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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공연의 폭발적 증가, 관객은 어디에
[대학로연대기] ⑤공연계에 불어온 마케팅 바람 - 下

김소연_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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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연대기

    92년 개봉한 <결혼이야기>는 대발이 최민식과 콜라 같은 여자 심혜진의 기존 이미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대의 결혼풍속도를 그려내면서 소위 대박을 터트린 영화다. 이 영화로 데뷔한 김의석 감독은 그해 대종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했다. 그렇지만 <결혼이야기>가 한시절의 흥행영화를 넘어 지금도 기억되는 이유는 이러한 사실들이 아니다. <결혼이야기>는 한국영화에서 ‘기획제작영화의 포문을 열었다’는 것으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된다. 이 영화에 ‘명기획’으로 참여한 심재명 대표는 ‘마케팅은 영화가 완성된 후의 작업이 아니라 제작 초기부터 함께 가야 할 필수과정’이라고 말한다. <결혼이야기>는 이러한 정의를 입증한 첫 사례이다.


  • 기획자, 기획사의 등장

    연극은 어떨까. 연극을 비롯한 공연예술에서도 ‘기획’이라는 역할이 별도의 독립된 영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이다. 그 시작은 다양한데, 신시뮤지컬컴퍼니 박명성 대표는 자신의 컴퍼니를 갖기 전까지 극단 신시의 기획실장으로 라이선스 뮤지컬 <더 라이프> 등 30여 편의 작품을 제작했다. <난타>로 널리 알려진 피엠씨(PMC)는 극단 환퍼포먼스로 출발했다. ‘극단’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연출가와 배우들로 구성된 단원이 있는 극단이 아니라 기획제작 스태프가 구성원이었다. <고래사냥> 등 뮤지컬만이 아니라 <당신의 침묵> <남자충동> 같은 연극도 제작했다. 명계남 대표가 이끌었던 ‘문화공장’ ‘공연기획 이다’는 독립기획제작사로 출발하여 <늙은 창녀의 노래> 등을 기획제작 하는 한편 <늘근 도둑이야기> <비언소> 등의 홍보마케팅을 대행했다. <라이어>의 파파프로덕션은 <떠벌이 우리 아버지 암에 걸리셨네>의 홍보마케팅 대행,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인 <날 보러 와요>를 공동제작 했다. 대학로를 벗어나면, 삼성영상사업단은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브로드웨이 현지 스태프, 무대기술팀과 함께 제작하면서 대기업의 공연계 진출로 주목을 끌었다.

    공공극장인 예술의전당은 1994년 오태석, 최인훈, 이강백 등 ‘오늘의 작가’ 시리즈를 기획제작 한다. 그전까지 공공극장은 문예회관(현 아르코극장)처럼 대관극장이거나 국립극장처럼 국립극단,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관현악단 등 상주예술단체의 공연을 제작하였다. 예술의전당은 상주예술단체 없이 기획제작의 역할로 공공극장의 제작방식을 보여주었다. (지금은 남산예술센터나 명동예술극장, 단원제를 폐지한 국립극단이 이렇게 운영되고 있다.) 민간소극장 학전도 소극장뮤지컬 <지하철1호선>을 비롯해 제작중심극장으로 운영되었다. 물론 극단 실험극장이 운영한 실험극장 등 민간제작극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학전의 경우는 단원 중심의 극단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제작극장이었다.

「오늘의 작가 시리즈」최인훈 작가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 극단 미추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츨처] 경향신문 1996년 5월 21일
소극장 뮤지컬의 한 획을 그은 <지하철 1호선>
[출처] 동아일보 1996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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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연극 기획·제작을 말한다.」좌담, 1998년 9월 11일
[출처]『한국연극』
1998년 10월호 32면
  • 90년대 이러한 변화에 대해 문화기획자 강준혁은 한 좌담에서 이미 우리사회에 중간매개자라 할 역할이 다양하게 존재하기 시작했고 이는 현대사회의 공통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우리사회의 특수한 상황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연극계에 동호인 집단이 어느 시기에 무너지고, 또 무너졌지만 상업적인 조직력과 기획력을 갖춘 체제로 나아갈 수는 없는 상태, 그러니까 반쯤은 동호인적이고 인간적인 결속력으로 서 있지만, 추구하거나 나아가는 방향은 다분히 상업화되어 있는, 이런 중간적인 형태를 가진 것이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말에 들어서 “저거는 쇼 비즈니스다, 라고 할 수 있는 프로덕션과 프로덕션을 표방하는 집단들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월간 [한국연극] 1998년 10월호)

    쇼 비즈니스의 영역은 2000년대 뮤지컬을 중심으로 놀랍게 성장한다. 반면 연극으로 놓고 보면 상황이 조금 복잡하다. 이제 많은 연극제작에서 ‘기획’이라는 분야가 특화된 전문적 분야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극단에서 ‘기획’은 여전히 보조적 역할이다. 연희단거리패, 극단 미추 등 극단의 자체 기획역량으로 운영되는 극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여전히 연출가와 배우 중심의 극단에서 제작에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는 연출가들이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 소규모의 소극장 공연에서도 홍보마케팅은 특화된 영역으로 홍보마케팅 대행사들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

    연극에서 ‘제작’이라는 역할의 분화는, 쇼 비즈니스의 영역을 구축한 뮤지컬과 달리 제작극장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공극장과 <라이어>로 대표되는 대학로 장기 공연물들을 양끝으로 하여 그 사이에 다양한 형태로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양상이다. 아무튼 공연은 엄청 많아졌다.


