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대사 아닌 대사가 만들어낸 울림과 공감
[색色다른 시선]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vs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성기웅_극작·연출가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소설가 구보씨의 1일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고 1938년 12월 7일 발행한 초판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성탄제> 등 13편 수록.
한국의 문화예술계에는 ‘구보 씨’라는 형상 없는 캐릭터가 있다. ‘구보 씨’는 칼럼이나 에세이의 화자로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만화나 단편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철학자 구보 씨, 샐러리맨 구보 씨, 녹색시민 구보 씨 등 다양한 구보 씨의 이종異種들이 있다.

이들 구보 씨의 공통되는 성격이라면 이런 것이다. 도시를 하릴없이 배회하는 산책자, 삶의 전선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는 생활인들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 관찰자, 세상을 향해 삐딱하게 고개를 트는 비판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외되고 고독한 자.

흔히들 이런 구보 씨의 원조는 「광장」의 소설가 최인훈 씨가 1970년대에 발표했던 연작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인훈의 이 연작소설의 원류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소설가 박태원이 1934년에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했던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구보’란 다름 아닌 1930년대 경성(서울)을 활보했던 모던보이 소설가 박태원의 아호雅號인 것이다.

이 원조 구보 씨가 잊혀진 존재가 된 데에는 분명한 까닭이 있다. 박태원은 한국전쟁의 와중에 이른바 월북 작가가 되었고, 뿐만 아니라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이 인정하는 최고의 작가로 추앙받게 된다. 그렇기에 남한에서 그의 소설들은 오랫동안 금지된 작품들이었고, 그의 이름은 ‘박O원’ 하는 식으로 복자覆字로 표기되어야 했었다. 지금이야 그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나 「천변풍경」이 수능시험에 단골로 출제되는 필독 작품이 되어 있지만, 1980년대 후반 월북 작가에 대한 해금 조치가 내려지기 전에 중 고등학교를 다녔던 40대 이상의 세대들은 그런 까닭에 구보 박태원을 잘 알지 못한다.


문장 그대로를 옮기며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다

나는 어쩌다보니 이 구보 박태원에 애착을 갖게 되었고, 내가 하고 있는 연극 작업에 그 원조 구보 씨를 끌어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를 주인공으로 세 편의 연극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 <깃븐우리절믄날>,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구보 박태원의 중편소설 자체를 연극 공연의 소재로 삼은 경우다. 나는 이 소설 자체를, 또 그러면서 이 소설을 둘러싼 이야기까지를 한 편의 연극으로 무대화하려 했다.

양동탁 배우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초연 사진, ‘태원’ 역의 이윤재 배우와 ‘이상’ 역의 양동탁 배우 [출처] 두산아트센터

<소설가 구보씨의 1일>
2010.12.2 ~ 12.31
2010년 12월에 두산아트센터 Space111 무대에서 초연된, 그리고 2012년 12월에 재공연된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대략 다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공연이었다 하겠다.
1) 원작 소설의 문장들을 그대로 연극으로 치환하는 부분
2) 이 소설을 쓰던 당시 구보 박태원의 생활을 재구성 해보는 부분
3) 이 소설을 둘러싼 이런저런 정보를 현재의 시점에서 전하는 다큐멘터리 영상 부분
그러니까 보통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해서 공연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시도여서, 초연의 경우에는 연극으로서가 아니라 서울문화재단의 다원예술 장르 지원을 통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었다. 예를 들면 1)의 부분의 경우에는 소설의 문장을 대사로 변형하여 대화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이 소설의 문장 그대로를 발화하며 연기한다는 점이 보통의 연극과는 달랐다.

[태 원] 어머니는
[구 보] 아들이 제 방에서 나와
[태 원] “콤마”
[구 보] 마루 끝에 놓인 구두를 신고
[태 원] “콤마”
[구 보] 기둥 못에 걸린 단장을 끄내들고 그리고 문깐으로 향하야 나가는 소리를
[어머니] 들었다
[태 원] “피리오드”
여기에서 ‘태원’은 현실 속의 소설가 박태원이고, ‘구보’는 박태원이 쓰고 있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자기의 분신 구보 씨이다. 여기에 구보의 어머니까지 가세하여 세 인물이 문장을 쪼개 주고받으면서 원작 소설의 문장들은 더 분명한 의미와 감정으로 전달되기도 하고 활자로 읽어갈 때와는 다른 뉘앙스를 띠게 되기도 한다.

