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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시어(詩語)를 배우의 신체에서 찾다
[극단적인 연극사(私)] ① 사다리움직임연구소

글 최윤우(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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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M10시, 공연이 끝날 무렵 극장 앞에서 배우 권재원과 김정호를 만나기로 한 시간이다. 다행히도 두 작품의 공연장은 서로 붙어있다. 9시 45분 즈음 끝나는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2>의 배우 김정호를 정보소극장에서 만나, 10시가 조금 넘어 끝날 <굴레방다리의 소극>의 배우 권재원을 픽업하여, 10시 10분쯤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배우들을 향한 마니아 관객들의 팬심이 화려했던 극단, 지금 한창 충무로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고창석, 지난해 유명을 달리한 코미디극의 대가 故 백원길이 함께 활동했던 극단,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뒷이야기를 이제는 간판 원로(?)배우 권재원과 함께 작품에 참여했던 배우 김정호를 통해 들어보기로 했던 계획,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아뿔싸! 오늘이 금요일 저녁이다. 게다가 3월 14일이었다니!

  • 아무 생각 없이 대화를 나누기 좋은 술집을 찾아 들어간 곳마다 자리가 없다. 대략 난감,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이상하게 사람이 없는 조용한 가게를 찾았다.(그때까지는 몰랐다. 왜 사람이 없었는지) 맛난 고기가 불판에 익어가고, 반갑습니다, 소주 한잔 건배하며, 이제 막 극단을 소개하는 지면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시작할 무렵, 조용히 다가오는 목소리가 있다.

  • “저, 오늘 가게 사정이 있어서, 11시에 마감합니다.” 이런! 여차여차 30분을 연장하고 나니, 11시 30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다. 남은 시간은 1시간. 마음이 급해진다. 배우 권재원이 하는 말, “대사 하는 것처럼 얘기를 빨리 해볼게.” 어수선한 과정을 뒤로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 사다리움직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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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대체 ‘피지컬’이라는 게 뭐요?

    일단 교과서적인 소개, 안 할 수 없겠다.(사실 조금만 뒤져봐도 다 나온다. sadarimovementlab.org)
    1999년 <스펙트럼 2001>을 첫 창단공연으로 활동을 시작한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이하 사움연)는 ‘피지컬’이라는 신체언어를 특화시켜 활동하고 있는 극단이다. 피지컬이라…. 지금에야 신체시극, 넌버벌, 피지컬씨어터 등 폭넓은 무대로 낯설지 않게 들리지만, 사움연의 첫 출발 무렵에만 해도 단어 자체가 주는 생경함은 물론, 공연되는 작품마다 그에 대한 해명(?)이 필요할 만큼 쉽게 만나보기 힘든 무대였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 2003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휴먼코메디>, 2007년 세계를 주목하게 했던 <보이첵>, 2008년 초연 후 또 하나의 레퍼토리로써 재공연 중인 <굴레방다리의 소극>(학전블루 소극장, 3.11~3.30) 등 사움연은 극단의 명확한 색깔과 언어를 무기로 현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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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권재원의 말을 빌자면 사움연은 극단 사다리를 전신으로 분가/독립했다. 1988년 어린이극을 중심으로 하는 극단 사다리가 창단됐고, 10년이 지날 무렵, 배우들도 많아지고 극단의 외형도 커진다. 어린이극만으로는 배우들이 가진 무대의 갈급함을 채울 수 없었던 시절, 1998년 사움연이 창단되고, 1년 후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가 생겼다. 아동청소년극은 극단 사다리가 성인극(?)은 사움연이, 유아극은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에서. 이렇게 한 몸에서 파생된 세 개의 극단은 지금도 각각의 특색에 맞는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데 2000년 즈음, 연극계에서는 사다리가 대규모 집단이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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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추구하는 심상은 육하원칙과 기승전결의 이야기 전개로 풀어내는 문학적 심상이 아니라, 텍스트에 내재된 내적 동기를 형태로 확장하고 그 확장된 형태를 운용하여 이루어내는 ‘움직임건축적’ 심상입니다.(중략) 무대 위에 상징적 형태들을 구축하고 그것을 설정된 공간 속에 서로 충돌시킴으로써 돌출된 시적 의미를 관객 스스로 자신의 상상력 속에서 병합할 수 있도록 요구 하는 것입니다. 배우들과 제작 팀이 서로 즉흥연기를 통해 장면을 구성하는 공동창작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 사움연 홈페이지 소개 글

    각설, 사움연이 지금의 피지
    컬을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
    어가게 된 계기는 대표인 임
    도완 연출의 명확한 의도가 있었다. 배우 권재원, 배우 고창석을 필두로 서울예대 98학번, 한예종 04~06학번 등 학교를 갓 졸업한 배우들
    이 만나 활동을 시작한 사움
    연의 첫 과제는 언어를 맞추
    는 일이었다. 임도완 연출로
    부터 움직임 수업이 시작됐다. 그렇게 움직임의 시적, 언어적 호흡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통한 사움연의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

  • 사실이 그렇다. 연출가들이 작품을 갖고 교육하기는 쉽지만, 메소드를 가지고 정기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한 시간에 대한 투자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늘 30여 명의 단원이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되는 이유이자, 질긴 생명력이 있는 배우로 성장하는 근간이 됐다. 배우들 스스로 연출이 되는 극단, 그게 사움연이 지닌 가장 큰 강점이자 색깔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시스템을 갖고 있는 극단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연극무대에서 극단 저마다의 색깔이 있는 작품이 안 나온다고 말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가는 생각하지 않는, 말 그대로의 불편한 진실을 묵과 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 말이다. 적어도 ‘피지컬을 중심으로 한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사움연의 작품을 찾아보라’. 이를 거침없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이 극단이 십 수 년간 견지해온 시스템을 기반으로 켜켜이 쌓인 자산이 있기 때문이다.


