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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관객이 완성한다] 첫 번째 좌담

일시: 2015년 3월 2일 오후 2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2층 아카데미룸
사회: 박해성
참석: 류주연, 민준호, 성기웅, 윤한솔
기록 및 편집: 김슬기

박해성

박해성
안녕하세요. 오늘 이 자리는 웹진 [연극in] 에서 준비한 기획 연재의 첫 번째 좌담입니다. 이번 기획의 주제는 ‘관객’인데요. 데뷔 10년을 전후하는 특정 세대의 연출님들을 한 자리에 모시고, 그간 작업하면서 만났던 관객 혹은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는 관객에 대한 얘기들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저 역시 동료 창작자이면서 동시에 관객으로서 애정을 가지고 연출님들의 작업을 지켜봐왔는데요. 서로 조금씩 다른 작업들을 추구하고 계시니 각자의 관객론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간단하게 최근 작업들을 중심으로 소개를 좀 드릴게요. 현재 연극 <유도소년>을 공연하고 있는 ‘공연배달서비스간다’(이하 간다)의 대표이자 뮤지컬 <바람직한 청소년>을 연출하신, 배우이자 연출 겸 작가인 민준호 연출님 오셨고요. <다정도 병인 양하여>, <가모메> 등의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난, 작가이자 연출,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이하 12언어) 대표 성기웅 연출님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1984>, <174517> 등 작품마다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극단 그린피그의 윤한솔 연출님입니다. 마지막으로 <별무리>, <괴물> 등의 작품을 통해 배우와 관객을 가장 내밀하게 연결시키는 묵직한 연출을 보여주셨던, 극단 산수유의 류주연 연출님 자리하셨습니다.

나는 관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해성
사실 관객이라는 말 자체가 무언가 뜬구름 잡는 듯 보일 수도 있는데요. 각자 기억에 남는 관객들이 있는지 소소한 경험들을 위주로 얘기를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관객으로서 인상 깊었던 공연을 먼저 얘기해보자면 지난해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했던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무대에 “전화기의 벨, 진동이 터지는 순간 공연을 종료합니다.”라고 쓰여 있었고, 저는 실제로 공연이 종료되었던 바로 그날의 관객이었거든요. 윤한솔 연출님 얘기 시작해주시면 어떨까요.
윤한솔
네, 역시나 예상했던 얘기가 나오네요. (웃음) 공연이 완성되는 지점이 관객과 만나는 바로 그 시간과 장소라고 본다면, 저는 그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편이에요. 그 공연으로 말하자면, 관객이 이 작품을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다,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배우들이 일렬로 무릎 꿇고 앉아 공연하는데 당신들도 이런 태도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거였죠. 그 문구도 의도적으로 궁서체로 썼는데 그만큼 진지한 거였고요. 이런 식으로 저는 매 작품마다 어떻게 하면 가장 그 작품에 적절한 선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저는 관객이 보편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걸 믿지 않거든요. 사실 보편성이라는 건 전체가 되고 싶은 다수의 폭력이잖아요. 그러니 100명의 관객이 모두 재밌게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파시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옳고 사회적으로 결함이 없는 그런 대화의 미장센이란 게 가능한지 의심스럽고, 한편으로는 공연을 한다는 행위 자체는 당연히 당파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랬을 때 관객이 공연을 어떻게 만나야할지 고민하는 거죠.

