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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채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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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6년 10월 26일(수)
장소: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참석: 윤민철, 정혜수, Kayip
사회: 박해성
기록, 정리 : 허영균

박해성

박해성
연극은 여러 디자이너와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오늘은 음향디자이너 세 분을 모시고 ‘공간을 채우는 소리’라는 화두에 초점을 맞춰 좌담회를 진행해 보겠다. 공연계 안에서 음향 디자이너는 상당히 소수다. 각자 어떻게 음향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섰는지 궁금하다.
윤민철
연기를 전공했으나, 그 안에서 외톨이였다. 음악을 좋아하니까 밴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는 학교에서 공연할 때 자연스럽게 음향을 맡기더라. 아무래도 음향이란 기계를 만져야 하는 일인데, 밴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도움이 되었다. 해야 하는 공연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음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음향을 하면 졸업은 쉽게 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졸업 후에는 동숭아트센터에 취직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 극장들은 ‘디자이너’를 채용했고, ‘음향 디자이너’라는 직책으로 작품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생활도 지속되자 한계에 봉착했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와 활동을 병행해오던 것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박해성
음향 디자인을 한지 얼마나 된 것인가?
윤민철
사회에 나온 뒤부터 계산하면, 15년 정도다.
박해성
Kayip 씨는 본업이 음악가다. 연극 음악, 음향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Kayip
실은 연극 작업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크리에이티브 바키 팀과 작업한 경험밖에 없어서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걱정하고 있다. 처음 인연이 시작된 것은 4년 전 부산에서다. 같이 작업을 해보자는 차원에서 만났는데, 대본을 받아볼 생각에 기대하고 갔더니 대본이 없었다. 이경성 연출이 말하길, 대본은 따로 없고 공동 창작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할 것이니, 흥미로우면 참여하라고 했다. 그때 걱정도 많이 됐지만, 호기심 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의 모습에 나도 열정이 생겼다. 고통스러운 4개월을 보내고 좋은 작품이 탄생했다고 본다.
박해성
음반 작업과 연극 음악 작업은 어떤 차이가 있나?
Kayip
독립적인 음악가일 때는 청자를 유념하면서 작업한다. 반면, 무대 작업은 청자 혹은 관객보다는 무대 위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작업한다. 배우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이 첫 번째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배우들이 반응하는, 이 결합이 유별나고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내 무대 음향 디자인의 첫 번째 기준은 배우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이다.
정혜수
대학 극회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밴드부에 가입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연극반에 들어갔다. 소리에 대한 관심이 연극반에서 발현이 되었고, 조금 더 본격적으로 음향을 해보고 싶어서 서강대 메리홀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이 무렵 민새롬 연출과 만나 극단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극단 청년단이다.
박해성
정혜수 디자이너는 청년단 결성 후 본격적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지만, 청년단 외의 팀들과도 활발히 작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혜수
프리랜서로 작업하기 시작한 것은 5년 되었고, 청년단은 8년차 단체다. 청년단은 특이하게도 스태프들만 모여 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우리끼리 새로운 작업을 많이 시도할 수 있다. 그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연출, 작업자와 연결이 되어서 프리랜서로도 활동하게 된 것이다.

