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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로 지켜낸 창작기지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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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만나왔던 총 19개의 극단 중 가장 많은 세월을 품고 있는 극단 연우무대가 이번 호의 주인공이다. 대개 창단 10년에서 15년 사이(간혹 조금 더 젊은)에 있는 극단을 중심으로 그들의 생활과 생존방식, 그리고 현재의 고민을 함께 나누었던 것에 비견해보면, 곧 40주년을 맞이할 극단 연우무대의 등장은 조금 낯설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쯤, 극단 연우무대를 만나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집단의 태생과 변화, 그리고 현재의 고민으로 읽을 수 있는 말 그대로의 극단史다.
1970년대 후반 대학로의 생성시기부터 1990년대의 부흥기(?)를 지나, 2000년대 후반 제작 시스템의 변화 속 극단의 행보,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변화된 한국연극 극단의 역사가 극단 연우무대의 세월과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작업이라는 연극을 통해 예술적 담론, 삶의 본질을 고민하는 우리시대의 극단들은 저마다의 방식과 태도로 그것을 실현해간다. 어떤 경우에는 일정정도의 성과로, 어떤 때는 서 있을 힘도 없을 만큼 핍진해지지만, 그럴수록 더없이 분명해지고, 갈급해지는 것이 바로 창작활동이다.
자연스럽게 이어져왔던 시스템을 버리고, 새로운 판을 열었던 10여 년 전, 그리고 그것이 인정받고 익숙해지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지나, 이전과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듯 보이는 극단 연우무대. 이들에게 가장 주요했던 지점 역시 창작활동의 지속성이었고, 그것을 담보할 수 있는 이들만의 선택과 방식이 필요했었다.

극단 연우무대

창단 40주년을 목전에 둔 극단 연우무대는 한국연극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준점이 된다. 창작극 산실로서 가장 중요했던 거점공간이기도 하고, 이곳을 통해 분파된 수많은 극단들의 모태이기도 하며, 최근 한참 이슈였던 사람과 사람, 단체와 단체, 작품과 작품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인적 네트워크’의 근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국연극사를 수놓을 만한 주옥같은 작품들 역시 극단 연우무대를 통해 소개됐다. <한씨연대기>, <칠수와 만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날 보러 와요>, <김치국씨 환장하다>, <이(爾)>, <오! 당신이 잠든 사이>, <해무> 등 연극을 좋아했다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보았거나 들어봤을 작품들이 바로 극단 연우무대를 통해 초연되었고, 사랑받았다. 그랬다. 1977년 당시 번역극 위주로 채워지던 연극계에 들어서며 ‘창작극만 공연하겠다’는 선언을 했던 극단 연우무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국내 ‘창작극 전성시대’를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이어왔다.

물론 이 지면에서 다시금 극단 연우무대의 역사를 조망할 생각은 없다.(『연우무대 30년사』에 자세히 나와 있다!!) 시간을 앞당겨 2005년부터 현재까지, 즉 유인수 대표체제로 바뀌면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 극단 연우무대의 최근 10년,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음이라. 오랫동안 부단히도 극단의 운영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유인수 대표 그리고 1997년부터 연우무대와 함께 무대를 만들어왔던 안경모 연출가를 극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후 4시, 술 잔 없는 인터뷰의 어색함(?)을 잠시 뒤로하고, 극단의 변화와 현재의 모습을 담아가기 시작했다.

문 닫을 것인가, 변화할 것인가
새로운 연우무대의 시작

극단 연우무대는 30주년을 목전에 둔 2005년 배우이자 프로듀서였던 유인수가 대표로 취임하며 이전과는 또 다른 극단의 운영방식을 갖게 된다. 말하자면 단원제로 운영되던 극단 시스템을 탈피한, 작품별 프로듀서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물론 그 방식은 당시 몇몇 기획제작사의 시장논리와는 다른 형태였다. 유인수 대표는 그러한 변화가 연우무대의 생존을 위한 불가항력이었다고 피력한다. 하지만, 30여년을 동인제로 운영하던 극단의 변화, 그것도 첫 작품이 뮤지컬(<오! 당신이 잠든 사이>)이었으니, 극단 연우무대의 변화를 바라본 많은 이들은 기대보다 우려 섞인 시각을 먼저 보냈다.

