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극단
[극단적인 연극사(私)] ⑦ 극단 작은신화

최윤우_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극단
  •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극단

    "연극을 한다는 것은, 황사바람을 막기 위해 사막에 나무를 심는 일이고,
    연극을 한다는 것은, 황량한 사막에 한 초롱의 맑은 물을 붓는 일이다"


    ‘연극을 하는 것은 사막에 한 초롱의 맑은 불을 붓는 일이라!’ 이는 극단 작은신화의 최용훈 대표가 2010년 어느 공연 프로그램에 쓴 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길해연 배우에게 이미 오래전 극단이 출발하면서 지닌 방향성이었다는 설명을 듣게 되면서, 우와! 스무 살 초반, 청년들의 시작과 모토가 참 멋있다, 하는 경외감이 든다. 은유와 상징, 비유와 함축성, 그렇게 확장되는 연극성, 그런 연극의 특징이 바로 이런 소소한 언어 하나에서부터 시작됐으리라.

    올해로 창단 28년, 조금씩 30주년의 새로운 행보를 준비하고 있는 극단 작은신화. 이들의 삶의 방식은 조금은 낯선 형태를 보인다. 이쯤 되면, 보통 한 10년 정도 지나면, 극단은 도드라진 언어를 갖기 마련이다. (아, 대개 그렇다는 말이지, 절대는 아니다!) 하여, 30년 쯤 되면 극단 작은신화는 이런 연극을 하는 극단이지! 하는 것이 만들어질 법 한데, 그게 없다! 글 쓰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참 어렵다! 이런, 불친절한 극단 같으니라고! 뭐 하나 좀 만들지!
    게다가 창단 20주년이 되던 2006년, 최용훈 대표는 극단의 색깔이 명확하지 않음을 다행스럽다고 공헌하며, 그것이 극단의 작업방식이며 근원이라고 덧붙이니, 더 이상의 할 말도 없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래서 반문도 해본다. 이해는 하겠는데, 그럼 어떻게 극단이 유지되느냐고요? 그냥 하는 거지. 뭐. 대답도 참, 그렇다! 하하하. (오랫동안 보고 만났던 극단을 만나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 기억들이 스멀스멀 떠올라 볼멘소리 좀 해봤다!)

    다시, 본연의 자세로! 도대체 극단이 어떻게 유지되고 굴러갑니까? 극단의 창단멤버이자 부대표인 배우 길해연, 2005년부터 극단의 연출부로 들어가 활동하고 있는 연출가 정승현을 만나 새로운 전환점을 기대하고 있는 극단의 현재를 들어보기로 했다. 계획은 좋았다. 한 세대를 살아온 극단, 세대를 시작한 한 분과 그것을 이어가고 있는 한 분을 엮어서 시작과 변화의 지점을 들어보면 좋겠다는 의도 말이다. 다만, 쉬이 풀려가지 않았을 뿐인데, 아마도 그 이유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술자리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건 확언이다! 흐흐흐) 삼선교, 길해연 배우의 작은 레슨 공간에서 그렇게 한 낮 1시, 일곱 번째 극단적인 연극사가 시작됐다.
  •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극단

    당시에는 실험적이었던, 공동창작

    1986년 7월, 연극을 전공한 10개 극회출신 대학생 13명이 모여 창단한 극단 작은신화는 당시 확고부동했던 1인 대표 체제를 버리고 창작극 활성화, 실험단편연극제, 고전 넘나들기 등의 거대한(?) 계획을 단원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창작의 방식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1970년대 한국연극이 성장하게 되는 소극장 운동이 시작되기 이전, 명동을 중심으로 이어졌던 ‘살롱연극’의 역사를 기억했기 때문일까? 극단 작은신화는 창단 공연을 카페순회공연으로 올린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 있는 역사의 재현이 아닌, 공연을 할 극장이 없어서였음을 명확하게 밝힌다.(^^) 그랬다. 극단 작은신화는 신촌 등 대학가 카페를 중심으로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연극계에서 일상화 돼 있는 방식이지만, 전혀 생소했던 ‘공동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것이 바로 1986년 창단작품 <전쟁음?악!>부터다. 그런 작업 방식이 좋아서 극단에 들어오게 된 정승현 연출의 경우가 그랬듯, 창작극을 근간으로 공동창작을 한다, 그것이 극단 작은신화가 없다고 말하는 극단의 명확한 특색이기도 하다.
  •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극단

    106명의 단원, 허수냐? 실수냐?

