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관객들은 뭐하자고 공연을 보러 가는 걸까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연극, 관객이 완성한다] 두 번째 좌담

2015년 3월 16일 월요일 오후 2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2층 아카데미룸
사회: 정진세
참석: 김경희, 양종욱, 이경성, 이진엽
기록 및 편집: 김슬기

정진세

정진세
‘연극, 관객이 완성한다’ 두 번째 좌담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자리해 주신 창작자 분들 소개를 간단히 드릴게요. 음악, 전통연희, 미술 세 유닛의 다양한 활동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창작집단 노니(이하 노니)’의 대표 김경희 연출님, 드라마를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표현방식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하고 시도하는 ‘양손 프로젝트(이하 양손)’의 양종욱 배우님 나오셨고요. 공연장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는 작업을 하고 계신 ‘코끼리들이 웃는다(이하 코웃다)’의 이진엽 연출님, 그리고 언어 중심, 극장 중심의 연극을 넘어 동시대의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바키(이하 바키)’의 이경성 연출님 자리 함께 해주셨습니다.

나는 이렇게, 이상적인 관객이었다

정진세
오늘 좌담에서는 연출론에 국한된 논의를 넘어서, 생산보다는 수용의 차원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갔으면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러저러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 이렇게 달라졌다, 하는 식의 경험들을 공유해주세요. 그럼, 가벼운 얘기부터 시작해볼게요. 창작자이기 이전에 관객으로서 자각이 생긴 것은 언제 어떤 공연을 통해서였나요?
김경희
저는 서울에 살지 않아서 어릴 땐 한 번도 연극을 본 적이 없었고, 연극을 전공한 것도 사실은 무대미술에서부터 시작한 거라 관객이자 창작자의 입장에 놓여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처음 만들었던 작품이 <한여름 밤의 꿈>이었는데, 그 희곡 텍스트가 저에겐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작품을 만들면서 이걸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다보니 나의 첫 관객은 가족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죠. 극장을 대관할 수는 없으니 인형극 무대를 만들었던 거고요.

양종욱

양종욱
저는 두 가지 정도 경험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00년대 초반, 극단 수레무대에서 요일 레퍼토리 공연으로 체홉의 <청혼>이라는 작품을 했거든요. 굉장히 흥미롭게, 정말 많이 웃으면서 공연을 봤는데 공연이 끝나고 배우 한 명이 나오더니 공연이 다시 시작되더라고요. 알고 보니 파스(farce)와 리얼리즘 두 가지 버전으로 연달아 공연을 한 거였죠. 와, 누가 이런 걸 만들지, 이런 걸 만드는 게 연출가라는 사람이구나, 이런 작업들을 해내는 사람들은 누굴까? 그때 창작품 너머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최초로 생겼던 것 같아요.
정진세
관객인 나를 매혹시키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지점인 거죠? 작품이 훌륭해서였나요? 혹은 나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어서?
양종욱