  • 사다리움직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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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먼코메디>, <보이첵> 사움연을 각인시키다

  • 사움연은 배우 중심의 극단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배우가 도드라지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대를 종횡무진 내달리는 리듬감과 템포, 속사포가 같은 대사나 표정, 움직임 하나하나가 배우의 매력으로 발현되는 작품의 특성 때문이리라. "어느 날 원길이가 그러더라. 저기 저 사람 오른쪽 손이 굉장히 재밌지 않아? 원길이가 코미디를 잘하는 배우가 된 것은 아주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 세심한 관찰력이 있어서인 것 같다. 재밌는 현상을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거다." 2003년 처음 사움연과의 첫 인터뷰에서 배우 권재원이 밝힌 이 에피소드는 아마도 사움연 배우들 모두에게 적용되던 말이었을 것이다.
    당시 사움연의 대표직을 잠시 맡고 있던 시절, 사움연의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시절! 그때 만났던 이야기를 이렇게 살짝 건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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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템즈 강변-엘리자베스 홀의 추억, 끝나지 않을 커튼콜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늑대로 변한 테일러 로트너가 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각인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한번 각인되면, 평생 그 사람을 잊지 못하게 되는 것, 2005년 우연한 기회에 첫 해외공연을 시작한 이래 2007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기점으로 세계무대를 점령하기 시작한 사움연, 그 각인의 두 번째 무대는 <보이첵>이다.

  • 마니아층은 있지만 대중적이지 않았던 공연, 피지컬 공연이니 해외로 나가보면 어떨까, 생각하던 차에 스위스 무메산츠 극단이 공연을 보고 농담처럼 초청을 하겠다고 했고, 어느 날 저녁 무메산츠 극단 배우들과 연출의 전격 저녁 식사! 스위스 공연이 시작됐고 이후 일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극단이 자력으로 해외를 진출하려면, 에든버러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가게 된 공연, 헤럴드 1면 문화기사로 사움연의 <보이첵>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해외 프로모터들이 줄지어 섰고, 폴란드, 런던 국제마임페스티벌 등 사움연의 활동반경은 한 없이 넓고 깊어졌다. 배우 권재원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 남는 것이 템즈 강변 옆 엘리자베스 홀에서의 공연이었다고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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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제 2의 시작이라며 주목받았던 그때, 금의환향 프로젝트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인 <보이첵>은 극장이 만석이 된 것 자체가 신기한 경험이었다. 피지컬인데…. 배우 권재원은 그때 처음으로 커튼콜을 하면서 무대에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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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움연, 그 치명적인 매력
  • 사다리움직임연구소
      2005년 무렵부터일까. 이제 단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기가 쉽지 않다. 이제 그런 시스템이 아닌 거다, 판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하고 말기에는 이가 빠진 듯 아쉬움이 묻어난다. 대부분 프로젝트 작품별로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시간을 쌓아가기가 힘들어진다.

    • 배우 김정호는 사움연이 비워지지 않고 계속 돌아가는 것 그 자체가 극단의 저력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배우들이 만들고, 그걸 연출이 정리하는 시스템, 그 중심에 권재원 같은 선배 배우가 교통정리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배우 권재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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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움연의 치명적인 매력은 자부심일 수도 있겠다. 이제 또 한 걸음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하는, 매번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숙명을 지닌 극단, 사움연 역시 <휴먼코메디>, <보이첵>에 이은 제 3의 레퍼토리가 만들어져야 할 때. 그리고 그 기점이 이번 작품으로 모아졌다. 어떤 것들은 그 극단이 아니면 쉽게 풀 수 없는 작품이 있다. <굴레방다리의 소극>이 그렇다. 치밀한 계산과 리듬이 동반돼야 작품이 살아난다. 그것은 단기간의 연습량으로는 채워지기 쉽지 않은 호흡이기 때문이다.

    • 15년이 넘은 극단, 과연 사움연이라는 극단은 계속 지금과 같은 힘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한 극단이 10년이 넘어가면 쇠퇴기로 내려간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10년 이상 가는 극단에는 뭐가 있을까, 혹은 이전에 그렇게 왕성하게 활동했던 극단이 무너진 이유는 뭘까? 결국 그 질문의 답은 역시 극단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돌아온다. 지금 어떤 답을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점에 대해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절이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를 만나면서 그 고민은 한층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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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다리움직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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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PM 11시 40분, 약속한 시간을 넘기고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 아직 할 이야기는 꽤 많이 남았는데, 난감하다. 바로 권재원 배우가 제안을 하나 했다. 고궁 호텔에 방이 있다. 거기 가서 마저 남은 이야기를 하자. 오케. 그런데 그 방은? 배우 고창석이 집이 먼 후배들을 위해 한 달간 방을 잡아줬단다. 공연 끝나고 가까운 데서 쉬라고. 역시, 집안에 누구 하나는 잘 되고 봐야 한다!! 대학로를 나와 고궁 호텔로 걸어가는 사이, 방에 도착해서 위에 쓰인 이야기들이 다시 시작됐다. 이 극단이 100년 동안 존속하기를 원한다는 배우 김정호의 말 사이, 배우 권재원이 창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을 전했다.



  • [사진 : 임진원 limjinwon@gmail.com]

    태그 사다리움직임연구소, 보이체크, 권재현,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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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제40호   2014-03-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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