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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가 주인이 되는 예술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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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7년 1월 23일
장소: 서울연극센터 1층
사회: 박해성
참석: 이연주, 이오진, 이은서, 전윤환
기록 및 편집: 김슬기

박해성

박해성
2017년 웹진 『연극in』에서는 연극 지원제도에 대한 새로운 기획을 시작합니다. 오늘 모신 분들과 함께 얘기해보고 싶은 것은 청년예술가, 혹은 신진예술가 지원에 관한 것인데요. 이미 공공과 민간에 이에 해당하는 여러 이름의 지원제도가 있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올해 서울문화재단에서 또 다른 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구체적 방향과 계획들을 세워가는 단계라고 하네요.
그동안 예술가들이 어쩔 수 없이 행정가들이나 정책 입안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를 따라가는 입장이었다면, 이런 자리들을 통해서 현장의 목소리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한 정책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좌담에는 연극을 쓰고 연출하시는 이연주 연출님, 극작하시는 이오진 작가님, 그리고 이은서, 전윤환 연출님 함께 자리해주셨습니다.

누구를 ‘신진’으로 부를 것인가?

박해성
최근 5-6년 사이에 연극 지원제도와 관련해 ‘신진’이라는 말이 크게 대두되었는데요. 일종의 구호처럼 각종 기관과 조직에서 이에 해당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각 제도의 차이점 혹은 변별점에 대해서라면 다들 체감하시는 바가 다를 텐데요. 바로 그 세부적인 경험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여러 사업을 두루 거치신 분이 계시는가 하면, 독립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신 분도 계시고 조금씩 다른 입장에서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나는 ‘신진’인지 아닌지, 왜 ‘신진’으로 분류되는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어째서 그러한지에 대해서 얘기해볼까요. 나이 혹은 경력 등 ‘신진’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지원정책이 추구하는 가치나 지향이 달라지잖아요.
이연주
제가 이번에 뉴스테이지를 하면서, 나이로 따지면 신진이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요(웃음). 다행인지 이 사업은 3년에서 7년 사이 경력이 자격 요건이었기 때문에 제가 신진으로 분류될 수 있었던 거죠. 한편으로는 사업 이름이 ‘뉴’스테이지인데 무엇이 ‘뉴’인지에 대한 이해나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작품이 ‘뉴’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어요. 정작 저는 한 번도 제 작품에 ‘뉴’라는 잣대를 대보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니 좀 당혹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오진
‘신진’, ‘유망’ 이런 말들을 접할 때 느껴지는 불쾌함 같은 것들이 있죠. 그걸 내가 의식하고 있다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무엇보다, 그들이 어떤 프레임에 나를 집어넣느냐와 상관없이, 그러한 시선이 내 작품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연주
이런 과정들을 겪고 나니, 신진이라는 것은 결국 이제까지 눈에 잘 안 띄었다가 이름이나 작품이 거론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싶어요. 그건 말하자면 연극계 안에서의 시선인 거고, 지원사업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괴리감과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어떻게 부를지, 그리고 그 사업을 뭐라고 이름 붙일지, 그 모든 맥락에서 당사자들은 객체로 놓이는 거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 이름에 제가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다고 제 작품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박해성
지원을 선정하는 기관이나 주체가 논평을 시작하는 거죠.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그걸 이용하기도 하고요. 대개 기금을 받기 위한 지원서를 쓴다는 게, 작업을 소개하기보다는 말 그대로 지원금을 따내기 위한 글이 되게 마련이니까요. 새로운 거 원하시죠,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대상화하죠. 우리 모두가 그런 기억이 있지 않을까요.
이은서
저는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연극계에 아는 사람들이 전혀 없이 활동을 시작했어요. 처음에 창작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주변에 알음알음 물어보니 대개 공모를 통해서 작업을 한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사례는 지급하지 못하지만 뜻이 좋으니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작업하는 프로덕션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 재정적인 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공모를 선택하는 게 저한테는 최선의 방법이었어요. 그런데 심사 과정을 경험해보니 저는 말 그대로 연극계 안에서 듣도 보도 못한 애였고, 그 정체성을 인식하는 순간 나도 연극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학교를 선택한 것도 그것 때문이고요.
전윤환
저는 사실 그 어떤 지원도 받은 적이 없는데, 시도하지 않은 게 아니고 엄청나게 문을 두드렸지만 다 떨어졌기 때문이거든요(웃음). 몇 년 전 서울연극협회 미래야 솟아라 심사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처음 보는 심사위원이었는데, 저한테 “내가 왜 널 지원해 줘야해?”라고 질문하셨죠. 그러면서 그 프로그램에 어떤 사람들이 원서를 썼는지 아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매년 자기 돈 들여서 열심히 연극을 해왔다는 거였죠. 단지 이들이 모른다는 이유로 지난 6년간 내가 해온 작업들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어요. 지원 사업에 선정되려면 연극계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걸 그때 알았죠. 그 이후로는 점점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고요.
이은서
솔직히 말하면 저는 연극원 연출과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걸 이용했던 것 같아요. 이전에 프린지에서 활동할 때는 당신은 프로냐 아마추어냐, 혹은 앞으로 연극을 계속 할 거냐, 라는 질문을 계속 받았거든요. 그런데 학교 학력을 쓰면서 그런 질문은 한번도 받은 적이 없어요. 그것만으로 이미 정체성을 의심받지 않게 된 거죠.
전윤환
그런 방식으로 젊은 창작자들을 기성으로 만들어버리고 제도화시키는 거죠. 솔직히 이제는 저도 어떻게 하면 지원받을 수 있는지 눈에 보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지원서를 쓸 때마다 과연 이게 내가 원하는 건지 자괴감이 들어요. 저는 근본적으로 연극계 안에서 소위 ‘주류’라는 걸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한국연극』이나 『연극평론』이랄지, 연극 관계자들도 이런저런 사업의 선정작들에 관심을 갖잖아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창작자들 작품을 보러 가지 않죠. 그러니 특히, 아직 연극계에 알려지지 않은 창작자들 입장에서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일이 더더욱 어려워지는 거고요.

