실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위로를 받았고, 제 창작에 도움도 받았어요. 교차하는 감각이 있고, 나도 그렇게 해도 된다. 제가 주로 장애인 창작자분들을 만날 때 고려하게 되는 지점은 ‘강요하지 않기’ 입니다. 오늘 이거 다 완성하셔야 해요, 가 아닌 거죠. 매번 기분이 다르잖아요. 안 좋으면 좀 쉬라고 하거나 계속 소리를 듣고 있으라고 하든지 기다려주는 부분에서 장애인 친구분들이 저한테 도움받지 않았을까.
한계성은 어떤 예술형식을 강요한다든지, ‘페인팅으로 넘어가 봅시다’ 라든지 이걸 듣고 있는데 ‘듣고 있는 걸 비디오로 찍어봅시다’ 하면서 가두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그 행위를 그냥 가만히 두는 것, 같이 목격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전시를 한다든지 현존하는 예술 방식으로 풀려고 하는 상황에서 한계가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선영
비장애인들의 인식 안에서는 어떤 음악 좋아해? 이런 논의를 하죠. 그런데 발달장애인이나 일부 청각장애인 분들이 인식하는 사운드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거든요. 우리가 하는 질문의 범위 자체가 굉장히 좁은 거예요. 장애인의 경우에는, 내가 모르는 개별성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부분이 흥미로워요. 다양한 부분에서 저와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고 상상해보는 게 저에게 재미를 줬어요.
소은
저는 활동 장르를 따지자면 다원에 가까운데, 최근에는 관심사를 따라가다 보니 우연히 고공농성에 연대하는 펀딩 프로젝트에 참여한 게 계기가 돼서 그쪽과 인연이 깊어지게 됐어요. 그런 이슈에 시선이 꽂힐 무렵 의욕과 동시에 우울감이 있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구나’라던가 ‘도처에 연대하고 싶지만 체력과 역량이 부족하구나’하는걸 깨닫곤 무기력해지기도 했어요. 노동문제, 환경문제, 젠더문제, 장애문제 등 많은 이슈가 있잖아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들었던 어떤 수업에서 사회 이슈들은 각각의 것들이 아니라 상호 ‘교차’하고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평범한 시민 입장에서는 연대해야 할 이슈들이 너무 많으니 피로감을 느끼게 되지만, 그 많은 이슈는 결국 상호 교차하고 있고, 그게 모이면 굉장한 폭발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느끼거든요. 최근 저에게 뚜렷이 다가오는 이슈는 노동문제와 장애문제예요. 조급증이 있다 보니 사회의 변화를 눈앞에서 당장 확인하고 싶어하곤 하는데, 이게 이 분야에서 ‘쪼랩’(초보 레벨) 특유의 증상이래요.(웃음)
영민
‘0set 프로젝트’는 물리적인 창작환경이나 인식적인 부분에 문제 제기를 많이 하잖아요. 이걸 어떻게 인식하게 되시는지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소은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연습실을 구하는 거였어요. 장애예술 프로젝트나 청년사업 등 동시에 많은 지원사업이 진행돼서 휠체어 접근성이 되는 연습실 구하는 게 어려웠어요. 한군데에서 계속 연습하는 게 불가능해서 여러 곳을 전전했어요. 저는 주변에 장애인 친구도 없고, 제가 관심을 가진 기간도 길지 않다 보니 단기간동안 도처에서 배리어들을 더 선명하게 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가령 장애인 일행과 이동하다가 계단이 나오면 서로 잠시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게 되잖아요. 익숙한 공간에서는 ‘여기서 잠시 헤어지지만, 안정적 경로를 지난 후 복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생소한 곳에서는 마음이 복잡한 상황이 간간이 있었죠. 공연 쫑파티 장소로 함께 이동하는데 명동역엔 승강장으로 한 번에 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거든요. 또 한 가지로는, 공연 기간 중 함께 식사하러 이동하기 어려우니 대체로 포장해서 먹게 되는데 일회용 플라스틱을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번엔 다회용 식기를 사용해볼까 하는 등의 초보적인 고민들을 요즘 하고 있어요.
영민
장애, 젠더, 환경 이슈가 교차하니까 다 같이 가는 게 좋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상충할 때가 많으니까 고민이 되네요.