음향, 효과에서 디자인으로

윤민철

박해성
공연의 일부로서 ‘음향’이라는 파트에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함께 붙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연극적 효과를 위해 사용되던 음향이 디자인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재현적 효과를 주는 요소에서 디자인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 변화와 진화의 과정을 지켜봐온 윤민철 디자이너가 목격하고 경험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 나눠달라.
윤민철
뮤지컬의 등장이 변화의 기점이었던 것 같다. 음향 디자인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에는 기술적인 부분과 디자인적인 부분이 혼재되어 있다. 뮤지컬 공연이 처음 시작했을 때는 AR로 공연을 했다. 그때의 사운드는 ‘폴리’ 하시는 분들이 담당하거나, 방송 음향을 끌어다 쓰거나, 남산 앞에 있던 녹음실에서 음향을 가져오거나 했다. 그 이후에나 무선 마이크를 사용하게 되고, 사운드 디자이너에 가까운 사람들이 등장했다. 극장 시스템을 이해하고, 기계를 잘 아는 사람들이 공연 음향계로 모이기까지의 시간이 꽤 길었다. 이후 사운드 디자이너, 음악 작업가 등이 적극적으로 공연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이제는 음악 감독과 음향 감독이 세분화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통칭해서 불리는 것이 아쉽다. 테크니션의 요소와 아티스트의 요소를 다 가진 역할이 음향 디자이너다. 그 두 가지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우리 이야기가 음향보다는 음악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은데, 단순화하자면 음악은 공간을 만드는 음악과 공간을 채우는 음악으로 나눠지는 것 같다.
박해성
동의하는 바다. 이러한 맥락에서 Kayip 씨에게 질문하고 싶다. 배우를 위한 공간성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드라마가 공간을 채워야 하는 상황 역시 발생한다. 그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갈등의 순간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Kayip
드라마가 있는 무대 작업을 해본 적이 없다. 영상 작업을 통해서는 그런 작업을 몇 번 의뢰받고 해본 적은 있지만, 선택해야 하고 그것 때문에 갈등한 경험은 없다. 바키와의 작업도 굳이 내가 맞출 필요는 없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그것으로 공연과 협업하면 됐다. 나의 작업을 가지고, 극단 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 공간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공연이 전달하고자 하는 에너지, 감정 등은 배우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 맞지 않나 했다. 드라마에 덧붙여 명쾌하게 도움을 주기 보다는 배우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고, 그 전달은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박해성
아마 다른 두 디자이너도 그런 생각이 있겠으나, 많은 연출들이 여기에 MSG를 뿌려주길 요구할 것이다.
Kayip
효과가 추가되면,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 유혹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박해성
얼마 전에 영화 <올드보이>를 다시 보았다. 두 번째로 보니 사운드가 없는 장면이 거의 없었다. 음악은 많은 청중들을 창작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폭력적으로 말해) 몰아가기 위한 강력한 무기로 사용된다. 많은 작가나 연출이 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경제적으로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연출로서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정혜수
내가 음향을 시작한 계기는 공간에 대한 흥미 때문이었다. 특정한 공간에서 관객들이 모여 공연을 본다는 자체가 흥미로웠고, 그 공간만이 풍기는 뉘앙스를 관객들은 흡수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시스템 디자인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본 무용 공연은 클래식 음악만 1시간 30분 동안 나왔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답답함이 고조되도록 디자인을 해두었더라. 적절한 밸런스의 클래식은 계속 듣고 있으면 평온해지는데, 아마 일부러 그랬던 것 같다. 대학로의 많은 공연장은 시스템적으로 한계가 많다. 그런 곳에서 힘주지 말아야지, 욕심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여기서도 뭔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간의 특성을 살려서 관객에게 전달해보자는 마음으로 작업한다. 공간을 만들고, 그것을 채우는 일은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박해성
소극장뿐만 아니라 중극장도 시스템이나 환경이 답답한 경우가 많다. 사운드 기술이 받쳐주지 않을 때, 예술로서의 한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어떤 예술들은 제약 조건이 더욱 많을 때, 더 정수가 드러나기도 한다. 연극에 있어 거의 모든 파트가 그렇다고 보는데, 음향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하드웨어에 얹혀 나오다 보니, 시스템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각기 다른 시스템 환경 안에서도 정수를 표현하는 일은 가능할까?
정혜수
작업했던 작품 중에 재공연을 많이 했던 것이 있다. 공간이 제각각이다 보니, 연출과 디자이너가 의도했던 질감이 변질될 때가 있다. 처음에는 시스템으로 그 차이를 잡아내려고 시도했는데, 신기하게도, 어떤 작품은 소리가 깨끗한 것이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더라. 소리가 묵직하고 투박해야 할 때가 있다. 거기서부터는 배우가 만들어가는 부분 같다. 소리가 이래야 관객에게 이런 느낌이 전달된다는 고집보다는, 하드웨어가 갖춰지지 않더라도 배우와 연출에 의해 그 느낌에 가까워질 수 있다. 즉, 하드웨어의 한계는 극복 가능한 것 같고, 배우를 통해 말씀하신 정수에 다가갈 수 있다.

