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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롭게 슬슬, 묵직하고 흔들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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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서먹하고 낯선 것들이 있다. 가깝지만 왠지 먼 당신 같은? 하하하. 그렇게 극단 배우를 만나러 가는 길에 든 잠깐의 선입견을 벗고, 천천히 하지만 묵직하게 자기 길을 걷는 이들의 조용한 행보를 들여다보리라. <착한사람 조양규>를 시작으로 2007년 창단,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 연혁으로 본다면 젊은 극단,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나이 쫌(?) 되는 묵직한 질감이 엿보이는, 그렇게 고집스럽게 나름의 연극성을 확장하고 있는 극단 코끼리만보가 이번 연재의 주인공이다. 지난주에 막을 내린 <먼 데서 오는 여자>를 보러 가서 김동현 대표에게 인터뷰 제안을 건넸다. 간단하게 술 한 잔 하면서 하는 극단 이야기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술을 못한다는 대표는 창단멤버인 이연규, 백익남 배우를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는 스스로의 대안을 건넨다. 그래, 대표 없이 인터뷰한 적도 있으니, 말씀이 별로 없는 연출님보다는 배우들이 낫겠지? 허허, 이런, 무슨 일이든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역시나 술을 하지 못하는 이연규 배우, <공장> 시파티를 마치고 도착한 백익남 배우를 만난 그날, 늦은 10시 반. 말을 잘 못해 재미없을 거라는 두 배우의 우려를 품에 안고, 맥주 한 잔과 레몬차 한 잔을 맞부딪히며 시작한 시간, 오호라! 기우와는 달리, 결코 짧지 않은, 그리고 약간은 시끌벅적한 조용한 인터뷰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든다.

한가롭게 슬슬, 묵직하고 흔들리지 않게

왠지 십 수 년의 공력을 갖고 있을 법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대학로에 있었던 것 같은 그런 생각을 품게 하는, 참 이상한 느낌을 갖게 하는 곳이 있다. 중견이라고 보기에도 이상하고, 젊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그렇게 묘한 경계에 있는 극단이 바로 코끼리만보다.
올해로 8년째인 극단의 연혁을 보면 타 극단에 비해 작품 편수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발표되는 작품마다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터. 지난 세월의 흔적을 좇아 허구와 실재 사이에 있는 어떤 사실, 그것의 동시성을 연극적 상상력으로 확장하고 있는, 이들이 지닌 특별한 무기(?)가 있다면, 그게 무엇인가를 만나보리라. “극장(연극)이 습관적이고 일상적인 범주를 넘어서는 곳이며 우리의 삶의 다시 만나는 시공간이라고 믿는다”는 극단 코끼리만보의 목표, 거기에는 ‘은유와 상징’으로 대변되는 연극성이 놓여있다.

자기표현에 서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일단, 소문 먼저 확인하고 들어가자. 코끼리만보는 아주, 굉장히, 조용하고 말이 없다, 뭔가 역동적인 행위가 없는 것 같다는 인식이 있다. 대표의 아우라에서 풍겨져 나온 이것은 사실일까, 아닐까. 그렇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그건 단원들의 비슷한 성격, 그렇게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이들의 삶의 방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최윤우
극단이 굉장히 조용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연규
우리 극단은 자기표현이 굉장히 서툰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가. 아이러니한 거죠?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뭔가를 표현하는 건데, 그걸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게.
최윤우
누구의 영향인가요? 대표님 때문인가요? 하하하.
이연규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끼리끼리 모이는 게 있잖아요. 비슷한 사람이 합류가 되는 것 같고, 또 하나는 단원 모집을 두 번 했었는데, 우리는 오디션을 하지 않고, 이야기를 해서 단원을 뽑아요. 그러다 보면 비슷한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사실 저는 그거 반대에요. 하하하
백익남
철저하게 면접을 봐서 뽑는데, 연기를 잘 하는 것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과 같이 갈 수 있나 하는 지점을 더 많이 보는 거죠. 그러다 보니 들어오는 단원들 성향이 비슷한 것 같긴 해요.
이연규
그러니까 그렇게 뽑으면 안 된다고. 하하하. 이런저런 색깔을 가진 사람이 모여야지 다양하게 되지 않겠어요? 우리 모여 있을 때 낯선 사람들이 보면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잖아. 하하하. 제가 극단에서 제일 말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굉장히 재미없습니다.
백익남
근데 그게 또 하나의 재미인 것 같아요. 되게 조용한데, 말이 없는 침묵을 어쩌면 즐기고 있고, 공유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최윤우
너무 포장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연규
맞아요. 그거 포장이다.
백익남
아니, 재미는 없는데, 그게 별게 아니잖아요? 너무 일상이니까. 하하하.
이연규
희한한 건 이들이 다른 데 가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게 우리끼리 모이면 누가 들쑤시지 않으면 서로 이야기를 잘 안 해. 이번에 같이 공연했던 이대연 선배도 그러더라고요. 코끼리만보는 애들이 착실하게 뭘 하기는 하는데, 뭘 물어봐도 말을 잘 안 한다고.
최윤우
잘 모이기 하시나요? 정기적으로.
이연규
특별한 용건이 없으면 잘 만나지도 않아요. (웃음) 극단 사람들끼리 굉장히 오랜 시간을 같이 하다 보면 격이 없어지고, 이야기도 자유롭게 하고 그렇잖아요? 그런 점에서 우리 단원들은 잘 표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하나 믿는 것은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불성실 하지 않게, 묵묵하게, 무대 위에서 최대한 표현하려는 집중, 그리고 그것으로 관객을 설득하려는 태도는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가롭게 슬슬, 묵직하고 흔들리지 않게

