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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의 정치, 에로티시즘을 자극하다
[대학로 연대기] ②한국연극과 에로티시즘-上

이진아_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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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연대기

즐거운 사라
[ 즐거운사라 ]
내게 거짓말을 해봐
[ 내게거짓말을해봐 ]
  • “금기를 어기려는 충동과 금기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고뇌를 동시에 느낄 때 비로소 에로티시즘의 내적 체험은 가능한 것이다”
    - 조르쥬 바타이유, [에로티시즘] 중에서


    한국연극에서 에로티시즘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쟁점과 맞물려 있다. 하나는 ‘표현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외설성과 이에 동반되는 성의 상품화’다.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에로티시즘은 항상 논란이었지만, 연극에서의 에로티시즘 문제는 배우의 현존이라는 특징으로 인하여 더욱 첨예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실재’하는 배우의 몸은 작품의 의도와 미적 맥락을 벗어나 종종 다른 것을 성취하거나 다른 차원에서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가장 격하게 논의되었던 것은 정치적 억압의 해소와 민주화의 가능성이 가시화되던 1980년대 말의 일이다. 월북 작가를 포함하여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많은 작가의 작품들이 해금되고 다루기 어려웠던 주제와 소재들에 대한 표현이 가능해지면서 ‘표현의 자유’는 이 시기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문제의 선봉에 선 것은 기대되었던 정치적 소재보다는 오히려 성적 소재였다. ‘자유화 선언이 있었던 1988년 6월 이래 가장 두드러지는 유행 중 하나는 외설의 유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후 약 십 년 동안 성과 에로티시즘의 문제는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1991년 초판 출판,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 봐』1996년 초판 출판, 구성애의 아동 성교육 프로그램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성을 위하여’1998년 제작, 장선우의 영화 <거짓말>1999년 제작, 서갑숙의 에세이 『나도 때로는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1999년 초판 출판 등은 당시 이 문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실험극장, 에로티시즘 논란의 중심에 서다
실험극장
  • 물론 성과 에로티시즘의 문제가 자유와 해금의 기운이 넘쳐나던 1980년대 말에서야 비로소 표면화되었던 것은 아니다. 연극계 최초의 에로티시즘 논쟁은 실험극장 최고의 흥행작 <에쿠우스>와 관련이 있다.

    ‘여섯 마리 말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마구간 소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피터 셰퍼가 쓴 희곡 <에쿠우스>는 1973년 영국 런던의 올드 빅 극장에서 초연되어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 작품을 번역가 신정옥과 연출가 김영렬이 1975년 9월 실험극장의 개관공연으로 우리에게 소개한 것이다. 영국에서 초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품이 바로 소개되는 일은 당시 우리 연극계에서는 대단히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소년의 원초적인 성 본능과 죄의식을 통해 현대 문명과 도덕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에게는 파격적이었다. 작품은 즉각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대중과 평단은 연일 호평을 보냈고, <에쿠우스>는 유료 관객 1만 명 돌파라는 당시 최다 관객동원의 기록을 세웠다. 연극평론가 김방옥이 “한국연극이 고질적으로 지녔던 타성적 상식선을 깨고, 관객층의 지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었다.”고 평가했듯, 작품은 지적인 자극에 목말라있던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실험극장
  • 그런데 개막 후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실험극장은 ‘공연 정지 처분’이라는 뜻밖의 통보를 받는다. 공연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실험극장은 애초 한 달 예정으로 공연 신고를 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성공으로 연장에 돌입하게 되자 재신고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 마감일을 이틀 어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여주인공 질(당시 정경임 분)의 과도한 노출 때문이었다. 또 주인공 알런(당시 강태기 분)과 질의 속옷만 입은 마구간 정사 장면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에쿠우스>의 재공연은 1976년 3월 23일, 약 6개월이 흐른 후 다시 재개된다. (이후 <에쿠우스>는 실험극장의 대표적 레퍼토리가 된다. 알런 역만 해도 강태기에 이어 송승환, 최재성, 조재현, 최민식, 최광일 등이 열연했고 최근에는 조재현이 다시 15년 만에 알런 역을 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후에도 실험극장의 레퍼토리는 종종 한국연극계에 에로티시즘 논란을 불러온다. <티타임의 정사>원제 <더 러버>, 헤롤드 핀터 작 <신의 아그네스> 등의 작품이 지닌 파격적 소재 때문이었다. 특히 <티타임의 정사>는 위기를 겪고 있는 부부의 성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다가 제목까지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원작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대중적으로 소비된다. 나아가 유사한 소재를 다룬 대중적 아류작들이 생겨나는 계기가 된다. 이에 실험극장은 1982년 7월 ‘연극과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 하에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하는데, 말초적 감각만을 자극하는 통속적 에로티시즘과 사회 통념에 문제제기를 하는 진지한 에로티시즘을 구별하고 평가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심포지엄에서 연출가 정진수는 “선정적인 내용이나 선전으로 연극관객을 유인하려 드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 사정으로 말미암은 기현상”이라 비판하며, “그만큼 우리 사회가 폐쇄되어 있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사회가 지닌 성에 대한 유아적 호기심과 이중적 잣대, 폐쇄적 태도를 극복하고 좀 더 성숙하고 열린 태도로 예술작품에 표현된 성과 에로티시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그런 성숙된 태도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표현의 자유’와 ‘뒷골목 연극’을 동시에 쟁취한 <매춘>