유인수
말하자면 프로듀서 시스템인데, 시장에서 말하는 프로듀서 시스템은 아닌, 그렇다고 극단 시스템도 아닌 독특한 방식이었다. 극단 시스템으로 가려면 게릴라식의 소규모 작품으로 자기색깔을 가진 작품만 하는 게 맞는데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최윤우
현재 운영방식은 어떠한가?
유인수
작품에 따라서 오디션을 하거나 연극의 경우는 기존 배우들 그리고 같이 참여했던 스태프나 창작주체에 따라서 유동성 있게 변하기도 한다.
안경모
결국엔 같은 상황인 것 같은데, 다른 극단의 경우도 단원만으로는 작품을 해결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랬을 때 단원이라는 기준이 뭘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거다. 결국은 공연을 같이 하게 되는 사람이 단원 아닌가? 매우 냉정한 것 같지만 가장 정답일 수도 있는 거다. 이름만 걸어놓고, 일 년 내내 한 편의 공연도 못한다면 과연 단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지금 대학로에 많은 극단이 그런 상황이기도 한 것 같다.
최윤우
극단 환경의 변화는 중극장이 생기고, 오디션제가 생기고, 극단의 자체공연이 사라지던 2009년 이후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현재 많은 극단들이 그런 지점에서 극단의 운영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유인수
어떤 분들은 아주 냉정하게, 극단 시스템 역시 서로 필요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말씀도 하시더라. 그런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극단은 연출이 혹은 극단의 대표가 작품이 필요한 거다. 사람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배우들의 경우에도 이 작품이 필요해서 있는 것뿐이다. 작품은 인간적이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게 서로가 좋으면 상관없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런 방식으로 해결 될 수 없는 지점이 생긴다. 그래서 좀 더 솔직한 방식, 합리적인 방식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최윤우
극단 연우무대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쉽지 않은 변화였을 것 같다.
유인수
그랬다. 처음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하하. “네가 뭔데, 극단 시스템으로 잘 있는데 바꾸려고 하느냐”고. 그래서 당시 극단이 한번 떠들썩해지기도 했었다. 사실 2004년에는 극단을 없애자고 말하기도 했었다. 가장 화려할 때 그만하자고….
안경모
연우무대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그런 고민들을 했던 것 같다. 이미 어지간한 성과들은 극단 내에서 많이 만들어 냈었고, 더 나은 것들을 계속 선보여야 하는 부담 속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을 반복하는 건 무리였던 거다. 당시 연우무대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고, 위기의식을 많이 느꼈을 때였다. 결국 연우무대를 다시 새롭게 탈바꿈시킬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시기가 오게 된 것 같다.

극단 연우무대는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많은 작품을 히트시키며 승승장구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후 극단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각자의 극단을 꾸려 분화하기 시작하는 시기를 맞았다. 극단 학전, 극단 한양레퍼토리 씨어터, 극단 차이무, 극단 아리랑, 극단 놀땅, 극단 이루, 극단 우인 등 현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많은 극단들이 연우무대를 모태로 한다. 하나의 극단에서 이렇게 많은 극단들이 파생된 것 역시 극단 연우무대의 저력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극단의 힘이 분산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05년 무렵까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던 연우무대가 유인수 대표를 중심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유인수 대표는 이렇게 전한다. “연우무대가 잘되길 바라지, 유지되는 걸 바라지는 않았다!”

