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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관객이 완성한다] 세 번째 좌담

일시: 2015년 3월 30일 월요일 오후 2시 반
장소: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사회: 최윤우
참석: 박지선, 오성화, 임인자, 조형준
기록 및 편집: 김슬기

최윤우

최윤우
웹진 [연극in] 의 기획 좌담, 세 번째 시간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좌담에서 창작자들이 생각하는 관객에 대해 들어봤다면, 오늘은 기획자 여러분들을 모셨습니다. 20여 년 가까이 공연 현장에서 기획자로 활동하시면서 경험하셨던 것들을 기탄없이 나눠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간단히 소개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춘천마임축제에서 오래 일하셨고, 지금은 프로듀서 그룹 도트에서 활동하고 계신 박지선 피디님, 서울프린지네트워크의 오성화 대표님, 서울변방연극제의 임인자 감독님, 그리고 안산문화재단의 조형준 부장님 함께 해주셨습니다.

관객이 변하고 있다

최윤우
오늘 모신 분들은 무엇보다도 창작자들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관객과의 매개를 고민해 오셨던 기획자 분들인데요. 기획자로 활동해오시던 그 기간 동안 체감하셨던 관객의 변화 같은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형준
아무래도 공연 홍보를 하면서 절감하는 것들은, 온라인상에 예전에 비해 특정 그룹이 줄었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PC통신 동호회들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분명 어떤 구체적인 지점들이 있었고, 그 후에도 싸이나 네이버 등에 커뮤니티 혹은 카페 같은 것들이 있긴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무언가 생기더라도 금세 흩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박지선

박지선
관객이라기보다는 대중의 흐름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전보다 확실히 즐길 것들이 훨씬 많아졌잖아요. 공연 쪽만 보더라도 뮤지컬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했고, 영화와 게임, 다양한 것들이 생겨난 게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취향이라는 게 거대 자본이나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는 경향도 없지 않은 것 같고요. 주체적으로 선택해서 공연을 보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중문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관객들도 많고요.
오성화
조형준 부장님도 말씀하셨지만, 프린지 페스티벌이 만들어지기까지 실질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던 것 또한 당시 PC통신의 공연예술 관람 커뮤니티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 대표 선수를 꼽을 수 없는 것 같아요. 하나로 묶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하지도 않을 뿐더러 알 수 없는 것들이 혼재되어 있죠. 내가 손잡을 수 있고 나를 안내하는, 창작자와 관객을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를 찾는 게 어려워졌고, 결국 일대일로 마크를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임인자
저도 세 분 말씀에 동의하는데, 관객들이 ‘공연을 본다’는 행위 자체를 ‘문화화’해왔다고 생각해요. 연극보기가 활성화된 70~8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축제, 극장 등 매개자에 의해 제시되는 연극들이 분명 어떤 식의 담론을 형성하면서 흐름을 조성해왔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공연예술을 둘러싼 담론들이나 관객들을 위한 길라잡이 같은 것들이 완전히 자본에 포획된 것 같거든요.
오성화
제가 체감하거나 학습한 걸로는 15년 정도 전, 그러니까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그 즈음을 어떤 분기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관객들의 선택지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는 거예요. 그것이 학습된 것이든 내 본연의 취향이든 세분화된 것이 분명하다면, 생산하고 매개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죠.
최윤우
환경의 변화에 따라 관객들의 성향이나 공연을 찾는 동기는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 최근에는 창작의 경향 자체가 다변화되고 있잖아요. 사회적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공연이 많아졌다든가, 비전문가들이 무대에 등장한다든가, 관객들이 참여하는 폭도 넓어졌고, 장르의 통합 양상도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창작의 변화가 관객들을 개발한 측면은 없을까요?
조형준
그게 과연 창작의 변화에 의해 개발된 것인가는 짚어볼 필요가 있는 문제 같아요. 무언가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관객들이 찾는 지점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예전엔 쇼케이스나 워크숍 현장에 가보면 거의 다 관계자들이었는데, 요즘은 팬들이 이런 것들을 찾아다니더라고요. 그렇게 공연 홍보를 해도 관객이 안 들어 고민하는데, 이런 현장을 찾는 관객들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도대체 이런 정보는 어디서 얻는 걸까, 싶기도 하고요.
박지선
관객 개발이라는 게 많은 관객을 갖는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잖아요. 창작의 새로운 방법론, 혹은 장르의 융합 같은 것들이 분명히 새로운 관객들을 부르는 건 맞습니다. 특히 다원예술 같은 경우 시각 작가들, 과학자들까지 공동작업에 끌어들이면서 작품을 만드는 경우들이 있고, 이런 공연장에 가면 낯선 관객들이 많이 앉아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라든가, 미술이나 다른 쪽 분야의 사람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공연을 찾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오성화
사실 요즘 저한테 관객이 개발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은 시민예술가라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니까 저는, 수용자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창작자의 위치로 옮겨가고 있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특히 거리예술 쪽에서는 시민들 스스로 여러 커뮤니티를 만들어내고 있고요. 이런 분들은 본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 삶의 에너지는 연극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죠. 즉, 관객이 직접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는 뜻입니다.
최윤우
예술교육이라는 이름이든, 지역 커뮤니티 활동의 일환이든, 기금을 통한 지원이든, 최근 이런 활동들이 많아지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오성화
하지만 그들 중 과연 몇 퍼센트나 극장의 티켓을 구입하는 관객으로 연결이 될까, 라고 질문하면 그 답을 못 찾겠어요. 그런 연결이 가능하게 하려면 정말 치밀한 설계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 두 가지가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직업인이면서 동시에 연극하는 사람으로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니 시민은 행복하죠. 그런데 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한테 이건 어떤 기회가 될 수 있을까요? 이런 시민예술가들이 티켓 파워를 가진 관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전업 예술가들도 행복하게 예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요즘 그런 고민들을 합니다.
박지선
다른 한편으로, 공연에서 관객들이 차지하는 위치나 역할의 변화도 큰 것 같아요. 제가 춘천마임축제에 2009년 초까지 있었는데, 당시 어떻게 하면 새로운 관객을 개발할 수 있을지 얘기들을 많이 했거든요. 공연이란 게 집단 체험이잖아요. 그런데 현대의 관객들은 그런 공동의 경험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참여나 인터랙티브한 형식을 좋아해요. 이런 것들을 구현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공연장이 아닌 대안 공간들에서 작업들을 하곤 하는데, 이게 확실히 젊은 관객들한테 호소하는 부분이 있죠. 문제는 어떻게 지속성을 담보하느냐, 예요.

