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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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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상반기 기획연재에서는 '관객'을 주제로 이야기판을 벌여보고자 합니다. 연극 창작자들은 물론, 기획자들과 실제 관객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함께 모여 이 시대 연극과 관객에 대한 생각을 나눕니다. 이번 호 총론을 시작으로 앞으로 총 7회의 좌담이 기획되어 있으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연재와 더불어 더 많은 연극인들과 관객들이 이야기의 주인이 되어 보다 풍성하고 현실적인 논의의 장을 만들어갈 수 있길 바라 봅니다.

1.

연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시대마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물음이다. 여기서 ‘연극’은 개별 작품이기도 하고, 공공영역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사회 제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연극이라는 공적인 예술 장치가 응당 취해야할 태도와 나아가야할 방향을, 연극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지금, 여기 연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즉-답하자면 이렇다. 관객을 생각하라. 우리의 연극은 - 무언가를 하기에 앞서 - 관객을 떠올려야 한다. 혹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관객에 대한 생각이 되어야 한다. 희곡을 쓰고, 연기를 하고, 장면을 연출하며, 무대를 꾸미고, 작품을 기획하는 일. 통칭하여 ‘연극하기’라 하자. ‘여기’에는 관객을 살피며, 그들을 분석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는가. 과연 그러한가.
관객을 생각해야 한다는 선언과 관객이 중요하다는 명제 그리고 그간 관객은 연구되지 않았다는 반성은 언제나 ‘동어반복’의 그룹에 속하는 말(語)들이었다. 연극하기에 있어서 언제나 창작자들 앞에는 관객들이 ‘주어져 있기에’, 그 중요함을 당연함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혹여 관객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 또한 필요성과 절대성을 혼동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원금 시대가 고착되면서, 우리의 무의식은 관객이 주는 푼돈보다 정부에서 주는 목돈을 더 우선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더욱 신기한 점은 이러하다. 연극계에 포스트 드라마 연극의 바람이 불면서 급변한 것이 ‘관객’임에도, 창작자들의 전통적인 관객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와 관객의 저항은 맞물려 있고, 예술적 실험과 관객의 지지 또한 상호작용을 이루건만, 창작자 본인의 감각은 믿으며 관객의 감각은 경시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인정하자. 우리는 관객을, '잘' 모른다. 관객에 대한 ‘요건’조차도, 작품을 완성시켜주는 무대-미학적 도구로서의 ‘필요’거나 혹은 작업을 지속시켜주기 위한 예술-경제적 수단으로서의 ‘중요’가, 전부는 아니었을까. (물론 관객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다) 무엇으로 자리매김하든, 결론적으로 관객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 예술보다 앞서는 존재임에도 기꺼이 연극을 만나기 위해 극장을 찾아온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그러한 이들에게 우리는 어떠한 태도와 예의를 갖추어 왔는가.
‘관객을 생각하라’는 선언은 어쩌면 연극이라는 제도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억압되어 있는 존재를 들여다보자는 윤리적 취지를 갖고 있다. 관객의 인간다움을 밝히고, 그들의 존엄을 살피며, 그들의 관심사를 들여다보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며, 어쩌면 그것이 ‘연극하기’의 전부이리라. 뜬금없이 관객의 인격(人格)을 내세우며, 예술을 협박하는 게 아니다. 예술가의 인권을 운운하며, 관객의 권리에 소홀해왔던 우리의 모습을 성찰해보자는 말이다.
반성하자. 우리는 관객을, '늘' 몰랐다. 단언컨대, 이태껏 대학로가 가장 ‘못’ 하거나, ‘안’ 한 부분이 있다면, 관객에 대한 ‘앎’이 아닐까. 여기서의 ‘앎’은 관객의 정의와 개념, 역할과 기능에서부터, 실체로서 현현(顯現)해있는 관객에 대한 이해와 납득이다. 그러하기에 수용미학에서부터 문화인류학까지, 클래식에서 하위문화까지 관객에 대한 ‘배움’은 마땅할 것이다. 한편으로, 관객을 알게 되면 작품은 분명 세속화되고 대중화될 것이라는 성급한 연관은 대체 어디서 기인한 걸까. 역사적으로 뛰어난 예술가는 동시에 훌륭한 심리학자가 아니었나.
관객에 대한 앎은 경영적 관점에서 마케팅 조사나, 혹은 경제적 차원에서 자원낭비를 막기 위한 연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에 이상(理想)이나 허상(虛想)으로 존재하는 ‘관객’들을 지우고, 구체적인 상을 공유함으로써, 연극의 좌표와 방향을 가늠해보자는 것이다. 그들이 대학로에 머무는 시간에만 시늉하던 섬김의 제스처를 지양하고, 그들의 일상이나 상상 속에서 - 혹은 SNS라는 가상공간에서 - 존재하는 연극을 주목하고 경청하자는 제안이다.
그런즉슨, 관객을 생각하는 일은 한편으로 문화특구라는 명목 아래 자폐적으로 변한 ‘대학로’ 시스템의 환상을 걷어내는 일과 연결된다. 비전이니 대책이니 했지만, 솔직한 말로 ‘살 궁리’다. 연극인으로 겨우 존재하는 처세술이나, 자기만 살아남는 '생존술'이 아니다. 대중이라는 공공성 혹은 관객이라는 확장성을 함께 논의하고 연구할 때, 한국연극의 유효기간은 조금씩 늘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연극의 존재의미를, 관객으로부터 찾는 일은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부여된 지상-과제가 된다.