그렇게 두 가지 버전으로 공연을 올린 것, 그런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던 거죠. 다른 하나는 LG아트센터에서 데레보라는 극단이 공연한 <신곡>을 봤을 때에요. 사실 공연이 어렵기도 했고, 무슨 내용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데요. 공연이 끝나고 벌거벗은 네 명의 배우들이 서로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더라고요. 관객들한테 인사를 하기 전에 서로에 대한 존중 같은 것들을 일종의 세레모니를 통해 표현한 거죠. 그때 창작자들이 어떤 마음과 태도로 작품을 만드는 구나,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관객들과 작품을 나누려고 하는 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진엽
저도 광주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 연극을 접했던 경험은 없고요. 기억에 남는 공연은 유학 갔을 때 봤던 영국 단체 작품이에요. <빨간 구두>를 마구간에서 공연했죠. 그 공연을 통해 공간 활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겼고,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익히 알고 있는 작품이지만 그것을 재해석하는 묘미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는 저도 극장이란 공간을 버리게 되었고, 대사가 아닌 다른 것들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 또한 생각하게 되었죠.
이경성
저는 공연보다도 삶으로 생각을 확장해봤는데 어릴 때 운동 경기 관람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농구대잔치, 혹은 월드컵 같은 걸 TV로 보면 경기 종료와 동시에 공 들고 밖으로 뛰쳐나가기 일쑤였죠. 관람으로 끝나지 않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렸던 거예요. 그런 것들이 내가 관객으로서 느끼고, 동시에 행위자로서 경험했던 것들이에요. 대학 와서는 아비뇽 연극제에 처음 갔는데 그때 작은 펍에서 연극 한 편을 봤거든요. 내용은 기억도 안 나요. 못 알아듣기도 했고요. 그런데 끝나고 나서 관객들이 그 펍에 딸린 작은 마당에 모여 공연에 대한 얘기를 하더라고요? 연극이 끝나고 난 다음 그것을 매개로 해서 생겨나는 만남, 그 기운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정진세
얘기를 듣다보니 네 분의 창작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객이란, 본인들이 그러했듯 창작자로서의 열정이나 잠재성을 가진 관객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요. 이런 사람이라면 내 작품을 더 잘 즐길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있을까요?
이진엽
저는 공연마다 대상이 달라져요. <두 도시 이야기> 같은 경우는 오직 주물하시는 분들만을 위한 공연이었죠. 채 스무 명도 안 되는 사람들만을 위한 공연을 하는 것에 대해 기획자가 문제제기를 했지만, 저는 특정한 교감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저희 집으로 딱 여섯 명만의 관객을 초대해서 공연했던 <201호, 아인슈타인이 있다>에서는 미리 질문지를 줘서 우리가 의도했던 것들과 관계된 사람들만 부르기도 했고요.
김경희
저도 이진엽 연출님한테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요. 노니의 작업도 일단 형식 자체가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바람노리>는 이동형 공연이라 행렬을 따라가는 관객이 있고 목격하는 관객도 있었는데, 관객들 안에서 일종의 레이어를 만드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에요. 문화역 서울에서 했던 <기억하는 사물들>은 오디오 인터페이스로 10명의 관객이 보게 했어요. 그 사람들은 사운드로 드라마를 들을 수 있지만 나머지 분들은 오직 시각적인 것만 볼 수 있었죠. 결국 저는 각각의 작품에 적합한 관객이 이상적인 관객인 것 같아요.

