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TOP

연극인

검색하기

빛의 세계, 풍경을 그리는 사람들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일시: 2016년 11월 7일(월)
장소: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참석: 김형연, 노명준, 최보윤
사회: 민새롬
기록, 정리 : 허영균

민새롬
하반기 공연 준비로 바쁘신 중에 모여 주어서 고맙다. 크게 두 측면에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하나는 조명 디자이너의 실제 작업 과정과 방식, 협업의 노하우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명 디자이너가 된 계기와 배경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명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노명준

노명준
고등학교 때까지 쭉 미술을 했다. 순수회화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던 중에 입시 책에서 ‘연극과 내 무대미술 전공’을 처음 보았다.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지원해서 입학하게 됐다. 으레 그렇듯이, 연극과를 다니며 세트 디자인도 하고, 의상도 담당하고, 전 방위로 작업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인가 작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자고 있던 나에게 막 제대한 선배가 “같이 조명해볼래?”라는 말을 건넸다. 그것이 첫 시작이었다. 경험해보니 조명 작업이 작품과 함께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는 다른 작업은 하지 않고 조명 디자인만 했다. 졸업 후에 호암아트홀, 두산 아트센터에서 근무했는데 직장을 그만둔 후에야 ‘어떤 조명 디자인을 해야 하나?’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왜 이 길을 택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최보윤
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휴학 중에 일본의 극단 다카라즈카의 공연을 영상으로 접하고 한 배우에게 반해버렸다. 오타쿠 기질이 있어서 그 배우 팬 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게 됐다. 꽤 열성적이었다. 한참 후에 그 배우가 극단에서 탈퇴한다는 이야길 듣고, 2박 3일로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갔다. 그 공연을 본 뒤로 다시 수능을 보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연출 전공이었는데, 3학년이 되었을 때 처음 조명 파트를 맡게 됐다. ‘젊은 연극제’ 기간이었고, 공연장은 ‘달오름극장’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달오름극장에 공연을 올리려니 정말 힘들었다. 디자인을 준비하는 과정은 머리가 아팠고, 셋업에 들어가니 몸이 너무도 피곤했다. 일을 모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매일같이 밤을 샜다, 밥도 못 먹었다. 그때 다시는 조명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닌 듯 했다. 고생 끝에 공연을 올리는 날, 오퍼레이팅 실에서 무대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무대가 밝아지는 모습에서, 종교는 없지만 흡사 천지창조에 버금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뒤로 졸업 전까지 연출과 조명을 병행했다. 요즘도 함께 작업하는 김재엽 연출이 대학원생이던 시절에 함께 문화일보홀에서 공연한 일이 있다. 당시 내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극장 조명 감독은 기본도 모르는 애가 조명을 한다며 엄청나게 혼을 냈다. 그 일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조명 공부를 하려고 조사하다 무대예술 아카데미를 알게 됐고,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본격적으로 김창기 선생님 어시스턴트로 조명 작업을 시작했다.
김형연
심리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뒤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취직이 어려운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돈 벌기는 싫고, 놀고 싶었다. 그땐 다들 노는 분위기였다. 졸업 후 한량이던 시절 미대입시 요강 책을 봤는데 거기에 연극원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수능을 안 보고 실기로만 학생을 선발한다니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는 광고회사가 최고의 인기 직장이었는데, 연이 있던 광고회사에서 소개해준 여의도에 위치한 회사에 잠깐 다닌 일이 있다. 일종의 이벤트 회사였는데 알고보니 실상은 정치 행사를 치르는 곳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는 한 달 만에 그만 두었지만, 그 회사에서 진행하던 콘서트 무대 등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생각을 언뜻 했다. 아마 그 이유로 입시 책을 보았을 때 무대미술과에 대한 설명이 눈에 확 들어왔던 것 같다. 3개월간 미술학원을 다닌 뒤 실기 시험을 보고 입학했다. 주변에서 말하기를 ‘졸업발’이라고, 졸업하고 입시하니 말발이 좋아서 합격했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도 무대 작업에 관심이 있지만 조명을 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는 3학년 때부터 였고, 유학을 다녀온 2005년부터 현장에서 작업했다.
민새롬
세 분이 조명 디자이너로 출발할 무렵의 공연 환경은 조금씩 달랐을 것 같다. 프로덕션 내에서 조명 디자인의 역할과 디자이너의 위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개인의 경험을 살려 이야기 해 달라.
최보윤
더 어렸을 때니까, 작고 열악한 극장 작업이 많았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을 많이 했는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해야 했다. 같이 작업하는 연출 가운데 그때부터 함께 했던 사람들이 많다. 그들도 10년 전엔 더 젊었으니,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작업 환경도 변하고 있다.
김형연
극장에 취직한다던가, 팀의 일원이 되거나 하지 않고 처음부터 프리랜서로 시작했다. 이수인 연출, 김동현 연출 등과 작업을 시작했는데, 두 연출은 학교에서는 알지 못했지만 졸업하고 연이 닿게 되었다.
노명준
아직 학교를 졸업 못했다. 재적 상태에 있다. 재학 중에 외부 공연에 크루 등으로 많이 참여했고, 4학년 2학기 때 호암아트홀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막연하게 프리랜서로 출발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호암아트홀을 추천한 선배가 크루는 많이 해봤으니, 극장에서 일을 배우는 경험도 해보라고 조언했다. 호암아트홀은 클래식 음악 공연이 대부분이라 공연에 대한 경험치가 크게 늘지는 않았다. 이후 예술의전당으로 직장을 옮겨 1년 3개월간 근무했다. 좋았던 것은 극장 감독으로 근무하면서 예술의전당의 좋은 공연을 모두 볼 수 있었던 점이다. 작업을 하는 것만큼 좋은 공연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감독님들이 가져오는 도면을 보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 그다음 직장이 두산아트센터다. 두산아트센터에 근무하면서 가장 공부를 많이 했다. ‘스페이스 111’ 소극장은 대부분 제작 공연을 올리기 때문에 기획, 제작 과정에 모든 극장 스태프가 참여한다. 이때 현장 디자이너들도 많이 만났다. 두산아트센터에 있으면서 좋은 공연이 완성되어 가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오퍼레이팅도 보고, 감독님들을 돕기도 하면서 작업을 위한 근육이 길러졌고, 그것이 지금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토대가 되었다.

