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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성과 보편성의 거리
[색色다른시선]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vs TV드라마 <경숙이 경숙아버지>

배선애 _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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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연출가는 연극의 매력을 ‘소멸’이라고 했다. 배우와 제작진이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는 영영 사라져버려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 그래서 무대에 서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가장 강렬한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 연극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는 설명이다. 맞는 말이다. 영화나 TV드라마 등 영상매체의 예술은 그것이 영구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시공간을 초월해서도 감상할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다. 서양 영화사의 교과서라고 칭해지는 영화 <시민 케인>오손 웰즈 감독, 1941년 은 지금도 영화학도들에게 중요 시퀀스들이 분석되고 있으며, TV 역사극에 ‘퓨전’fusion 이라는 명칭을 본격적으로 부여받은 <조선 여형사 다모>정형수 극본, 이재규 연출, 2003년, MBC 는 아직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대사와 함께 마니아 팬들의 다시보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비한다면 연극은 다시보기는커녕 공연의 족적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공연이라는 <은세계>이인직 작, 1908년 는 물론, ‘홍도야 울지마라’로 유명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임선규 작, 1936년 도 관객의 열띤 반응과 인기에 대한 기록만 남아 있을 뿐 도대체 어떤 무대에서 어떤 의상을 입고 어떤 화술로 어떻게 분장한 배우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기했는가의 전모를 알 수가 없다. 이것은 비단 식민지 시기 작품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연극에서 화제가 된 연극들, 예를 들면 ‘영원한 햄릿’ 고 김동원이 출연한 <햄릿>1951년, 1977년 제1회 대한민국연극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물도리동>허규 작, 연출, 영화로 더 유명한 <웰컴 투 동막골>장진 작, 연출, 2002년 등도 그 작품을 본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뿐 최첨단 디지털의 기술을 총동원한다고 해도 절대로 다시 볼 수 없는 작품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연극은 이른바 ‘전설’을 무수히 만들어낼 수밖에 없고, 그 전설들은 ‘다시 쓰기’, 혹은 ‘다시 만들기’를 통해서 재현되는 것이다.

    경숙이 경숙아버지
    (왼쪽) <은세계> 공연 후 1908년 11월에 간행된 「은세계」(동문사)의 겉표지 [출처] 조선일보 2011년 11월 8일
    (오른쪽) <물도리동> 극단 문예극장 제33회 공연 1977년, 허규 연출 [출처] 유경환 조명디자이너 블로그

    섬광처럼 빛을 내고 소멸하는 연극의 ‘다시 쓰기’ 방법으로는 첫째, 초연의 기록을 기반으로 새로운 무대를 꾸며내는 것, 둘째, 영화나 TV드라마 등의 다른 매체로 전환하는 것 등이 있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두 번째 방법인 영상매체로의 전환, 보다 구체적으로는 TV 드라마로 연극을 다시 쓰는 작업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연극이 영화로 매체 전환이 된 것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1960년대 문예영화 시대는 물론 2000년대만 해도 <날 보러 와요>나 <이> <웰컴 투 동막골> 등이 각각 <살인의 추억> <왕의 남자> <웰컴 투 동막골> 등의 굵직굵직한 작품으로 재탄생하여 평단의 호평은 물론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연극이 영화로 매체 전환되는 것은 1회로 완결되는 속성을 공유하기에 가능한 것인데, TV드라마로의 전환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TV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연속된다. 1회로 끝나는 단막극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TV드라마는 장르에 따라 최소 2회에서 많게는 100회 이상의 구성으로 방송된다.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자막, ‘다음 이 시간에’는 TV드라마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설명해주는 단서이다. 각 가정에서 TV가 어디에 위치해있는가를 떠올려 보자. 대부분 가족 공동의 공간인 거실, 그것도 가장 잘 보이는 벽면 한가운데에 놓여있다. 일상 공간 속에서 일상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TV다. 이러한 일상성은 곧바로 TV드라마에도 적용된다. 청소를 하면서, 식사를 만들면서, 혹은 소파에 늘어져 있으면서 무심히 바라보는 텔레비전. TV드라마는 이러한 시청자들의 ‘흘려보기’ 관습에 기대어 미학적 장치를 구성하는 장르다. 흘려보기 때문에 작품의 중요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사건의 전개를 느리게 할 수밖에 없다. 흘려보기 때문에 익숙하면서도 자극적인 사건들을 배치하여 관심을 끌게 해야 하고, 결정적인 장면에서 사건을 중지하여 다음 방송에도 긴장감과 집중도를 유지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관심 유지의 방법이 너무 과도해서는 안 된다. TV는 불특정 다수가 일상에서 접하는 보편적 매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한에서, 시청자들의 도덕과 윤리를 결정적으로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TV드라마의 주제와 사건들이 창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TV드라마의 성격을 전제할 때 연극을 TV드라마로 다시 쓴다는 것, 매체를 전환한다는 작업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1회로 끝나는 내러티브를 연속된 구성으로 늘여내는 것도 문제이지만, 연극이 가지고 있는 실험성과 캐릭터의 특수성을 보편의 영역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무리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연극이 연속되는 TV드라마로 만들어진 것이 <경숙이 경숙아버지> 한 편이라는 점은 TV드라마로 연극을 다시 쓰는 작업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반증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연극의 TV드라마화가 이 작품에서는 비교적 효과적으로 성취되었다는 점이다.

