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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의 차이가 만드는 밝음과 어두움
[색色다른시선] 영화 <히스토리 보이즈> vs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이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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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스토리 보이스 The History Boys
영화 <히스토리 보이즈>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 2006년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김태형 연출 | 2013.03.08~31
조명이 켜지고 무대에 휠체어를 탄 40대 남자 어윈이 등장한다. 그는 정치인들에게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해당 법안을 시민들의 눈에 필요하고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할 '전략'을 가르치고 있다. 어윈은 그 법안의 내용과 그로 인해 생겨날 결과의 실질적 유효성 보다는 그것을 프리젠테이션하는 태도와 수사학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렇게 '전략'을 진실 보다 앞에 두는 방식은 다름 아닌 학교의 교육 현장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관객들은 과거로, 학교로, 교실로, 이제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는 소년들의 삶 속으로 안내된다. 거기에는 A레벨 성적표는 "체제 순응의 표식"에 불과하며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자기 생각 없이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다소 괴짜이지만 소신 있는 헥터가 있다. 이것이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의 시작이다. 반면, 영화 <히스토리 보이즈>는 A레벨 테스트 결과를 보기 위해 소년들이 하나 둘씩 모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각 소년들의 개성과 삶의 배경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극 시작 방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조되는 것은 소년들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모습과 어른이 되기 일보 직전의 성숙과 미성숙의 불안한 혼합이다. 성적을 확인한 소년들은 환호하면서 한 데 뒤엉킨 채 복도를 빠져나간다. 그들은 십대다운 무서운 에너지로 어딘 가를 향해 밀고 나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이 어디로 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화면은 그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미성숙을 성숙한 어른의 눈으로 지켜보는 헥터와 린톳을 비춘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와 영화 <히스토리 보이즈>는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진행되지만 그 이야기를 담는 틀과 관점이 이렇듯 조금 다르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출처]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http://www.doosanartcenter.com/
영화 <히스토리 보이즈>는 그 시작에서도 보이듯이 소년들의 매력과 그들의 성장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이야기의 진행은 철저히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를 향해 진행된다. 영화 시작 화면에 나오듯 1983년이 극의 현재이며, A레벨 성적이 발표된 직후 소년들이 옥스브리지Oxbridge 특별반으로 편성되어 입시를 준비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모두 합격하기 까지, 그리고 헥터의 죽음까지를 순차적으로 다룬다. 반면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어윈이 40대가 된 시점이 극의 현재이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소년들은 극 속에서 잠시 빠져 나와 지금 극 속에서 진행되는 일들에 대해 코멘트를 한다.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소년들이 성인이 된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일을 회상하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연극의 주요 사건은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의 시각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히스토리 보이즈>는 좀더 대중의 입맛에 맞게, 좀 더 달달하게, 아름다운 청춘과 그들의 성장에 자극과 양분을 공급하는 독특한 세 명의 선생님들 이야기를 한 데 엮는다. 그러나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관객의 입맛에 다소 씁쓸함을 남긴다. 그 씁쓸함은 현실은 결코 장미 빛이 아니며, 눈부시게 빛나는 듯한 청춘의 미래가 무조건 희망적이고 밝지만은 않다는 다소 시니컬한 작가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어윈을 보자. 영화에서 어윈은 소년들과 비슷하게 소년스럽게 보인다. 교장 선생이나, (연극에는 등장하지 않는) 체육 선생이 그를 학생으로 착각할 정도로 그는 어리다. 그의 미성숙은 자신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고 포장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우선 옥스포드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똑똑하지 못하다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을 옥스포드 졸업생이라고 속인다. 또한 소위 ‘먹히는’ 논쟁의 전략, 즉 사실이나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을 의심하게 만들고 진실처럼 보이게 포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자신의 방식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포장한다. 궤변적이고 공격적이지만 무언가 섹시한 지적 매력을 풍기는 젊은 선생으로. 그러나 그 포장은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청춘, 데이킨에 의해서 허물어진다. 영화 속 어윈은 사랑과 교사로써의 책임 사이에서 진지하게 번민하고 갈등하며 결국 자기 껍질을 깨고 나온다. 데이킨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이고, 헥터의 오토바이 뒤에 오르는 그의 모습은 한결 가볍고 편안하다. 비록 헥터의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치기는 하지만, 영화에서는 목발을 짚고 걸어야 하는 정도의 사고로 처리된다. 더욱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 온전히 걸어 나가는 것으로 보아 어윈은 잘 회복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히스토리 보이즈
영화 <히스토리 보이즈> [출처]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