표준화되지 않은 의사소통 방식의 어려움

박해성
극장에 들어가야 제대로 된 소리를 알 수 있다. 보통 음향, 음악은 이어폰으로 들려주거나, 이메일로 전달하기에 실제 공연에서 듣게 될 소리는 극장에 들어가서야 들을 수 있다. 이어폰으로 들려줬을 때와 극장에서의 사운드가 다르다고 느끼는 연출도 많을 것이다. 이 경우, 배우와 연출 등의 협업자들과 집약적인 의사소통이 필요할 것 같다. 특히 소리란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어서, 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묵직하다고 표현할 때, 그 소리가 어떤 소리를 말하는 것인지 서로 동의되지 않을 때가 많다. 이와 같은, 음향에 있어서의 의사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윤민철
음향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제일 고민했던 것은 ‘음향의 표준이 무엇일까?’하는 것이었다. 짧게 다녔던 장비 대여회사에서 일할 때, 소리에 대한 정의, 판단은 누구의 몫인지 궁금했다. 정의가 없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이 있었고, 여기에 내 젊음을 바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들춰본 책이 『Audio Engineering』, 『Golden Earring』 등이다. 우선 나부터 표준화가 되어야 된다고 봤다. 어쨌든 음향 기계를 다뤄야 하는데, 그 기계들은 대부분 수입이다. 그 기계를 잘 다루려면 결국, 그들이 정해놓은 음악의 표준을 알아야 했다. 외국의 엔지니어들은 음향을 표현하는 단어 자체가 표준화 되어 있다. ‘Muddy’하다 등이 대표적이다. 유행하는, 감각적인 단어로 음향을 설명하지 않는다.
선돌극장에서의 작업에서 ‘지구 돌아가는 소리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는데, 배우가 연기를 하고 극을 읽는 순간 이해가 되었다. 연출이 겪어온 삶,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와 의도를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가끔은 공장처럼 찍어내야 하는 공연도 물론 있다. 대본을 이해하고, 작업자들을 이해할 때, 표준화되지 않은 의사소통의 문제가 조금 해결될 수 있다.

Kayip

Kayip
여러 협업자를 만나 보았지만 배경이 완전히 같은 사람은 있을 수 없어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의사소통의 방법을 서로 맞추고 찾을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이 흥미롭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인내를 가지고 진행하는 것이 방법이 아닐까. 소리는 아무래도 다른 감각에 비해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 때문에 비논리적으로, 몸으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박해성
그래서 만약, 소리가 사람들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역할을 해야만 할 때, 소리야 말로 표준화된 문법을 따르기도 하는 것 같다.
Kayip
물론 그런 관습도 있어야, 사람들이 인지하는 ‘음악’의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 그 문제는 초기의 장벽이라고 보는데, 지난 세기를 돌아보면, 그런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한 흐름이 이어져왔던 것 같다.
박해성
말씀하신 것이 연극의 진화과정하고도 같다. 기존의 관습과 문법을 깨려고 하는 연극이지만, 막상 연극에서의 소리는 여전히 관습적이었다. 정혜수 디자이너도 이야기 하던 협업 과정에서의 의사소통 경험을 들려 달라, 청년단의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정혜수
청년단은 배우 없이 스태프들끼리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한다. 작품을 정하고, 그때마다 파트별로 해보고 싶은 것을 가지고 온다. 기본적으로는 밖에서 다들 프리랜서로 작업하니까, 자기가 진짜 하고 싶었지만 외부에서 시도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 그런 구상을 먼저 한 뒤, 배우를 섭외하려고 한다. 배우에 대한 결정은 연출부와 드라마투르기가 하지만, 음향으로 말하자면, 리딩 단계에서 배우의 목소리나 톤이 만들어 내는 세계가 생긴다. 소리를 만들다보면, 마치 영화나 만화처럼 머릿속에 그림이 생기는데, 그 그림은 배우의 목소리 톤에 따라 결정된다. 청년단에는 김정현이라는 음악감독이 있는데,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 자기 작업을 가져와 수정하고 맞춰 가는데 어려움이 없다. 아마 오래 함께 작업한데서 오는 긍정적인 작업 방식이 아닐까 한다.