  • 연극열전, 연극도 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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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현씨가 프로그래머를 맡아 화제가 된 <연극열전 2>
[출처] www.thebestplay.co.kr
  • 2004년 연극계에는 하나의 빅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격년제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연극열전’이 시작된 해이다. 연극열전의 첫 출발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80년대부터 2003년까지 발표된 화제작 15편을 선정하여 1년에 걸쳐 공연했다. 무엇보다 ‘연극열전’의 첫 출발에서 강조한 것은 ‘한국연극 최고의 프로젝트’라는 점이었다. 작품선정에서만이 아니라 극단, 연출, 배우 등 참가자들의 면면에서 한국연극 최고 역량이 투여된 더 할 수 없이 화려한 기획이었다. 저널의 관심에서나 흥행에서나 ‘연극열전’은 그해 연극계 최고의 화제였다. ‘연극열전’의 성공은 한국연극에서 기획제작 역량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그리고 기획제작 역량이 ‘연극생산’의 중요한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민간 기획제작팀으로서는 무모하다 할 만큼 야심만만한 이 기획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명작이나 고전이라는 작품성에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잘 만든 연극에 대한 수요를 확인시켜주었다는 것이다. 흥행성과 연극사적 권위(예를 들어 ‘8,90년대 한국연극의 대표작’ 식의)를 절충하는 작품선정 그리고 스타성과 지명도, 검증된 연기력을 절묘하게 배합하는 캐스팅으로 ‘연극열전’은 대중연극의 경계에서 ‘한국연극 최고의 프로젝트’라는 홍보문구를 설득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한국공연예술센터로 개칭한 대학로예술극장과 명동예술극장의 개관공연 캐치프레이즈는 ‘명품연극’이었다.

  • 대학로 소극장 100개 시대
    연극, 대학로를 떠나자


    2007년 11월 서울연극협회는 대학로 소극장 현황 조사결과를 발표한다. 발표시점에서 대학로소극장이 100개를 넘어섰다는 것. 이 조사결과는 당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여러 분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극장 밀집지역 대학로의 속살은 흥분을 자아내는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소극장 개관의 견인차는 개그쇼와 장기 흥행 공연물들이었던 것. 아르코예술극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극장가는 어느 새 혜화동로터리 너머 주택가와 삼선교까지 퍼져나가고 있었는데, 대학로 소극장가가 시작된 중심지는 개그쇼와 장기 흥행 공연물들이 차지하면서 연극 소극장들은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대학로가 점점 상업지구가 되어간다는 의심과 우려는 이미 90년대부터 있어왔다. 극단 미추는 96년 대학로 초입 디자인센터(현 홍익대학교 아트센터)에 있던 극단 사무실과 연습실을 경기도 양주시로 이전한다. 97년 연극 연출가 김아라는 경기도 죽산면에 무천야외극장을 연다. 2006년 4월 서울연극협회는 “탈대학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란 설문조사를 실시하는데, 그 결과를 보면 70%가 탈대학로에 반대하고 있지만 대학로의 여러 문제들-대관료 상승 압박, 길거리 호객, 덤핑 티켓 남발, 개그쇼 등의 대중적 공연물과의 경쟁 등-에 대한 답변에서는 대학로를 상업적 공연의 거점으로 한정하고 비상업적 연극거점을 새롭게 만든다거나 혹은 다거점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55%에 이르고 있다.
남산예술센터
남산예술센터
(개관:2009.06.08)
[출처] 서울문화재단 블로그
  • 대학로의 이러한 지형변화와 맞물려 공공극장들의 개관은 대학로로 상징되는 민간극단들이 제작하는 소극장 공연을 위축시키고 있다. 2009년 명동예술극장, 남산예술센터가 개관하고 2011년 새롭게 출범한 국립극단이 제작에 참여하면서 연간 수십 편의 연극이 공공제작으로 막을 올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제작환경, 역시 상대적으로 체계화된 홍보마케팅 등으로 중극장 연극들은 민간극단의 소극장 공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공 제작극장의 특징이라면 예술감독 없는 극장장 체제라는 점이다. 단원제를 폐지하고 국립극장에서 독립한 국립극단이 예술감독 체제로 제작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제는 비상임이다.) 공공 제작극장의 출현은 연극의 공공성과 연극 제작의 합리성 제고라는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획기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은 빈약한 연극 관객층의 숙제를 안고 있는 공공 제작극장을 가장 직접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은 경영성과에 집중되어 있는 행정평가이다. 관객개발과 소비확대는 지형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속되는 문제적 지점이다.


