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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무모함으로,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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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이 창단되는 데 있어 인력의 구심점은 대부분 ‘연출가’다. 그리고 그는 곧 창단되는 극단의 대표로 자리하고, 그를 중심으로 뜻을 함께 하는 배우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최근 공동창작, 공동 구성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제작 형태가 바뀌면서 극단의 조직(?)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연극에서 극단이라는 공동체는 연출, 그리고 배우들을 중심으로 틀을 갖고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2005년 ‘기존의 배우 중심의 극단에서 탈피해, 작가, 연출, 스태프를 중심으로, 창작극만을 제작, 공연하겠다’는 불타를 의지를 갖고 창단한 극단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극단 명작옥수수밭이다.
극작가 차근호, 최원종이 의기투합하고 창단한 극단에 극작가이자 배우로 활동하던 선욱현 작가가 함께 하면서, 극작가 중심으로 이뤄진 나름 독특한 극단이 대학로에 깃발을 올린다. ‘명작이 옥수수처럼 풍성하게 열리는 밭’이라는 원대한 꿈, 연극하면서 ‘벤츠’ 한번 사보자!! 꿈꾸던 이들의 행보는 우여곡절 질곡의 세월을 지나, 올해로 10년을 향해왔다.
여전히 작가집단(?), 아니 아직 정체가 모호한, 그래도 왠지 그들의 속내와 꿍꿍이가 궁금해지는 이들, 어쩌면 극단의 명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기로(?)에 있는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오늘, 그들의 색깔 찾기가 시작됐다.

돈키호테의 무모함으로,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대학로 1번 출구로 들어와 동숭아트센터를 지나면, 희곡을 쓰고 싶어 하는 예비 작가들을 위한 아주 소박하고 정감 있는 공간이 하나 있다. 바로 ‘극작가들의 수다방’이라는 수식을 달고 있는 ‘라푸푸서원’이다. 희곡을 쓰는 일을 사랑하게끔 만들고 싶다는 목적을 갖고 선욱현, 차근호, 최원종이 모여 2006년 둥지를 튼 이곳에서는 그동안 많은 희곡작가들이 배출되어 작품을 발표해온 말 그대로 극작가들의 공간이다.
‘새로운 희곡을 읽고, 새로운 희곡을 쓰고, 그래서 새롭게 희곡을 사랑하게 되는 정거장’이 되길 꿈꾸는 공간, 그렇다 바로 이곳이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근거지다. 극단을 이끌고 있는 대표이자 연출, 작가인 최원종과 이시원 작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이들을 만나야 하는 인터뷰의 최적의 장소! 그렇게 라푸푸서원에서 이들이 걸어온 지난 10년의 과정, 그리고 다시 새로운 꿈을 꾸면서 펼쳐지고 있는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2의 ‘밭’을 일구는 시기

앞서 이야기 한 대로 극단은 명작이 옥수수처럼 풍성한 밭을 꿈꿨다. 그것도 잠시, 작가주의로, 명작코미디로, 대중적 코미디로 등등 만들어 놓은 밭에 무엇을 심어야 하는지, 시기마다 뿌리는 씨를 달리하며 갈팡질팡, 결국 도드라진 수확한번 내지 못했던 시기를 겪었다. 창단 초기 차근호 작가와 최원종 작가의 원대한 꿈은 2006년 창단 공연 <굿킬>이 망하면서 구체적인 실현 없이 비전만 세우고 있었고,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이시원 작가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한마디 툭 내뱉는다. “제발 말만 하지 좀 말고 실천 좀 하라!”

