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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지원, 제도가 한 해 연극계의 흐름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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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7년 3월 2일 오후 4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2층 아카데미룸
사회: 최윤우
참석: 마두영, 박해성, 부새롬, 최진아
기록 및 편집: 김슬기

최윤우

최윤우
웹진 『연극 in』의 기획연재, ‘2017년 예술지원제도를 묻다’ 세 번째 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좌담에서는 예술작품지원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하는데요. 개별 작품을 직접 지원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이 제도가 현장 창작자들의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디렉터그42의 마두영 연출님, 상상만발극장의 박해성 연출님, 달나라 동백꽃의 부새롬 연출님, 그리고 극단 놀땅의 최진아 연출님 자리해주셨습니다.

이 시대 예술을 견인하고 보호하는 공공의 영역

최윤우
우선 이 좌담에 나와 주신 연출님들은 언제 어떻게 활동을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셨나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술작품지원이 실질적으로 창작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시나요?
박해성
상상만발극장의 창단은 2008년이고, 소위 말하는 사업자 등록을 한 것은 2010년입니다. 처음 지원금의 수혜를 받은 것은 2010년이었고,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작품지원에 선정된 것은 2011년입니다. 지금까지 총 4번 정도 지원금을 받았고요.
마두영
디렉터그42는 2015년에 창단했고요. 그해 메르스로 인해 위축된 예술창작 활성화 사업이 갑자기 생기면서 그 지원금을 받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정규사업으로는 처음 예술작품지원을 받게 됐고요.
최진아
저는 2004년도에 워크숍을 하면서 연극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공공 지원금을 처음 받았던 건 2007년이었고, 극단 놀땅의 사업자를 내고 연극협회에 등록을 한 것은 2011년의 일입니다. 전체 작품을 놓고 봤을 때 어떤 지원금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받았고, 서울문화재단에서 받았는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요. 총 6번 정도 작품지원을 받았는데 2년 받으면 그 다음 해에 1년은 못 받고 하는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초기에 3, 4년 정도는 지원금 없이 작업하던 시절이 있었고요.
부새롬
달나라 동백꽃은 2011년 8월에 창단했는데, 2012년부터 작년까지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작품지원은 매해 받았습니다. 2011년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다원 분야 지원금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이후 작품지원이 거의 없어져서 찾아가는 사업이나 대관료 사업 등으로 지원을 받은 적이 있고요.
최윤우
공공기관에서 개별 예술 작품을 지원하는 건 현재로서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작품지원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제 막 극단을 시작하신 디렉터그42 같은 경우, 이 제도가 창단과 활동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 건가요?
마두영
저는 애초에 극단을 만들 생각을 했던 것 같진 않아요. 다만 지금 소속되어 있는 극단인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에 여러 연출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도 그 안에서 작은 프로덕션 개념으로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한 극단 안에서는 작품 하나에 대해서만 지원금 신청서를 낼 수 있기도 하거니와, 극단을 새로 만들게 되면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하면서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예술작품지원을 받지 못했다면 공연을 올리기 정말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일단 저희는 해외 번역극을 시차 없이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니까 기본적으로 저작권료가 발생하잖아요. 자생적으로 하기는 정말 어려웠을 것 같아요.
최진아
얘기를 듣다보니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디렉터그42는 2015년에 창단을 해서 바로 지원사업에 선정이 됐고, 달나라 동백꽃도 그런 것 같은데 그 비결이 뭔가요(웃음)? 저는 혼자서 3, 4년을 고군분투하다가 운 좋게 수상경력이 생기면서 그 다음 해에 지원금을 받았고, 아마도 수상 결과가 심사에 영향을 미쳤나보다 생각했거든요. 다른 건 아니고, 제 주변에도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하려는 후배들이 있는데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있을까 싶어서요.
최윤우
메르스로 인한 추가 지원 같은 경우 2015년 8월에 공모를 해서 2016년 2월 안에 사업을 종료해야 하는 특별한 경우였고, 급하게 편성된 사업이라 지원 신청을 한 단체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지원서가 잘 쓴 지원서인지 얘기할 수 있을까요? 혹은 지원 사업에 선정되지 않았는데 심사 결과를 보고 납득하지 못한 경우가 있으셨나요?
부새롬
가끔 처음 지원 신청서를 쓰는 친구들한테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질문을 받아요. 그런데 사실 다른 단체들이 어떻게 쓰는지 읽어볼 기회가 없으니, 지원서를 잘 써서 선정이 된 건지, 그렇다면 어떤 부분을 잘 쓴 건지 알 도리는 없죠.
박해성
사실 떨어졌다는 이유로 분노를 한 적은 없고요. 한 해 되면 다음 해 안 될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워낙 많은 작업자들이 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저 처음 선정됐을 때는 수상 경력이 생기니 이제 되는구나, 했던 것 같고요. 올해는 유독 젊은 창작자들에게 너그러운 것 같다, 그런 느낌은 받은 적이 있는 것 같고요.