관객을 생각하라

2.

프랑스의 연극학자 파트리스 파비스(Patrice Pavis)는 그의 저작인 「관객에 관한 현재적 연구」를 통해 유럽 연극관객들의 변화양상을 역사적 지표(index)로 제시하였다. 그에 의하면, 50년대 연극관객은 여전히 수동적인 대상으로서 계몽을 바라고 있었으나, 60년대는 스스로 재현을 거부하며 보다 참여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70년대는 문화 소비자로서 상징 기호들을 열심히 해독하였으며, 80년대에는 문화상대주의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어떤 관객층은 일반 관중을 대체할 만큼의 준-전문가로 등극했다고 한다. 90년대의 관객은 탈정치화된 관객으로서 분석가이기보단 공연의 상호작용자거나 극장의 저녁 방문객으로 존재하였고, 2000년대 관객은 고립된 소비자이거나 혹은 연극 공동체에서 빠져나온 불안정한 개인으로서 연극을 자기 경험에 편입시키려 했음을 밝히고 있다.
위의 연구처럼 한국의 관객들을 사회-미학적으로 세세하게 규명하기엔 우리는 아직 미흡하다. 허나 일단은 주어진 자료를 바탕으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관객들을 상상해볼 수는 있을 터. 「소극장 연극관객 성향에 관한 연구」(이진언, 2014)와 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연극실태조사를 응용, 우리 관객의 모습을 특정인의 형태로 구체화해보았다.
서울에 사는 28살 김연희(가명) 씨는 대표적인 대학로의 관객이다. 남녀성비 3:7의 가름에서 7에 속하는 여성이며, 직장에서 월평균 200만 원을 버는 전문직 종사자이다. 학생 때부터 대학로 공연을 즐겼고, 직장이 생겨서도 마찬가지다. 김연희 씨는 지하철 혜화역을 이용하여 극장을 찾으며, 한 달에 1편정도 연극을 관람한다. 토요일에 주로 대학로를 찾지만 파격적인 할인이 가해질 경우, 가끔 주중에도 연극을 보러간다. 그녀는 인터넷 검색(공연후기나 홍보자료)을 통해 공연 정보를 얻고, 주변의 지인들(친구, 후배)에게 같이 보러갈 것을 권유한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티켓을 예매하는데, 여기서 할인은 필수다. 가끔 정상가격으로 구매할 때 비싸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억울함도 느낀다. 제일 즐겨 찾는 극장은 대학로의 소극장. 연극전용 공공극장에서도 가끔 공연을 보는데, 새롭다고 느껴지는 공연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대학로를 방문하지만, 이곳에 극장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궁금해 하지 않는다.
김연희 씨가 대학로 연극을 보는 이유는 소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과 흥분이 있고, 처음부터 이를 무리 없이 즐겨왔기 때문이다. 이 연극을 보면 일상에서 벗어나는 기분전환을 맛볼 수 있고 스트레스 또한 해소된다. 한편으로 어떤 연극은 삶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하지만 연극 관람이 자기 분야나 일에 도움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연극관람을 통해 친구관계가 깊어지거나 혹은 넓어지는 것 또한 아니다. 무엇보다 연극을 보는 것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혹은 타인을 의식하면서 본 적은 없다.
김연희 씨가 좋아하는 연극은 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담고 있다. 물론, 인생에 대한 성찰을 주는 내용도 좋아한다. 최근에는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연극에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녀가 연극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재미. 박진감 있고 코믹한 내용의 연극을 가장 선호한다. 최근에는 자신의 추리력으로 연극의 내용을 미리 감지하는 것이 관람의 포인트가 되었다. 입소문과 수상경력으로 인해 예술성이 확실히 보장된 작품은 꼭 챙겨보며, 제목에서 감지되는 소재와 내용에 흥미를 가지고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다. 그녀는 확실히 학생 때 보던 것과는 다르게 대학로의 공연들이 더욱 다양해졌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그러나 작품과 장르가 더 다양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관람할 때마다 작품들이 매번 비슷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부족한 작품의 예술성과 완성도에 실망하기도 한다.