새로워진 ‘계’의 질서, ‘신진’은 어떻게 유효한가?

박해성
지금 해주신 얘기들을 바탕으로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연극계’라고 했을 때, 그 ‘계’의 맥락에서 ‘신진’의 개념을 읽어보면 왜 이런 제도가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새로운 피가 필요한 거죠. 큰 그림으로 보자면 연극계가 되는 거고, 그 안에서도 이를테면 한 명의 원로 연극인을 정점으로 그 미학을 이어갈 수 있는 다음 세대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연극을 시작하기 위해 주로 극단에 들어가 조연출 같은 생활을 오래 했잖아요. 그러면 그 안에서 예측 가능하면서도 컨트롤되는 다음 세대가 길러지고 미학적인 안정성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고요. 물론 신진들은 계의 시스템을 충실히 따른다는 전제 하에 그 안으로 들어간 거고요. 그런데 지금, 그 어떤 계의 바깥에서 내 작업을 하고 싶은 진짜 신진들한테 여전히 그 계의 질서를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전윤환
아이러니한 건 ‘뉴’, ‘영’, 이런 작업이나 사람들을 원하면서 지원제도 자체는 ‘올드’하다는 거예요. 저는 기성의 제도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기 때문에 대개의 사업들이 성과주의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애초에 누가 뭘 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열어놓지 않는 거죠. 말하자면 우리 제도를 잘 이용해서, 여타 사업들보다 우리 사업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거잖아요. 그리고 예술가들도 그 경쟁에 뛰어들어야만 해당 기관의 다른 사업의 수혜를 받기 수월해지고요. 저, 여기 출신이거든요, 이런 걸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박해성
제도라는 것이 계의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본다면, 최근 몇 년 사이 현상적으로 계 자체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겠죠.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이제는 계의 일원이 되신 건데, 예전처럼 도제식으로 계에 편입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파열음을 만들어 계의 영역을 넓혀오신 거죠. 그렇다면 이렇게 새로워진 계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지원제도는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오진
얼마 전에 지인 한 분이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제 국공립에서 공연할 차례라고요. 저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그 얘기를 듣고 보니 그것이 비단 그 지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연극계의 보편적 인식 아닌가 싶었어요.
박해성
물론 국공립의 혜택을 받으면 좋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인식들이 내가 작품으로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이제 어느 정도 ‘키워졌다’라는 맥락으로 읽히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걸 알면서도 결국 그 안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당장 내가 무언가 하고 있어야 나 스스로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싶은데요. 특히 신진의 입장에서는 그 정체성이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에 최대한 공격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들어가게 되는 거고요.
전윤환
제도가 그걸 더 부추기죠. 이를테면 10분희곡릴레이 페스티벌 출신, 뉴스테이지를 거쳐 간 작업자들이 서울문화재단의 다음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에 유리해 보이는 게 사실이에요. 남산예술센터 무대로 간달지, 그 이후의 스텝을 밟아가는 거죠. 이번에 만들어진 서울희곡페스티벌이 전형적으로 그걸 가시화한 사례인 것 같아요. 우리 기관 출신들을 키우겠다고 하면서 경쟁 구도를 만들어버리는 거죠.

