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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주최로 ‘동아시아 세대전쟁(East Asia Generation War) 워크숍’이 12월 4일부터 8일까지 총 5일간 새로이 단장한 삼일로 소극장에서 진행되었다. 창고극장 시절의 누추함을 말끔히 씻어낸 삼일로 소극장은 공식적인 재개관에 앞서 한국, 일본, 홍콩의 젊은 작업자를 만나게 됐다. 참가 아티스트는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이경성 연출과 우범진, 성수연, 나경민 배우(한국), 홍콩 Artocrite Theater의 배우이자 연출인 윙 친 양 버디, 배우 완 와이 칭 레이몬드, 협력 프로듀서 보보, 일본 극단 Q의 배우 사토코 이치하라, 류타 푸루야, 드라마터그 마사히코 요코보리 등이다. 그밖에 모더레이터로 프로듀서 그룹 도트의 박지선 프로듀서, 중국어 통역자 박혜형, 일본어 통역자 이수연, 아키비스트로 김슬기, 허영균이 함께 했다.

약 1년 전, 남산예술센터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한 이 워크숍은 불타던 2016년의 한국사회를 시작점으로 삼았다. 대통령 탄핵을 외치던 촛불집회와 그 맞은편의 맞불집회(태극기 집회)가 관찰되는 동안 드러난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은 홍콩의 ‘노란 우산 집회’(일명 우산 혁명), 일본의 재난 이후 세대 간 경제 갈등 문제를 반사해냈다. 각 국가에서의 세대 대립은 유사점과 동시에 차별성이 있었고, 이것을 화두로 삼을 1980년대 생 아티스트들을 한 자리에 모으게 된 것이다. 2년 후인 2019년 공연을 목표로, 2018년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돌입하기 전, 각 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적 이슈를 공유하고, 연극적 방법론을 제시해 보는 것이 이번 워크숍의 큰 목표였다. 워크숍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언어’였다. 서로 다른 세 나라의 세 언어가 모였으니, 가장 효율적인 의사소통 방법으로 영어를 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워크숍에서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그 자체로 듣고, 서로의 말로 옮겨져 이해되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 무척 중요했다. (우범진 배우는 이것을 두고 “소리가 먼저 도착하고, 뜻이 나중에 도착하는 과정”이라 표현했고, 이를 들은 나경민 배우는 우범진 배우를 ‘제천의 네루다’라 칭했다.)

워크숍 첫날은 각국의 세대 갈등과 관련한 현재 이슈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동아시아연구소의 윤영도와 사회학자 후지이 다케시가 참석하여, 현 이슈의 역사적 배경을 강연 형식으로 진행해 주기도 했다. 이날 아티스트들에게 던져진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나는 나의 세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사회는 나의 세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였다. 후에 이야기하겠지만 ‘세대 전쟁’이라는 자못 거대한 타이틀을 걸고 시작된 워크숍은 5일 차에 이르러 크게 선회하게 되는데, 가장 먼저 발언한 1988년생 극작가 사토코에게서 그 선회의 징조는 이미 발견되었다.

사토코는 세대 간의 전쟁, 갈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전혀 어떤 의미인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사토리 세대’라 불리는 일본의 젊은이들의 얘기를 꺼냈다. 사토리는 ‘깨닫다, 깨우치다’는 뜻으로, 지식이나 진리를 깨우쳤다는 의미보다는 ‘스스로 무언가를 알아차리다’는 뜻에 가깝다. 본인을 사토리 세대로 포함시키면서, 자기 세대의 사람들은 사회나 정치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그런 부분들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는 전혀 생각자 않는다 했다. 사토리 세대는 그 전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버블 시대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삶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토리 세대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관심하며, 그런 문제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그에 대한 교육을 받지도 못했기 때문에 가끔 뉴스로 전달되는 한국의 촛불집회 장면을 보면서 낯선 감정을 품어왔던 것이다.

반면,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이경성 연출은 세대갈등이라는 코드로 읽힐 현상들이 넘치는 한국이기에 오히려 이 주제가 등한시 되고 있다 말하며, 최근 발표한 연극 <워킹 홀리데이>를 소개했다.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 휴전 상태의 한국을 상기하고, 일상의 전시 상태를 체험했다고 하였다. 한 개인으로서 고민하는 것은 시대와 장소라는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것이며,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시대라는 관점에서 이 워크숍이 진행되길 바란다는 의견과 함께.

홍콩의 보보는 여기 모인 아티스트들이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같은 80년대 생인 친오빠와 자기의 정치적 견해가 크게 다른 것과 극도의 반일감정을 가진 애국자 아버지의 일을 사례로 들었다. 홍콩의 80~90년대 생에게는 정치적 입장을 갖고 표현하는데 있어 ‘우산혁명’이 큰 계기가 됐다. 그 이전까지의 무관심과 달리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운동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학자 윤영도는 청년 세대가 느끼는 세대적 감각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대의 문제가 왜 역사화 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 서도, 세대의 문제가 아닌 것들이 세대 문제로 드러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정치와는 다른 맥락에서의 이유들, 이를테면 계층적, 계급적 이유들도 세대 문제 이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세대적 요소들마저 세대적 문제로 정의하려는 것을 지양해야 환원론적 워크숍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조언했다.

