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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퀴어한 낭독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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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한 낭독극장’은 프로젝트 이어가 가동하는 낭독극 프로젝트로, 퀴어의 삶을 그린 문학 작품들을 무대에 올린다. 이번 ‘제2회 퀴어한 낭독극장’에서는 진해정 연출이 최은영 작가의 <그 여름>과 윤이형 작가의 <루카>를 각색하여 상연했다. 두 작품 모두 퀴어 연인의 만남과 이별을 보여준다. 연애의 빛나는 순간들을 통과해 멀어지는 두 삶의 궤도가 선득하다.

<그 여름>은 어느 지방 소도시의 고등학교에서 만난 ‘이경’과 ‘수이’가 성인이 되도록 함께 한 몇 해의 여름을 그린다. 축구부의 수이가 찬 공에 이경이 맞은 것을 계기로 알게 된 둘은 급격히 가까워지고 가능한 모든 시간을 서로를 탐닉하는데 쏟는다. “그들은 오래도록 키스했다. 혀와 입술의 맛, 가끔씩 부딪치는 치아의 느낌, 작은 코에서 나오는 달콤한 숨결에 빠져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인지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라는 것도, ‘나’라는 의식도, 너와 나의 구분도 그 순간에는 의미를 잃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고양되는 연애의 순간은 이경의 새 친구 ‘누비’의 입을 통해서도 반복 서술된다.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경과 수이의 차이가 둘을 분리시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경은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지만, 수이는 ‘잠만 자는 방’을 구해 직업학교에 다닌다. 이경은 레즈비언 바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고 자신과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수이는 축구부 생활을 할 때처럼 직업학교에서의 하루하루를 최대치로 살아내는 데에 전념한다. 수이는 가끔 이경에게 ‘너는 모른다’고 말한다. 이경은 상대를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지치고, 다른 사람을 만나며 관계에 상처를 입히고 결국은 연애를 끝내버린다. 새로운 애인 은지와의 관계도 곧 끝나고 십삼 년이 흘러 서른넷이 된 이경은 수이와 함께 내려다보던 강물을 홀로 바라본다.

‘퀴어한 낭독극장’의 <그 여름>은 원작의 세밀한 필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작은 사건들을 적절히 생략해 한 시간의 흥미로운 공연으로 압축했다. 3인칭으로 쓰였으나 내용상 이경의 회고에 가까운 원작의 문장들이 이경, 수이, 은지, 누비 역의 배우들에게 나누어졌다. 배우들의 몸을 통해 현현한 인물들이 때로는 자기의 마음을 드러내는 문장을 말하고, 때로는 다른 입장의 대사를 말하는 모습이 묘하다. 각자만의 아픔을 품은 상태와, 그 아픔을 짐작하되 파악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상태가 교차로 표현되는 듯하다. 중후반부까지 배역이 분명하지 않으며 몇몇 내레이션을 중립적 입장에서 읽는 듯했던 한 배우는 결말부에 이르러 서른네 살이 된 이경의 목소리를 맡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무대 한편에 앉아있던 해당 배우가 걸어 나와 어린 이경과 친구들을 바라보며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이경의 시점에서 갈무리된다.

여성 퀴어 네 명의 개성이 배우들의 몸과 목소리, 제스처로 살아난 것 또한 ‘퀴어한 낭독극장’만의 매력이다. 일반 중심 서사에서 퀴어로 등장하는 인물은 ‘퀴어성’의 대표로서 단순하게 표현되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그 여름>의 네 레즈비언은 각자 다른 모양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쌓아가며, ‘퀴어성’ 혹은 ‘여성성’이나 ‘남성성’ 하나로 축약될 수 없는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퀴어한 낭독극장'의 배우들은 그러한 각 인물의 외양과 태도까지 생생하게 구현해 내었다.

윤이형 작가의 <루카>는 게이 커플의 이야기로, ‘루카’와의 연애를 회상하는 ‘딸기’가 쓰는 편지글 같은 작품이다. 루카와 딸기 외에, 루카를 본명 ‘예성’으로 부르는 루카의 목사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어느 날 딸기를 찾아와 예성에 대해 무엇이든 알려달라고 청한다. 이미 루카와 헤어진 지 오래인 딸기는 그에게 해줄 말이 별로 없다. 아버지는 루카가 죽었다고 말하고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아들이 성소수자라는 사실 사이에서 어떤 갈등을 겪었는지 토로한다. (루카는 실제로 죽었을 수도 있으며, 5일 작가와의 대화에서 윤이형 작가가 말한 대로,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 ‘아버지와 딸기의 세계에서 ‘상징적으로’ 죽은 것’일 수도 있다.) 딸기는 아버지에게 루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타인의 말을 듣는 것으로 자신이 이미 죽게 한 존재를 복원하려는 시도‘에 혐오를 느끼며, 솟구치는 화를 쏟아낸다. 그러나 동시에 딸기는 알고 있다. “그가 너를 받아들일 수 없어 죽게 했다면 나 역시 내가 사랑하지 않는 너의 어떤 부분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저 시들게 놓아두기만 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여름>의 이경이 수이의 삶의 어떤 부분을 도저히 읽어낼 수 없었던 것처럼, 딸기도 루카만의 어떤 영역을 이해하지 못한다. 수이가 이경에게 “너는 모르잖아.”라고 하는 것과 달리, 루카는 “알잖아, 어떤 건지.”라고 한다. 같은 퀴어로서 삶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 전제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딸기는 루카와 ‘다른 퀴어’이다. 루카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준비할 여유 없이 아웃팅 당해야 했던 경험, 교회공동체에서의 삶, 딸기와의 생활을 위해 일하는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딸기는 알 수가 없다.

무대 위에는 ‘루카를 죽게 한’ 두 사람과 루카가 등장한다. 소설에서 ‘너’로 지칭되며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않았던 루카가 연극에서는 실체를 가진 인물로 나오는 것이 의외의 설정이었다. <그 여름>에서와 같이, 루카와 딸기, 아버지는 때로는 자신의 입장을, 때로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말한다. 그리고 딸기와 아버지는 확인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 그저, 그럴 수 없다. 삶이라는 이름의 그 완고한 종교가 주는 믿음 외에 내가 다른 무언가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믿음을 지켰고 너를 잃었다.” 목사 아버지와 게이인 루카가 같이 살아갈 수 없는 것과 같이, 퀴어로서 많은 것을 공유하던 딸기와 루카 또한 서로의 삶에 맞추어 들어가기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다가오는 공연이었다.

‘제2회 퀴어한 낭독극장’은 결국 서로를 받아들이는 데에 실패한 두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퀴어와 타인-사회의 갈등을 다루는 많은 서사가 종종 섣부른 화해와 감동으로 봉합되고는 하는 반면, <그 여름>과 <루카>는 그 갈등이 천천히 벌어지게 놓아둔다. 갈등 속 개개인의 고통을 전시하며 연민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는 차이들’을 적시하고, 각 타인 사이 ‘모를 수밖에 없는 영역’들을 그대로 남겨둔다. 독자 혹은 관객으로서도 각 인물의 아픔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차이와 단절을 이야기하는 두 작품임에도 결코 허망하지 않은 이유는 타인과 타인이 하나처럼 침투해 들어가 서로를 휘저었던 시간을 찬찬히 회고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차이들로 멀어질지언정 우리가 잠시나마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사진: 프로젝트 이어 제공]

태그 김진아,낭독극장,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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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

김진아
 경계를 건너, 거리를 가로질러 만나는 시간을 짓습니다.
제145호   2018-08-09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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