지원사업 심의가 당대의 연극 미학을 좌우한다

최윤우
그런데 선정 결과를 확인하면 매해 어떤 다른 경향성 같은 게 읽히나요?
최진아
사실 누가 선정됐는지는 아는데, 누가 안됐는지는 모르니 경향을 읽는 건 힘들다고 생각해요.
박해성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이, 그 결과에 따라 당대의 연극 미학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적은 예산을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되면 재현적 무대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은 폐업을 해야 할 수도 있고, 배우 수를 줄이게 되면 1인 다역을 해야 하니까 연기도 표현적으로 가게 되죠. 너무나 공고하게 희곡 중심으로만 가는 사업이 있다면 그 입맛에 맞는 작품들이 나오게 되잖아요.
부새롬
그러니 저는 지원 신청서에 아주 구체적으로 작품에 대한 질문을 던져 주시는 것이 창작자들에게도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홍보 계획, 사업 평가, 파급 효과, 이런 건 정말 안 쓰게 했으면 좋겠고요. 물론 창작자라면 당연히 사람들과 자기 공연을 나누고 싶죠. 그런데 여기서 새롭게 고용을 창출할 것도 아니고 획기적인 홍보 방식을 도입할 것도 아니고요. 매출을 엄청나게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예상컨대,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지원 신청서의 거의 대부분이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봐요.
최진아
창작자들이 지원금에만 의존하지 말고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보여 달라는 요구인 것 같지만, 그건 어느 정도 기획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혹은 제작자로서 고민해야 하는 것을 계속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 고민은 실질적으로 프로덕션을 꾸리고 기획자를 만나면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최윤우
올해 새롭게 바뀐 내용 중에 블라인드 심사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부새롬
사실 좀 황당했어요. 희곡이 아예 없거나 미완성인 경우, 그 창작자의 이전 작업들을 완전히 가리고 나면 콘셉트만 가지고 어떻게 평가할 수 있죠? 모든 창작자는 자기만의 길을 만들면서 이전의 것을 딛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건데, 그 맥락을 없애버리면 단지 완성된 희곡만을 보겠다는 건가, 하는 강력한 의구심이 생기더라고요.
최진아
사실 아무리 블라인드 처리를 한다고 해도, 어떤 극단인지 알아내는 건 참여자들 명단만 봐도 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리고 지금 얘기하신 대로, 지난 번 작업에서 했던 것을 이번에는 이렇게 시도해보겠다, 이런 말도 쓸 수 없게 되니 실은 좀 난감하죠. 게다가 신작도 아니고 재공연인 경우는 이전 작업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게 더더욱 이상한 일이고요.
최윤우
투명하게 심의를 하겠다는 의도일 텐데 실질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부새롬
차라리 아주 구체적인 심사평을 내놓는 것이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진아
예술작품지원이 현장의 창작자들에게는 매해 한 번 돌아오는 아주 소중한 기회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창작자들 입장에서는 여태까지 해왔던 것들을 다 보여주고 싶죠. 오히려 정말 완전히 다 가리고 희곡만으로, 혹은 작품 콘셉트만으로 심사를 하는 다른 지원 트랙이 신설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박해성
사실 저는 좀 다른 방향으로 이해를 했는데, 이 방법이 새롭게 진입하는 이들에게는 분명 의미가 있을 것 같거든요. 나 상 받았어, 이렇게 쓸 칸이 아예 없는 거니까요. 정말 해당 공연에 대한 계획을 잘 쓰면 그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진아
그런데 이 지원사업에 현장의 모든 세대들이 신청서를 쓰잖아요. 신진 예술가를 위한 별도의 지원은 있는데, 이를테면 원로들을 위한 지원은 없죠. 신진을 키우는 건 당연히 중요한 일이지만 저마다 다른 환경에 놓인 다른 세대들의 활동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부새롬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원로 연극인들이 지원 신청서를 내면 선정이 잘 안되나요? 신진 같은 경우, 경력이 없기 때문에 진입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그들을 위한 제도가 생긴 것 같은데요.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선정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지 궁금해서요.
최진아
신진을 위한 지원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여러 다른 트랙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정확한 심사 기준이 공개되지 않으니 알 수 없지만, 극단의 나이가 심의 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좀 궁금했어요. 연극 작업 자체가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극단 연혁이 오래 되었다고 해서 자생 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런 점에 대해서도 공정함을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작품지원이 필요한 이유와 지원금 배분의 원칙에 대하여

