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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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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내게 남아있는 질문은 연극은 어떤 행위인가, 즉 우리는 뭐하자고 연극을 하는가라는 비교적 간단한 물음이다. [연극in] 은 지난 3월 「관객을 생각하자」라는 글을 시작으로, 장장 4개월간에 걸쳐 창작자와 기획자, 관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여덟 차례의 좌담을 마련했다. 나는 이 좌담의 내용을 기획·구성하면서 누군가의 생각을 짐작해보거나 나름의 가설을 세워보았고, 현장을 기록해 최종 편집하면서 그 짐작이 꽤나 빈번히 빗나갔음을, 그리고 내가 몹시 성마르게 어떤 가설을 증명하려 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 모든 기획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저간의 생각들을 기록해두기 위해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이야기들은 풍성하면서도 빈곤했고, 논의는 확장되는가 싶다가도 제자리를 겉돌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지난 좌담들에 대한 참여관찰자적 시선을 견지하려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질문은 결국 동시대 한국연극계를 횡단하는 수많은 목소리들 중 하나로 읽혀야 마땅할 것이다.

2.

‘연극, 관객이 완성한다’의 기획은 그간 한국연극계는 어찌하여 관객에 대해 작정하고 애기해본 적이 없었는지, 도대체 우리는 관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얼마나 알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자명하게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연극이 성립되지 않는 바, 우리는 고사(枯死)하지 않기 위해 관객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객석이 조금 더 채워지는 것에 안도했고 관객의 많고 적음에 일희일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관객을 개발해야 한다는 논리가 철저한 시장ㅡ소비자 이데올로기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좌담의 많은 말들 또한 바로 이 가치체계의 견고한 담장 주변을 오래도록 맴돌았다.

물론 여기서 순진한 표정으로 앉아, 여타 대중문화와 비교해 연극은 그들과 같은 산업이 될 수 없다고 쉬운 강짜를 부리거나 그래도 순수예술을 위한 지원금이 있으니 혼연히 창작혼을 불태워보자고 배짱을 튕길 생각은 없다. 두말할 나위 없이 연극은 관객을 공연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을 구축해야 하며, 소위 말하는 관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일에도 보다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것의 적용과 실천 영역을 설정하는 일이다. 우리가 아무리 관객을 알고자 노력한다 한들, 우리는 죽었다 깨도 그들을 고려해 작품을 만들 수 없다. 관객은 언제나 좋은 공연을 기다리지만 그 좋음의 기준을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하며, 설사 찾아낸다 하더라도 관객은 창작자가 의도한 대로 공연을 보지 않는다.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우리는 좌담 내내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 이 주제를 정성들여 말하고 또 말했다.

그렇다면 연극이 관객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연극이 관객을 참여자로서, 대화의 상대자로서 받아들이는 일이다. 재화나 서비스와 같은 상품을 소비하는 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연극을 함께 완성하는 이로 다시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간 한국연극계에서 관객의 목소리가 소외되어 왔다는 것이, 단순히 그들이 소수자나 약자였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느 좌담에서 한 관객 패널이 얘기했던 것처럼 오히려 ‘소비자’로서의 관객은 이미 충분히 ‘갑’의 위치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창작자도 기획자도 관객도, 연극을 통해 갑을관계에 놓이길 원친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또한 ‘손님이 왕’이라는 마음으로 관객을 섬겨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때문에 소외된 관객의 목소리를 복원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과의 만남을 고민하는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나는 이 이야기를 누구와 나누고 싶은지, 내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준비하는 일이다. 그동안 연극이 관객을 기만해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지불한 티켓 값에 상응하는 만족감을 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연극에 위임한 권한을 마치 원래 제 것인 양 휘둘러 왔기 때문 아닐까. 관객은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언제나 들을 준비를 완료한다. 공연을 선택하기까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되뇌면서 내가 듣고 싶은 것인지, 감당할만한 것인지 고민했을 것이며, 혹여 공연이 내 기대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자신의 선택을 책임질 각오를 홀로 외롭게 해왔을 것이다. 그런 관객과의 만남을 위해 연극은 어떤 준비를 했을까.

3.

내 개인적인 소회를 제외한다면, 아마도 여기까지가 좌담에 참여한 모두가 그럭저럭 동의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제 남은 숙제는 그 만남의 자기 방식을 찾아가는 일이다. 공연을 제작하는 과정에서부터 끝나고 후속 담론을 만들어 가기까지 나에게 딱 맞는 방법론을 찾는 것은 이제 각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다행히 우리는 이번 좌담들을 통해 관객들이 느꼈던 결핍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으며, 충분히 유효할 수 있는 공통의 아이디어들 또한 일정 정도 도출해낼 수 있었다. 패널 개개인이 대표성을 담보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우리는 ‘관객’ 일반에 대해 얘기할 수 없으므로 그 온도차를 확인함으로써 다름으로부터 창발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덟 차례의 좌담들을 통해 거칠게 정리한 몇 가지 물음들은 다음과 같다.

● 관객이 원하는 공연이라는 걸 얘기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창작자들은 어떤 맥락에서 관객이 원하는 공연을 만들어야 하는가? 관객은 창작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 관객은 공연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존재인가? 참여형 공연이 아닌 형식에서도 관객이 일방적인 수용자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는가? 관객은 연극의 어떤 요소인가?
● 기획자와 창작자의 파트너십은 관객과의 만남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관객을 만나는 데 있어 창작자보다 기획자가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인가?
● 창작자인 나는 내 공연에 맞는 관객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관객인 나는 나와 맞는 공연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 더 많은 관객을 만남으로써 나와 맞는 관객을 찾아가는 것과 타겟 관객을 설정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창작자로서, 기획자로서, 관객으로서 어디에 위치하는가?
● 관객들이 원하는 친절함은 무엇인가? 창작자들이 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치 않게 관객들에게 불친절하다면 관객들은 그것을 어떤 이유로 용인하는가, 혹은 용인하지 않는가?
● 관객 개발은 어떤 의미인가? 기존의 관객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이상적인 방식은 무엇이고, 새로운 관객을 유치하는 이상적인 방식은 무엇인가?
●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가? 관객들이 공연을 함께 보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은 어떻게 가능한가?
● 현재 연극은 관객과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있는가, 혹은 관객은 연극과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가?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관객을 알지 못한다는 막막함 앞에 맥없이 주춤거린다. 안 그래도 연극하기에 힘든 일들은 많고 많은데 이 정리되지 않는 물음들 사이에서 또 한 번 길을 잃는다. 그러니 여기서 질문은, 마치 자기 꼬리를 입에 문 우로보로스처럼 다시 연극을 겨냥한다. 관객을 생각하자는 제안은 곧 연극을 생각하자는 제안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연극은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편으로 나는 연극이 지금 이 시대를 얼마나 배반하고 있는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만남과 소통 방식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고통스럽게 자문하게 된다. 시대가 변화해감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 연극들에 대해 그것을 여전히 연극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를 따져 묻게 된다. 연극은 어떤 행위인가. 왜 관객이 있어야만 하는가. 왜 그들을 알아야만 하는가. 도대체 우리는 어쩌자고 연극을 하는 건가.

태그 연극,관객이 완성한다,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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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72호   2015-07-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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