민준호

민준호
사실 관객에 대해 얘기하려면 먼저 내가 연극을 왜 하는지, 그리고 극단을 만들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저희 극단 이름이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잖아요. 저는 솔직한 마음으로, 공연이 시장적으로 맞지 않는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배달할 수 있는 공연만 만들었지요. 규모도 크지 않았고요. 그러다가 상업적으로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극단을 책임지고 있으니 대사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배우들을 위해 움직임만 하던 것도 내려놓게 되었죠. 사실 그게 그냥 삶이었어요. 관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가끔 <거울공주 평강 이야기>처럼 혁명적인 작품이 또 나올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요. 그때 공연을 만들면서는 배우들이 몸으로 다 때우는, 이런 공연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개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오직 드라마만 보여야 한다면 무대는 필요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3D가 아닌 2D로 공연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나온 작품이 <그 자식 사랑했네>라는 공연이었죠. 그런데 무엇보다 저는 글쟁이가 아니니까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해요. 아마도 관객들이 간다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그건 대단한 스토리에 감동받아서가 아니라 평범하지만 솔직해서, 그리고 그것만이 갖는 어떤 식의 연극성,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류주연
저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뿐이지 관객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볼 기회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희곡을 쓰지는 않으니까, 좋은 작품을 만나면 이걸 잘 입체화하고 싶고, 그러려면 우선 배우하고 만나야 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내가 생각한 대로 배우들이 잘해내면 어떤 쾌감이 있죠. 그리고 그게 관객과 만나야 하는 거고요. 근데 모든 연출들이 다 그렇겠지만 나는 나의 관점과 느낌대로 보는 거잖아요. 그게 일종의 연출가의 해석일 텐데 사실은 배우 10명이 모이면 그들도 각자 다른 해석을 하거든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들도 나처럼 보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죠. 배우들을 통해서 관객들이 내가 느낀 것처럼 작품을 보도록 만들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그걸 강요하지는 않는 것,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전에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라는 작품을 했는데 그때 저한테는 그 작품이 비극이었거든요? 그런데 관객 중 절반 정도는 작품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돌아갔어요. 사실 그건 내가 뭘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관객들 저마다의 삶이 있기 때문인 거니까 당연히 강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박해성
네, 이제 성기웅 연출님 얘기를 들어볼까요. 12언어 같은 경우는 뭔가 극단의 작품에 최적화된 관객군을 적극적으로 찾아낸 경우가 아닌가 싶어요. 취향으로서 유머나 정서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에 있어 어떤 식으로든 날 선 작품들을 해오시고 실제로도 그에 맞는 관객들을 만나온 것 같은데요.
성기웅
우선 저는 제가 관객으로서 공연을 봤던 기억들이 좀 떠오르는데요.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봤던 <에쿠우스> 혹은 대학 때 봤던 <서툰 사람들> 같은 공연들을 돌이켜보면 지금과는 연극을 보는 태도 자체가 굉장히 달랐다는 느낌이 듭니다. 당시에 저에게 연극을 본다는 것은 뭔가 불편하고 불온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었고, 창작자 입장에서도 관객들이 그런 마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뭐랄까, 관객들이 서비스를 받는 입장으로 존재한다고 할까요. 물론 안전사고에 대비하거나 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요.
좀 전에 제 공연의 관객들이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정물화>라는 공연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공연에는 그동안 만났던 관객과는 조금 다른 분들이 찾아오셨어요. 소위 말하는 회전문 관객을 처음 만나봤는데, 아무래도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뮤지컬 혹은 다른 상업극들을 보는 일부 관객들에게 소문이 났던 것 같아요. 사실 저도 극단 대표로서 제작을 하는 입장에서 이런 분들을 만족시키고 싶고 그래서 재공연까지 하게 된 건데요. 그런데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공연을 보러 가서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컴플레인이 올라오더라고요. 창작자들이 작품을 만들면서 관객이 만족할만한 서비스까지 제공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류주연
맞아요. 예전에 연극을 보면 확실히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처음 본 연극은 <바쁘다 바뻐>라는 작품이었는데, 당시에 그 작품은 거의 언제나 공연되고 있던 상업극이었고, 저는 연극을 보고 나와서 굉장히 감동했던 기억이 있어요. 우리가 흔히 연극의 3요소에 관객이 들어간다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그때의 관극 경험은 내가 어떤 공모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줬거든요. 연출과 배우가 이렇게 만들었으니 이 공연을 이렇게 봐라,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리고 함께 본 관객들끼리도 극장을 나서면서 뭔가 작당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요.

지금 관객과 만나는 방식은 어떠한가?