최윤우
지난 해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작품지원에 총 300여개 단체가 지원 신청서를 냈고, 그 중 45개 단체가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균 지원 액수는 2,400만원이었죠. 그런데 이 지원금이 실상 한 작품을 제대로 제작하기 어려운 금액이라면 현실적으로 5,000만원 지원금을 20개 단체에 나눠주는 게 맞지 않는지 그런 의견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새롬
아주 냉정하게 생각해서, 정말 거짓말하지 않고 제대로 된 최저시급이라도 주면서 공연하려면 5,000만원을 지원하는 게 맞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소액다건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박해성
저는 공연 제작에 맞춘 지원금을 소수 단체에게 주는 것이 한편으로 굉장히 폭력적인 얘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막 졸업해서 작업을 시작하는 창작자들에게는 500만원도 단비 같은 돈일 수 있잖아요. 잘 나가는 신진 예술가 한 명에게 2,000만원을 몰아주는 것보다 4팀에게 500만원씩 나눠주는 게 현상적으로 더 행복해지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최진아
지원사업에 선정된 공연과 그렇지 않은 공연이 결과적으로 큰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45개 단체가 지원금을 받는다고 하면, 46등, 47등을 차지한 극단과 45등 한 극단의 공연을 두고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거죠. 그렇다면 제가 5,000만원을 받는 것보다 나눠 받는 게 균등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고요.
마두영
그런데 사업에 선정된 단체들 사이에도 지원 액수에 차등을 두잖아요. 작년에 지원금을 받았을 때 가장 적게 받은 팀 중 하나가 저희였던 걸로 아는데, 1,500만원 받았거든요. 지원금을 받으니 감사하긴 하지만 우리가 신생 단체라서 그런가, 배우가 두 명밖에 안 나오는 공연이라서 그런가,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극장 대관료만 거의 500만원이 들어가는데 1,000만원으로 작품을 만들자고 하니 아무리 예산을 짜 봐도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부새롬
제가 작업을 시작했던 초창기에 관객이 정말 많이 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 얼마나 많은 티켓 수익을 거둬야 최소한의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는지 계산해봤는데 어떻게 해도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왜 예술가들이 공공 지원금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당당해지기로 한 거고, 그와 동시에 당당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로 지원금 없이 작업해서는 안 되겠다 마음먹었어요. 지금도 주변에 자기 돈으로 작업한다는 후배들을 보면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해요.
박해성
저 같은 경우 지원금 없이 공연했을 때는 후원금 명목으로 주변 지인들 주머니를 털어서 해본 적이 있고요. 공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돈을 모아서 묻어놓고 해본 적이 있는데요. 그나마도 무대 세트, 의상 같은 것들 다 없애고, 무료 대관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런 경우였지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하고나면 정말 인간관계가 다 망가지거든요(웃음). 지금도 저는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그 해에는 아예 공연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최진아
지원금을 많이 받은 다른 사업에서 남긴 돈으로 간신히 하는 경우가 있고요. 저는 어떻게든 공연은 하려고 해요. 하지만 작년에 못 받았는데 연속으로 지원 사업에 선정되지 않으면 정말 힘들 거예요.
최윤우
박해성 연출님은,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그 해에는 아예 공연을 안 한다고 하셨잖아요. 극단의 존재 이유가 지속적인 창작 활동이라고 본다면, 그로부터 오는 부담감이 없지 않을 것 같은데요.
박해성
실은 최근에 그와 관련해서 근본적인 회의를 하고 있긴 합니다. 지원금 없으면 공연 안 하겠다는 것이 매우 도망치기 쉬운 변명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지원금 신청서를 쓸 때, 내가 얼마나 이 공연을 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이 공연이 왜 지금 올라가야 하는지를 먼저 질문하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자고 여러 사람을 희생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요.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이 공연이 공공 지원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민한다는 거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지원 신청을 한 건데 그래도 선정이 되지 않는다면 태업하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두영
저 같은 경우 만약에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면 낭독공연을 하거나, 극단의 창작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했을 것 같아요. 단체를 처음 만들 때부터 한편으로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번역극들을 현장의 작업자들에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려고 생각했거든요.