    연극계에서 외설성 시비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가 쟁점이 된 계기는 1988년 1월 바탕골소극장에서 공연된 <매춘>이다. <매춘>은 외설적 장면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 비속어 사용, 미군이 매춘을 강요하는 장면이 유발할 수 있는 반미감정 등을 이유로 공연윤리위원회의 수정 권고를 받았다. 그러나 극단은 이에 불복하였고 대본 수정 없이 공연을 강행했다. 이에 공연윤리위원회는 <매춘>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고, 그 결과로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공연정지처분 및 극장영업정지조치를 내리게 된다. 그러자 이에 대한 연극계의 대대적인 연대와 서명 운동이 전개되었고, 한국연극협회는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감행하게 된다. <매춘>을 둘러싼 논란은 외설 논쟁이기도 했지만 사전심의제도 철폐 및 공연법 개정 등과 맞물린 표현의 자유에 대한 투쟁이기도 했다. 실제로 연극계는 공연의 내용과 표현에 대한 찬반을 넘어 강압적인 공권력에 대한 연극계의 연대로 이 상황에 대응했고, 사전심의제도 철폐를 앞당기고 공연법을 개정하는 결과를 얻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공연은 언론과 대중의 대대적 관심을 받았고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면서 <매춘 2>, <매매춘> 등과 같은 후속 작품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이후 무대 위에서 성을 소재로 하거나 성적 재현을 담은 작품을 출현시키는데 일종의 촉발제가 되었다.
  • 매춘
     



  • 실제로 대본의 사전심의제도가 사라진 후 ‘뒷골목 연극’, ‘벗기기 연극’이라는 용어와 함께 성을 상업적 흥미의 대상으로 삼는 공연들이 대학로에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1994년 9월호 [한국연극] 에는 "쓰레기 공해가 된 연극" 이라는 제목 하에 성을 상품화하여 돈을 벌려는 당시 연극계를 개탄하는 극작가 윤대성의 글이 실려 있다. “<가짜 애인> <사기꾼들> <당신 곁에 자고 싶다>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불장난> <첼로, 간통> <알몸의 스타들> <침대소통> 등등… 요즘 소극장 연극의 제목들이다. … 그리고 그 연극들을 선전하는 포스타의 선정적인 사진들은 제쳐 놓고 라도 선전문구들을 한번 보자. ‘로멘틱 섹스 코미디’, ‘살아보고 결혼하자’, ‘X세대의 신순결론’, ‘더 이상 벗을 것이 없다.’, ‘런던, 파리, 대학로를 강타중인 사상 최대의 글로벌 섹스 코메디’, ‘너 나랑 자러 가자. 왜? 피곤하니까’ ‘자, 나를 가지고 놀아 봐, 마음껏 만져봐’, ‘난 모든 것 보여주기로 했어요’…. 바로 이것들이 오늘날의 연극을 주도하고 있는 소극장의 풍경이다.” 윤대성은 이들을 연극인이 아니요, 그저 포르노업자들일 뿐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한다.


    외설성으로 사법부의 유죄판결을 받은 <미란다>
미란다
미란다
  • 연극의 외설성, 성의 상품화에 대한 비난이 가장 절정에 오르게 되는 계기는 1994년 6월 공연을 시작한 <미란다>이다. 이 공연은 포르노 연극 논쟁으로 불거지고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었으며, 결국 1996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연출자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게 된다. 당시 <미란다>에 대하여 재판부가 내린 유죄판결의 근거는 모두 세 가지인데, 요약하면 첫째는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성행위 장면이 지나치게 상세하고 노골적이며 나신裸身 의 연기가 상당 시간 지속되는 등, 공연행위가 대중의 호색적 흥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 둘째는 존 파울즈의 원작에도 없는 여성의 음부 노출 및 가학적 성행위의 묘사가 연출가가 주장하는 작품의 주제와 관계없을 뿐 아니라 필수불가결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셋째는 객석과 4-5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의 성적 자극이 방송 또는 영화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점 등이다.

    그런데 <미란다>에 대한 연극계와 평단의 반응이 냉담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당시 언론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연일 이 사건을 과장되고 선정적인 태도로 지면에 보도하였던 것이다. “꾸짖는 듯하면서 그걸 부추겨주는 역할을 하는 위선적 모습”이라며 연극평론가 김윤철이 비판했듯, 언론은 선정성을 좇는 대중적 생리에 영합하면서 노골적인 호기심을 도덕성이라는 방패로 어설프게 감추어 보려는 미숙성과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비단 언론의 태도만이 아니라 무대 위 배우의 알몸과 성기의 노출, 성 행위의 재현 여부에 말초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이 당시 우리 사회의 현주소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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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이진아, 에로티시즘, 에쿠우스, 티타임의 정사, 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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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

이진아 연극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본지 편집위원 
club.sookmyung.ac.kr/playgoer
웹진 14호   2012-12-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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