박해성
공연과 관객이 만나는 것, 관객이 공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액션을 취하거나 혹은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일종의 수행이 될 수 있다면, 지금 얘기해주신 것들로부터 이미 다양한 방식의 수행 관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고, 극장을 나선 후 트위터나 페북에 글을 남기는 것, 혹은 연뮤갤에 영업을 뛴다든가 하는 것까지도 모두 관객들의 수행성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다보니 지금으로선 객석이 거의 무한대라 말해도 좋을 만큼 넓어졌고, 관객들도 그저 공연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입장에서 충돌과 논란을 일으키는 존재로 변해가고 있는 듯도 싶고요. 그럼 이제부터는 연출님들이 이상적으로 상정하는 관객들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실제로 극장에서 만나는 관객들은 어떠한지 같이 얘기해볼까요.

윤한솔

윤한솔
사실 저는 공연할 때 전화기를 끄라고 한 적도 없고 심지어는 공연 중에 통화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왜 통화하면 안 되는지 설명할 수 있는 분? 그런데 그 공연은 작품의 성격상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고요. 무엇보다도 저는 표를 산다는 것으로 관객이란 지위를 득한다는 것에 불만이 많습니다. 그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돈을 냈다고 해서 아무나 와서 볼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관객은 누구인지, 관객의 지위를 어떻게 얻어야 하는 건지, 그런 물음을 항상 던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결국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어떤 입장인지에 대한 자문으로 이어지는데요. 돈을 받고 뭔가를 한다는 건 내가 그걸 팔고 있다는 거죠. 그럼 난 뭘 팔고 있지? 과연 난 무언가를 팔고 싶긴 한 건가?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박해성
한국 사회가 변화하면서 문화를 단순히 소비재로 취급해버리는 현상이 생겨난 게 사실이에요. 내가 내 돈 내고 주말에 웃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하는 게 관객의 입장일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사회 현상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윤한솔
현재 대학로 기획 시스템을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고 봐요. 어떤 식의 정해진 매뉴얼대로 일을 진행하다 보니 단체의 성향이나 작품의 색깔을 고려한 기획은 나올 수가 없죠. 그렇다고 극단이 자체 기획자를 갖자니 상황이 너무 열악하고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관객과 만나는 방식에 대한 고민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인터파크에 공연 등록해놓으면 누군가는 표를 사서 보러 오니 그 시스템 외에 다른 걸 생각하기 어려워지는 거죠.
성기웅
사실 그런 매뉴얼을 토대로 일하는 기획사들과 파트너십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전문적인 노하우를 가지고 펀딩을 하고 유통을 하는 시스템이 있고, 그러니 관객을 만나는 방식 자체도 그에 편입되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극단 배우들이 자체적으로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나요?
류주연
저는 극단을 만들고 나서 외부 기획자를 썼던 경험이 딱 한 번 있는데요. 그 외엔 모두 단원들이 해나가고 있어요. 사실 저 같은 경우는 백수광부에 있으면서 자체 기획을 하는 과정에 훈련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게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경험해보니 기획사와 같이 하면 그만큼 관객을 더 만나고 수익도 늘긴 하는데, 정확히 그만큼 기획 쪽에 사례를 지불해야 해서 결국 똑같아지더라고요.
성기웅
그러니 본업이 아닌 걸 배우들에게 시키기보다는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맞지 않나 싶은 거예요. 이제 기획이라는 것도 예전처럼 영수증에 풀 붙이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잖아요. 투자대비 효율이 똑같다면 굳이 자체적으로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자체 기획을 한다고 해서 자기만의 것을 가지기도 어려운 시대인 것 같고요. 어차피 연극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럴 바엔 관객을 더 많이 만나는 게 낫다는 거죠.
류주연
저 같은 경우는 사실 극단 자체로는 아직 어린 편에 들어서 외부 기획사랑 커뮤니케이션하기보다는 단원들과 긴밀해지는 게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작품을 공유한다는 느낌, 작품의 주인으로서 더 가까워진다는 인식, 그런 걸 원하는 건데 사실 무얼 선택하느냐의 문제겠죠.
민준호
저도 극단을 창단하고 초반 3년 동안은 혼자 대표, 기획, 연출을 다했는데 그 이후에는 파트너로서 기획자를 만났어요. 그런데 저는 이 기획자랑 모든 얘기를 다 하거든요. 그냥 그 일을 넘겨버린 게 아니라 매일 싸우면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걸 찾는 거예요. 나도 기획을 해봤지만 프로덕션을 꾸려가는 게 작품 만드는 것과 분리될 수 없거든요. 연출가가 이런 작품을 창작하도록 유도하고 제시할 수 있는 기획자, 그런 내부 기획자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우리한테는 그게 유효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10주년 기획을 하면서 기획자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솔직히 한 달 정도 매진시키는 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세 달 매진되는 건 기획자가 애쓴 덕분이죠. 그런데 그런 기획자와 같이 일을 해도 여전히 관객을 만나는 지점에서는 고민해야 할 것들이 생겨요. 사실 남자 배우 보러 오는 관객들을 접하면 왜 공연을 이렇게만 보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건 배우들한테도 마찬가지죠. 이 배우가 정말 진지하게 우리와 함께 하고 싶은 건지, 인기 때문에 머물러 있는 건지 따져볼 수밖에 없게 돼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내부적으로도 우리와 맞는 식구들이 남는 거고, 관객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런 우리를 알아봐주고 거기에 맞는 분들이 계속 남아서 유지되는 거죠.