창작자의 관객 ‘사용’ 후기

정진세
이 얘기를 이어가자면 나는 관객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체성을 가진 관객 개인으로 봐도 좋고, 대중으로서의 관객도 좋고요. 저는, ‘나는 관객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라고 묻고 싶은데요. 물론 이게 창작자의 오만불손함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시대의 연극은 또 그런 걸 필요로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까 김경희 연출님이 관객들 사이에 레이어를 만든다는 얘기해주셨잖아요?
김경희
저는 어차피 미술하는 사람이라 모든 걸 다 구조로 생각해요. 구조를 짜고 배치를 한다, 그런 개념에서 공연의 요소들이 움직이는 리듬을 짜는 거죠. 그럼 관객은 커다란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 리듬 안에서 이것이 움직였을 때와 아닐 때가 다르니까요. <바람노리>와 <스테이션>은 관객이 완전히 장면 안으로 들어가서 움직이도록 하는 공연이었는데, 다행히도 관객들이 그 그림을 만들어줬어요. 사실 매 작품 매 공연마다 다른 상황이 나오게 되죠.

이경성

이경성
사실 저는 관객이 하나하나 다 다르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 때 관객을 고려한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보편성이 파시즘이라는 의견에도 동의할 수는 없고요. 정말 모두가 좋아하는 게 있다면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만 관객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토대를 공유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우리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런 맥락에서 꿸 수 있는 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종욱
조금 다른 얘긴데, <개는 맹수다>라는 작품을 일본 돗토리에서 공연한 적이 있거든요? 시골 중에서도 완전 시골이었는데, 그곳 주민 분들인 50대 이상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관객들이었어요. 환경도 너무 좋은 곳이었고, 이런 데서 살면서 연극하면 참 좋겠다, 싶은데, 아이러니하게도 만날 이런 관객들만 온다면 연극하기 싫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진세
솔직한 고백이네요. 어떤 맥락이었나요?
양종욱
그때 우리가 특정 관객층에 익숙해져있구나, 깨닫게 되었고 여기에는 뭔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어떤 욕구가 있을 테고, 우리도 우리의 욕구를 가지고 만드니까 분명 그것들이 만나는 지점이 있을 텐데, 어떤 식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30대 작업자라 나와 같은 나이 대의 관객만이 우리와 비슷한 욕구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결국은 연극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만나고, 발견하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이들, 그게 우리가 원하는 관객인 것 같아요.
이진엽
과연 십 년 후에도 지금처럼 20-30대의 여성 관객을 타겟으로 할까요?
양종욱
그러게요. 우리도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된 거잖아요. 문화적으로 연극이란 걸 찾고 수용하려는 욕구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60대 배우가 되었을 때도 이런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면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게 돼요.
이경성
그러니 더더욱 저는 무조건 많은 사람, 무조건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관극하고 되뇌어보는 관객이요. 스스로 읽어낼 수 있는 방식과 방향들이 분명히 있잖아요. 창작자로서는 최대한 다양한 입장과 차이에서 내 공연을 봐주는 게 흥미로운 것 같아요. 관객은 하나의 그룹이 아니라 개개인의 주체이기 때문에 관객층이라고 말하는 게 위험하기도 하고요.
이진엽
한편으로 저는 ‘관객참여형’을 내세워 우리가 너무 강압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돼요. 여태까지는 운이 좋게 참여도가 높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다른 맥락에서는 관객들의 비중이 높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들의 자리가 줄어들어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그래도 지금은, 관객의 역할을 80~90% 정도로 보고 방아쇠만 당겨주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고 있어요. 왜 그렇게 하냐고 묻는다면, 드라마만 놓고 보자면 나는 연극보다 TV나 영화가 더 재밌거든요. 제가 드라마를 잘 연출할 자신이 없기도 하고요. 그러니 관객들이 공연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가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성
방법론적으로는 다르지만 저 역시 관객을 경험자라고 생각해요. 본다는 입장에서 관객이 가진 안정성이 있기 마련인데, 저도 매번 실패하고 있긴 하지만 그 정서적 물리적 안정성을 혼란시키면 관객들이 더 적극적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남산 도큐멘타>의 경우, 공연이 시작하고 나면 ‘유령산책’에 참여했던 관객들이 무대 뒤편으로 들어오거든요. 그러면 관객들이 서로의 위치를 헷갈려하기 시작해요. 무대가 어디인지 지워버리면서 굉장히 견고할 것이라 생각했던 위치 자체를 흔드는 거죠.

관객에 대한 고민은 창작자의 몫인가

정진세
지금은 사실 예술가들이 지원금에 의존하거나 제도에 의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잖아요. 관객 하나하나에 표를 팔아서 공연을 하던 때도 있었을 텐데, 이젠 어차피 지원금 받아서 작업을 하니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 맥락에서 창작자들이 관객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경성
저는 연출 작업한 지 6년째인데, 작업을 시작했던 때는 이미 관객 수익에 의존하던 시기가 아니었어요. 여러 가지 지원제도가 다양하게 있었고, 그런 혜택을 운 좋게 많이 받았죠. 처음엔 거리극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관객을 모집해야 된다, 그런 기획의 강박에서 자유로웠던 것 같고요. 그렇게 거리와 극장을 넘나들면서 작업을 하다가, 극장에 들어와서 2-3주 정도 되는 장기공연을 한 지도 2년 남짓밖에 안 되었습니다. 다만, 장기공연을 하게 되면서 어떻게 홍보를 해나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시작된 상황이에요.