작업에 시동 걸기 - 최근 작업 경향과 나의 작업 방식

민새롬
세 분의 출발점이 다른 것이 흥미롭다. 물론 전 방위로 작업하고 계시지만, 요즘의 작업 경향은 어떠한가?

김형연

김형연
거의 대부분 연극이다. 다른 두 분에 비해 내 작업량이 월등히 적을 것이다. 나는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활동 초반에는 전통 콘서트나 하루짜리 음악 공연도 종종했는데 소모되는 느낌이 컸다. 음악, 무용 공연도 물론 하고 싶지만, 최근의 작업이 거의 연극인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내가 긴장하는 것을 너무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용 공연은 계속해서 수정과 조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연극은 상대적으로 약속된 상황에서 조명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에게 더 맞는 일인 것 같다.
최보윤
주로 연극이 많고, 음악 공연도 종종 한다. 최근 공연은 화엄사에서 했다. 당일까지도 결정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리허설도 제대로 못했다. 거의 라이브에 가깝게 공연을 마쳤는데, 연극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 무용 공연도 했었는데, 내가 무용 공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인지 안무가와 소통 과정에서 연출 포인트가 달랐다. 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무용 공연의 조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노명준
딸이 태어났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기획사가 있는 아동 뮤지컬을 했는데, 작업 과정이 생소했다. 대개는 연출과 이야기 하면서 작업을 완성하는데, 조명에 대한 (연출) 노트를 기획사 PD가 했다. 이미지를 많이 소모한다는 느낌이었다. 작품을 완성해나가기 보다 예쁘게 포장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뮤지컬 배우 최정원 씨가 출연한 뮤지컬 콘서트를 한 적이 있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순발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콘서트를 잘 모르니 지금까지 봐온 공연이 레퍼런스가 된다. 극단 청년단에 속해있기 때문에 정극, 연극 작업이 가장 많다. 가장 최근에는 정의로운천하극단 걸판과 함께 가족 음악극 <앤>을 재공연 했는데, 재공연을 통해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치니 큰 공부가 되었다.
민새롬
각자의 창작 세계가 궁금하다.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고, 진행하는지 묻고 싶다.
김형연
가장 먼저 텍스트를 읽는다. 연극이기에 텍스트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딱 한 번만 읽는다. 텍스트를 읽기 전까지는 작품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첫 리딩에서 배우들의 목소리로 텍스트를 듣는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첫 리딩에는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민새롬
첫 리딩에서 받은 인상이 작업의 기초가 되는 것인가?
김형연
그렇다. 작업을 하다보면 첫 인상의 흔적이 많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내가 읽는 것과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것은 매우 다르다. 어떤 디자이너는 아예 텍스트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배우를 만난다고 하는데 그것도 이해된다.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최보윤
나는 발동이 늦게 걸리는 편이다. 제일 중요하게 그리고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이번 작품에서 조명이 해야 하는 역할이다. 연습 과정에서 첫 대본과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제일 기다리는 것은 첫 런쓰루다. 런쓰루를 통해 이 연출과 배우들이 만들고 싶은 공연이 무엇인지 느낀다. 느낌이 오고 나면, 조명이 어떤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지가 그려진다. 첫 흥분이 중요하고, 그것이 작업을 시작하는 동기가 된다.
노명준
호퍼나 램블란트 등 화가의 그림을 많이 본다. 최근에 생긴 습관으론 내가 20대에 찍었던 사진을 참고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작품에 적용하기 위해 풍경도 찍고, 시간대별로도 많이 찍어 두었다. 그 사진들이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준비하는 작업과 결이 맞는 이미지를 발견하고 이용한다.