최원종
차근호 선배가 나를 꼬실 때 그랬다. 연극을 하면 벤츠를 살 수 있다고.
최윤우
정말? 그걸 믿었나?
최원종
당시 극작가 차근호가 굉장히 잘 나갔던 때였다. 극작가 하면 저렇게 돈 많이 버는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연극계에서 벤츠를 사는 첫 모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극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첫 작품이 <굿킬>이었는데, 폭삭 망했다. 하하하. 그리고 나서 둘이 뼈저리게 반성을 하면서 작가로써의 역량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회의를 5년간 했다.
이시원
매일 둘이 회의만 했다. 다음엔 뭘 할까. 어떤 작품을 쓸까. 너무 답답했다. 남자 둘이 무슨 회의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대표, 부대표, 회의 해야지! 둘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이 극단에는 연출이 없으니 최원종 작가에게 연출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렇게 시작된 최원종 작가의 연출행보는 2010년 <에이로빅 보이즈>가 연출가 인큐베이팅 작품으로 선정이 되면서 두각을 나타나게 된다. 말하자면 개인에게는 작가에서 극단 대표로서의 새로운 길로, 극단 명작옥수수밭은 이전과는 또 다른 방향을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원종
<에어로빅 보이즈>로 본격적인 연출을 하게 됐는데, 그게 연출가 인큐베이팅에 선정이 됐다. 차근호 선배도 연출이 맞는 거 같다고 하더라. 본인 작품의 연출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니, 개인적으로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극단은 나의 작, 연출 작품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최윤우
거의 관여하시지 않는 것 같다.
이시원
어떤 때는 알아서 하라고 화도 내시고~ 그 전엔 그렇게 회의도 좋아하던 분이.
최원종
2010년에 동시에 두 작품이 올라갔다. <두더지의 태양>, 그리고 <안녕, 피투성이 벌레들아>라는. 그런데 두 작품 다 관객이 보면서 힘들어하더라. 왜 나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고 불행한 느낌이 들까?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연극을 해 나가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연출을 시작하게 됐고, 그러면서 극단을 운영할 계획을 갖기 시작했다.
이시원
창단 이후 <굿킬>, <살인교습> 같은 작품을 하고 난 후에 2~3년 동안 침체기였다. 내부 활동이 거의 없었다. 그 때 <에어로빅 보이즈>를 하면서 어? 명작옥수수밭이 또 다른 코미디를 하기 시작하네? 라는 시선이 생긴 것 같았다. 이후 <헤비메탈 걸스>, <좋은하루> 등의 작품을 했지만 여전히 극단의 색깔이 분명하게 정립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최원종
그렇게 10년을 우여곡절이 많게 이어지다 보니, 이 극단에서 다른 게 하고 싶어졌다. 내 인생과 극단과 연극이 함께 가는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했던 연극과 조금 다른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4~5년 전부터는 최원종 작, 연출로 극단의 작품을 해오고 있는데, 아직도 극단의 색깔이 모호한 지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 전에 해오던 것이 일맥상통하게 한길로 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방향으로 확 전환한 것도 아니었다. 최근 3년 정도 우리는 코미디에 강하다. 명작 코미디를 해보자고 주력해봤는데, 그것이 과연 우리가 연극으로 하고 싶은 것인가? 라는 고민을 또 하게 되더라. 그렇게 한 10년쯤 된 지금, 우리는 다시 색깔 찾기를 하고 있다. 작가주의적인 작품, 혹은 연출만 보이는 작품이 아닌, 다른 게 뭐가 있지 않을까? 현재는 새롭게 단원을 꾸리고, 제2의 명작옥수수밭을 일궈가려하는 과도기다."
- 극작가 이시원

돈키호테의 무모함으로,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돈키호테 남극빙하>, 새로운 언어가 되다

극단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 그것은 작년에 단원들이 생기면서, 그리고 올해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그 고민의 배경에는 이들이 영화사에서 일했던 몇 년 간의 경험이 큰 계기로 작용했다. 많은 이들의 생존을 걸고 진행되는 영화제작 과정을 보면서 오히려 극단에 필요한 것은 극단의 언어라는 것을 다시 절감하게 된 것, 이후 질문은 다시 본질로 돌아왔다.
동료이자 부부이기도 한 이들은 서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니?”,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니? 결국 이 질문의 답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극단으로 모였고, 삶과 극단, 연극을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연극제작 방식, 그런 삶의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다큐멘터리 연극 <돈키호테 남극빙하>로 풀어진다.

극단이란 무엇인가? 배우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갖고 시작한 극단 내 스터디로부터 출발한 연극 <돈키호테 남극빙하>는 연출가로서,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극단 명작옥수수밭 단원들이 처음으로 무대에 섰던 작품. 극단의 향후의 방향을 그려가게 하는 특별한 작품이기도 하다.