‘실종’, 극단의 출발 동력

그럴 수는 있겠다. 극단은 같은 방향을 공유하고 그것에 동의하고, 그럼으로써 하나의 목소리를 전하는 힘을 견지해야 하기에 비슷한 성향의 관계망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백익남 배우의 그럴싸한(?) 수식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사실로 인정하고! 그렇다면, ‘코끼리처럼 묵직하고 느리게, 그러나 어느 순간 속도와 무게를 상상의 힘으로 털고 나는 코끼리처럼’이라는 뜻을 지닌 이 극단은 어떤 연극무대를 꿈꾸며 극단을 만들었을까. 이후 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들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는 현재, 그것은 어떤 형태로 이어오고 있는가. 거기에는 얼마 전에 완성(?)된 ‘실종 3부작’ 혹은 ‘한국근현대사를 기억한다’는 작업의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그것은 극단의 출발 동력과도 맥을 같이 한다.

"코끼리만보의 가장 특징적인 작품은 <착한사람 조양규>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이 작품을 몇 번 공연하면서, 다음 이야기 그리고 다음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김동현 연출이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이야기 3부작을 하고 싶다고 했고, 이후 <말들의 무덤>, 그래서 <먼데서 오는 여자>까지 됐죠. 하지만 우리가 명확하게 이런 게 우리 색깔이야 하는 것은 없어요. 다만 김동현 연출도 제일 좋아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연극성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극장주의,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가지게 되는 연극성, 그런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인 거죠."
- 배우 이연규
이연규
<착한사람 조양규>는 몇몇이 모여서 시작을 했을 때 리서치부터 시작했던 작품이에요. 신문사를 나눠서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실제 사건과 자료를 모아가면서 공동창작을 시작했는데, 그 시간들이 극단까지 가게 했던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때 뭔가 생각난 듯 격하게 박수를 치고 들어오는 백익남 배우. 2005년 <생각나는 사람>이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처음 뜻을 같이 하게 된 이들에게 ‘실종’이라는 주제는 작품의 내적 지향뿐 아니라 외적 형식에도 많은 변화, 그리고 지향이 된다. 그렇게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부재한 사람이 찾아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백익남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주제로 했는데, 사실 막막하잖아요. 소설 찾고, 신문 뒤지고, 그렇게 사라져간 사람들을 찾은 거죠. 그런데, 정말 우연치 않게 발견한 게 ‘홍학 실종 사건’이었어요.
이연규
예전에 신문 보면 부고란 같은 실종자 지면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그게 실렸을 때 1면 톱기사에는 뭐가 실려 있나, 보니까 작은 박스 기사에 ‘홍학’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던 거죠.
백익남
70년대, 그때는 창경원이었던 시절, 거기서 홍학이 사라진 거예요. 우리는 사람의 실종만 찾았는데 그 홍학이 실종된 사건을 접하면서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게 작품에도 큰 영향을 끼쳤죠.
이연규
우리 작품에 그 사건이 들어오면서 이야기를 재구성하게 됐는데, 말하자면, 실종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착한사람 조양규>를 하면서 추구했던 것은 ‘페이크 다큐’라고 해야 하나요? 다큐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잖아요. 이 작품이 극단의 색깔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힘들지만 따라가게 하는 힘을 주었던 것 같아요.
백익남
첫 스타트가 정말 좋았어요. 그때 참여했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남아 극단을 만들었으니까. <착한사람 조양규>는 물론, <말들의 무덤>도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연극을 보신 본들 중에는 그게 연극이야? 하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연규
피터브룩이 그랬잖아요. 누가 이렇게 대각선으로 걸어가고 있고, 그걸 저기서 보고 있는 거, 그게 연극이라고.
"저는 <말들의 무덤>이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이고, 가능성이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 작품이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면, 풀어가는 방식에 대한 관점 때문이지, 이야기가 어렵다는 생각은 안 하거든요. 극단이 추구하는 색깔이 있잖아요. 코끼리만보가 생각하는 것은 현실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극장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 또는 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이 시대에 이 현실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잘 전달하려고 하는 과정이죠. 주제 자체가 무겁다면 무거울 수도 있지만,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어떻게든 표현을 하자는 생각인 거죠."
- 배우 백익남
이연규
예전에 받은 연기 수업 중에 인터뷰를 재현하는 것만큼 어려웠던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의도와 감성을 담는 것, <말들의 무덤>이 그런 것들을 실현했던 것 같아요. 배우들은 연출하고 또 다른 의미에서 그걸 경험하고, 추구하고 있는 것 같아요. <먼데서 오는 여자> 같은 경우는 <말들의 무덤>에서 그것이 조금 더 확대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 더 강화된 드라마의 형식으로 가져왔으니까.