수연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비장애인 창작자들끼리 작업할 때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작업을 하다 보면 가성비를 따지는 시기가 오기도 했던 것 같아요. 어떤 과정은 스킵하면서 빠른 시간 안에 효율성을 추구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장애인 창작자들과 작업할 때 소통의 언어가 다르다 보니 시간이 걸리게 되잖아요. 시간을 다루는 방식을 스스로 다르게 세팅해야 하는데, 그것이 현재 구조 안에서 원활하게 되기가 어렵다. 연습 기간이 늘어날수록 비용도 많이 들고요. 시간을 길게 두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어요.
하나는 너무 비장애인 중심 기본값인 연기교육론을 다르게 적용할 수 있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게 있어요. 그런데 이걸 발견하고 연구하는 것도 또 시간이어서, 진득하게 그걸 해볼 수 있는 기획이 있으면 좋겠어요. 각각의 몸에 맞는 어떤 것들을 찾아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 사실 저한테는 장애인의 몸이 낯선 몸이잖아요. 장애인 창작자를 만나면 저한테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주는 반면에, 장애인 주변에는 훨씬 더 많은 비장애인의 몸이 있으니까 그에게는 비장애인의 몸이 딱히 낯설지 않을 것 같다는 거죠.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는 기쁨은 나만 갖고 있으니까, 나한테나 새로운 발견이지 상대에게는 아니니까 우리는 그럼 같이 무얼 향해 가야 할까, 같이 바라봐야 하는 게 뭘까 고민이 돼요.
#그럼에도불구하고 하실겁니까 #가성비를따질수없는세계
#내가 느끼는 의미, 재미, 가치 #당사자성과 매개자성이 만나는 창작방법론
선영
경험적으로 느낀 한계성인데, 비장애인은 예술 활동 자체를 사회 참여를 위해서 혹은 직업군으로 삼기 위해서만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장애인의 경우는 성인 이후의 삶이 불안정하기도 하고, 예술을 일상적으로 경험했던 경우가 많지 않아서 예술에 대한 상이 전통적인 경향이 있고, 예술 활동 자체를 사회 참여나 직업군으로 생각해요. 사실 예술이 쓸모없기도 하고, 효율성이나 누구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것과 거리가 제일 먼데, 장애인 부모들이 ‘우리 아이 이제 작가 되는 거죠?’ 질문하실 때 당황스러워요. 그러나 이러한 현상도, 그들이 살아온 환경을 고려하면 특수성이나 한계성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측면이 있어요. 최근까지도 장애부모 지역모임 가면 “이렇게 쓸모없는 행위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게 하실 건가요? 동의해야만 지속가능합니다.”라고 말해요. 사회는 이런 생산물을 굉장히 반기면서도 유통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적 제약이 따르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불안이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하나도 안 팔릴 거다. 그럼에도 이 사람이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지하고 지원할 것인가. 결국 왜 예술이 있는 거지? 라는 고민까지 가는 거죠. 어떻게 장애 예술인을 성장시킬 것인가? 하는 명제는 허상인 거 같아요. 비장애인 예술가도 성공하기 힘들뿐더러 주변 삶들까지 소외시키거나 홀로 오롯이 나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데 장애인이나 가족들에게는 피카소와 고흐 정도의 예술가상이 그려져 있어요.
소은
참 힘들겠지만 소중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던 결정적인 계기들, 스스로 의미 있었다고 생각되는 결과물들을 떠올려보면, 지극히 쓸모없는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생각의 진도가 나가면서 성장하는 순간을 경험하곤 했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나는 매개자로서 뭘 할 수 있을까, 뭘 하고 싶은 걸까 생각해보게 돼요. 장애예술가들이 뭔가를 만들어내서 전시하는 발판이나 가시적인 장을 만드는 것에 치중하기보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꾸준히 관찰하다가 포착하게 되는 (다른 이들은 보지 못했을)특별한 순간이 있잖아요. 그런 걸 나누면 의미의 파장이 만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쓸데없어 보이는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그토록 가성비 떨어지는 시간을 마냥 보내다가 어떤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하고, 공유하고, 이걸로 뭘 해볼 수 있을까 궁리해보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보도록 하는 게 매개자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가성비 떨어지는 행위를 최대한 길게, 나도 상대방도 재미있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민
작년에 선영님이 하신 교보재 연구에서 ‘세 가지 준비' 1)창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나 행위에 대한 기다림, 2)창작을 하는 행위, 3)창작의 결과물’1)로 나누신 걸 인상 깊게 봤거든요. 저도 창작을 기다리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창작을 하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시간이 비장애인의 그것과 굉장히 다르기 때문에 그 부분 고민을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또 사회에 필요한 활동이라고 많이들 말씀하시잖아요. 그런데 이걸 필요한 활동이라거나, 정치적 올바름을 완성하기 위한 조각이라는 생각만으로는 매개자 활동이 장기적으로 유지되지 어려운 것 아닌가, 그러니까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게 장애인과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본인의 작업 안에서 갖는 의미, 재미,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선영
필요해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사회적 필요성은 이후에 형성되는 해석이나 정치적 욕망, 여러 시선들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소외되는 현장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 현장의 가치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좋은 일, 착한 일 아니에요, 즐거워서 해요, 라고 말하는 건, 내가 어떤 사람의 삶에 중요하게 개입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닌가, 너무 내 입장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전혀 동의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에서 어떤 맥락이 통용될 때 그걸 막아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럼에도 중요한 건 스스로의 자발성과 재미인 것 같아요. 내 삶을 타인에 맞춰 활동하는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게, 그것만큼 자신을 소진시키는 활동이 없거든요.