최원종
<돈키호테 남극빙하>는 단원들과 함께 스터디를 하면서 만든 작품이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로 만든 다큐멘터리 연극인데,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배우들이 굉장히 많은 상처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이시원
연극을 하면서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거다. 혼자는 어려운 것들 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니 활발함이 생기더라. 다른 의미가 생기니까. 그렇게 작품이 완성됐다. 생각보다 성과가 좋았다. 외부에서 어떤 효과가 좋았다기보다 배우들이 자기를 더 사랑하게 되고, 우리도 작가와 연출로서 극단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연극을 한다는 게 바로 이런 작업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넓히고 확장하고 싶어졌다.
최원종
오늘도 학교 공연을 하고 왔는데, 굉장히 좋았던 게 우리 배우들은 무대에서 박수를 받아본 적도 없고, 항상 연기 못한다고 혼나고 단역으로 오랫동안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친구들이었는데, 아, 나를 보여도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 정말 큰 수확이다.
이시원
처음엔 빈손으로 왔다가도 공연이 끝나고 나면 선배들이 뭔가를 이만큼씩 사온다. 처음에 자신들이 꾸었던 꿈, 그 열정을 이 젊은 배우들에게서 보게 됐다고.
최원종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보니 극작의 구성은 들어가지만 배우들, 저마다의 삶 그대로가 드러난다. 그것을 아주 진정성 있게 보여주고 있는 거다. 연기적인 발전 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성숙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이시원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공연 중간에 질문들을 하더라.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다. 나는 지금 꿈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배우들도 그냥 정말 솔직하게 말한다. 나도 고등학교 때 꿈이 없었는데, 그냥 대학로에서 전단을 보고 면접을 보러갔는데 어쩌다가 연극을 하게 됐다. 그렇게 그냥 갑자기 찾아오는 것 같다.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니까, 선생님들에게도 꾸밈없이 보이고, 아 이들도 함께 공감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이 바로 우리 극단에서, 연극을 통해서 계속 찾아가고 싶은 과정이 됐다.
최원종
<돈키호테 남극빙하>는 명작옥수수밭의 새로운 언어를 찾는 시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경험이 단원들에게도 그렇지만 선배 배우, 관객들에게도 큰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 같고, 그것을 통해서 이시원 작가나 나 역시 밝아지는 계기가 된것 같다. 열심히 해도 빚만 생기고, 또 다른 작품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연극을 했는데, 이 작품은 인생을 풍요롭게 한 작품이었다.
이시원
어차피 돈은 못 버니까 의미를 찾기 위해서 연극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이렇게 함께 찾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실마리를 풀어간 듯한 느낌이랄까.
최윤우
명작옥수수밭과 ‘돈키호테 남극빙하’라는 극단이 병기해서 쓰는 것 같다.
최원종
10년을 지나면서 이제 돈키호테 남극빙하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써왔다. 농담 삼아 ‘야, 우리는 남극에 가서 그 경험을 통해서 연극을 만드는 순간 해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단원들의 목표가 됐다. 연극계에서 아무도 가지 않았던 남극을 가서 그 경험을 토대로 연극을 만드는 극단이 되는 거.
이시원
돈키호테가 무모하니까. 실험적이고 호기심 많고, 도전정신이 강하지만 무모하기도 한 그 정신으로 남극까지 가보자는 생각이다. 명작옥수수밭이 없었으면 돈키호테 남극빙하가 그냥 생기진 않았을 거다. 일련의 과정이 있으니까.
최윤우
최종적으로 극단명이 바뀔 수도 있는 건가?
이시원
현재까지는 명작옥수수밭이 위에 있고 돈키호테 남극빙하가 있는데, 나중에는 뭐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돈키호테의 무모함으로,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그게 부족해? 스터디 하자!

극단 명작옥수수밭에는 이들만의 다른 특별한 모임이 여러 개 있다. 바로 스터디다. <돈키호테 남극빙하>가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발굴된 작품이었기 때문일까. 13명의 배우들은 각자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참여가능 한(실제로 대부분의 배우들이 모든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영어, 권투, 기타연주, 다큐멘터리 영화, 캘리그라피, 인문학 책 읽기, 그리고 토론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물론 이 프로그램들은 배우들 각자의 자발적인 요구로부터 하나하나 시작했다. 너네는 극단이냐? 대안학교냐? 이들의 삶의 방식을 신기하듯 바라보는 지인들이 농담은 차치하더라도, 과연 지금 한국 연극계의 극단 시스템에서 일주일 내내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삶을 공유하는 이 과정이 가능할까?