객석이 흔들리지 않게

지속성은 흔들리지 않는 묵직함으로 돌아온다. 극단 코끼리만보가 그리 길지 않은 행보 속에서, 가시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외형적 볼거리가 없음에도, 또는 (이렇게 말해도 될는지) 스펙터클 하지도 특별한 유쾌함을 동반하지 않는 무대에도 불구하고 연극적 상상력과 대중성을 넘나들 수 있다는 평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극단 코끼리만보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늘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한다. 하나는 지나온 역사(사건)에 대한 발견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지금 우리 시대의 현실이다.
적어도 ‘객석이 흔들리지 않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는 극단의 방향이 이들의 걸음을 쉽게 떼어 놓지 못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자국은 더 깊은 흔적으로 파이는 것일 테니.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연극계에 코끼리만보 같은 조금은 낯설고 어색한(?) 집단이 조금 더 괜찮은 모양으로 오랫동안 존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지켜보자. 한국 근현대사를 기억하는 ‘실종 3부작’을 끝낸, 이들의 행보가 또 어떤 시리즈를 갖고 큰 걸음을 뗄 것인가를.

한가롭게 슬슬, 묵직하고 흔들리지 않게

이연규
우리는 작품을 선택할 때 연출, 대표의 생각이 제일 커요. 전적으로 그렇게 이뤄지는 것 같은데, 이게 앞서 얘기했던 구성원의 성향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 극단은 연출이 김동현 대표 밖에 없으니까.
최윤우
명확하게 1인 대표 체제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연규
네. 그렇죠.
백익남
근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연규
우리가 조금 헐렁하다니까요. 하하하.
백익남
조금 더 체계적인 그런 극단이길 원하지.
이연규
그게 안 되는데 원하면 뭐 해. 우리는 조직적이지 않거든요. 그저 자기표현에 서툰 사람들이 공연을 이뤄내려고 노력하는 성실성이 있지만.
백익남
사실 우리 극단도 만나면 정말 재밌어요. 한번 친해지면 굉장히 재밌는 사람들인데.
이연규
재미없어, 뭐가 재밌어….
백익남
재밌어요. 이렇게 만나기도 쉽지 않아. 하하하

익숙하고 오래 알고 있던 극단 같은, 그럼에도 순간순간 낯설고 생소한 듯한, 그렇게 결이 조금은 다른 극단 코끼리만보의 더디지만 깊은 걸음이, 꾸준한 작품으로 새로운 방향을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만나게 되는 연극적 상상력의 무대가 조금 더 많고 다양해지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임진원 limjin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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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제53호   2014-10-02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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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nadu
감사는 어디에 있나요?

2014-11-18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