이연주

이연주
그런데 지원 사업에 응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경쟁 구도에 뛰어 든다는 것을 전제한 거잖아요. 결국은 그 안에서 창작자들이 주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 거겠죠. 과정 자체가 잔인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의 작업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걸 확인하는 건 세대의 구분을 떠나서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세대별로 당연히 차이가 있겠죠. 그걸 인정하면서 창작자의 작업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신진이라는 개념 자체를 규정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박해성
신진, 중견 이런 기준을 두지 말고 모두 같은 입장에서 경쟁을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죠? 단체 등록증도 필요 없고, 이제까지 작업은 프로젝트로만 해왔어도 상관없고, 다만 실질적으로 내가 해왔던 창작 활동에 대해, 그리고 내가 원하는 작업에 대해 아주 섬세하게 증명하는 방식으로요. 그렇게 되면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창작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이연주
이를테면 사업 수행능력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게 지원금을 신청하는 해당 사업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잖아요. 그간 잘해왔으면 앞으로도 잘하겠지, 이런 걸 확인하고 싶은 거고 그래서 이미 지원금을 받아본 창작자가 다음번에 또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고요. 그런데 이 작업, 해당 프로덕션을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해서만 살펴본다면 기준이 전혀 달라지지 않을까요.

지원 사업은 ‘신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박해성
모든 예술이 가치 있는 것이고 창작자들은 각자의 다양성을 발휘하는데, 한정된 예산으로 누군가를 지원해야 한다면, 창작자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죠. 그러니 제도의 세부적인 것들을 조율하면서 어떻게 그 차가움을 보완해나가는지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직접 겪어보신 분들 입장에서 신진예술가 지원에 대해 해주실 수 있는 얘기가 있지 않을까요.
이은서
해당 사업의 담당자 분들이 최대한의 가치를 부여해서 결과보고를 할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가 돼요. 그런데 창작자한테 언론 노출 빈도나 비평을 쓰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싶어요. 그거야말로 검색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창작자들은 내가 얼마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는지 찾고 정리하면서 스스로가 몇 점짜리 사람인지 인지하게 되거든요. 혹은 몇 명의 관객이 내 공연을 보았는지, 유료와 무료 관객 점유율은 얼마나 되었는지, 보고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구체적 수치야말로 기획자를 통해서 집계하면 되는 건데도 불구하고 그걸 왜 창작자로 하여금 직접 말하게 할까,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왜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지, 작품을 창작하는데 왜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만들지, 싶은 거죠.
이오진
저는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말하자면 지원금을 받은 창작자들에 대해 추후 실태조사 같은 걸 하는 건데요. 사실 기금을 받는 동안에도 매달 하긴 했었거든요. 그런데 7개월인가 후에 또 메일을 보냈더라고요. 이후 공모전 당선 횟수, 계약 건수, 사례금, 취업 여부 같은 걸 입력하는데 그런 일방적인 조사들 때문에 창작자가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은서
작품에 대한 피드백이 아니라 정산을 정말 잘했다든가, 프리젠테이션 연습 많이 했구나, 이런 소리를 들으면 맥이 좀 빠지죠. 저는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정체성을 다루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박해성
사업 주체 입장에서는 일정 정도 퀄리티를 기대하는 게 당연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가장 노골적으로 그 욕망을 드러내는 게 멘토 제도 아닐까 싶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면서도 사업 주체가 그 지향점을 정해주는 거잖아요. 지원을 받지만 동시에 창작의 자유도 침해받을 수 있는 거죠. 하지만 다시 사업 주체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이 제도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우리의 미션에 동의를 한다는 의미 아닌가, 자유롭게 하고 싶다면 바깥에서 하라, 라고 반론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이오진
평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다는 그 멘토를 저는 이제껏 여덟 명 만났거든요(웃음). 개인적으로는 멘토링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이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만났던 분들하고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저는 저대로 제 작업을 다시 보고, 멘토 분들도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점검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이은서
아야프 지원을 받았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땐 각 분야별로 멘토가 있었고, 그 멘토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중간 프리젠테이션을 했죠. 그런데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그 자리가 소위 말하는 압박면접의 형식이었어요. 게다가 연극 분야 멘토들은 한 분도 오시지 않았고, 연극에 대한 이해가 없는 다른 분야 멘토들의 질문을 받는데 그게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었거든요. 연습 중에 오픈 스튜디오를 해서 중간 점검을 받는 단계가 있었는데 이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도 완성되지 않은 작업을 외부에 공개하는 거라 저희 나름대로는 긴장도 하고 여러모로 준비를 했는데, 아무도 오시지 않았죠.
박해성
아야프는 이제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로 이름이 바뀌었잖아요. 물론 신진 창작자를 지원하는 사업이 교육적인 목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아예 그걸 사업의 정체성으로 내세운 거죠.
이은서
사실 멘토 제도가 소위 말하는 계에 처음 진입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큰 문제죠.
이연주
예전에는 멘토링을 원했던 적이 있어요. 장애인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면서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연기 메소드 같은 걸 찾고 싶었거든요. 장애 유형별 차이를 고려해서 움직임이나 음악 같은 것들을 쓸 수 있는 방법론이 필요했으니까요. 참고할 수 있는 자료 같은 게 전혀 없었는데, 결국은 몇 년간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보면서 저 나름대로의 방법론을 찾아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그런데 이런 식의 멘토링이야말로 지원 사업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못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창작자들이 자기가 원하는 멘토를 직접 찾을 수 있게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진짜 ‘신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박해성
신진 창작자들을 위한 사업이 진짜 추구해야 할 가치는, 창작자들에게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모종의 결과물을 향한 안내를 하기보다는 창작자 개개인이 보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거고요. 무엇이 되었든 내가 그것을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따라 나에겐 그것이 성장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새롭게 운영될 지원사업이 어떤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얘기해볼까요.
이은서
과연 개인 연출가를 지원하는 게 옳은 방향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한 명을 스타로 만들려고 하는 건데, 그 사람이 얼마 못가 그만 두게 되면요? 개인을 앞세우는 건 결국 욕망과 경쟁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연출가만을 중심으로 띄워주기를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비평을 하는 사람을 지원할 수도 있고, 요즘은 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창작자 그룹도 많잖아요.