그들과 더불어 무엇을 할 것인가

최윤우
지금 이 얘기의 연장선상에서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데요. 이렇게 창작자와 관객을 매개하는 작업들을 하시면서, 언제, 즉 기획의 어느 지점에서 관객들을 고민하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조형준
저는 극장에서 일하는 동안 ‘공연’을 ‘발표’와 구분하게 되었는데요. 공연에는 그것을 완성시키는 최종자로서 관객이 있지만 발표에는 하객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것이 ‘나의’ 공연이다, 라고 소유격을 붙여버리는 순간 관객이 하객으로 전락하는 문제가 생기죠. 물론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 하는 창작자들이 있는 반면 관객에 의해서 공연이 완성된다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주고받으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짧은 지역 공연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이야기가 가능한 불특정 다수를 잠재 관객으로 보고 시작을 해요.
박지선
먼저 축제에서는 타겟을 설정하고, 다양한 관객층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을 했었어요. 하지만 최근 개별 창작자들과 호흡을 맞추면서는, 아무래도 작가들이 새로운 작업 형태를 많이 시도하다보니, 창작의 아주 초기 단계부터 관객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창작자들은 관객에 대한 고려가 창작에 제약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모든 이들이 나의 관객이 될 수 없는 거라면,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말하진 못할지라도 무엇을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은지는 생각해봐야 된다고 봐요.