관객과 만나는 이상적인 방식은 무엇인가?

박해성
결국 모두가 나의 맥락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객을 바라는 건 마찬가지겠죠. 그런데 따지고 보면 어떤 식의 보편성이라는 게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손발이 오그라드는 빤한 것들에 관객들이 다 뒤집어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요. 그런 맥락에서는 가끔 이게 정치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움직이는 게 본질적으로는 같을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바라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류주연

류주연
저는 참여적인, 어떻게 보면 계몽적일 수도 있을 만큼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에 관객을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걸 자제하면서 어떻게 예술과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죠. 얼마 전 <의적 지로키치>라는 작품을 봤는데, 류잔지 연출이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발언하기 위해 코미디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파가 득세하는 지금 일본 분위기로 봤을 때는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는 얘기들인데 코미디 자체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방식이 된 것 같았죠. 어떻게 하면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형식이 생긴 경우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젊었을 때는 저도 그렇게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솔직한 만남이라는 것 자체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연출을 하다 보면, 배우들이 내가 느끼는 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그들이 내가 느끼지 못했던 걸 보여줄 때가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어떤 솔직함으로 만나는 순간, 관객들도 그 순간을 알아볼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윤한솔
그러니까 말하자면 관객의 양보다는 질의 문제라고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사실 저는 지금 제 공연에 오는 관객 숫자에 매우 행복하거든요. 공연에 따라 몇 명 정도 관객이 들어야 할지 달라지죠.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 공연은 배우 한 명이 딱 자기 앞에 있는 관객 서너 명만 보면서 공연하는 구조였어요. <두뇌수술>은 의자를 둘러서 공연 공간을 만들고 나니 46석이 나왔죠. 저는 이런 식으로, 최근에 했던 공연들에서 적정 수의 관객들과 아름답게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극장 공연이 아니라, 이를테면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한다, 그러면 그 객석 규모에 맞는 공연, 그러니까 더 많은 대중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야 하겠죠. 5월에는 거리극을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이 경우 아마도 전혀 다른 관객들을 만나게 되겠죠? 사실 극장에 오는 관객들도 불특정 다수인 건 마찬가지지만 극장에 들어오는 순간 특정해지는 전환이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거리극 관객들은 계속 불특정한 상태로 존재할 테니 무언가 형식을 부여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겠죠.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저는 이 공연을 만나려는 관객을 적극적으로 찾고 싶어요.
성기웅
저는 두 분과는 생각이 다른데요. 더 많은 관객들이 연극을 봐줬으면 좋겠어요. 출연 배우 수보다 관객이 더 적으면 어떡하나, 라는 공포를 가지고 매일 공연해야 하는 게 좀 그렇잖아요. 관객 수입이 생활 문제랑 직결되기도 하니 현실적으로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아주 근본적으로는 연극의 지위가 더 올라갔으면 해요. 특히나 뭔가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의미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극을 한다고 쳐봐요. 그런데 전부 합쳐 1,000명이 보고 간다면 과연 그 연극이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을까 싶은 거죠. 결국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연을 보여주는 게 선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번은 <삼등병>이라는 작품으로 군부대 순회공연을 다닌 적이 있는데, 사실 이게 군인들 얘기이다 보니 군부대에서 인기가 있을 리 없잖아요. 그런데도 식당, 교회, 불당 같은 데에서 공연하면서 새로운 공연성을 발견하기도 했거니와, 다른 한편으로는 내 연극에 맞을 만한 관객을 불러온다는 게 결국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우리 극단의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고 그들의 어떤 지점과 우리 공연이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결국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을 더 많이 만나봐야 그 중에서 우리 관객들이 찾아지는 거고, 그들 중 일부가 남아서 그 규모가 조금씩 커져 가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민준호
사실 저는 지금의 연극 관객들이 진짜로 연극을 재밌게 느낄까 생각해요. 영화도 10편 보면 그중 9편은 재미없지 않나요? 그런데 모두가 재밌는 것만 만들려고 하잖아요. 다양한 걸 시도하는 게 아니라요. 이미 연극의 많은 것들을 영화나 TV에 빼앗겼는데, 그렇다면 무대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저는 배달하고 찾아가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공연이라는 걸 웬만해선 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사실 극단 창단 10주년 기획은 돈을 포기했으니까 할 수 있었던 건데요(웃음). 일단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고 우리가 몸으로 때워서 책임지자, 이런 식의 생각이었던 거죠. 그러려면 내가 재밌어야 하는데, 나조차도 재미없으면서 예술이라는 기준을 맞춰보겠다는 생각은 이미 버린 지 오래에요. 공연을 왜 안 보느냐, 사실 관객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나마 뮤지컬이 살아남는 건 무대에서만 할 수 있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아무리 단순한 연애 얘기를 하더라도 연극성, 무대에서만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한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나는 어떻게 관객을 만나고 싶은가?