    경숙이 경숙아버지
    (왼쪽) 2006년 초연 된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포스터
    (오른쪽) 2009년 4부작 TV 드라마로 제작된 드라마 <경숙이 경숙아버지>
경숙이 경숙아버지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의 배우 조재현 & 연출가 박근형
[출처] 세계일보 2007년 1월 16일
2006년 7월 작가 겸 연출가인 박근형은 기가 막힌 아버지 캐릭터를 관객들 앞에 내놓았다. 때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폭격 소리에 피난을 서두르는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의 손을 붙잡는 대신 장구채를 붙잡는다. 함께 가자고 매달리는 처자식을 거절하는 그의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 “전쟁이 나 죽고 사는 것들도 다 내같은 사내들한테 해당되지 느그들같은 가시나한테는 아무 일도 해당사항이 없는기야.” 그러고는 “깝깝한 년! 너희는 둘! 내는 쏠로! 진정 외로운 사람은 내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혼자서 피난길에 오른다. 지금까지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전쟁통에 피난을 떠나는 아버지들이 처자식을 먼저 챙기는 것을 익숙하게 보아온 관객들에겐 놀라운 장면이다. 아무리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지만 그래도 가족인데, 그래도 가장인데 어떻게 혼자 피난을 갈 수 있는지, 경숙아버지의 당당한 논리는 그런 놀라움마저 무화시켜 버린다.

아버지의 기막힌 행적은 전쟁이 끝나고도 이어진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거제도에서 만난 꺽꺽 삼촌을 자기 대신 집안일 도울 사람으로 소개하며 “이람 계산 다 끝났지요? 내 간다.” 하면서 또다시 집을 나간다. 계산의 정체와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전쟁을 견뎌낸 가족들을 추스르는 역할을 생판 남인 꺽꺽 삼촌에게 넘긴 채 또다시 가장의 책무를 벗어던진 것이다. 그러고는 아내가 꺽꺽의 아이를 갖게 되자 아들이면 자기가 데리고 가겠다며 첩인 자야와 함께 집에 돌아와 젓가락 장단에 춤을 추고 진득한 애정행각을 딸인 경숙이 앞에서도 서슴없이 벌인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자야가 청요리집 주방장과 눈이 맞아 자신을 떠나자 아내에게 “니는 내 마누라 아이가? 남편이 이래 괴로운데 니는 가만 있나?”라며 자신은 남편 역할은 하지 않으면서도 아내에겐 그 역할을 다 하라고 요구하는 뻔뻔함이다.