이진엽

이진엽
어느 정도 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긴 한데, 한편으로는 불안하죠. 지원금을 받는 건 일 년에 한 번일 텐데, 그렇다고 작업을 하나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자립도를 확보할 것인가의 답이 결국 저한테는 관객 개발이었어요. 사실 다원예술의 경우 1-2주 이상 공연하는 게 어려워요. 예산 때문이기도 하고 관객이 안 와서이기도 하죠. 한번은 티켓 수익으로 공연에 참여한 이들에게 인건비를 주려고 계산을 해보니 티켓 가격이 4만원이 되어야 하더라고요. 그렇게 되니 그 티켓 가격에 상응하는 공연의 완성도란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고요.
정진세
모객에 조금 더 절실함을 느꼈을 수 있는 양손의 경우는 어떤가요. 그러니까 이 얘기는, 지원금으로 공연하기 때문에 관객에 대해 덜 고민한다, 그런 차원이 아니고요. 작품을 보다 잘 만드는 것에 좀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질문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양종욱
말씀하신 것처럼, 관객과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만드는 일이나 생계 때문에 그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저는 오늘 이 좌담을 계기로 양손 멤버들이 각자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씩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연극은 관객이 완성한다고 믿고 있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되묻게 되더라고요.
김경희
저는 솔직히, 예술가들 스스로 관객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고 보진 않아요. 때로는 예술가들이 너무 과하게 스스로를 성찰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기성세대의 과오를 왜 우리가 떠안고 반성해야 하는가의 문제도 있죠.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정책적인 게 따로 있는데, 단지 관객을 직접적으로 만나는 게 예술가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정진세
말하자면 관객 개발과 관객 참여적 요소를 개발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그런데 지원금 줬으니 창작자들한테 관객개발도 염두에 둬야지, 하면서 책임을 전가한다는 거죠?
김경희
제가 고민했던 것 중에 하나가, 내가 하는 공연은 생산자와 그것을 사는 사람의 구도로는 갈 수 없다는 거였어요. 특히 새로운 장르와 만나야 하는 경우, 관객들은 그 생소함 때문에 망설일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왜 의미가 있고 어떤 점에서 재밌는지, 그런 걸 알려줘야 하고, 그런 지원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이진엽
나는 그게 제도로부터 시작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예술가들이 해줘야 하는 몫이 있죠. 좀 다른 얘긴데, 저는 명동에서 호떡 파는 아저씨한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아저씨는 일부러 줄서기 알바를 써서 관광객들이 그걸 사먹게 한대요. 우리도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경희
예술가들은 이미 다각적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도는 한 순간에 변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변하는 거잖아요.
이경성
그런데 생산자와 수용자 사이에서 정책적인 지원을 한다는 게 어떤 걸 말하는 건가요?
김경희
지금 이런 자리도 지원이 될 수 있고요. 공연을 보고 비평하는 사람을 양성한다든지, 관객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든지, 하는 모든 것들까지 포함하는 얘기죠. 이 작업은 이런저런 조건의 공간에서 공연해야 한다고 쳐봐요. 이런 걸 기획하려면 공간에서 텍스트가 나오고, 그것이 움직임과 연결이 되고,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해요. 그러니 기획자에 대한 교육도 필요한 겁니다.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으니 우리가 다 하는 거잖아요.
정진세
혹 창작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이 더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이를테면 양종욱 배우는 블로그를 통해서 양손이 올리는 작품을 관객들한테 알리고 있잖아요.
양종욱
사실 처음에는 양손 작업을 정리하는 창구로 이용하려고 시작했는데, 우리 작업을 주목하고 찾아주는 관객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솔직히, 그들과 어떤 방법으로 소통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기보다 우리 소식들을 공유하려는 취지로 몇 년 동안 하고 있어요. 계속해서 우리 공연들을 지켜보면서 관람평이나 기대평을 올려주는 관객들이 있고, 질문을 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꾸준히 운영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공연을 봐주신다면!

정진세
그렇다면 유달리 여러분들의 작업을 좋아하는 관객들이 있나요? 소위 말해 충성관객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과 쌍방으로 주고받는 것들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관객의 리뷰를 읽는다든가 혹은 관객들에게 공연 소식을 알린다든가 하는 식의 일방적인 소통은 다들 하시는 것 같은데요.
양종욱
그간 저를 가장 기쁘게 했던 관객은, 어머니를 모시고 공연을 보러 오신 분, 딸과 남편을 데리고 오신 분, 그런 경우였던 것 같아요. 우리 공연을 다른 이들과 같이 나누고 싶다, 그래서 그들을 데려왔다, 이런 분들이요.
이진엽
저는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작업하다 보니 코웃다를 알고 계속해서 찾아주는 관객을 만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작년에서야 비로소 불특정 관객들이 공연을 보러 오기 시작했죠. 심지어 저도 잘 모르겠는데, 코웃다만의 색깔이 보인다고 얘기해주시는 분도 있긴 했어요. 하지만 그런 관객들의 반응까지는 예상이 안 되어서 관객과의 대화를 해볼까 싶어요.
양종욱
개인적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요. 어떤 종류의 질문들에 답을 하는 게 선입견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실 공연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아가고 질문을 발생시키는 것은 관객들이 개별적으로 수행하는, 관극 다음의 단계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의도로 만들었습니다, 라고 정리해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김경희