박해성
그러면 결국 연출님들은 어떤 방식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은 건가요? 윤한솔 연출님이 이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인간극장 효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윤한솔
‘인간극장 효과’라는 말로 얘기하고 싶었던 건 이런 거예요.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것에 공감한다고 착각을 한다는 거죠. 하지만 나는 아침 일곱 시에 연탄배달을 하진 않는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죠. 그런데 뭐랄까, 내가 이 세상의 아픔을 함께 한다는 것, 사회 구성원으로서 나의 책임을 다한다는 것을, 공연에서까지 그런 식의 감정팔이로 얘기할 필요는 없잖아요. 민준호 연출이 아까 얘기했지만 마찬가지로 TV한테 연극이 빼앗긴 걸 하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공연을 본다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일탈이고 저는 그런 맥락에서 관객을 만나고 싶어요.

성기웅

성기웅
저는 가끔, 사람들은 왜 연극만 보면 이렇게 겸손해질까, 생각해요. 국어시간에 공부하듯 이 작품의 주제가 뭔지 질문하거든요. 워낙 재미가 없어서 공부해야만 할 것 같나? 사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자기만의 감각과 생각으로 작품에 대해 말하잖아요. 문학을 접하더라도 밀실에서 자신과 그 세상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거고요. 이를테면 저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같은 작품을 하면서 관객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폈었는데요. 저로서는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관객들이 줄타기를 하면서 봐주길 바랐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이 상당히 수동적으로 공연을 받아들이고 돌아갔던 기억이 있어요. 물론 그만큼 섬세하게 작품을 만들지 못한 책임도 있지요. 하지만 관객들이 조금 더 자신만의 눈으로 공연을 보면 좋겠다, 싶어요.
민준호
처음 극단을 만들고 1~2년 정도 돌아다니면서 공연하던 때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데, 정말 그때 만난 관객들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너무 행복한 거예요.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연극이 재미있는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은 욕망은 지금도 그대로에요. 그런데 이제는 인터파크에서 1, 2위를 하는 공연이 아니면 불러주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티켓 사이트 상위권에 링크되는 공연이야말로 완전히 똑같은 색깔들로 매뉴얼처럼 공연을 만들잖아요.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하루 3회씩 공연하고, 배우들에게 그만큼 적은 페이를 지불하면서 관객 수를 확보하고요. 저도 그렇게 기본적인 관객 수를 채울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여전히, 작품을 만들어서 어딘가로 가고 싶어요. 배우들과 함께 오픈된 곳에서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는 것, 그런 게 꿈이죠.
윤한솔
우리 극단이 내년에 10주년이라 관극회원을 모집하려고 하는데, 저는 이들에게 극단의 공연을 정가로 볼 수 있는 특권을 주려고 생각 중이에요. 아까 했던 얘기 중에 나는 돈을 받고 무엇을 파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예술가가 수행하는 노동에 대한 비용 측정이 어렵고, 그러니 티켓의 가격을 책정할 때도 그 근거를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공연을 하면 대개 인터파크에 티켓을 오픈하고 여기서는 일찍 예매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재밌는 건, 유통 구조를 따져보면 왜 그런 할인을 줘야하는지 답을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창작자들은 을의 입장에 서게 되었는데, 결국 관객을 만나는 일을 마냥 낭만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관객들이 내 공연을 보러 오는 게 재미있고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생각들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거죠.
류주연