임인자

임인자
어떠한 무대가 관객에게 감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혹은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가닿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변화를 줘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서 예술가 그룹만이 그것을 공연화할 수 있는가, 그게 최선인가, 라는 데 생각이 미쳤죠. 그 결과 <숙자이야기>의 평택 기지촌 할머니들,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의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 그리고 <법 앞에서>의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분들과 까페 ‘그’ 임차인 등과 같이 사건 당사자 분들에게 무대를 내어드리게 된 건데요. 말하자면, 저는 관객을 타겟팅하여 선별하기보다는 그 누구라도 좋다는 입장이고, 그러한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다른 계기들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조형준
하지만 창작 단계에서 이 공연을 통해 관객들과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관객들이 그것을 받아들여줄 것인지, 받아들여주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 것들을 고민하는 건 당연한 거죠.
임인자
그렇죠. 저는 기획을 할 때 제가 관객이라고 생각하면서 해요. 그래서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느끼는 것을 감각하려고 하죠. 기획의 과정에서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지점들을 따라가면서, 창작자에게도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문제들만큼은 강력하게 얘기하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연극을 통해서 세상에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어서, 누군가 공연을 보고 자신의 삶에서 어떤 변화들을 만났으면 해요. 인식의 변화, 감각의 변화가 생겨났으면 하는 거고, 공연이 그걸 구현해내면 좋겠어요.
박지선
돈을 주고 티켓을 사서 공연을 보는 관객이 백화점에서 물건 사는 사람과 같지는 않잖아요. 결국 창작 초반부터 관객에 대한 고민을 하고 답을 찾다보면 관객층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한번은 극장이 아닌 폐교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청소 용역 업체 분들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 분들이 공연 티켓을 예매하셨더라고요. 우리가 무슨 얘길 하고 싶어 하는지 아셨던 것 같아요. 단 한 번도 우리 공연의 관객이 될 거라고 생각조차 못해본 분들을 만난 건데, 실제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해지면 관객의 폭도 넓어질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죠.
오성화
그런데 저는 이 기류에서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 공연을 누구한테 팔 것인가, 라는 전제가 없다는 느낌이 좀 들어서요. 지원금을 받아서 활동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예를 들어 내가 정말 공들여서 좋은 제품을 하나 만들었다고 해볼게요. 디자이너로서, 윤리적으로 자존심을 걸고, 이를테면 환경을 헤치지 않는다든가 하면서 말이에요. 그럼 이걸 누구한테 소비하게 할 수 있나, 라고 고민해야 하는 거잖아요. 작품을 생산하는 사람들 역시 내 소중한 노동을 들여서 만들어낸 공연을 누구한테 판매할 것인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사실 내가 사장인 거잖아요. 지금 이걸 팔아야 다음 상품을 만들어내죠. 저는 우리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것들을 금기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형준
사실 공연을 만들고 관객을 만나는 일이 상업적인 자장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마치 예술의 순수성을 침해하는 것처럼 느껴져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일종의 긍정적 긴장을 하게 만드는 장치가 될 수도 있거든요.
임인자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공연을 어떻게 팔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전혀 다른 결의 얘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연극을 생산해서 판매한다고 전제하지 않는 건 거꾸로 말하면 이런 겁니다. 결국 관객들을, 상품을 사는 소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만남의 방식을 고민한다

최윤우
사실 오성화 대표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창작자들의 활동이 관객을 우선적으로 전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어떤 공연도 관객이 없으면 무의미한 거잖아요. 말 그대로 창작자들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보다 집중을 한다면, 그 너머의 것들을 매개하는 것이 기획자들의 몫일 텐데요. 오랜 시간 기획자로 활동해오시면서 쌓아온 여러분들만의 노하우 같은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형준