제도에 맞춘 현장의 예산 설계와 집행, 정산의 문제

최윤우
지원서는 연출님들이 직접 작성하시나요?
박해성
네, 직접 쓰고 정산까지 다 제가 합니다.
마두영
저희는 드라마터그 두 분이 해외 작품을 번역해서 소개해주시니까 작품과 관련해서는 의견을 주시고요. 그럼 그것들을 받아서 제가 살을 붙이고, 하면서 같이 쓰는 편이에요.
최진아
저도 지원서 쓰는 것에서부터 정산까지 직접 하는데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 중에서도 예산을 얼마나 적절하고 타당하게 편성했는지 여부가 심의 기준이 된다고 하는데 그 부분에서 현장 작업자들을 좀 더 고려해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사실 지원서 쓸 때는 이 작품이 선정될지 안 될지도 알 수 없고, 심지어는 기획자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아주 최소한의 제작비를 산정해서 멋진 말들을 골라서 쓰게 되잖아요. 물론 기획자와 함께 작업하지 않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받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행정적으로 예산과 관련한 것들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이해는 돼요. 그런데 창작자 입장에서는 연출 콘셉트나 작품 의도 같은 것을 고민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예산은 거짓말 하면서 쓰게 되거든요.
부새롬
저도 지원사업과 관련된 일은 다 제가 직접 하는데, 지금 하신 말씀에 완전히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사실 저는 창작자이자 제작자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창작자로만 존재하는 게 가능한지 싶어서요.
최진아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우리가 지원금 신청서를 쓰는 건 제작 프로덕션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나한테 맞는 창작 환경을 만들겠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전문 제작자들이 하는 것과는 다른, 현장 창작자들의 운영 방식을 고려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지원금 받으면 사실 얼마 받았는지 다 공개되고, 공연 보면 그 돈 어떻게 썼는지 알 수 있잖아요.
마두영
이번 공모에서 자부담 최소의무비율이 없어졌잖아요. 사실 처음에는 그 개념 자체가 이해가 안 됐어요. 나는 자부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그걸 증명해야 하니까 소위 말해서 돈을 돌려쓰는 경우가 생겼던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제도가 폐지되면서 해결될 수 있는 지점들이 분명 있는 것 같은데요.
부새롬
그런데 공연하면서 우리는 필요한 비용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인정 안 되는 항목들이 있잖아요. 혹은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면서 현장에서 일일이 영수증을 다 받을 수 없는 경우도 생기고요.
박해성
사실 저는 그 사업의 지원금은 그 사업에 딱 맞게 쓰려고 하고, 심지어는 돈이 남아서 반납한 적도 있긴 합니다. 무엇보다 기관에서 요구하는 지침을 100퍼센트 다 따르는 편인데요. 실제 예산과 집행도 일치하고요. 제가 생각하기엔 연출이 예산을 관리하는 게 당연한 것 같은데, 말하자면 쓸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에 따라서 표현 방식이 달라지잖아요. 그건 기획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상태에서는, 이를테면 제작 단가를 줄이기 위해 현장에서 어떤 식으로 일이 돌아가는지, 혹은 제작소에서 관행적으로 어떻게 비용을 처리하는지, 그런 것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죠.
최진아
영수증 관리하는 인력을 따로 둬야 할 정도인데, 사실 배우들 사례를 하는 것도 힘든 극단 입장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자부담이 없어진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어느 정도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창작자들이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 위한 거짓말을 안 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박해성
하지만 저는 선의의 창작자가 아닌 경우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공 기금이니 증빙을 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고요. 다만 정말 쓴 대로만 정산할 수 있게 해주시면 창작자들 입장에서는 훨씬 편해지겠죠.