김경희
맞아요. 공연이 끝나면 조심스럽게 다가오셔서 질문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자신이 본 것이 무슨 뜻인지, 본인이 생각한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세요. 그럴 때면 항상, 느끼신 그대로입니다, 라고 대답해요. 저는 심지어 공연 정보를 담은 리플렛 같은 것도 잘 안 만들고 관객들한테 굉장히 불친절한 편인데요. 실제로 공연 장소에 오셔서 헤매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 것들까지도 온전히 받아들이길, 그리고 각자가 받은 것으로부터 출발하길 원하는 거죠.
이진엽
저는 그 지점에서 약간의 혼란이 있는데, 연령대마다 관객들을 좀 다르게 대하게 되더라고요. 어르신들이 오시면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양종욱
그런데 이런 부분은 있어요. 작품 그 자체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과 우리 작업에 대해 질문하는 건 좀 다른 층위라고 해야 할까요. 양손에 대한 궁금함은 얼마든지 묻고 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질문으로부터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지점들이 생기니까요.
정진세
사실 예술의 자장 안에서 관객과 창작자가 만나는 관계가 아직까지는 크게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향후 관객들을 대하는 데 있어 계획이나 과제가 있으신가요?
이진엽
관객에게 어떤 식의 경험을 만들어주는 작업을 하다 보니, 정작 작업을 위한 돈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그래서 특정 관객만을 위한 공연만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는 관객 개발을 위해서 장기공연을 준비할 것 같아요. 오랜 기간 공연을 하게 되면 매회 관객을 채우기 위한 노하우가 생기지 않을까요? 하루 2-3회 공연을 하게 된다고 가정했을 때, 시간대별로 다른 관객들을 부르는 문제랄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경성
저는 사실 재작년부터 <연극의 연습> 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인물’, ‘극장’ 편을 이미 만들었고, 올해는 ‘관객’ 편을 만들려고 해요.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아직 없는데 3부작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관객이 빠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다른 하나는, 작년에 집에서 공연하면서 소소하게 관객들을 만났던 기획을 다시 해볼까 싶어요. 저는 조명오퍼를 하면서 공연을 진행했는데 조금은 색다른 기운을 얻었거든요. 공연 끝나고 관객들이랑 둘러앉아 막걸리 마시면서 얘기하는 시간도 즐거웠고요. 올해는 20대 창작자들이 모여서 작업할 수 있는 판을 만들려고 합니다.
양종욱
아까도 얘기했지만, 저는 적어도 극장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창작자들에게는 관객과 만나는 구조 자체가 이미 주어져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개 소극장들은 70석에서 100석 정도 규모고, 티켓 가격이라는 것도 시장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고요. 그런데 이번에 공연하는 <여직공>은 양평동에 있는 실제 공장에서 하기로 했거든요. 무엇보다 공간을 직접 보고 미팅하러 가는 그 길이 저한테 몹시 신선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조금씩 다양한 접근들을 해나가다 보면, 창작에 있어서의 개발이 결국 관객 개발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김경희
저는 관객의 입장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몇 년 전부터 사실, 연극이 왜 필요한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수익도 안 되고 쓸모도 없잖아요. 이렇게 연극은 아무런 기능도 하고 있지 않은데 왜 계속되는가, 생각했죠. 그렇기 때문에 연극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아야 하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 그건 결국 교감이고 관계인 것 같은데, 자기 자신, 혹은 함께 하는 사람, 관객과의 교감, 다 포함해서요. 저는 이런 식으로 소통에 대한 방식을 실험하고 있고, 공연만이 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요.
정진세
네, 좌담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이 얘기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최근 대학로극장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이슈에 대한 인터넷 댓글 중 이런 게 있었어요. ‘2000년 전 하던 대로 극장에서 연극질하고 있다고요.’ 제 주변 연극하는 지인들은 그 얘기에 몹시 분노했지요. 사실 그게 연극 관객의 생각은 아닐 거예요. 일반 대중의 생각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대중들이 결국 연극 관객으로 유입되고 애호가가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오늘 긴 시간, 감사했습니다.

태그 [연극,관객이 완성한다,기획연재

목록보기

제65호   2015-04-02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