이시원
최원종 작가가 대표가 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단원들이 생긴 다음부터 버릇이 생겼다. 단원들이 뭔가 부족하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래? 그럼, 우리 스터디 하자!, 고 하는 거다.
최원종
명작옥수수밭이 10년 째 되는 올해 마치 신생극단처럼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다. 우리가 왜 연극을 하고 있을까, 우린 어떻게 연극을 해야 할까. 그 고민을 갖고 우리 산티아고 순례길 가자. 그 곳을 걸으면서 누군가는 연극 아니어도 멋진 인생이 있다, 그러면 안 해도 되고, 끝까지 남자 그러면 남고, 그런 시간을 가져보자.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만나는 외국인들과 친구가 되는 것들도 중요할 거다. 그러니 우리는 영어를 잘 해야 한다. 그렇게 영어 스터디가 생겼다.
이시원
산티아고를 가는 목적으로 영어를 하니까 단원들이 정말 좋아하고, 더 열심히 하더라. 하하하.
최원종
6개월째 단원들이랑 함께 하고 있는 복싱도 마찬가지다. 우린 배우로서 체력도 길러야 되고, 연기도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 하는 고민으로부터, 그래도 배운데 싸인 좀 멋지게 하면 좋지 않을까? 그게 캘리그라피를 하게 된 계기다.
이시원
기타도 배우는데, 아주 기초부터 시작하는 게 연기랑 같더라. 연습한 만큼 늘어가는 것도 연극과 아주 많이 닮았다.
최종원
인문학 스터디도 있다. 요새 재밌게 읽은 책이 뭐가 있냐고 물어보면 아직도 군대 있을 때 읽었던 책을 말한다. 그래서 인문학 서적을 100권 읽기도 도전하고 있다. 처음엔 부담스러워 하고, 토론도 어려워했는데, 그 과정을 통해 지금 우리 단원들은 각자의 삶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공유하고 있다.
이시원
인성적으로 함께 성장하는 걸 도와주고 싶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고, 그래서 우리 모두 괜찮은 작가, 괜찮은 연출, 괜찮은 배우가 되고 싶은 거다. 그 기준을 우리끼리 만들어 가고 있는 거다.
최윤우
정말 학교 같다. 학교 졸업하고 다 다른 데 가면 어떡하나?
최원종
그게 우리 모토다. 하하하
이시원
빨리 졸업하고 좋은 배우가 돼서 다른 데 가서, 극단 생각나면 후원도 해주고!
"스터디를 일주일에 하나씩 혹은 매일 하는 것도 있는데, 그 과정 속에는 이런 질문들이 있다. 연극은 왜 하고 있지? 극단은 왜 있지? 나는 무얼 하고 있지? 배우들은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연극을 왜 하고 싶고, 왜 배우가 되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극단이 앞으로 하게 될 어떤 작품들과 연결돼 있다. 결국 이 과정은 극단 명작옥수수밭이 만들어가는 메소드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대표 최원종

극단 명작옥수수밭/돈기호테 남극빙하. 아직은 한국 연극계 내에서 극단의 위치와 성격이 불분명한 극단이기는 하다. 작가주의적인 시선을 기대했던 이들이게는 최근의 행보가 성에 차지 않고, 명작 코미디를 지향한다고 보기에도 여전히 굵은 선이 없다. 그 과정 속에서 극단 스스로 갈급했던 것은 자기언어다. 그러한 갈망은 2013년 새로 꾸려진 단원들과 함께, 이전과는 많이 다른 삶의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물론 아직은 그 삶의 방식이 어떤 형태의 무대로 표현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의 지점은 이들의 꿈이 명확해졌다는 데 있다. 연극을, 극단을, 연기를 어떤 작품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삶의 공동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내년부터 극단 명작옥수수밭은 캄보디아에 학교를 짓는 활동을 시작한단다. 학교를 짓는 과정이 연극이 되고, 그것이 다시 사회로 환원되는, 그런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인 초대권대신, 그들에게 연필 한다스, 공책 등의 물품을 후원받아 학교에 기증하는 방법도 생각 중이다. 이들의 꿈이 현실로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극단의 형태, 함께 삶을 공유하고, 그것이 삶의 방식이 되는 건강한 흐름이 이들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대감 때문이다.

돈키호테의 무모함으로,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사진: 임진원 limjinwon@gmail.com]

태그 돈키호테의 무모함으로,극단 명작옥수수밭,최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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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제55호   2014-11-0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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