현장의 창작을 활성화시키는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최윤우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예술작품지원과 관련해 보다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들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해봤으면 하는데요.
박해성
사실 지원 사업에 대한 현장의 의견 수렴은 매해 이뤄지는 것 같기는 한데, 지원 신청서가 늘 같은 형식인 게 좀 이상하죠. 의외로 신청서를 다시 디자인하면 쉽게 풀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실제로는 태만한 공연인데 신청서만 잘 써서 선정이 되거나 아무리 가지고 있는 게 많아도 신청서 쓰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지원 트랙을 분명하게 나눠서 그 특징에 맞게 신청서를 쓰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두영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올해도 3월 30일에 선정 결과가 나온다고 하고, 매해 공모 시기도, 그에 따른 발표 시기도 늦춰지는데 이 부분을 조율하는 게 불가능할까요? 지원사업 결과 발표가 공공극장 대관 공모보다 뒤에 오니까 대관 신청을 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작품만 생각하고 공공극장을 일단 대관 신청해두기도 애매하고요. 한 가지 더, 그렇게 되면 4월부터 12월 사이에 작업을 해야 하는 부담감이 없지 않은데, 다음 해 3월 30일까지로 사업 기간을 늘려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해성
실질적으로 그게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원사업 선정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 시기에는 정말 연극인들이 아무것도 못하고 손 놓고 있거든요. 올 한해 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지금 당장의 일자리도 없고요. 그래서 지원서에 참여 배우들과 스태프들 명단을 쓸 때도 선정될지 안 될지 확신할 수 없으니 저는 실제로 그 사람들에게 미리 얘기하지 않고 그냥 쓰는 경우가 많아요. 얘기 해놨는데 공연 못하게 되면 그들에게도 큰 실례를 하게 되는 거니까요.
마두영
그런데 참여 여부에 확정인지 미확정인지 표시해야 하잖아요. 그리고 확정이 많아야 더 신뢰가 갈 테고요. 저 같은 경우 이전에는 배우가 두 명 출연하는 공연이긴 했지만, 그래도 스태프들한테는 일일이 다 이야기를 하고 동의를 구해서 하려고 했어요.
부새롬
창작 지원금이라는 게 작업자들한테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니 기본적으로는 어떤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같은 지원사업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필요도 있겠지만, 너무 자주 바뀌는 제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거든요.
최윤우
오늘 해주신 말씀 중에 크게 무리 없이 개선 가능한 부분도 있을 테고 더 고민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여기 모인 분들과 대안을 다 논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요. 다만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지적해주셨다고 생각하고요. 혹시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얘기가 있으신가요?
박해성
무엇보다 지원사업을 운영하는 기관이, 그 사업의 수혜자들이 만들어주는 권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작품지원 사업은 지난 몇 년간 그 권위를 인정받은 거고, 그러니 그것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저는 지원금을 받든 안 받든 창작자 스스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데, 그러려면 제도가 권위를 가져야 하거든요. 사실 기관은 우리의 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동반자이지 창작자들의 서비스 창구나 민원상담소가 아니잖아요. 그 상호 신뢰가 쌓이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허물어지는 건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사업 주체 측에서도 창작자들이 지원금을 어떻게 쓸지 믿지 못하겠다는 시선이 아니라 믿어 보겠다는 시선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창작자들 입장에서도 지원금을 허투루 쓰지 않을 것 같고요.
최진아
작업을 하다 보면 내 작품에 신경을 쏟게 되고, 어떤 지원사업을 신청해야 그 작품을 올릴 수 있을지부터 고민하게 되는 게 사실이에요. 그러다보니 지원제도 전체를 조망하거나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어지죠. 그러면서 지원제도에 맞춰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요.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최윤우
마지막에 박해성 연출님과 최진아 연출님이 해주신 말씀은 오늘 이 자리에서는 미처 나누지 못했지만, 당연히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지원 체계 전체를 파악하고 그 방향을 잡아나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또 다른 이야기 자리를 만들어볼 수도 있을 테고요. 오늘 솔직한 얘기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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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공연저술가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제111호   2017-03-09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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