의도와 의도사이, 선택과 갈등의 순간

박해성
작업하면서 좌절을 느껴본 경험은 없는가? 우리는 관습적이고 자극적인 소리에 익숙해져 있어서, 약간의 변화를 주었을 뿐인데, 생경해 하는 경우가 있다. 극장의 설비 자체가 매우 섬세하지 못한 것도 좌절감을 주기도 할 것이다. 연출자나 제작진이 소위 막귀여서, 이들과 협업하는 것 자체가 난관이었을 수도 있고, 다양한 사례가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좌절 요소들 때문에 디자이너의 작업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윤민철
작업할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뭐로 소리 들으세요? 집에서 컴퓨터로 들으세요? 이어폰으로 들으세요?’이다. 이어서는 ‘극장에 들어가면 소리가 조금 다를 거예요’라 말한다. 대부분의 연출들은 연습실에서 나온 소리가 표준이라고 생각한다. 연습실은 가장 소리 환경이 안 좋은 공간이다. MP3, 블루투스, 노트북으로부터 흘러나온 소리를 들으며 연습한다. 저도 실제로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작업한다. ‘저도 이어폰으로 작업하고, 극장에서 들어요. 저와 같은 입장이니 함께 만들어보죠’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말이다. 음향이라는 분야가 특화된 파트는 맞지만, 결국 종합예술인 연극의 일부 요소이다. 정혜수 디자이너가 말했듯이, 나도 작품을 만들 때 배우의 소리를 많이 듣는다. 배우들의 목소리가 톤을 많이 만들어준다. 또 하나는 관객들의 힘을 믿는 것이다. 한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함께 녹아들어가는 분위기가 있다. 극에 몰입하면, 소리가 안 들릴 때도 많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Kayip
관객의 관점에서 결정하는지, 예술가인 나의 의도를 선택하는지에 있어서 고민은 없다. 내 의도가 중요하다. 관객의 취향, 다른 작업자들의 취향에 맞추지 않는다. 내 배경과 스타일을 먼저 보여주고, 그것을 이해시키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면 힘든 순간들이 온다. 실패하기도 한다. 실패의 순간들이 다음 작품에 도움이 된다. 그러다보면 내 의도를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을까?
정혜수
관객을 만나기 전, 함께 하는 작업자들이 적어도 음향에 있어 관객이 되어준다. 내 의도가 있다 한들, 현재 관객들의 피드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음악은 매우 주관적인 매체다. 내가 어떤 내러티브 속에서 소리를 전달할 때 100% 확신한 적은 없다. 극장에 들어가서도 주위의 의견을 많이 물어보고, 그 피드백을 내 의도 안에서 조정한다.

이상적인 음향 디자인의 협업 모델

박해성
다양한 협업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음향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협업의 모델은 무엇인가?
윤민철
사운드가 온전히 공연의 형태를 취하는 작업을 고민한다. 사운드가 모체가 되는 공연이다. 시도도 해봤고, 시행착오도 겪었다. 이러한 시도의 목적은 사람들의 귀를 민감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귀에 휴식을 주어서 다시 민감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 공연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달려간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희망을 느낀다.
Kayip
다른 매체와 만나는 것이 내 관심분야다. 두 매체를 기계적으로 붙여 놓는다고 하여, 새로운 형태의 뭔가가 탄생하지는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새로운 작품은 많지만, 두 매체가 만났을 때 서로 작동원리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피드백 과정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매체와 작업하는 사람들과 만나 근원적인 것에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공연의 형태에 한정한 이야기는 아니다. 얼마 전에 정영두 안무가와 작은 규모의 작업을 진행했다. 3명의 국악 연주자와 3명의 무용가를 팀을 만들어 작업을 했다. 그때 하나의 모티브를 정했는데, 일원성이다. 공통의 조상을 둔 진화의 메커니즘이 무용과 음악을 만나 어떻게 해석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영향을 어떻게 주고받는지 실험한 것이다. 결과물 자체가 완성품은 아니었지만, 과정은 흥미로웠다. 그런 작업이 가능하고 열려있는 것이 나의 꿈이다.