이어지는 2일, 3일, 4일차 워크숍은 각 나라별로 진행하는 워크숍이었다. 한국, 일본, 홍콩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한국 팀은 오전 시간을 국립현대미술관 견학으로 활용했다. 전시 중인 <임흥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을 관람하고 돌아와 그에 대한 감상을 나누었다. 오후에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는 시간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1980년대 생 아티스트들의 개인적 성장의 체험과 함께, 이들의 기억의 일부에서 동시대 동아시아의 ‘문화적 코드’가 다수 출토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세일러문, 홍콩 영화의 성룡, 한국의 K-pop 등, 주로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파된 대중문화는 약간의 시간적 차이를 두고, 세 나라를 경유하고 있었다.
통역가를 통해 여과된 뜻을 기다리던 참가자들이 낯설지 않은 ‘고유명사’들을 디딤돌로 훨씬 수월하게 소통하게 된 것도 이때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세계화, 인터넷 등 세상이 세상을 다루는 프레임의 변화는 동시대인의 삶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까이 붙여 놓았던 것이다. 이것은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았던, 성룡을 보고 자라, 말춤을 따라 추며 K-pop을 향유하는 ’우리‘의 탄생이면서도, 1980년대 생 가운데서도 초반, 중반, 후반이라는 시간적 차이가 문화적 경험을 가르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이다.

각 국가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틈틈이, 프리 프로덕션과 그 이후를 전망했다. 각 아티스트가 어떻게 협력하여 작업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는데, 일본의 사토코는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자신은 연출이기보다 극작가이기에 자기 세계를 만들어내고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협업의 동력을 마련하는데 있어, 적극적인 발언과 주장이 오히려 협업의 기초를 튼튼히 한다고 믿는 듯 했다. 작년에 무대에 올린 공연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발칙할 정도로 독특한 작품 속에 그녀의 다짐은 예비되어 있었다.

마지막 워크숍은 홍콩 팀이 진행했다. 우선 각 난라의 언어로 “미안해요, 사랑해요, 쉬고 싶어요, 너 미쳤어?”를 배웠다. 홍콩 팀은 이 워크숍을 위해 게임을 개발해왔다. 공간 바닥에 가로, 세로 1.5m 가량의 네모를 만들어 놓고, 팀을 갈라서 그곳에 사람들을 세우는 것이었다. 팀은 그 직전의 게임에서 나뉘었다. 네모에 빽빽하게 갇힌 사람들은 네모의 바깥에서 오는 ‘어미새’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고, 그들을 도와줄 거라 했던 ‘삼촌새’의 방치를 견디며 미션을 수행한다. 이 게임은 인구가 밀집된 홍콩의 환경과 중국과 홍콩의 정치적 대치 상황을 빗대어 만든 것이다. 네모 안에 갇힌 사람들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조건을 수행하거나 뛰어넘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이 게임에 앞서는 우산혁명의 주제곡과도 같은 BEYOND의 <해활천공(海闊天空)>의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혼자가 되더라도 자유를 향한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내용의 곡이다.

세 나라의 워크숍을 마치고, 앞으로의 작업에 관해 계획을 조율하는 시간이 있었다. 세 연출가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나눌 것인지, 그리고 함께 만들어갈 작품은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구체적인 제안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워크숍이 수확한 열매들은 2년 뒤, 무대에 오를 공연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의 재료가 되기보다 오히려 이 워크숍의 취지, 탄생의 이유로 되돌아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화두는 ‘이 워크숍 혹은 이들의 모임이 과연 ‘동아시아 세대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을까?’가 되었다. 이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세대 투쟁을 하고 있을까? 이들이 투쟁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것은 한 세대의 단합된 힘인가? 또는 다른 세대와의 경쟁인가? 이들이 전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다른 세대와의 갈등의 봉합, 화해인가? 등등.
‘세대전쟁’이라는 키워드가 제기하려던 문제들은 점점 제로(0)로 수렴되었다. 5일 동안 꺼내고, 나누고, 보탰던 아티스트들의 삶의 경험과 문제의식은 우리와 그들이라는 세대 그 자체에 있지 않았고, 세대 속의 나에게 뿌리를 두고 있었다. 지난 5일간 발견된, ‘사회 속의 나’인 아티스트들은 세대라는 축이 아니라, 시대라는 세로축을 따라 미세하고 예민하게 움직이는 개인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바뀌었다. 도출된 키워드들이 예민한 논의 끝에 추려졌고, 그것이 공식적인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반영되었다. 이 글에 그것을 밝혀도 될지는 모르겠다. 귀퉁이만 슬쩍 공개한다. 그건 아마도 1980‘s. ‘나의 세대에 고하고자’했던 워크숍은 5일간의 비행을 마치고, 궁극적으로 ‘시대의 나에게 고함’에 착륙했다. 궁극은 곧 본질이기도 하다.

태그 남산예술센터, 동아시아, 세대전쟁, 허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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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균

허영균 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디렉터
문학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다. 공연 창작 작업과 함께 예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를 운영하고 있다.
byebanana26@gmail.com
제130호   2017-12-2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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