    공동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며 주목받았던 시절을 지나, 스스로 침체기라고 느꼈던 무렵 길해연 배우는 2003년 김명화 작가의 <돐날>을 하면서 극단이 또 한 번의 전환점을 갖게 됐다고 기억한다. 당시 김명화 작가는 극단의 선배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으면 작품 안주겠다는 협박(?)을 했고, 9명의 선배 배우들이 참여한 이 작품은 공력 있는 많은 배우들이 동원 가능한 작은신화만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30여년 가까운 세월, 지금 작은신화의 공식 단원 수는 106명이다. 이게 가능한 것인가? 보통 하나의 극단 단원이 17명이 넘으면 유지하고 가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부분을 넘어 같은 생각과 언어를 공유하는 데 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틈이 메워지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하고, 그래서 극단의 동일한 방향성을 잃으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106명이라니, 이게 과연 실수인가? 허수인가?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극단

  •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극단

    그렇다. 극단 작은신화는 정말 100명이 넘는 단원들이 있다. 물론 한 곳에 모두가 모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작품을 같이 할 수 있는,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앙상블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단원이 100여명이 상시대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결국 그것이 다시 극단의 저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극단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극단


    역사가 된 프로젝트, 이후 극단의 행보

    얼마 전, 극단 작은신화는 서울문화재단 공연단체 다년간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오랜 시간 크게 드나듦 없이 늘 같은 자리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온 이들, 그렇게 맞이하게 되는 극단의 30년 이후의 행보를 장기적은 계획을 갖고 준비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심사평에도 나와 있듯 극단 작은신화와 함께 늘 따라다니는, 이제 역사가 된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우리연극만들기’다. 1993년 시작된 우리연극만들기는 창작극 활성화를 위한 극단의 특별한 도전이었다. 많은 스타 작가들이 이곳을 통해 데뷔했고, 그들의 행보를 이어가는 발판이 되었다. 작품 선정과 함께 공연까지 올라가니 극작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임에 틀림없다. 이유는 단명하다. 희곡은 공연되지 않으면 사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언제 그것이 생명력을 갖게 될지 알 수 없다. 많은 희곡작가들이 연극무대를 떠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도 이와 같은 프로젝트를 시도했지만 민간 극단 자체적으로 이끌어가기에는 출혈이 너무 크다. 결국 민간에서 남은 공모제는 거의 없는 실정, 그런 상황에서 20년을 이어온 극단 작은신화의 용감무쌍한 고집은 민간이 주도하고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한국 연극의 창작극 발굴 프로젝트라는 역사를 세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연극만들기’를 하고 있는 극단, 이것이 극단 수식이 될 수는 없을 터. 작은신화 역시 극단의 새로운 행보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극단은 작품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길해연 배우의 말처럼, 극단의 대표작이 필요하다는 또 다른 화두가 고민의 지점에 닿아있다.
  •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극단

    만드는 사람들의 책임을 고민할 때

    극단 작은신화의 화두는 극단 존재에 대한 모두의 화두이기도 하다. 이제 막 창단한 극단이던,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극단이던, 극단의 존재이유는 작품 활동에 있기 때문이고,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느냐가 존재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그룹이 단발성으로 만들어내는 공연이 오히려 쉬울 수 있는 것과 반대로 극단의 이름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은 지난하고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버티는 게 힘이라고 하지만, 버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것 역시 오롯이 극단의 몫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흐름이고 맥이다. 당장 그것이 어떤 성과로 이어질 수 없을지언정, 혹은 그런 성급한 성과만 기대하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처럼, 극단의 존재와 가치를 단기간의 무엇으로 재단하는 것은 연극의 맥을 끊어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여기에는 만드는 사람들의 책임과 용기가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지금, 여기 변화하는 자유로움’이라는 모토를 지닌 극단 작은신화는 그렇게 선배 극단으로서, 연극을 만드는 이들, 즉 창작자의 태도에 대한 자성을 같이 한다. 연극의 주제가 어렵고, 언어가 이해가 안 되고, 자극적이지 않으니,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사로잡힌 현상에 대한 질타이기도 하다. 머리 아프지만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고, 전부 이해하지 못했지만 좋았고 멋있었다, 말하는 관객들이 바라보는 ‘연극성’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당부이기도 하다.
    30여년의 세월 동안 한국 연극의 중심에서 울다, 웃고, 싸우다, 술자리에서 지쳐 자면서(이건 최용훈 대표!)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흐름으로 자리하고 있는 그곳이 바로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극단 작은신화의 현재이고 미래다. 그리하여 한 마디만 더 덧붙이자.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극단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극단

    [사진 : 임진원 limjinwon@gmail.com]

태그 극단적인 연극사, 극단 작은신화

목록보기

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제46호   2014-06-19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