관객을 생각하라

3.

가상의 관객 김연희 씨는 현재 대학로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표본적 인물이다. 실상 우리의 예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 하지만 그 맥락을 살피고, 현상을 들여다보면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그녀는 2010년대 뮤지컬이 빠져나간 빈곤한 자리의 연극을 여전히 지지하는 관객이며, 무한 경쟁과 착취의 ‘아프니까 청춘’ 시대를 살아감에도 극장을 찾아준 충실한 연극 애호가이다. 한편으로, 인터넷 미디어와 멀티채널의 TV, 그리고 질도 좋은(?) 할리우드 및 한국 영화들이 득세하는 시절에도 꼬박 연극을 기대하며 찾아온 고마운 손님이다. 결국, 지금의 관객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예술 시장(market)이 협소한 한국에서 파이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면,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예술증진의 방법론은 이러하리라. 김연희 씨에게 감동적인 울림을 주며, 이로써 실망보다는 희망을 갖게 하고, 더 나아가 그녀의 삶을 행복하고 의미 있게 바꿔주는 것. 결국, 관객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얼마나 '깊이 있게' 이어나갈 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것이다.
이야기를 정리하자. 우리의 연극사(史)는 대체로 관객들에게 소홀했다. 무심하거나 혹은 무엄하거나. 이것이 하나의 대응 사조였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이러한 ‘소외’를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방식-SNS, 블로그, 동호회 등의 형태로-을 찾아냈다. 연극하는 자들이 ‘발언권’을 독점하던 시절에도 혹은 관객-참여형 연극이 분별없이 늘어나는 지금에도 억지춘향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지원금 조성을 간접적으로 담당하는 주체로서, 혹은 연극인들을 먹여 살리는 후원자로서 기능하면서, 별말과 별탈없이 공생(共生)에 기여해왔던 셈이다.
요구하자. 우리는 관객에 대해 알고 싶다. 연극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어떠한 관객의 말들이 떠다니는지 전혀 모르고, 관객들의 빅데이터가 어떻게 구축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때 맞춰 나오는 관객조사를 뒤적이고, 매 시즌 벌어지는 좌담회 참석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국립 관객 연구소라도 설립해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관객에 대한 논의가, 관객과의 대화가, 관객을 위한 학교(學校)가 꾸준히 확대되고 지속되어야 하리라. 연극계의 최대 이슈는 바로 ‘관객’ 이(어야 한)다.

4.

관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하였다.
「소극장 연극 관객 성향연구」, 이진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석사학위논문, 2014
「2013 대학로 연극 실태조사 보고서」 , 서울문화재단, 2013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지각방식과 관객의 역할』, 김형기, 푸른사상, 2014
「관객에 관한 현재적 연구」, 파트리스 파비스, 『연극평론』 통권 65호, 2012
「포스트드라마 연극에서 관객의 위치」, 이진아, 『한국연극학』 제42호, 2011
「최초의 관객, 최후의 연극」, 안치운, 『연극평론』 통권 40호, 2006

태그 관객을 생각하자,정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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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세

정진세 극단 문(Theatre Moon) 극작가.
연극원에서 연극이론과 서사창작을 공부했으며, 현재는 주로 홍대 앞에서 공연제작 및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jinse.j
제63호   2015-03-05   덧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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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익
매번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2015-03-06댓글쓰기 댓글삭제

정진세
쉽게 잘읽히는 글은 아닐텐데, 재밌게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관객의 중요성은 해가 갈수록 절실히 공감합니다. 다만, 이를 이롭게 풀어낼 방법을 찾지 못해 그저 제안하는 취지에서 쓴 글입니다!

2015-03-06댓글쓰기 댓글삭제

임인자
기대됩니다!

2015-03-06댓글쓰기 댓글삭제

정진세
네네! 앞으로 대학로의 창작자들과 관객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들이 마련되어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관객시대!

2015-03-07댓글쓰기 댓글삭제

다솔
잘 읽었습니다 :-) 관객으로 항상 연극을 보며 궁금한게 많았는데 만날 기회가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네요!

2015-03-15댓글쓰기 댓글삭제

정진세
네^^ 곧 웹진에서 창작자들이 생각하는 '관객' 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다음달에는 관객들을 직접 만나게 됩니다. 궁금한것은 언제든 질문해주세요^^ 창작자들은 관객들이 올려주신 솔직하고도 소중한 공연평을 꼼꼼히 챙겨읽는다고 합니다!

2015-03-17댓글쓰기 댓글삭제

채이서
저도 김연희 씨 같은 평범한 관객입니다.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3-18댓글쓰기 댓글삭제

정진세
당연히 가져야할 관심이지요! 서로 잘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발전적 관계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기사도 잘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5-03-20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