수시로 처자식을 떠나고, 또 떠났다 돌아올 땐 한 명씩 외부인을 끌고 들어와 종국에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삼촌과 이모의 기이한 가족 관계를 만든 아버지의 행동과 논리는 기존의 아버지와는 너무 달라서 황당하고 엽기적이며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그 아버지가 밉지 않다는 것이다.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 혼자 살아온 그의 삶이 가족을 꾸려도, 사랑을 해도 평생을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지 못한 채 외로움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 관객들에게 깊은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아버지, 하는 행동이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며 그래서 어이없고 기가 막히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고 급기야 마음이 짠해지는 사람이었다.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2007년 배우 조재현의 합류로 더욱 인기를 끈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총 4부로 방송된 TV드라마 <경숙이 경숙아버지>김혜정 극본, 홍석구 연출, 2009년, KBS2 제작진이 제일 고민한 부분은 아버지의 기막힌 행동들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 즉, 연극이기에 가능했던 특수한 아버지를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아버지로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연극과 비교했을 때 크게 변한 몇 가지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버지는 장구잽이로, 여기저기 연희 장소에 불려가 돈을 받는 직업인이자 훌륭한 장구 연주를 꿈꾸는 예인이다. 둘째, 꺽꺽 삼촌에 해당하는 박남식이 아버지가 훔쳐간 돈을 받기 위해 경숙의 집에 직접 찾아온다. 셋째, 전쟁이라는 시대상의 반영을 위해 밀가루 공장과 그 사장집 가족을 보여준다. 넷째, 아버지의 새어머니, 즉 경숙이의 할머니가 그들과 함께 산다. 다섯째, 경숙엄마는 남식이아재의 아들을 낳고, 그 순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다. 이 항목들은 대부분 경숙아버지의 특수성을 보편성으로 만들어내는 데에 적극 기여하고 있다.

아버지가 직업을 갖고 있는가의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직업이 없는 아버지는 곧바로 무능력한 사람으로 읽혀지지만 직업이 있다면 그는 가장이자 사회인으로서의 이미지가 선명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구를 연주하는 예인이라는 특수함은 경숙아버지가 이기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예술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실제로 박남식이 숨겨둔 돈의 정체를 알고 그 돈을 훔쳐 그가 평소 흠모하던 장구의 달인 신장구에게 몽땅 수업료로 갖다 바쳐도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또 딸이 아프다고 울고불고해도 한창 가면놀이의 흥이 무르익는 마당이니 흘려듣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집을 떠날 명분으로 활용되니 장구잽이라는 아버지의 직업은 여러모로 유용한 장치다.

경숙엄마와 사랑에 빠지는 남식은 고향에 두고 온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그 출발로 하고 있고, 아버지가 함께 데리고 들어온 기생 화자는 부적절한 관계인 첩이 아니라 집에 들어가기 계면쩍은 아버지의 주저함에 힘을 실어주는 조력자였다. 이기적이라고 자식한테 비난받는 아버지이지만 남식이 공산당으로 몰려 잡혀갔을 때 혼신의 연주를 통해 그가 풀려나는 것을 도와주는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평생을 장구 장단 속에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가던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나섰고 그 결과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 이 작품의 결말은 감동과 행복이라는 TV드라마의 해피엔딩이 적절하게 구현된 장면이다. 단 4회 방송에 마지막 회의 시청률이 14.2%나 되고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진 것은 전쟁이라는 참혹한 시기에 한량 같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살아가는 방법을 경쾌한 분위기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TV 드라마 경숙이 경숙아버지
TV 드라마 <경숙이 경숙아버지>, 경숙이(심은경)와 경숙아버지(정보석) [출처] KBS 홈페이지

연극에서 그려진 아버지는 ‘그럴 수는 있겠지만 내 아버지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였다. 그러나 TV드라마의 아버지는 ‘그 시절에 우리네 아버지들은 다 저렇게 살았을 지도 모른다’는 보편적 아버지가 된 것이다.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아버지’라는 키워드와 그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가족들의 끈끈함은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TV드라마의 문법에 따라 보다 보편적이고 현실성이 강한 캐릭터와 사건들로 연극을 다시 쓴 <경숙이 경숙아버지>는 TV드라마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연극의 다시 쓰기 방법이 더 다양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4회로 그쳤지만, 영화 <친구>가 총 20부의 TV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로 재탄생한 것처럼, 한 편의 연극이 10부가 훌쩍 넘는 미니시리즈로 다시 쓰여지길 기대해 본다.

태그 경숙이 경숙아버지, 박근형,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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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애

배선애 연극평론가
대학에서 희곡과 연극을 강의하면서 계간 [한국희곡] 편집위원으로 리뷰섹션을 담당하고 있고, 월간 [객석]과 계간 [공연과 이론]에 글을 싣고 있다. 연극 <전하의 봄> <평행우주 없이 사는 법> <봄이 사라진 계절> <벚나무 그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한 가문의 몰락사>에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해 연극 현장을 기웃거리는 중이다. sunny-artemis@hanmail.net
웹진 28호   2013-07-1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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