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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극장에 들어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입체낭독공연 <안주>

김슬기_국립극단 학술출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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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낭독공연 안주
예로부터 일본에는 ‘백물어’(百物語)라는 괴담대회가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둘러앉아 100가지의 기이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마음의 두려움을 치유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안주』는 약혼자를 잃은 여인 오치카가 사람들의 괴담을 들으며 상처를 극복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안주’는 어둠을 뜻하는 암暗, 일본어 발음 ‘안’과 짐승을 의미하는 수獸, 일본어 발음 ‘주’를 붙여 만든 미야베 미유키의 조어로,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괴이한 존재들을 뜻한다.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배우가 읽어주는 소설, 입체낭독공연으로 우리 안의 외로운 짐승 ‘안주’를 만났다. 오전 11시. 여느 때 같았으면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소극장 앞이 북적거리고 티켓박스 옆, 차다방 홍마담이 만들어내는 커피 향이 은은하다.

최근 연극계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낭독공연이 시도되고 있다. 희곡낭독공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작 희곡을 소개하고, 무대화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창구로 기능해왔지만, 요즘엔 낭독 그 자체만으로도 한 편의 온전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가만히 테이블에 둘러앉아 텍스트를 읽는 것을 넘어, 배우의 연기와 연출이 더해지면서 활자는 새로운 생기를 얻고, 어느새 이야기에는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이 실린다. 완전한 무대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상상의 여백이 큰 것 또한 낭독공연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선돌극장의 경우 지난 몇 년간 故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낭독공연으로 기획해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왔다. 대개는 혼자 책을 펴들고 소리 내지 않고 읽게 마련인 소설의 경우, 희곡과 비교해 낭독을 통해 작가의 말맛을 감상하는 재미가 훨씬 크다. 미야베 미유키의 『안주』는 누군가 다른 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낭독을 하기에 꽤나 적합한 텍스트다. 무대 위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배우들은 작가의 상상을 벗어나 이제 관객의 눈앞에 와 있다.

입체낭독공연 <안주>의 두 배우는 소설을 읽으면서 동시에 소설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때문에 작중 화자가 되어 담담히 글을 읽어나가다가도 인물 간의 대화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때로는 소설에 등장하는 괴담의 주인공이 되어 눈물 연기를 펼치다가, 금세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괴담 속 인물에게 연민을 표하기도 한다. 괴담이란 본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작가의 이야기는 소설의 인물에게, 배우에게, 그리고 마침내 관객에게 전해지며 하나의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야말로 소설이 ‘입체화’되는 순간이다.
  • 입체낭독공연 안주
  • 입체낭독공연 안주
공연에서 낭독된 ‘구로스케’ 이야기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사람 옆에서는 살 수 없는 가련한 생명을 극장으로 불러낸다. 유령이 나타난다는 수국 저택에 이사 온 신자에몬 부부는 어느 날 집안에서 검고 작은 생명체를 발견한다. 구로스케에 대한 세밀하고 촘촘한 묘사에 관객들의 작은 탄성이 소극장을 가득 채우면 배우들의 연기에는 더욱 흥이 실린다. 스스로는 사라져가면서도 슬퍼하지 말라는 듯한 구로스케의 울음이 배우의 육성으로 극장을 울리자 객석 이곳저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입체낭독공연 안주 포스터
  • 올 봄 영화로 제작된 『화차』의 원작 소설가이기도 한 미야베 미유키의 『안주』는 이전 작 『흑백』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기본적으로는 괴담을 주고받는 ‘백물어’의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그 모든 괴담을 듣는 인물은 오직 한 사람으로, 약혼자가 살해당한 후 숙부의 집을 방문한 오치카가 흑백의 방에 들어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애초에 숙부가 손님들과 바둑을 두던 이 방에서는 ‘이야기를 하고 버리는 것과 이야기를 듣고 버리는 것’을 규칙으로 한다. 하지만 낭독공연이 올라가는 극장에서 관객 모두는 오치카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소설이 극장으로 들어온 이유일 것이다.

    입체낭독공연 <안주>는 오는 9월 28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공연된다. 화요일에는 오후 8시에, 그리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오전 11시에 관객들을 만난다.

[사진제공] 선돌극장

태그 입체낭독공연, 안주, 선돌극장, 미야베 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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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8호   2012-09-20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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