서포터에서 주체로 - ‘나의 작업’이 되는 협업

민새롬
협업하고 싶은 작업자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스태프가 속해있는 프로덕션은 단점이 있더라도 참여하는 편이다. 작업을 선택하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면?
노명준
오태훈 무대디자이너가 속한 프로덕션엔 무조건 들어가려 한다. 작업의 시너지가 생기는 디자이너다.

최보윤

최보윤
내가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고 느끼게 해주는 극단들이 있다. 최근 남산예술극장에서 <나는야 연기왕>이라는 공연을 마쳤다. 조명이 큰 역할을 하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이 작품의 배우들을 진심으로 지지했다. 또 극단 동의 강량원 연출과의 작업이 기억에 남는다. 일단 철두철미하게 연습하는 극단의 모습이 놀라웠다. 평소 강량원 연출을 선생님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나를 동료로서 대하고 내 작업을 기대해주는 것이 정말 좋았다. “이번엔 어떤 구상으로 나를 놀라게 해주실 거예요?”하면서 소년 같은 눈빛을 빛내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연습을 본 뒤 디자인을 구상하여 극단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배우들도 자신들이 위치할 공간을 꼼꼼히 살폈고, 성숙한 교류와 대화가 가능했다. 강량원 연출은 내가 제시하는 개념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줬다. 한 사람의 예술가, 한 사람의 동료로서 동등하게 서로를 대우하고 작업한다는 것의 기쁨을 느꼈다. 사실 많은 부분에 있어 조명은 다른 영역들이 잘 보이게 하는 서포트로서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극단 동과의 작업은 주체가 되는 조명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다.
김형연
대부분의 작업에 내가 하고 싶은 말, 내 목소리를 많이 냈다. 운이 좋았다. 극단 동과 작업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이 연출가와 작업으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민새롬
노명준 디자이너는 ‘뉴스테이지’ 등의 프로그램을 맡는 등, 젊은 연출가들과 협업에 적극적이다. 젊은 예술가, 젊은 단체와의 협업 과정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경험을 나눠달라.
노명준
두산아트센터 근무 당시 공연 <뻘>을 했다. 이 공연의 조연출이던 전진모 연출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전 연출은 졸업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조명 디자이너가 필요했던 모양인지 내게 부탁을 했고, 운 좋게도 퇴사 시기와 맞아 <고독은 커다란 귀>라는 작품을 함께 하게 됐다. 이 작품을 통해 소위 신진 연출가들을 많이 만났다. 젊은 연출가들과의 작업은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래서 작업도 즐거웠다. 조명의 특성상 서포터로서의 기능도 해야겠지만, 창작자로서 연출가와 가장 긴밀하게 작업하는 분야가 조명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연출들과 작업에 적극적인 것은 그들과 작업의 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고, 그들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새롬

