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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한다’의 ‘한다’는 것을 연구한다
[극단적인 연극사(私)] ③ 극단 동

최윤우_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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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기를 한다’의 ‘한다’는 것을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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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 이쯤되면 의심해 볼만도 하다. 뭘 의심하느냐고 반문한다면, 이렇게 말하련다. 행동이 수상하다고! 하하하. 그런데, 그 의심이 이 극단을 알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질문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라. 한국연극계에 보란 듯이 이상행동을 하는 극단,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말고 슬며시 같이 시작해보자.

    극단 동의 대표인 강량원 연출은 보일 듯 말 듯한 프레임 속에 숨겨놓고(사진 속 어딘가를 잘 찾아보면 보인다!) 창단 멤버여서 도망가지 못했던 배우 김문희, 2006년 다시 출발한 극단에 우연히 들어온 이후 지금은 약간 후회(?)하고 있다는(역시 이간질에는 일가견이 있다! 하하) 배우 김석주를 만났다. 청량리 성심병원 근처에 있는 연습실, 헌데 가보지는 못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가서 연습 참관하고 싶다고 했더니, 강량원 연출이 정중하게 답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아, 네….” 보통 인터뷰를 위해 연습을 보겠다고 하면 다들 흔쾌히 오라는데, 역시 수상하다!! 그리하여 연습이 끝난 시간, 얼른 사진 한 장 찍어내고, 대표님은 얼른 들어가시라는 소심한 복수를 감행한 후, 어딘지 확인하지 못했던 연습실 근처, 24시 PC방 카페라는 곳에 자리를 잡고, 이상행동의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 1999년 그리고 2006년, 연습 시간의 변화

    이들의 이상행동은 연습 시간에서부터 발견된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연습 시간은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다. 보통 극단의 연습은 빠르면 오전 11시, 늦어도 1시부터는 시작해서 저녁 6시, 또는 10시까지 이뤄지는 게 대부분이다. 공연이 있는 배우도 있고, 수업이 있는 배우도 있고, 각각의 스케줄에 따라 조정되는데 극단 동의 연습 시간은 변함없이 오후 4시간이다. 아, 극단 동에게도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연습이 진행됐던 적이 있단다. 1999년 러시아에서 건너와 한국에서 연극을 시작했을 때, 홍대에 동 소극장을 개관하고 1년이 조금 넘은 짧은 기간 폐관하는 아픔을 겪었던 2000년까지는 그랬다.



    지금은 손홍규의 단편소설 『투명인간』을 연습 중이다. 이 작품은 올해 9월 예정돼 있는 공연인데, 연습은 작년부터 시작했단다. 연습 시간이 짧아서 그런가? 말하자면 그렇다.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정해진 연습 시간은 각자의 경제활동을 한 이후 모이는 시간이다. 역시 4시간은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 시간보다 더 많은 개인의 연습 시간이 동반된다.




  •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물리적인 연습 시간은 짧지만, 극단 동이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한 데는 그 시간을 먼저 채우는 배우들의 개인 연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오롯이 개인의 능력에만 의존하지는 않았다. 잠깐 멈춤 이후, 2005년 극단 동의 뿌리가 되는 ‘월요연기연구실’이 시작됐고, 그것이 지금 극단의 시스템을 가능케 한 시작점이 되었다.

    ‘행동연기’의 시작, 월요연기연구실

    극단 동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월요연기연구실’이다. 극단의 색깔이자 지향점인 ‘행동연기’가 연구되기 시작한 것도 여기서부터다. 사실, 이보다 앞선 질문의 답도 이곳에서 해결된다. 보통 극단의 작업이 중단돼서 해체되면 다시 모이기 힘들다. 더군다나 신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극단의 경우, 훈련을 함께 했던 배우들이 사라지면 극단의 존립 근거가 흔들린다. 그런데 극단 동은 그러한 관례도 보기 좋게 넘어섰다. 게다가 유지 혹은 약화되는 것을 넘어, 보다 강화된 그들만의 언어로 귀환한다.