아까 성기웅 연출이 영화 보면 관객들이 신랄한 댓글들을 다는데 연극은 왜 안 그럴까, 라는 얘기를 했는데 아마도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자기가 잘 아는 것에 대해서는 그만큼 더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정중하고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죠. 그래서 사실 더 많은 관객들이 보러 와야 하는 건데, 작품을 만들다 보면 현실적으로 관객들한테 친절해질 여유가 없어요. 사실 저는 기획도 해봤으니 더 관심이 있는데도 거기 쏟을 에너지가 없는 거예요. 주변에서는 극단을 브랜드화하려면 이런저런 것들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저는 현실적으로 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극단을 위해서 그런 것들을 고민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으로선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처럼 적극적으로 관객을 모아들이는 분들이 있다는 게 고맙고, 그 관객들이 내 공연 역시 보러 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찌 되었든 새로운 관객들을 개발하는 일은 한쪽에서 끊임없이 해줘야 하는 일임에 분명한 것 같습니다.
성기웅
12언어도 내년에 10주년인데, 실은 재작년부터 하고 있는 반성이 그간 우리 공연을 찾아줬던 관객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거였어요. 대학로 연극을 계속 보러 오는 게 취미가 아닌 분들, 공연 애호가들이 접속하고 있는 곳에 있지 않은 분들을 위한 연극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제로 어떤 식의 취향 관객들을 만나려는 시도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들과의 만남을 계속 유지하지는 못했던 겁니다. 저는 사실 대학로 소극장으로 관객들을 불러들이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소극장 연극의 즐거움을 알려가는 역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극장이라는 구조를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자기만의 밀실을 가질 수 있잖아요. 그게 공연만의 매력이고요. 저는, 모든 관객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휩쓸려 가는 공연이 아니라 현장에 다른 이들과 함께 있지만 나는 내밀하게 공연과 만나고 있다, 이런 느낌을 주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함께 본 것에 대해 이야기를 지속해나갈 수 있는 그런 연극이요. 하지만 지금의 연극 관객들은 어떤 모험보다는 익숙한 것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좀 아쉽습니다.
박해성
네, 자리를 마무리하려고 보니 결국은 여기 모인 네 분의 얘기에서 공통점이 하나도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드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생각하는 것들이 다르고, 또 저마다의 확고한 세계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분의 연출님들이 계속해서 각자의 방식대로 활동해주신다면 결국 우리 연극계에 보다 다양한 관객군들이 형성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장시간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태그 연극, 관객이 완성한다,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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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호   2015-03-19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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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정확히 그만큼 기획 쪽에 사례를 지불해야 해서 결국 똑같아지더라고요."
최선을 다해서 만든 작품이 더 많은 관객에게 전달 되었구나! 그런 기쁨은 없으신가요?
결국 똑같아지더라는 말은 경제적인 부분에서 이익이 더 생기지는 않으니 똑같다?
시작은 그럴 수 있겠지만 최종적인 결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관객이 스스로 찾게 이름값을 높일 수도 있는 겁니다. 관객에 대한 이 솔직한 대화는 관객 입장으로 지켜보고 싶다. 창작자들의 입장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간극이 좁혀질까? 그러길 바랍니다.

2015-04-01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