조명 디자인의 난제와 해결 방식

민새롬
연출이나 무대디자이너 등과 협업 과정에서 갈등 혹은 의견 충돌 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가?
노명준
조명 디자이너가 부딪히는 난관 중 하나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쉽다. 요즘은 3D 등으로 미리 작업을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지만 그건 야외 콘서트 등에나 적합한 방식이다. 연극처럼 밀도 있는 작업은 연출가와 대화하는 것밖에는 방도가 없다. 작업이 준비되기 전에는 글을 본다던가, 이미지를 찾는다던가, 대본에 관련한 책을 본다던가 하는 식으로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최보윤
조명은 맨 마지막에 진행된다. 따라서 문제가 될 만한 요소를 본격적인 작업이 진행되기 전에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문제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대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생기는 문제와 마찰은 대화로 해결하는 수뿐이다.
노명준
극장에 들어가서 연출들이 동선을 바꾸고, 탑 위치를 바꾸게 되면 난감하다. 물론 수정은 가능하지만, 조명의 경우는 수정할 때 품이 많이 든다.
최보윤
“조명이 해결해주세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조명기나 회로를 다 써버려서 해결할 수 없을 때도 많다.
민새롬
소극장, 대극장, 야외 공연장 등 공연장의 차이에 따라 작업의 접근 방식도 달라지나?
김형연
프로덕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극장에 따른 차이는 없다.
최보윤
해결하는 과정이 달라질 뿐이다. 조명은 다른 스태프들이 미리 작업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스태프들의 코멘트를 가장 짧게 듣게 된다. 극장에 들어간 후, 셋업과 메모리 과정을 거친 뒤에나 사람들이 조명을 볼 수 있다.
노명준
연극 조명은 무대 세트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무대 디자인에 변동이 있을 때 미리 협의가 필요하다. 아니면 작업에 리스크가 크다.
최보윤
연출에게 미리 조명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두는 편이다. 그림을 잘 못 그리지만 나름대로 스케치를 해서 연출에게 보여준다. 각 장면에서의 색감, 조명의 위치를 미리 공유해두면 나중에 많이 수정해야할 일은 거의 없다.
민새롬
요즘에는 무대 세트가 없는 작업도 늘고 있다. 그럴 때 조명 작업은 어떤 영향을 받나?
최보윤
음악 공연은 세트가 거의 없다. 배경막, 기둥 정도가 전부다. 세트가 없다는 것은 결국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무대를 채우겠단 뜻이니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훨씬 더 많이 해야 한다.
민새롬
예전에는 조명 디자이너가 반드시 이미지를 제공해주어야 했다. 무대 디자이너와 조명 디자이너가 서로의 할당량을 채우듯 작업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들어 두 파트 간의 협업이 훨씬 유연해진 것 같다. 또 무대에 대한, 조명에 대한 부분적인 칭찬보다는 작품 자체에 대한 칭찬과 해석이 많아지고 있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로 좋은 역할을 맡는 것보다 좋은 작품, 좋은 프로덕션에 속하는 것에 더 큰 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것이 10년 사이에 공연계에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다. 그렇다면 조명 디자이너에게 있어 나의 작품, 나의 작업의 의미는 무엇인가?
노명준
조명이 좋았다보다 작품이 좋았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좋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 방향 같다. 모든 스태프들이 바라는 지향점 아닐까 한다.
최보윤
그 고민은 계속해서 변한다. 요즘에는 무대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공간과 그 안에서 배우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빛이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을 어떻게 보이게 해야 할까 고민한다. 빛이 그들이 사는 공간의 기류라는 생각을 한다. 그 기류 혹은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고 구성해야 할지가 요즘의 고민이다. 아마 그것이 나라는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오롯한 나의 세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작품이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조금은 다른 빛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조명 디자인의 현 위치와 다가올 미래

민새롬
무대에서 영상 사용이 보편화되고 있다. 영상의 등장은 무대에서의 조명 역할에 많은 영향을 끼친 걸로 안다. 이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그리고 각자가 생각하는 조명 디자인의 미래에 대해서도 짤막하게 이야길 나눠보자.
김형연
무대, 조명, 영상의 협업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영상 역시 빛이다. 또 하나의 조명이고. 개인적으로는 무대, 영상, 조명이 다 섞인 작업을 해보고 싶다. 다른 방식으로 조명에 접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최보윤
나는 조명밖에 할 줄 몰라서 불안하기도 하다. 연극은 기술이 곧 자본이다. 조명은 그에 비하면 매우 아날로그적인 작업 영역이 남아있다. 연극 외에는 음악 공연에 흥미가 있다. 음악 공연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 점이 참 즐거웠다. 다양한 조명 장비를 쓸 수 있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나를 자극하고 확장하고 있다.
노명준
극단 청년단에도 영상 디자이너가 있다. 함께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영상과 조명은 서로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역할이다. 규모가 있는 공연의 경우 기본적으로 영상이 사용된다. 조명이 해야 될 몫이 줄고 있다는 생각도 물론 든다. 하지만 최근 제작되는 공연의 동향은 영상이 보여주는 직접적인 이미지보다, 빛이 만들어내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더욱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다시 조명의 비중이 커질 것 같기도 하다.
민새롬
조명은 극장에 들어간 뒤에야 그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관객이 무대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달라진 조명 디자이너의 역할과 비중, 앞으로 조명 디자인의 역할까지 긴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사진: 최윤우(본지 편집장)]

태그 빛의 세계, 조명 디자이너, 허영균

목록보기

제104호   2016-11-17   덧글 0
댓글쓰기
덧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