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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 갈아입기 전에 돌아올 거요”
[색色다른시선] 소설「한씨연대기」vs 연극 <한씨연대기>

김석만_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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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공연된 연극 <한씨연대기>공연전단 / 작 황석영. 연출 김석만
[출처]필자제공
 
    소설 「한씨연대기」는 1972년 [창작과비평]에 처음 소개되었고, 1974년 황석영 소설집 『객지』에 수록되었다. 연극 <한씨연대기>는 1985년 극단 연우무대에서 제15회 정기공연으로 제작되어 1980년대 사회문제를 다룬 창작극으로 연우무대의 전성기를 연 작품이다. 황석영의 소설 「한씨연대기」와 연우무대의 연극 <한씨연대기>의 시대적 배경은 평양의대 의학부 교수 한영덕이 1950년 6.25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져서 혼자 남쪽으로 내려왔다 1953년 휴전 이후 남북이 분단되어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간첩으로 모함과 고문을 받아 폐인이 되어 말없이 스러져가는 1970년대 초반까지다. 황석영이 소설을 발표한 1972년 3월은 아직 7.4 공동성명이 나오기 이전이고 박정희 유신 독재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연우무대의 연극은 10월 유신독재가 끝났으나 1980년 5월의 봄을 짓밟고 권력을 탈취한 군부독재가 서슬 퍼런 검열의 칼을 마구 휘두를 때인 1985년이었다. 공연의 원작 소설가인 황석영조차도 1985년에 연우무대에서 <한씨연대기>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당국의 ‘실수’이거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정도였다.

    소설은 1970년대 초반 혼자 외롭게 살다가 죽은 노인의 장례 장면으로 시작된다. 노인의 유품에서 청진기와 수첩이 발견되어 연고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서 평양 김일성대학교 의학부 교수인 한영덕의 삶을 회상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당의 명령을 거부하고 의사의 소신으로 부상자를 치료한 탓에 한영덕은 교수직도 박탈당하고 총살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전쟁이 깊어가자 한영덕은 가족을 평양에 남겨두고 혼자 월남한다. 북에서 의용군으로 남으로 내려와서 포로가 되었다는 아들을 찾으려고 포로수용소 부근을 배회하다가 고초를 격기도 한다. 먼저 월남한 여동생 한영숙의 도움으로 안정을 얻고, 전쟁이 일찍 끝나지 않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쟁에서 혼자된 여인과 재혼을 한다. 그러나 동업하던 무면허 의사가 의료사고로 고발을 당하자 이를 오해한 무면허 의사의 무고로 한영덕은 간첩혐의로 구속된다. 여동생 한영숙은 오빠의 무죄석방을 위해 애를 쓰지만 한영덕은 다른 죄목으로 실형을 언도받는다. 간첩혐의로 모진 고문을 당한 한영덕은 출옥한 후에 세상을 등지고 가출하여 어느 장의사에서 염하는 일을 하다고 쓸쓸히 죽어간다.


    소설가 황석영은 어머니로부터 큰외삼촌의 얘기를 듣고 소설을 썼다고 한 적이 있다. 소설 「한씨연대기」는 한영덕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한영덕의 죽음을 두고 함께 월남한 친구 서학준과 고단한 피난민의 삶을 감내하고 살아온 여동생 한영숙의 일대기이며, 그러한 아버지의 삶을 제대로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한영덕이 남한에서 재혼하여 얻은 딸 한혜자의 ‘미완의 일대기’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1953년생 고등학생 한혜자의 독백으로 끝난다.

    독백


연극 <한씨연대기> 포스터
[출처]필자제공
연극 <한씨연대기>를 연출한 필자는 소설가 황석영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머니로부터 자주 들은 이야기는 바로 전쟁과 피난 속에 살아남은 가족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육로로 삼팔선을 넘어 서울로 오셨고, 어머니는 세 남매를 데리고 평양에서 해주를 거쳐서 배를 타고 개성으로 월남한 이야기였다. 6.25 전쟁이 일어난 후 나를 낳아서 피난을 가지 못하고 인민군이 지배했던 서울살이, 다시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1.4 후퇴에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휴전 이후 환도열차還都列車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 온 가족의 이야기는 지금도 한 장면, 한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 연유였던가, 황석영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한영덕이 1950년 추운 겨울 대동강 가에서 가족과 헤어지면서 던진 한마다가 가슴에 꽂히고 말았다. “내복 갈아입기 전에 돌아올 거요.” 그 한마디 말에 얼마나 가슴이 메어졌는지 모른다. 한 계절이면 끝날 줄 알았던 이별이 이제는 영원히 고착되는 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먼 과거가 되어 버렸다. 실제로 따질 수 있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보다 더 아득하게 느껴지는 카이로스kairos의 분단의 시간이 한영덕의 그 한마디 말에 중첩이 되자, 소설을 꼭 무대에 올릴 결심을 하게 되었다.