연극의 어윈은 그 보다 더 복잡하다. 그는 불구가 된다. 그의 비뚤어진 가치관과 궤변적인 사고방식이 어쩌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휠체어에 타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망가진 육체로 말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사회적 권력자이다. 1막 시작 장면에서는 정치인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2막 시작 장면에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무엇이든 진실로 포장하는 방법, 그리고 영속적인 가치보다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물질적인 가치가 이 세상에서는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가르친다. 결국 어윈은 무언가가 진실로 포장되고 그래야만 가치를 지니게 되는 세상의 방식을 자신이 꿰뚫고 있음을 과시하여 자신을 가치 있는 인물로 포장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때에 비해 조금도 변하지도 나아지지도 않았다. 데이킨을 좋아했던 것을 인정해 달라는 포스너에게 끝까지 사실을 부정한다. 오히려 더 사악해진 느낌이다. 이 사악함이 한 때 청춘이었던 학생들이 성인이 된 현재 매일 사회에서 겪고 있는 현실이다.

영화와 연극은 엔딩 역시 다르다. 연극의 엔딩은 린톳의 회상을 통해 관객을 소년들이 성인이 된 현재로 (다시) 데리고 온다. 그리고 소년들이었던 이들이 지금 어떤 모습의 성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그들은 우리가 흔히 한국의 고교생 성장 드라마의 마지막회에서 보듯 반듯하고 모범적이며 성공적인 성인이 되어있지 않다.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판사가 되고, 교장이 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세탁소 체인점들을 소유하고 주말에는 마약을 하는 사람, 돈만을 쫓는 세금 전문 변호사,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의 가장 구석 자리에서 외롭게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 - 포스너가 있다. 진리와 자유, 예술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헥터의 가르침을 그대로 보존하고 기억하는 대가일까? 그는 어윈과 같은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세상에서 도태되어 버렸다. 다른 소년들이 자신의 현재에 대해서 적어도 한마디씩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반면, 포스너에게는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린톳이 자신을 소개하는 동안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연극은 부서지고 망가져 있으며 결코 밝지 않은 현실을 전제로 이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청소년의 가능성과 잠재성 같은 것은 없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헥터의 가르침이 더 빛이 나는 지도 모르겠다. 결국 남들과 다를 것이 비루한 인생의 집합 속에 합류되어야 하지만, "사랑을 빼고는 유일하게 가치 있는 교육"이었던 예술과 삶과 자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그와의 수업이 유일하게 그들의 청춘을 밝혀주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는 이 보다는 낙관적이다. 우선, 영화 속 린톳은 회상이 아닌 상상을 하고 있다.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녀는 헥터의 장례식에 모인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 아이들이 내 장례식에도 와줄까?" 하고 미래 시제로 생각하며 시선을 아이들에게로 돌린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연극에서와 비슷한 내용이 이어지지만 군인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 록우드를 제외한다면 모두 그다지 나쁜 것 같지 않다. 적어도 마약을 하는 망가진 인생은 없다. 그리고 포스너. 영화 속 포스너는 선생님이 된다. 헥터의 가르침을 그대로 간직한 채 나름 좋은 선생님이 되어 있다. 마치 헥터에서 포스너로 이어지는 하나의 사이클이 완성된 느낌마저 든다. 포스너는 헥터처럼 학생들을 만지지는 않으니, 헥터의 실패가 반복되지 않고 무언가 더 나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 속 포스너는 한 마디 할 기회까지 얻었다. 자신이 행복하지는 않지만, 그것에 대해 불행하게 느끼지는 않는다고 한다. 영화는 미래를 열어둔 채 끝난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출처] 인터파크 플레이DB http://www.doosanartcenter.com/

영화는 연극보다 더욱 다양한 대중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장르적 특성을 염두에 둔 탓일까? 영화 <히스토리 보이즈>는 같은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연극보다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가볍다. 영화는 극 속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간 포인트와 관점을 바꿈으로써 이러한 효과를 내고 있다. 작가 알란 베네트가 원래 연극 속에 펼쳐 보이는 모순되는 것들의 공존, 선악의 가치판단의 모호함 등 복잡하면서도 깊이 있는 인생에 대한 성찰을 보기 원한다면, 영화로 만족하지 말고 꼭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공연을 볼 기회를 잡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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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 피츠버그대학 연극학 박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연극 <우물> <전시의 즐거움> 작
연극 <키친> <히스토리 보이즈> 드라마터그
웹진 31호   2013-09-0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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