처음에 현실의 소설가와 그 허구적 분신으로 분명히 나뉘었던 ‘태원’과 ‘구보’는 연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서로 뒤섞여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전형적인 예술가 소설인 원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세계를 더듬어 나간다.


소설적인, 너무나 소설적인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이상이 ‘하융(河戎)’이라는 필명으로 그린 삽화 [출처] 웹진 아르코
구보 박태원
구보 박태원
(1909년 12월 7일-1986년)
1930년 ‘신생(新生)’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한 이후 반계몽, 반계급주의문학의 입장에 서서 세태풍속을 묘사한 <소설가 구보(仇甫)씨의 일일><천변풍경(川邊風景)> 등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단편소설 <사흘 굶은 보름달><애욕><5월의 훈풍>, 장편소설 <태평성대><군상(群像)><갑오농민전쟁> 등이 있으며, 6.25전쟁 중 이태준, 안회남 등과 함께 월북했다.
구보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무척 좋아한다는 어떤 소설가는 이 소설이 소설 창작의 전범이 되는 요소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동사는 ‘걷는다’(혹은 ‘이동한다’), ‘생각한다’, ‘말한다’이고 소설이란 이 세 가지 동사가 반복되는 것이 기본적인 구조인데, 이 작품이야말로 그 구조를 무척 극명하게 드러내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딴은 그렇다. 이 소설의 주인공 구보 씨는 청계천 광교 옆 자기 집을 나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서울)을 하염없이 걸어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숱하게 많은 생각들을 한다. 그러다 누군가를 만나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별다른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말 많고 생각 많은 구보 씨지만 무언가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 전차에서 우연히 예전에 선 본 여인을 발견하지만, 오만 가지 생각 끝에도 우리의 구보 씨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고 만다.

그러고 보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무척 소설적이되 동시에 극적이지는 않다. ‘행동’과 ‘사건’은 극적인 내러티브를 이루는 근간인 것인데, 이 소설에는 그런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 ‘구보 씨’를 이루는 세 가지 동사 중 ‘말한다’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무대로 옮기기에 대단히 곤란하다. 구보 씨는 너무 많이 걷고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좀머 씨’가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을 걸어 돌아다니듯이, 근대 도시 경성을 걸어 돌아다닌다는 건 구보 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행위다. 걷지 않는 구보 씨는 구보 씨가 아니다. 그는 딱히 갈 곳이 없는데도 걷는다. 아니, 갈 곳이 없고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그저 그는 걷는다.

그는 종로네거리를 바라고 걷는다. 구보는 종로네거리에 아모런 사무도 갖지 않는다. 처음에 그가 아무렇게나 내여놓았든 바른발이 공교로웁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

별수 없이 우리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서 두 구보 씨를 맡은 두 배우 이윤재와 오대석은 무대 위에서 하염없이 제자리걸음 동작을 해야 했다. 초연 때의 움직임지도 이소영 씨가 만들어낸 이 제자리걸음 동작은 뜻밖에 관객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구보 씨의 그 수없이 많은 상념들은 배우들의 말(발화)로 전해지거나 영상 이미지, 음향 이미지 등으로 전달되었다.


영화적인, 너무나 영화적인?

1930년대 최고의 모던보이 구보 박태원은 영화를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그런 그는 당시 최신의 영화 기법으로부터 얻은 아이디어를 소설 창작에 적용시키는 문장의 실험을 하게 된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도드라지게 구사한 영화 기법은 오버랩과 몽타주였다. 장면과 장면이 겹쳐지며 전환되는 오버랩,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이미지가 충돌되며 연쇄되는 몽타주는 20대의 조선 청년 구보 박태원의 눈을 황홀하게 홀렸음에 틀림없다.

그는 종로네거리를 바라고 걷는다. 구보는 종로네거리에 아모런 사무도 갖지 않는다. 처음에 그가 아무렇게나 내여놓았든 바른발이 공교로웁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

text

고전적인 방식의 연극이라면 시공간의 이동이 부자유스럽게 마련이었다. 그런 연극에 비해 소설과 영화는 그런 이동이 자유롭다. 현대의 연극에서는 종전보다는 시공간의 이동을 빈번히 시도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배우의 신체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는 이상 소설가의 붓끝 놀림 하나, 필름과 필름을 이어붙이는 영화 편집 기술만큼 그 표현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서도 기본적으로 소박하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통해 이 오버랩과 몽타주의 부분을 표현하게 되었다.