제 하루 일과가 좀 재밌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장애인의 생활예술사업 참여 가능성 연구를 세 시간 하고, 청각장애인 청소년과 함께 하는 그림자놀이 프로그램 모니터링에 갔다가 이후에 장애 관련 퍼포먼스를 보러 갔다가 하는 식으로 일주일이 꽉 차거든요. 저 개인에게 재밌는 경험으로 일주일이 꽉 차 있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보다 다양한 감각의 세계와 삶의 경험 안에 놓이게 됐구나, 감사하고 굉장히 재밌어요. 아침엔 청각장애 오후엔 시각장애 다음날엔 전반적으로 장애를 논의하는 연구자 모임에 가기도 하고. 대학에서는 전혀 접할 수 없는 현장의 언어를 발견하고 정립하는 기회이기 때문에, 저 같은 매개자들이 많아지면 논의가 더 빠르게 확산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원정
비장애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문화로 만들기 위해 많이들 노력하고 계시는데 저는 사실 반대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걷고, 뛰고, 날고 다양한 몸이 많잖아요. ‘0set 프로젝트의’ <나는 인간> 워크숍을 같이 하면서 서로의 몸을 확인하고 자기의 몸짓에 대해 즐거움 또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당사자성 때문에 매개자성도 중요한 건데, 다시 생각하거나 확인하면서 공유하는 시간들 이후에 창작 방식, 방법론들이 나와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최근에 오로민경 작가(다원예술)가 갤러리 팩토리2에서 ‘영인과 나비’라는 전시를 열었는데, 작가의 몸이 겪고 있는 아픔 혹은 정신병리적 아픔들이 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다 겪고 있는 증상이라는 걸 다루는 전시였거든요. 다양한 몸들을 초대해서 워크숍하거나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는 오로민경님의 제안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테이블에 다양한 소리를 쌓으면서 공동의 소리를 만드는 워크숍을 했었는데, 워크숍 참여자들은 자신의 몸을 심상화해서 소리로 만들어 녹음하고 테이블에 귀를 대어 다같이 들어보는 거예요. 노들장애인야학 낮수업 분들과 워크숍을 할 때는 자신의 이름을 얘기하거나 자주 내는 소리를 녹음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다시 듣는 경험은, 소리들이 뒤섞여 다양한 이야기와 심상으로 공유되고, 다른 매체에 담겨져서 자기 몸과 분리되어 자기한테 다시 돌아왔을 때 자신감을 만들어요. 결론적으로 워크숍이나 서로 맞춰보는 시간들, 그리고 감각으로 맞춰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것, 감각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매체들이 중요하다고 봐요.
수연
재미있어서 시작했지만 발을 들인 이상 떠날 수는 없어요. 많은 것들을 이미 봐버렸으니 없던 일로 하고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의무처럼 느껴지지도 않아요. 매일같이 그걸 위해서 뭘 하지는 못하더라도 내 안에서 없는 사실이 되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작업자로서 또 하나의 화두를 갖게 된 거죠. 이제 더 많은 장애인 창작자들이 작업하시고, 같이 할 기회도 많이 생기고 있기 때문에, 저는 연극 창작자로서 같이 있을 때 어떤 모습일지를 계속 상상하게 돼요. 관객으로서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고요. 이걸 발견하는 것도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같이 작업하러 섞이게 되는 상태에서 또 다른 기준점을 찾아야 하는 시기라는 게 너무 명확한 것 같아요.
