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치극장 정미소는 그 특이한 이름만큼이나 대학로의 소극장 이미지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매력적인 극장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할 거리가 참 많지요. 일단, 정미소 극장을 설립한 윤석화 대표부터 해야겠네요.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여배우 윤석화는 방송통신대학교 뒤편에 있는 오래된 건물을 새로운 극장으로 탈바꿈하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답니다. 그때만 해도 정미소가 위치한 곳은 대학로에서 한참 변두리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윤석화 대표는 소극장 정신을 발휘, 극장에 맞춘 공연이 아니라 공연에 따라 가변적인 무대로 꾸밀 수 있는 공간을 마련코자 합니다. 이러한 계획은 건축가 장윤규에 의해 구체화되었지요. 그래서 2002년, 대학로에 설치극장 정미소가 만들어지게 되었답니다. 이전에는 목욕탕이었던 건물이 극장이 되어서 여전히 인간을 정화하는 임무를 유지한다는 점이 참 재미있습니다.
‘설치’ 라는 말에서 미술과의 친연성이 느껴지는데요, 실제로 건물 내부를 살펴보면 예전의 폐허공간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답니다. 1층 로비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천장이 유리로 되어있어 2층 공간이 훤히 보이기도 하지요. 마치 하나의 설치미술 작품 같습니다. 과거의 흔적을 매끈하게 마감하여 지워버리는 지금의 대학로의 인테리어 풍속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설치극장 정미소 2층은 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답니다.
배우가 설립한 극장이니 만큼 공연 공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은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설치극장 정미소 공간의 특징은 천장이 높다는 점입니다. 지하의 소극장들이 2층을 갖기 어려운 반면에 지상에 자리한 정미소 극장은 2층 객석을 보유할 만큼의 높이를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인즉슨, 높은 위치를 통해 조명과 음향의 효과를 온전히 보장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연극은 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또한 고정된 객석이 아니라서 연출에 따라 객석과 무대를 바꾸는 실험도 보여주었답니다. 극단 코끼리만보의 <맥베스>가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바로 그러한 무대를 선보였지요.
그래도 정미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들은 아마 중견 배우들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일 것입니다. 대한민국 대표배우 박정자 선생님의 <19 그리고 80>을 개관공연으로 올렸고, 윤석화의 <신의 아그네스>,<위트> 등이 장기공연으로 선을 보이기도 했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욱 빛을 발하는 공간이기에 모노드라마와 2인극 등의 형식이 이곳에 잘 어울리는 편이지요. 물론, 상연된 목록을 훑어보면 쟁쟁한 극단들의 작품이 정미소를 거쳐 갔답니다. 한태숙 연출의 <서안화차>, 극단 백수광부의 <미친극>, 조광화 연출의 <미친키스>, 이성열 연출의 <자객열전>, 극단 뛰다의 <노래하듯이 햄릿> 등등. 모두 한결같이 열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극이지요.
한편으로 어쿠스틱한 음악공연도 이뤄졌습니다. 아마도 공연예술 잡지 ‘객석’의 발행인인 윤석화 대표의 자리 주선 덕분이겠지요. 예전에는 노영심, 이루마 등등의 세미클래식 공연들도 상연되곤 했답니다. 설치극장 정미소는 이렇듯 연극과 음악과 미술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예술공간인 셈이지요.
설치극장 정미소는 2000년대 말부터 다양한 시도들을 해오고 있답니다. 정美소 창작지원 프로젝트를 열어 참신하고 가능성 있는 작품을 지원하는 제작극장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구요, 상주단체 프로그램을 통해 극단 백수광부와 극단 코끼리만보의 신작을 초연하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서울연극협회와 연계하여 관련된 축제와 공연을 수행해오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