조형준
지역에서 홍보를 하다보면 이야깃거리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사람들 입에 계속 오르내리는, 관객의 일상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야 하는 거죠. 내 생활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연 포스터 하나를 보더라도 관심이 생기지 않는 거거든요. 얼마 전에 기획했던 <몸짓 콘서트> 같은 경우, <댄싱9>이라는 TV 서바이벌 프로그램 덕을 톡톡히 본 경우에요. 사람들은 김설진이라는 영웅을 보러 몰려들지만, 결국 그 중에 누군가는 이 공연에 참여한 다른 무용단이나 무용수들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거잖아요.
박지선
특별한 노하우라기보다는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지역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춘천마임축제기간 중 1,000석 극장에 나흘간 프로그래밍을 했는데, 지역의 모든 커뮤니티를 홍보 대상으로, 직접 발로 뛰면서 사람들을 만났죠. 얼마 전 광주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때는 관객이 회당 60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는데도 결국 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최윤우
60명의 관객을 만나기 위해서도, 1,000명의 관객을 만나기 위해서도 같은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박지선
사실 서울도 마찬가지긴 하죠. 브랜드, 인지도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회원들이 티켓을 구입하는 제작 극장을 제외한다면, 독립 기획자들에게 하나의 공연을 올린다는 게 막연한 일인 건 사실이에요. 결국에는 마케팅의 문제라고 봐야 하는데, 엄청나게 물량공세를 해서 공연을 노출시키는 게 첫 번째 문이고 그게 더 작은 문들로 연결되는 건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한편으로 관객들을 오게 만드는 게 진짜 마케팅만으로 되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들긴 해요. 저는 심지어 인터파크의 1,2,3위를 조작해서 정말 실험적인 공연을 걸어두면 과연 그쪽으로 관객들이 몰리는지 실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오성화
저는 어떤 작품을 관객과 만나게 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그에 적합한 커뮤니티를 뒤져요. 사실 이 작품만을 위해서 특정 커뮤니티를 찾는 정도까지는 잘 못하고 평상시에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할까요. 예술하는 행위와 일상이 분리되는 게 아니라 여러 층위로 섞여 있는 거죠. 내 삶의 덩어리 안에서 어떤 작품을 만났을 때, 내가 속해 있는 커뮤니티든 건너서 아는 그룹이든, 작품과 가장 잘 맞는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식으로 관객몰이를 하는 거예요. 사실 20-30대 관객이야말로 저한테는 정말 애매한 접근이에요.
조형준
저희 같은 경우 극장 회원들이 있고, 어떤 식의 이야깃거리도 만들었는데 이걸 퍼져나가게 하는 데서 항상 어려움에 직면해요. 사실 회원 데이터 같은 경우는 관리하는 데 품이 너무 많이 들거든요. 번호가 바뀌는 경우도 다반사고, 1회성 이벤트만을 위해 가입하는 경우에는 공연에 관심이 없죠. 문자 좀 그만 보내라는 민원도 계속 들어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퍼져나갈 수 있는 긍정적 경로들을 만들어내는 게 숙제에요. 만드는 것 자체가 낭비일 정도로 지역에는 포스터 붙일 데도 없는 상황이거든요. 지금은 커피숍 쟁반에 얹어 쓰는 트레이지 활용이나 커뮤니티 참여 등 지속가능한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만들어내는 일에 주력하고 있어요.
박지선
사실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가운데 우리의 공연을 어떻게 노출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정보를 큐레이팅 해서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 독특한 방식으로 전달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인터파크에 들어가더라도 정보들이 너무 쏟아지니까, 그냥 1,2,3위를 보는 게 쉽잖아요. 그리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생각해보면, 사실 이게 허수가 되게 많거든요. 오히려 이런 자료들은 공유하면 할수록 정리가 되는 건데 말이죠. 이렇게, 새로운 그룹들이 우리 안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함께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런 사업들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오성화
큐레이팅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게 사실은 제가 커뮤니티를 찾는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인 거잖아요.
박지선
그런데 저는 개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힘든 일인 것 같아서요. 책을 읽는 사람, 예술영화를 보는 사람이 공연장에 올 확률이 더 높다고 가정하고,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서 관객 개발을 위한 정보 협력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어차피 대규모의 자본 투입이 불가능한 거라면, 내가 가진 것을 내놓고 힘을 모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임인자
저도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연극의 말 걸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큐레이팅된 정보와 담론들을 제공하는 일도 연극이란 매체가 할 수 있는 영역 같고요. 협력이 가능하다면 저 또한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같은 이슈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이라 하더라도 미감이 각자 다른 것 같아요. 단순히 무대에 어떤 이야기가 있느냐, 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는 안 되죠. 특히나 지금 우리의 현실에는 거세되고 왜곡된 하나의 이야기 구조만 존재하잖아요. 연극이 무대에서 다른 것들을 보여준다면, 연극 자체를 말하는 방식도 달라져야만 관객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들을 위한 플랫폼

최윤우
어쨌든 오늘 모신 분들은 창작자들을 위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창작자들을 위한 플랫폼의 필요성은 이미 공론화되어 있는데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은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 건가, 하고요.