    명동예술극장(재개관:2009.06.18)
    [출처] www.mdtheater.or.kr
    옛 기무사 수송대 부지에 자리 잡은 국립극단
    [출처] 중앙일보 2013년 3월 29일
     
    그리고 스타, 너무나 매혹적인

    공연제작과 마케팅에서 가격 정책만큼이나 고전적(?) 논란은 스타 캐스팅이다. 스타들의 티켓 파워는 당장 공연의 대중적 성공을 보장하겠지만, 과연 그렇게 몰려든 관객들이 또 다른 공연의 관객으로 극장을 찾도록 유인할 수 있는가. 한편에서는 그렇다고 답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공연의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도리어 스타 때문에 처음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연극에 대한 실망만 안겨준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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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한참 거슬러 60년대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연극인들이 동시대연극을 기치로 동인제 극단이 출범할 당시, 이들은 연극계의 주류라 할 극단 신협에 대해 스크린의 스타들을 무분별하게 캐스팅하면서 공연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편 60년대 동인제 극단의 성장을 회고하는 한 좌담에서 연극의 아마추어리즘이 지적되기도 한다. 해방 후 국립극장의 설립과 함께 창단한 극단 신협의 배우들이 막 성장하기 시작한 영화의 주역들로 떠오르고 있던 시절이었다. 김승호, 최은희, 허장강 등이 극단 신협의 재기공연에 대거 출연하는 것을 놓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신협에 스타붐”, 경향신문, 1963년 4월 22일 자)

    가까운 예로 ‘연극열전’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2007년 ‘연극열전2’는 프로그래머로 배우 조재현이 전격 합류하면서 스타 캐스팅이 좀 더 본격화된다. 군대를 막 제대한 고수의 첫 번째 복귀작이 된 <돌아온 엄사장>, 한채영을 캐스팅한 <서툰사람들> 등이 그렇다. 이를 두고 지나친 상업성이라는 지적에 대해 조재현은 연극 관객의 저변확대라 대답했다. 과연 그 결과는? 장기적인 관객연구가 뒷받침 되지 않는 한 결론을 짓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최근 연극무대의 스타 캐스팅에서 긍정적인 점은, 스타 캐스팅에서 좀 더 신중한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지난 해 명동예술극장은 <헤다 가블러>에서 타이틀 롤에 이혜영을 캐스팅했다. <헤다 가블러>는 이혜영의 티켓 파워만이 아니라 이혜영의 ‘헤다’로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입센의 고전을 잘 소화했다는 긍정적 평가였다. 물론 이혜영은 스타 캐스팅의 일반적 사례는 아니다. 뚜렷한 티켓 파워를 가지고 있으면서 안정적인 무대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 결국 문제는 스타 캐스팅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적절한 수단으로 쓸 수 있는 기획제작 역량이다. 명동예술극장은 다시 이번 시즌에 이선균·전혜진 부부를 캐스팅한 를 공연 중이다. 이선균은 뮤지컬 <록키 호러쇼>로 데뷔한 이후 TV, 영화 등에서 활동했다. 이번 작품은 그의 첫 연극무대다. 명동예술극장이 다시 <헤다 가블러>의 성공을 얻을 수 있을까.

    90년대 이래 공연장과 공연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양상도 매우 다양해서, 쇼 비즈니스의 본격적인 출현은 물론 다양한 기획제작 주체들로 공연제작이 다변화되고 있다. 물론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대학로 소극장 연극들의 (상대적) 위축에 대한 우려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탈대학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탈대학로에는 대부분이 반대였지만 새로운 연극의 거점에 대해서는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대학로 중심가를 온통 도배하고 있는 천편일률적인 로맨틱 코미디들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그 역시 공연예술의 확대, 연극의 다양성의 과정이자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상업적 시스템과는 구별되는, 혹은 상업적 시스템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연극과 관객이 만나는 장에 있다. 기존의 마케팅과 다른 새로운 도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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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스타 마케팅, 연극열전, 기획사, 탈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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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연극평론가
연극평론가. 컬처뉴스, weekly@예술경영 편집장을 지냈다. 무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을 보고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든다.
웹진 21호   2013-04-04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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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의 <육분의 일>이 아니라 <육분의 륙>이고, 연극열전 시리즈가 아닙니다. 틀린 정보가 있네요-

2013-04-05댓글쓰기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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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연극人n 편집부입니다. 의견주신 내용 확인하여 수정조치 하였습니다. 앞으로 좀 더 세심하게 정보 확인하여 기사 게재토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4-08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