정혜수

공간의 재생과 확장

정혜수
청년단이라는 곳은 디자이너들의 교류가 자연스러운 집단이다. ‘이번에는 음향위주로 가보자’ 등의 논의가 장난, 진담으로 가능한 작업 환경에 있다. 관객에게 다가갈 때, 어떤 지점에서 관객을 건드리고 움직이게 할까를 아무리 고민해도, 결국 기억에 대한 자극이 아닐까 한다. 관객이 어딘가에서 접해봤을 법한 소리의 기억에 맞아 떨어지면, 논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디자이너는 거기에 새로운 것을 첨가해서, 익숙한 것을 낯선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결국 음향 디자인은 감각적인 일이면서 동시에 논리적인 기억을 자극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힘의 원천

박해성
나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작업자 중 한 명인데, 단 한 순간 행복할 때가 있다. 공연 때마다 일종의 시그니처로 삼는 사운드가 있는데, 그 소리를 극장에서 관객과 함께 들을 때 희열을 느낀다. 세 분은 공연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힘의 원천이 되는 순간이 언제인지 여쭤보고 싶다.
윤민철
새로운 작업자가 나타나서, 나와는 전혀 다른 사운드를 내줄 때다. 가끔 공연을 보러 가서 공연장에서 음향에 놀랄 수 있을 때,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나와 공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때 정말 기쁘다. 자극이 되고, 배움이 되고, 행복하다.
정혜수
동감한다. 저보다 어린 음향 디자이너를 아직 많이 보지 못했다. 음향 전공자들은 대부분 극장에 취직한다. 그만큼 수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리랜서로 음향 디자인을 하려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공연을 봤을 때, 소리에 감동받을 때면 생각이 많아지고, 그 자체가 나를 환기한다. 음향 디자이너가 많아져야 다양한 소리도 탄생할 것이다. 그래야 결과적으로 공연 자체가 풍성해지고, 질적으로도 성장할 것이다. 또 그렇게 되면 대학로의 많은 소극장들이 시스템적으로 음향에 신경을 쓸 것이다.
Kayip
행복한 순간은 배우들과 만나는 순간이다. 결과물이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주느냐 보다 리허설 때 배우들이 음향을 발판으로 표현할 때 행복하다. 더 넓게 창작의 순간에서 보면, 사실 행복한 순간은 많지 않다. 대체로 불만족스럽다. 그래서 인지, 예전에 불만족스러웠던 원인이 되는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았을 때, 그 실수를 극복했다고 느끼는 순간 행복하다. 의외라 생각하겠지만, 일로서는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 과정 속에서 서로의 다른 언어를 맞춰가는 과정, 공통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 자체가 행복하다. 그에 대한 결과물은 나중의 문제다.
박해성
극장 혹은 공간을 최종적으로 채우는 것은 결국 소리일 것 같다. 소리는 조명의 틈, 세트의 틈, 배우 소리의 틈도 채운다. 그렇기에 그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다. 디자이너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훨씬 많은 부분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공연에서 음향 디자인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음향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기준과 귀를 믿고 작업을 해주면, 공연 공간이 더욱 풍성하게 채워지는 것 같다. 음향 디자이너 세 분을 한 자리에 모시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좋은 말씀 감사하다.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태그 공간, 소리, 음향 디자이너, 허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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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호   2016-11-03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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