이오진

이오진
저는 글을 쓰는 입장이니까 저 개인한테 돌아오는 지원금을 받게 되는데 사실 연극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작업을 위한 팀이라는 걸 어떻게 규정하고 지원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것 같아요.
전윤환
현재 지원사업들을 살펴보면, 공공이나 민간에서 하는 것들 사이에 크게 차이가 없어요. 저는 공공 부문의 사업들이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진입경로를 확보해주는 데 좀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공간 하나를 마련해놓고 자기가 신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와서 놀 수 있게 해본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나이, 경력 그런 조건들을 다 지우는 대신, 거기서 어울리지 못하면 그 사람은 신진이 아니라는 얘기가 되는 거죠.
이은서
공간 얘기가 나와서 조금 덧붙이자면, 저는 지원금 받아서 작업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공연하게 되면 필요한 여러 장비들이 있잖아요? 지금은 그걸 창작자들이 알아서 렌트하고 사용하게 되어 있는데, 누구나 접근 가능한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박해성
사실 서울시나 서울문화재단에서 계획하고 있는 사업들은 젊은 창작자들이 지금 당장의 어려움으로 인해 주저앉는 일이 없도록 물적 지원을 해주겠다는 취지인데요. 지금 해주시는 말씀들을 들어보면 오히려 간접 지원 쪽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습니다.
전윤환
직접 지원은 나의 놀이터가 확보된 다음에, 그러니까 실제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다음에 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그 돈 받아서 열심히 경쟁에 뛰어들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죠.
이은서
예술인주택이나 청년청 같은 사례를 참고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예술인주택 같은 경우 취지는 좋았지만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문제가 없지 않았거든요.
이오진
그간 직접 지원을 해오면서 발견된 폐단들이 있었잖아요. 그렇다면 간접 지원을 통해서 확보할 수 있는 것들을 새롭게 고민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간접 지원을 통해 환경을 잘 조성하고 직접 지원으로 가게 된 이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지속성을 가지고 그 사업을 운영하느냐, 하는 거고요.
전윤환
저는 무엇보다도 신진을 규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지원금이 정말 탐나지만 이제는 신청하지 않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주위의 시선이 있기도 하지만 스스로 신진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좀 억울하기도 해요. 그런 지원금을 받아본 적도 없고 이제는 더 이상 신청하지도 않는데 이런 자리에만 불려 나오거든요(웃음). 그러니까,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기 스스로를 신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어떤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 의견을 듣지 마시고요.
박해성
오늘 이 좌담을 진행하다보니, 실제 이런 지원 사업이 대상으로 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모쪼록 현장의 목소리들을 통해서 더 나은 제도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긴 시간 좋은 의견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태그 창작자, 신진예술가, 예술지원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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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109호   2017-02-09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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