극단 연우무대

시스템의 변화, 창작과정의 즐거움을 얻다

극단 연우무대의 변화, 그 중에서도 주요하게 눈여겨 볼 대목은 창작과정의 변화다. 무엇보다 하나의 작품을 발표하기까지의 과정에 굉장히 오랜 시간을 투자하게 됐다는 데 있다. 지원의 시기에 맞출 필요도 없었고, 작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단원도 없으니, 창작진들이 충분한 완성도를 갖고 작품을 출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극단 연우무대의 시작을 알린 <오! 당신이 잠든 사이>도 그랬고, 무대에서 호평 받으며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던 <해무> 역시 그런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들이었다.

안경모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콘텐츠 하나를 2~3년간 고민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작업과정이었다. 보통의 경우 속전속결로 공연하나 올려볼까, 하는 마인드라면 연우무대는 이건 2년짜리다, 이건 3년짜리다, 그러니 이건 이런 방향으로 가보자, 이렇게 해보자 하는 등등의 오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괜히 MT도 갔다 오고…. 그건 참 즐거운 경험이었다.
유인수
계속 그렇게 작업해왔다. 결과만 보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오! 당신이 잠든 사이>도 3년간 대본작업, 음악작업, 편곡도 몇 번씩 했다. <여신님이 여기 계셔>도 2년간의 교정을 거쳤다. <극적인 하룻밤>도 마찬가지였다. 19세 이상 관람가였기 때문에 초연하고 재공연하고 수정하고 세 번째 공연에서 관객과 호흡하면서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작품을 창작자의 시선뿐 아니라 프로듀서로의 객관적인 시각들, 작품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좀 더 오래 갈 수 있도록 하는 작업들을 하려고 하고 있는 거다.
최윤우
그 과정 속에서 창작자와의 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
유인수
결국 손발이 맞는 사람들과 작업을 하게 된다. 작업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 만날 때도 있고 가끔 만나서 애기하기도 한다. 모든 것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고 대본 회의보다는 줄거리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얘기를 빠르게 진행하는 편이다. 어떤 인물을 더 이야기할지 어떤 이야기를 정리할지에 대한 대략적인 큰 그림들을 이야기할 때도 있다.

오랜 작업과정을 거친 연우무대의 작품들은 그만큼의 성과를 얻어낸다. 많은 관객들이 찾는 유명 작품이 됐고, 오픈 런 공연으로 이어지면서 극단 연우무대가 제작사로서 성공했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반면, 상업적인 성격의 작품들로 치우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다. 특히 2000년 중후반 상업적 성격을 가진 오픈 런 공연들이 많아지면서, 극단 연우무대의 장기 레퍼토리 공연 역시 그와 같은 선상으로 흐른다는 의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극단 연우무대의 일련의 과정 속에는 연극이 관객과 만나는 접점,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 즉 대중성과 예술성에 대한 고민이 다시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작품의 예술성은 완성도가 좋으면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뮤지컬 <레미제라블>이나 <워 홀스>를 보면서 예술적으로 뒤떨어졌다는 생각은 안 하지 않는가? 이미 대중적으로 “이 작품은 예술적인 만족도가 있어”라는 걸로 자리매김 되는 거다. 근데 그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시간을 우리는 고민하지 않는 거다. 대중적이다 그러면 마치 예술적이지 않은 것으로 이분화 된 시선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개인예술을 할 거라면 연극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연극은 대중 속에서 숨 쉬어야 하는데 그 자체가 대중성을 띄지 않는 건 이상한 거다. 대중성이 어떤 의도의 대중성인가가 좀 달라지겠지만, 결국은 관객들에게 예술적 만족도, 예술을 향유했다는 만족도를 갖게 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대부분 상업적인 공연에서의 만족도는 공연에 대한 만족도가 크지는 않다. 깔깔깔 웃고는 그냥 즐거웠어. 웃었어. 정도의 소비성 만족도일 뿐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 연출가 안경모