오성화

오성화
저는 공연이 더 일상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프린지 페스티벌은 이벤트처럼 어느 순간 비일상적으로 터지는 거고요. 저한테는 이 서울이라는 어마어마한 익명성의 공간에서 취향으로 만나게 되는 관객들이 우선순위가 되지는 않습니다. 일상의 관계를 통해 만날 수 있는 틀거리가 훨씬 중요해요. 이런 맥락에서 프린지의 거점 공간이 홍대에 있을 땐 술집이나 카페처럼 상시적인 오픈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었는데 실패했죠. 지금은 상암으로 옮겨갔는데 조만간 사무실 한편에 ‘8평 극장’을 오픈하려고 해요.
최윤우
사무실 공간에 극장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요? 어떤 맥락이죠?
오성화
극장이라기보다는 DIY씨어터인데, 도대체 공연을 어디서 하지, 누구와 어떻게 소통하지, 이런 분들을 위해 예술가들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이 공간에 끊임없이 초대하는 거예요. 작품을 선보이는 순간은 일상이 아니지만 그걸 행위하는 사람이 공연을 일상으로 느끼게 도와주는 겁니다. 예술가들에게는 그들끼리 모의 작당하는 공간이 되고, 관객들에게는 작업하는 사람들을 아주 내밀하게 만나게 해주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임인자
조금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전문 연극인이 아닌 분들이 연극에 진입하고 싶을 때 연극은 여전히 너무 권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출과 배우의 위계적 관계랄지, 이런 걸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랄지, 우리가 새로운 유형의 연극을 만드는 것은 그런 주류적인 질서와 감각들을 바꿔가려는 노력이기도 하잖아요. 그렇다면 이것은 왜 기존의 질서이고 그와 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관객들과 더불어 그런 것들을 논의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어요. 저는 단순히 일상의 판을 만든다는 것에서부터 감각의 구조, 감각의 위계를 바꾸는 것까지도 시민 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오성화
그런데 저는 가끔씩 예술 얘기를 하다보면 공허해져요. 예술만 고고할 수 없거든요. 사람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자본 친화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지,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은 공포심을 자극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무렇지 않게 그런 질서를 학습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바쁘고 지치고 쪼들리고, 그 안에 숨어있는 저항할 수 없는 기제들, 뒤쳐진다는 공포가 세상 많은 이들에게 현실이에요. 실제로 어느 통계를 보면 현실의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을 두려워하지만 예술가들은 예외라고 나옵니다. 물론 이것이 가지고 있는 성찰의 힘도 있지만, 저는 그것 때문에 우리가 부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지선
실제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공연을 한다는 건 답이 없는 일 같아요. 지금 제가 활동하고 있는 프로듀서 그룹 이름이 ‘도트’인데, 과연 이런 시대에 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점이 또 다른 점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고민해보자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함께 가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임인자
저는 세상을 날카롭게 보려고 하지만 희망을 버리고 싶진 않아요. 작년에 형제복지원 분들하고 함께 활동하면서, 그분들에게 연극을 보여드렸거든요. 대부분 연극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라 심지어는 극중 연기와 실제를 혼동하시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렇게 몇 번 보시니까 이제는 제가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먼저 공연 보러가자 하시더라고요. 저에게는 그런 한 분 한 분이 너무 소중한 관객이라 그런 분들을 위해서 계속 연극을 하고 싶어요.
조형준
저는 아주 예전에 극단 생활을 하다가 나와서 동호회 활동을 했고, 다시 연극계로 돌아온 경우인데요. 당시 동호회에 있으면서 네티즌 연극제에 참여하기도 했고, ‘프로슈머’ 운동이란 게 유행할 때여서 대학로 삐끼 정화운동을 하는가 하면, 관객으로서 윤리와 의무 같은 걸 고민했을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기획자가 관객을 어느 위치에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얘기를 전개해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과연 파트너로서의 관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이 어디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관객 ‘개발’이라는 말 자체도 다시 고민해야 할 것 같고요.
오성화
저는 그 말씀에 백퍼센트 동의해요. 개별 극단이나 극장에서도 이런 걸 고민하실지 모르겠는데, 특히나 비영리성 민간 축제에서 관객은 후원자이자 지지자, 그리고 공연을 보는 존재이면서 홍보의 1차 창구라는 삼각구도에 놓여 있어요. 우리와 파트너십을 갖는 주된 관객군을 사고하는 게 특히나 축제에서는 필요한 것 같아요.
박지선
사실 관객은 그냥 관객이 아니라 그 축제를, 그리고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힘이잖아요. 후원자이면서 지지자인 사람들, 결국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주는 건 관객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기획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리스크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대범함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런 대범함이란 확신에서 나오는 거고 그랬을 때 새로운 관객들이 유입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임인자
중요한 말씀인데, 올해 변방연극제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포함해 현재 한국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문제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뤄보려고 하거든요. 어떤 분들이 관객으로 오실지 알 수 없고, 그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그래서 올해는 공공지원을 받지 않고 독립자금을 마련해보려고 하는데 사실 뭔가 확신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연극 자체가 스스로 그런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윤우
아마 더 하실 얘기들도 분명히 많으실 텐데요. 오늘 얘기는 여기서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오늘로서 세 차례에 걸친 좌담을 진행했는데요.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이런 기회들을 통해서 비로소 그간의 이야기들이 공론화되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태그 연극, 관객이 완성한다,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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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호   2015-04-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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