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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축기지’ 활용의 적절한 용례_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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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또 하나의 복합문화공간이 열렸다. ‘문화비축기지’는 지난 7월 ‘프린지’와 함께 뜨거운 여름을 보낸 상암월드컵경기장과 마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찾아 가는 길은 초행길도 아니었거니와, 심지어는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한 도로의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문화비축기지’라는 수사적인 표지판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공간처럼 느꼈다. 매봉산 자락에 절묘하게 둘러싸인 탱크들은 (그래서인지 외부로 노출되지 않은)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1급 보안시설이었던 비축기지의 과거와 마주하는 듯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된 이곳을 둘러보면 그 규모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소문으로만 듣던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큰 덩치로 도심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문화비축기지가 정식으로 개관하기 전, 8월 25일, 26일 양일간 거리예술마켓이 열렸다. 2013년부터 시작하여 올해 다섯 번째를 맞는 거리예술마켓은 익숙해진 선유도 공원을 뒤로 하고 새로 만난 문화비축기지 곳곳으로 파고들었다.

입구부터 길게 뻗은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니 어디에선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수풀로 둘러싸인 나무데크에서 '팀클라운‘의 공연<경상도 비눗방울>로 어린 관객들이 들썩이고 있었다. 거리예술마켓은 참여 공연을 크게 세 분류로 나누었다. 평소 골몰하던 이슈를 자신들의 언어로 풀어낸 거리예술 ’포커스‘, 유희적 거리예술 ’패밀리‘, 관객 참여형 거리예술 ’커뮤니티‘가 그것이다. 패밀리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전문가 등록을 위해 탱크2로 향했다. 탱크2는 1·2층이 각각 실내와 야외로 무대 형식을 갖추고 있다. 1층에 들어서니 무대를 중심으로 양쪽에 거리예술단체 부스들이 촘촘하게 늘어서 있었다. 총 서른여섯개의 단체가 참여한 부스는 익숙한 거리예술단체 외에 새로운 이름들이 눈에 띄게 늘어 반가웠다. 협력 단체로 참여한 또 다른 복합문화예술공간인 ‘행화탕’의 행화커피를 손에 들고 공연팀이 준비한 피치세션을 듣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극단 느린 거짓말’은 공연<약장수>에서 관객을 상대로 젊어지는 약을 판다. 지난 작업의 영상을 통해 장터에 나가 자못 진지하게 약을 파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약을 받아들고 ‘내가 지금보다 5년이 더 젊어진다면...’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노인들의 표정이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극단 문’의 공연<구호의 역사(History of Slogan)>을 통해 60년대 이후 거리로 나온 그리고 흩어져버린 구호들을 아카이빙하는 시도를 한다. 관객은 한데 모여 구호를 따라 외치며, 거리에 나온 다양한 주체로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배낭속사람들’은 공연<워크(Work)>에서 가면과 움직임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의 패턴을 표현한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활동 중인 예술단체 ‘살거스’는 준비 중인 파이어극 <테러블 칠드런(Terrible Children)>을 소개했다. 그들이 제시한 ‘불꽃’, ‘저글링’, ‘마임’등의 키워드와 퍽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동시에 탱크 안팎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벌어졌다. 각 탱크들은 공연장으로 활용되었는데 그 중 탱크1은 유리파빌리온 형식으로 복원되어 깎여나간 산세가 고스란히 보이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관객은 선선한 실내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공연을 관람하는 유쾌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탱크4는 유난히 높은 천장 그리고 그것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로 구성된 어두운 공간이었다. ‘창작그룹 노니’는 공연<G.GROUND>로 능숙하게 그 넓은 공간을 채웠다. <G.GROUND>는 돔형식의 높은 천장 때문에 울림이 심한 공간에서 어지럽지 않은 전자음과 사방으로 튀는 공의 성질을 활용한 움직임 공연이었다. 전형적인 극장의 구조는 아니지만 공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예술가들과 한데 뒤섞이는 관객을 보며 거리예술의 엄숙하지 않은 관극문화가 강점으로 다가왔다. 태생이 공공적인 거리예술은 어느 곳에서나 빛을 발한다.

이 밖에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탱크3을 지나 탱크4·5로 이어지는 길에는 거리예술의 이해를 돕기 위해 파란색 컨테이너로 제작된 거리예술 이동형 전시가 들어왔다. 문화마당의 기다란 나무데크와 넓은 공터에는 ‘HK엔터프로’가 구축한 <비밀기지>가 곳곳에서 사람들의 발길을 잡았다. 선유도 공원에서 문화비축기지로 이동한 거리예술마켓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거리예술 기획자’들에게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장소를 읽어내고 또 그것을 거리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 하는 작업에 대한 (꽤 오랫동안) 공통된 이해와 합의가 이루어진 집단의 사람들, 공연 장소간의 이음새를 고민하여 전체를 아우르는 유기성에 공을 들이는 사람들, 무엇보다도 공간을 활용하는 감각과 운영하는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올해의 거리예술마켓은 앞서 말한 거리예술 기획자들이 쓴 ‘문화비축기지 사용예시’의 첫 번째 장이 되었다.

[사진: 한국거리예술협회 제공]

태그 문화비축기지, 거리예술마켓, 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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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

채민 드라마터그, 축제기획자
신문방송과 연극학을 전공했고, 드라마터그와 축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페이스북 www.facebook.com/min.chae.3
제123호   2017-09-07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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