  • 지속적인 훈련 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극단이 유지되고 강화되는 가장 큰 힘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월요연기연구실의 훈련 과정이 2007년부터 성과물, 즉 공연으로 이어지면서 극단 동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 독특한 화법, 세밀한 오브제, 낯설고 불편해보이지만 연극적 상상력이 충분했던 그들만의 신체 언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아이러니하게도. 극단 동의 연극 세계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는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이야, 극단 동의 명확한 연극 언어, 이들의 지향하는 연극적 표현의 대상을 인식하게 됐지만, 당시만 해도 극단 동의 작품은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쉽게 다가서지 못했던 ‘행동연기’의 실체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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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간다!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면!

계속, 간다!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면!





  • 극단의 또 다른 공존재, 오브제

    극단 동의 연극을 봤던 관객이라면 한 번쯤 무대를 채우는 오브제에 ‘감각’을 지배당한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들이 연극에는 기능적인 무대 소품이 아닌, 배우들과 합일되어 있는 오브제가 작품을 읽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조금은 다른 이들의 오브제 활용법, 그것은 공존으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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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작품 내에서 배우와 관계하는 공존재로서의 오브제! 그것이 현재성이라는 베우 김문희의 설명처럼, 극단 동의 오브제는 무대를 수식하는, 배우의 움직임을 돕는 도구로서의 그것에서 확장된 그 나름의 연극성을 지닌다. 그러고 보면, 극단 동의 모든 행위는 서로서로 기능하고 있는 관계성으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각각의 연극성이 하나의 몸성을 만들고, 그것이 관객들과 감각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내는 작업. 극단 동이 15년 동안 유지해왔던 뿌리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 이 시대 연극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

    “원래의 이야기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비교할 수 있고, 그 이야기에서 뽑아낸 행위들이 인도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된다”(역시 2012년 3월, 같은 날 했던 말이다!)는 연출가 강량원의 말처럼 극단 동의 대부분의 작품은 고전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때로 그것은 극단의 새로운 고민으로 다가온다. 동시대적인 이슈를 담아내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극단 동의 작품이 시의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편적인 인간의 행위와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는 더 근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순간적으로 담아내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고민한다. 극단은 정녕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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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리를 지켜내는 것이 책임감이다

    1990년대만 해도 극장에 영화감독들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연극무대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얻고, 배우를 캐스팅하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사유를 얻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대중매체에 비해 지극히 낮은 파급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연극무대가 그 가치로서 이 사회에 기여하는 분명한 순기능이었을 터, 하지만 아쉽게도 깊이를 잃고, 사유하는 힘이 약해지면서 반대로 대중매체에서 활용된 이슈를 갖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객과 공감하는 것, 그것이 문화의 발전이고 성장이라고 너무 쉽게 인식해버린 탓이다. 혹은 관객향유 확대! 시민지향 예술! 이라는 허울 좋은 범주 안에서 연극의 사회적 기능을 확대한다는 개념으로 예술의 범위를 축소시켰는지도 모른다. 왜? 거기에 예술가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각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의 사회적 영역을 확대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과제다. 그리고 때로 그 책임은 시간이 쌓일수록 자연스럽게 건네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질문을 품고 앞에 마주앉은 두 배우에게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극단 동 역시 이 지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책임감이 있는 것은 아니냐고.



    극단 동은 아직까지 시민문화 사업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불필요하다거나 반대하기 때문도 아니다. 일회성으로 향유하고 소비되고 끝나는 그 속성이 이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 동은 그들의 활동이 창작물로서 기여되기를 원한다. 그러한 질문과 방법에 대해 이들은 ‘무의식의 제스처’를 근간으로, 깊고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 가려고 하고 있다. 낯선 언어를 계속 만들어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예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뭘까. 기성의 잣대와는 다른 과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바라보는 세계를 열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이처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계속 갖고 가야 한다는 것이 극단 동이 지켜가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집단. 기억하시라. 극단 동의 활발한 움직임의 사유와 정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열매를 맺듯, 뿌리를 지켜내는 것이 책임감이라고 믿는, 이런 극단이 흔들리지 않고 존재하는 한, 연극은 여전히 깊고 넓은 영역을 품고 갈것이다. 그렇게, 지금, 여기! 그렇게 극단 동이 있다.

태그 극단 동, 김문희, 김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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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제42호   2014-04-1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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