#동등함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중요한건 시간을 쌓는 것 #개별성에 주목하기
영민
현실적으로 장애인들이 창작 전문 관련 교육을 받을 기회가 너무 적기 때문에, 내가 잘 모르니까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거든요. 비장애인 매개자들이 가르쳐주고 제가 의존하는 것 아닌가 걱정할 때가 있는데, 똑같이 이런 고민을 갖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이런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물이 들어온 지금 상황에서 창작자와 매개자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여쭤보면서 마무리 짓고 싶어요.
선영
현재는 예술활동 하는 장애인의 존재 자체를 증명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장애인들은 창작 활동을 이미 하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 토대들이 영향을 미친 건지, 사회적인 여론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해서인지 예술활동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부분으로 지원이나 정책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공공이나 기존 예술계가 주목하거나 지원해야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시기인 것 같은데, 솔직히 지원 시기, 설계, 정책 흐름만 봐도 그 안에서 장애예술의 존재 자체나 의미를 찾는 건 쉽지 않아요. 효율적으로 해야 하니까 급한 기획이 신설되고 경험이나 고민이 많이 쌓이지 않은 사람들이 유입될 수밖에 없고, 인쇄되어 배포되어야만 하는 상황인 거죠. 미련하지만 시간이 쌓여야 하는 것 같아요. 지원이나 정책은 흘러가는 거다 시니컬한 마음을 가지고요. 지금은 각자의 몸의 경험들이 쌓여야 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 비장애인들은 장애를 계속 유형으로 바라보고 그에 따른 적절한 교육방식을 설계하는데, 사실 사람 중심의 관점으로 보자면 더더욱 개별성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같아요. 비장애인들도 분리돼서 살아왔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실수할 수밖에 없고, 후회할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고, 그걸 장애인과 논쟁하거나 싸울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해요. 그래야 ‘내’가 좀 가벼워질 수 있거든요. 가벼워질 수 있는 시간들이 쌓여야 하는 것 아닌가.
원정
편협하고 개인적일 수 있지만, 예술가로서 감각, 몸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장애인 분들과 계속 만남을 이뤄나감과 동시에 다른 종류의 활동, 다양한 예술의 개념, 형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장애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성이 교차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누구를 타자화하거나 대상화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은
개별적 존재로 바라보자는 말씀에 저도 동의해요. 몇 년 전에 어느 분이 쓰신 구술생애사 책을 읽었는데, 통사나 이론서에서는 한 번도 납득한 적 없었던 부분을 평범한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읽다가 그 세대와 시대를 이해하게 되면서, ‘빅데이터 따위 우리에게 의미가 없구나, 우리는 패턴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생각했어요. 표본집단이 많을 필요도 없고, 작업이 노동집약적인 것에 반해 적은 숫자만이 공유하게 되더라도, 개별적 존재를 최대한 미시적/지속해서 바라보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거죠.
얼마 전에 느낀건데, 장애예술가들의 작품을 큐레이션 하는 방식을 보면 너무 창피할 때가 있어요. 올해 봤었던 어떤 장애예술축제의 경우, 참여자마다 저마다의 결, 기량, 색깔이 각기 다른데, 단지 장애인이면서 예술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나의 우산 아래로 몽땅 모아놓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결국 참여예술가 모두를 철저히 무시한 접근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울러 장애예술가들의 공연에 대한 비평 언어도 더 많이 풍성해졌으면 해요. 가령 어떤 평론을 보면 ‘장애인 창작자임을 감안해서 우호적으로 써준건가? (비장애인 예술과)동일선상에서 접근한 게 아니라 다른 선상에서 세팅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거든요.
영민
가성비가 떨어져도 오래 시간을 갖고 가벼워지도록 하는 시도들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짝하는 관심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심으로 이어지면 좋겠고, 각자 하는 작업 내에서 지치지 않게 서로에게 동력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1.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 https://drive.google.com/file/d/1GDuBqH7UjrdytxUx6qlPOHKqyMJHv2GU/view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태그 장애예술,매개자,성수연,신원정,정소은,최선영,문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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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름

강보름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연출가
연출작으로 <레디메이드 인생>, <우리가 고아였을 때>,<모던걸타임즈> 등이 있다.
rkdekdzhd@hanmail.net
제171호   2019-11-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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