연극 <한씨연대기> 무대디자인
[출처]필자제공
1984년 연우무대는 검열에 걸려서 공연정지 6개월 판정을 받는다. 이후 연우무대는 새로운 각오로 대학로에서 창작공연으로 재기할 것을 결심하고 공연 양식 공부에 몰입한다. 그 사이에 김석만(연출), 윤영선(조연출), 안태경(기획), 오인두(배우) 넷이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하는 작업에 매달리고 오인두가 수정부분의 책임 집필을 맡았다. 각색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 주인공 한영덕의 개인적 삶이 내포했던 시대적 의미는 무엇인가? 둘째, 문학 텍스트인 소설 구조를 공연 양식으로 바꿀 때 어떤 문제들을 고려해야 하는가?

각색은 한영덕 일대기를 원작 소설의 흐름을 쫓아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첫째는 평양 김일성대학 의학부에 근무하던 의사들에게 총동원령이 내려지고 중앙인민병원에서 한영덕이 단신 월남하는 부분까지다. 둘째는 한영덕이 포로수용소 기지 부근에서 배회하다 적성용의자로 몰려 수사를 받는 데서부터 무면허 의사 박가와 동업하던 중 박가의 오해를 받고 그의 무고한 투서에 의해 체포되기까지. 셋째는 한영덕의 억울한 심문에서부터 의료법 위반으로 징역 일 년을 선고 받을 때까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 부분은 원작의 흐름을 그대로 쫓아서 무리 없이 2)중앙인민병원, 3)수술, 4)원장심문, 5)처형, 7)피난, 등으로 쉽게 구상이 끝났다. (번호가 빠진 부분은 공연에서 해설과 다큐멘터리로 창작한 장면) 그러나 둘째 부분과 셋째 부분의 장면 구성은 원작의 흐름을 쫓아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일단 가능한 장면만을 설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연습과정에서 창작하여 채워 넣기로 하였다. 둘째 부분에서는 1)한영덕의 수사, 2)누이동상과 상봉, 3)박가의 동업과 낙태수술, 4)의료감시원의 취체, 5)투서를 다루었고, 셋째 부분에서는 1)고문과 판결, 2)한영덕의 가출을 다뤘다. 특히 공연에서는 셋째 부분에서 많은 부분이 창작되었다.


연극 <한씨연대기> 공연사진 [출처] “공연평” 한국연극 1985년5월호 (왼쪽부터①②)
“東亞(동아)연극상 作品賞(작품상) 「한씨연대기」「무덤없는주검」” 동아일보, 1985.12.27 (③)
 

    공연에서 소설과 가장 두드러지게 달라진 부분은 한영덕의 삶을 조건 지웠던 시대 상황을 나타낼 다큐멘터리 삽입 장면이었다. 한영덕의 비극이 분단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감안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강대국 수뇌들이 국제 회합에서 한반도의 문제를 거론하는 1945년 전 시기로 작품의 첫 배경을 소급시켰다. 한국전쟁 당시의 미국의 입장과 중공군 개입, 전쟁 중의 한국 정치·사회 상황을 대표할 수 있는 이승만 정권의 부패상, 또 휴전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을 자료로 뽑았다. 이러한 다큐멘터리 자료들을 독립된 장면으로 만들 수 있는 부분과 해설로써 처리되는 부분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삽입으로 연극 <한씨연대기>는 브레히트 서사극 양식이 줄 수 있는 소외효과, 즉 연극 속의 현실을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의 현실로 ‘새삼스럽게 인식’하는 양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연극도 한혜자의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한혜자는 전보를 들고 관을 짜는 강노인 옆에서 관에 누워서 죽음에 이르는 긴 잠을 자는 아버지 한영덕을 목격하게 된다. 한혜자의 독백이 끝나자 강노인이 관에 못을 박는 망치 소리가 어두워지는 조명 속으로 울려 퍼졌다.

태그 한씨연대기, 김석만, 극단연우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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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만

김석만 연출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극단 연우무대에서 활동하였고<한씨연대기>,<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최선생>,<가극금강>을 연출하였다. 최근 전통공연예술의 현재화에 관심을 두고 <영원한 사랑 춘향이>,정가극
<이생규장전> 등을 연출하였다.『연기의 세계』,『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가지 플롯』『연출가처럼 생각하기』를 냈다. 페이스북facebook.com/proksm
웹진 24호   2013-05-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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