도쿄의 여학생은 영어 교사 앞에서 땀을 흘리는 유학생 구보에게 손수건을 건넨다. 그 손수건을 눈앞에서 가로채가는 사람이 있으니 그건 현재의 서울에서 설렁탕을 함께 먹고 나온 친구 이상이다. 이 순간 그 둘 사이에 끼어있는 구보 씨는 도쿄 유학생 구보이면서 동시에 현재 서울의 소설가 구보다. 물론 미술감독 여신동과 기술감독 윤민철이 만들어낸 영상 이미지가 탁월한 기술적 효과의 뒷받침을 받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구보 씨의 최신 문장 실험은 우리 연극 무대에서 이렇게 배우의 신체만으로 표현되는 투박한 연극적 표현의 소스가 되곤 했다.


소설과 영화, 그리고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초연 사진 [출처] 두산아트센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소설적이면서 어쩌면 영화적인, 따라서 대단히 비연극적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연극 공연의 무대로 옮기겠다는 내 발상은 퍽이나 엉뚱하고 무모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 장르의 관습에 안주하지 않는 해체와 실험은 그 장르 바깥으로 뛰쳐나가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니까. 나는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연출한 경험을 통해 도리어 연극적인 것이 어떤 것인지, 연극성이란 무엇인지 더 또렷이 인식하게 된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연극의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면서 늘 연극성 안에 문학성을 끌어오기 위해 골몰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문학의 언어는 곧잘 중의적인 해석을 유도하며 문학의 서술은 독자의 자유로운 상상을 보장한다. 반면에 특히 내가 보아온 우리나라의 연극은 단일한 의미와 감정을 증폭시키는 미학을 구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연극 공연에서라면 관객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과 같은 공연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다성성多聲性, poly-phonics;이다. 한 문장, 한 단어, 한 음절이 다채로운 보이스로 연주되는 것, 혹은 그렇게 들리는 것. 이 ‘다성성’이란 말로 예술철학을 논했던 러시아의 미학자 바흐친은 어쩐 일인지 소설에 비해 희곡(연극)의 언어가 단성單聲적이라고 말했지만, 희곡에 쓰인 고정된 언어보다 무대 위의 복잡다단한 기호들이 낳는 현재적이고 유동적인 의미가 중요해진 현대의 연극이라면, 또 다양하고 상대주의적인 가치관을 지닌 현대의 관객들 앞에서 이루어지는 연극이라면 소설보다도 훨씬 더 다성적인 울림을 자아낼 수 있지 않을까?

말, 일러스트나 동영상 이미지, 소리 이미지 등을 총동원해서 장면 장면마다 갖은 방식으로 원작 소설의 텍스트를 무대화하려 했던 우리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의 마지막 장면은 원작의 언어 자체만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했다. 배우 혹은 그날그날의 게스트가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마지막 연재분을 낭독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의 아무런 연극적 장치도 없이 이루어지는 심플한 이 낭독을 들으며 관객들이 이 소설의 마지막 마무리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과 상상을 발동시키기를 바랬다. 이 단성적인 낭독이 관객들로 가닿아서는 다성적인 울림이 되기를 바랬다. 구보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지금까지도 애독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강한 행동이나 강렬한 사건의 전개 대신 이런저런 상념을 펼쳐놓는 가운데 그 사이 사이 독자의 사유가 스며들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는 것.

내가 연출한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원작 소설 속 구보 씨가 걸었던 1930년대 당시 경성(서울)의 풍경과 그런 시대를 살았던 작가 박태원의 삶을 부각시키는 공연이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도와는 달리 이른바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젊은 관객들은 그런 구보 씨의 초상으로부터 불행한 시대를 사는 백수 청년으로서의 자화상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 기성세대가 되지 못한 청춘의 방황과 번민에 공감하고 애달파 하는 것 같았다.

태그 소설가 구보씨의 1일, 박태원, 구보

목록보기

성기웅

성기웅 극작·연출가
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대표
<삼등병> <깃븐우리절믄날> <소설가 구보씨의 1일> <다정도 병인 양하여> 등의 작품을 극작, 연출 하였으며, 2011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 2013년 제4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하였다.
37호   2013-12-05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