극단 연우무대

"좋은 작품이 관객하고 연결될 수 있는 작업을 연우무대가 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게 <산티아고 가는 길>, <극적인 하룻밤>, <인디아 블로그> 같은 작품들이다. 이런 공연들이 어느 정도 장기 레퍼토리로 가고 있고, 콘텐츠로서의 힘들도 가지고 있는 공연들이 되도록 만들었는데, 그게 창작자들에게 수익으로 돌아가서 차기작을 만들 수 있는 구조가 되고, 그럼으로써 또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루>, <일곱집매> 같은 작품들은 연극제에 나가는 작품들이고, <인디아 블로그>나 <극적인 하룻밤>같은 경우는 연극제 나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평단에서의 의견도 분분했다. 많은 분들이 연극도 아니고 뭣도 아니라고 했지만 그게 관객들에게는 좀 더 빨리 자리를 잡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독특함? 공간의 확장? 연극의 확장성까지 얘기하기도 한다. 연우무대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기획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좋은 창작자를 만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 연우무대 대표 유인수

여전히 대학로의 창작기지로!

극단 연우무대의 출발은 동등한 사람과 사람의 네트워크로 시작했다. 즉 1인 대표/연출 체제의 도제식 운영방식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작용하는 극단 연우무대의 근간이다. 장기 레퍼토리 공연이 제작되고, 그를 통해 또 다른 창작자들의 판을 열고, 공연예술시장을 확장시킬 수 있는, 그럼으로써 관객과의 만남을 보다 적극적으로 가져가고자 노력하는 하나의 축과 연우소극장을 중심으로 협업, 지원하며 젊은 극단들의 창작무대를 간접 응원하는 연우무대의 또 한 축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창작베이스로 출발했던 극단 연우무대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묵직함을 갖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최윤우
연우무대는 1인 대표 체제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게 다른 극단 또는 창작자들과 함께 극단 연우무대의 작품이 올라가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대개 40여년 정도 된 극단의 경우 대표의 활동이 없어지면 극단 역시 이름만 존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새로운 방식으로의 전환이 연우무대를 늙지 않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안경모
네트워크 베이스가 훨씬 강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기존의 희곡을 가지고와서 작업을 하는 극단이라면 좀 다를 것 같은데 창작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갈 수 밖에 없는 정체성을 이미 연우무대의 출발부터 가졌기 때문이다. 1인이 계속해서 창작의 수작을 토해낸다는 게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랬었을 때는 혼자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네트워크들을 계속해서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거고, 연우무대가 가지고 있는 지금의 긍정성도 그 네트워크베이스에 대한 것들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유인수
기존의 극단들과 좀 다를 거다. 우리가 하는 방식하고도 좀 다르고, 프로덕션은 아니지만 프로덕션에 더 가까운 시선? 지금은 좋게 봐줘서 그렇지, 처음에는 주변에서도 그렇고 연우 선배들도 안 좋게 봤었으니까. 하하하. 다른 극단 사람들을 만나면 농담처럼 연우만 바라보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현재의 극단 시스템은 워크숍이나 지원금 받는 조그만 공연들 외에는 활동을 확장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품을 짠! 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부분에서는 이미 극단 시스템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체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고 있는 방식만이 정답이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결국 관객의 확대다. 초연과 재연에는 작품의 수정과정에 집중을 하지만 본격적으로는 관객의 확대에 집중을 해야 한다.
안경모
연우는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는 거고 이 길을 잘 걸어가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콘텐츠가 있었을 때 프로듀서에게 제안을 하는 역할 혹은 제가 직접 작업을 하는 방식이다. 서로에 대해 의무적으로 부채를 갖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연우무대가 앞으로 더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건 잘 모르겠다. 다른 극단의 한계가 보이고 물론 긍정성도 보이고, 그러니까 둘 다 공존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환경이 좀 바뀐다면, 환경이 더 좋아진다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사진·영상: 임진원 limjinwon@gmail.com]

태그 극단적인 연극사,극단 연우무대,최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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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우

최윤우 연극평론가. 본지 편집장
월간 [한국연극]에서 편집장, (사)한국소극장협회 정책실장으로 근무했으며 공연예술 관련 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parodia@naver.com
제61호   2015-02-0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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