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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권리장전-분단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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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시작된 2016권리장전-검열각하는 연극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정치적 논쟁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던 권리장전은 2017년 국가본색이라는 주제로 한층 더 성장했으며, 2018년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남북의 상황까지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18권리장전의 주제를 정하는 데 있어서 ‘분단국가’는 너무도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의 가장 큰 이슈는 ‘미투’였기 때문에 권리장전으로서 다루어야 할 이야기가 ‘미투’였어야 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4월, 남북 정상의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것을 지켜보며 전 세계가 감동했다. 이제는 한반도의 평화, 더 나아가 통일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사그라지고 있다. 통일의 기대는 올해의 가장 큰 이벤트가 될 지방선거나 전 세계의 축제인 월드컵마저도 관심의 2순위로 밀려나게 할 정도였다.

2018권리장전-분단국가 11팀, 혜화역에서

혜화역 4번출구 앞에 모인 권리장전 열한 팀은 지난 정상회담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며칠 사이 한결 가벼워진 표정이었고,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들뜬 마음들을 실은 버스가 약 한 시간을 달렸다. 첫 코스는 임진각. 근로자의 날이었던 5월의 첫 날, 임진각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철마는 여전히 녹이 슨 채 멈춰 있었지만 관광객들의 마음은 철로 위를 달리고 있는 듯 보였다. 철로 위에 올라 선 어린 아이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경청했고, 자유의 다리 앞에 우뚝 선 할아버지는 색색의 리본에 적힌 글씨들을 읽어 내려갔다. 분단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임진각에서 다양한 세대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분단을 이해하고 있었다.

분단의 경계에서

내국인이 판문점을 관광하기 위해서는 60일 전에 신청을 해야 하고, 그마저도 나라에서 정해주는 날짜에만 가능하다고 한다. 판문점을 직접 볼 기회는 놓쳤지만 판문점의 모형을 보며 지난 달 남북 정상회담의 길을 따라가 볼 수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어떤 길을 통해서 남쪽으로 내려왔는지, 또 문재인 대통령과의 비밀 대화는 어디에서 이루어졌는지, 우리는 그날을 떠올리며 두 정상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한 가지 놀라우면서도 희망적이었던 것은 군사분계선에 대한 사실이었다. 흔히 생각하기에 군사분계선이라고 한다면 아찔한 철망이 높이 세워진 삭막한 분위기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러한 관념은 단박에 날아가 버렸다. 군사분계선은 1미터 높이의 흰 말뚝을 10미터 간격으로 세운 것이 전부다. 따라서 말뚝과 말뚝 사이에는 어떠한 경계의 표식도 찾아볼 수 없다. 울타리도 담도 없는 곳에서 단 한 걸음만 내딛으면 남쪽 땅이 되는 곳. 지난 해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처럼 남과 북을 넘나들기에는 너무도 쉬운 곳이다.
권리장전 열한 팀은 군사분계선까지 가 보기로 했다. 제삼땅굴을 통해 남한의 끝과 북한의 끝이 만나는 곳까지 들어갔다.
바닥에 물이 고이는 이유 때문에 현재는 지대를 높였다고 하는데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제삼땅굴은 제법 큰 규모였다. 땅굴을 파내려 갈 도구도 마땅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해야 했기 때문에 그 환경이 매우 열악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향하는 이들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누구를 위하여 그토록 큰 고통을 감내하며 한반도 허리를 파내려갔을까. 그 중에는 민족적 사명을 띠고 투철한 애국의 정신으로 희생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자부심을 지닌 이도 있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 자체가 고통인 이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남쪽에 남겨두고 온 가족에게로 가까이 가고 있다는 마음에 달콤한 꿈을 꾸는 이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허리를 숙여가며 조심스럽게 내려간 땅굴의 끝에서 우리는 작은 창문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거대한 벽이 세워져 있는데, 200미터의 간격을 두고 총 세 개의 벽이 있다고 한다. 세 번째 벽 뒤로는 인민군이 있을 것으로 추정을 한다. 두꺼운 벽에 가로막혀 땅굴 끝에 멈춰 선 우리의 시선을 반대편에 서 있는 그들도 느끼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400미터. 한민족을 70년 동안 갈라놓기에는 너무도 가까운 거리다.

2018권리장전-분단국가 11팀, 도라전망대에서

나의 살던 고향은

대성동마을을 방문했던 날,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대북방송과 대남방송이 서로 경쟁하듯 볼륨을 높였다고 한다. 대남방송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우리가 방문한 도라전망대가 북한과 인접한 곳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저 멀리 희미하게 펄럭이는 북한의 인공기만이 그곳이 북한 땅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철조망 따위의 경계선도 없이 나물을 캐다가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그곳은 대한민국의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망원경을 통해 북한 주민 한 사람이라도 발견을 하면 무엇이 그리 반갑고 기쁜지 여기저기서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대성동마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헤어진 가족을 금세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었다. 나물을 캐며 오고가던 땅이었고 담이나 울타리도 없는 들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70년이 흘렀고 가족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으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 했다. 망원경을 통해 발견한 북한 주민은 어쩌면 대성동마을에서 살던 가족 중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통일을 염원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산가족문제다. 이미 2·3세대가 되어버린 우리는 이산가족에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사자가 아닌 2·3세대라도 가족의 이별은 매우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다.

2018권리장전-분단국가

서울로 돌아온 권리장전 열한 팀은 각자의 마음속에 확고한 뜻을 품고 작품 개발에 돌입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분단과 통일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희미한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 MT를 통해서 분단의 아픔과 평화의 염원은 우리에게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분단이 되던 시점의 한반도에서부터 새터민, 조총련, 이산가족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동시대의 시점으로 면밀히 관찰해 나가려 한다.
짧은 일정 중에 발견한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남한과 북한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통일을 준비해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2018권리장전-분단국가 역시 통일을 준비하는 한반도의 역사 중 한 대목을 장식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의 염원은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평화에 있기 때문이다.

태그 분단국가,박윤희,권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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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희

박윤희 극작가
2006년 극단목수의 막내로 입단하여 현재는 부대표를 맡고 있다.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전기수>, <홍시>, <네부카드네자르> 등이 있다.
louise83@daum.net
제139호   2018-05-10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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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
기회주의자들이 아닐 수 없네. 미투 이전에도 남북 평화는 세계적인 이슈였다. 이제와서 수저 그만 얹어라.

2018-05-11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