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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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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이다. 아이와 나는 어딘가로 가고 있다. 현실에서 아이는 고등학생인데 꿈속에서 아이는 서너 살쯤이었다. 하얀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다. 폐공장 같은 곳인데 예술 작품이 있고 작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림과 설치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아이와 함께 있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혼자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다. 문득 아이가 없어졌음을 느끼고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하얀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 좀 찾아달라고, 아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다가 꿈에서 깼다. 잠에서 깼지만, 눈이 따갑고 아팠다. 왜 하필 오늘 이런 꿈을 꾸었는지...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념전을 다녀와서 글을 쓰기로 했는데... 현장 스케치 정도의 글이라 생각하고 담담하게 쓰려고 했는데... 잠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다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가장 먼저 떠오른 장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일 때문에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곳인데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입구에 붙은 현수막 '화랑유원지 세월호 납골당 결사반대'를 버스 안에서 봤을 때의 인간적인 절망이 떠올랐다. 지난 겨우내 그곳을 갈 일이 없었는데 다시 찾은 그곳은 여전히 그 현수막이 붙어 있고 그 옆 아파트에는 '화랑유원지 세월호 봉안시설(납골당) 결사반대'라는 또 다른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참사로 빚어진 억울하고 가슴 아픈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공간을 조금이라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외침이 버젓이 걸려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발길을 돌려 경기도 미술관으로 향했다. 정부합동분향소가 있었던 곳이다. 주차장이었던 곳은 다시 차들이 군데군데 서 있고 미술관 앞 잔디에 설치된 조각 작품 위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올라가서 놀고 있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 때문인지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공원 여기저기 제법 보인다. 유가족 사무실이 있던 미술관 1층 공간은 다시 교육공간으로 일상의 미술관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정부분향소는 2018년 4월 17일부터 철거작업을 시작하여 4월 30일 완료했다고 한다.
미술관 1층을 가로질러 나오니 화랑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어젯밤 추웠던 기억에 잔뜩 여미고 나온 외투의 단추를 풀고 호숫가를 걸었다. 그렇게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참사 이후에 추모의 장소와 관련된 장소를 찾아서 걷고 있었다. 2014년 이후 먹먹하고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나도 모르게 그러한 장소들을 찾으면서 다독였는지도 모르겠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지 발길은 어느새 '416 기억전시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있는 마을 놀이터에 잠시 멈추어본다. 당시 전시를 본 후 멈추지 않는 눈물과 마음을 저 놀이터에 앉아 한없이 하늘을 보며 추스른 기억이 떠올랐다. '416 기억전시관'에서는 <기억프로젝트 5.0_공간에서 시간으로> 전시1) 오픈을 하루 앞두고 준비 중이었다. 조용히 들어가니 전시 오픈은 내일이지만 관람해도 된다고 했다. 진도 팽목항과 동거차도, 정보합동분향소 등 그동안의 기억 장소들에 대한 전시였다. 천장을 채운 유리관에 있는 아이들의 소지품들과 사진, 그리고 이름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전시장 한 켠에 꽂혀 있는 '그리운 너에게'라는 책을 펼쳤지만, 희생자 부모님들이 쓴 편지글을 읽어 내려가기는 쉽지 않았다.
전시관을 나와서 안산 시청 쪽으로 걸었다. 양지바른 곳에는 이른 벚꽃과 개나리가 벌써 피어있었다. 개나리가 핀 길을 따라 내려가니 새로 짓고 있는 안산 세무서 건물 근처에 노란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이다. 2017년 봄 이후 처음이었다. 방명록을 적고 이름이 노래처럼 호명되는 소리를 들으며 2층 교실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4.16기억저장소 4.5전시_마을 아카이빙 2018-목소리들>이라는 커다란 책자가 눈길을 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은 단원고등학교가 있는 고잔동 주민들과 단원고 아이들의 인터뷰를 기록한 책이었다.
“유가족이 보는 건 마음 아파요, 마음 아프고, 같이 아파하는데 사람들이 여기에 추모관이 들어서면 봉안당이 들어오잖아요, 근데 저도 그게 마음이 아프면서도 싫더라구요. 그냥 추모관만 넣고 봉안당은 굳이 이렇게 사람들이 얘기하는 납골당? 그걸 여기다 갖다 넣을까 라는 그런 게 제 마음속에도 있었거든요. (중략) 광주 사태랑 제주 4.3길을 갔다 왔어요. (중략) 거기를 갔다 오면서 마음이 변하더라고요. 아, 여기에 들어와도 괜찮을 것 같애. (중략) 우리는 아직 유교 사상이 좀 강해서 그런 게 있잖아요. 납골당이 들어오면... 그런 게 정말 거기처럼 해 놓으면 그럴 것 같지 않아요. 괜찮을 것 같아요.”
라는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4.16생명안전공원'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알 수 있어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었다. 세 시간을 걸어서인지 어느새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왔다.
때를 놓친 점심을 뒤로하고 다시 발걸음은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노란색 전시 안내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매년 혼자 세월호 추모전시를 보러 왔던 것 같다. 매년 달라지는 전시의 풍경처럼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세월호 희생자인 고 박예슬, 고 빈하용의 그림/ 김성희, 학교 가는 길_학교 앞 건널목/ 심흥아, 조각들, 2015

전시장에 들어서면 세월호 희생자인 박예슬, 빈하용의 그림과 김성희2)의 학교 가는 길의 풍경, 그리고 심흥아3)의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의 순간이 조각들처럼 나열된 그림들이 4.16 이전의 일상을 담담히 보여준다. 그 일과 상관없다는 듯이 그 일이 일어나기 전 아이들의 일상은 오히려 낯설다. 하지만 소중했다. 아이들이 일상의 하루하루를 담담히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노란색 벽을 지나서 펼쳐지는 숫자와 사건 그리고 작품의 나열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는 현실을 다시 환기시킨다. 김서린4)의 2014년 4월 15일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 줄지어 서 있는 관광버스를 유리창 너머로 찍은 사진을 시작으로 지난 5년의 사건과 작품이 시간 순으로 이어진다. 전시장 3면을 가득 채운 사건과 시간이다. 노란색 숫자를 따라 세월호 참사의 시간은 흐른다.

김지영, 4월에서 3월으로, 2015

14.04.16 ‘8시 50분경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세월호 전복되어 침몰’ 이의록5)은 2014년 4월 23일 진도군 조도면 부근의 위성사진으로 보여준다. 14.08.22 '가족대책위 대통령 면담 촉구하며 청운동 농성 시작', 14.11.11 '정부 미수습자 수색 공식 중단 발표' 문구들을 따라 김지영6)의 참사 이후 1년 동안 매일의 날씨와 파도의 세기를 그린 드로잉 달력이 펼쳐진다. 뒤틀린 사회의 잔인한 시간이 일렁인다. 16.10.29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9제1차 촛불 집회' 와 함께 광장의 시간을 노순택7), 노원희8), 주용성9)이 보여준다. 17.03.10 '박근혜 탄핵' 윤동천10)은 수천수만의 점들이 환한 불빛으로 변한 광화문 광장을 수놓았다. 19.04.16 ‘세월호 참사 5주기’, 21.04.16 생명안전공원 착공(예정). 노란색 숫자의 날짜는 여기서 끝난다. 이후에 어떤 숫자와 사건을 기록할 수 있을지는 우리의 몫이다.

김흥구×이승배, 기억 교실, 2019

사건의 시간을 빠져나오면 전시는 커다란 빈 공간으로 이어진다. 김홍구×이승배11)의 기억교실 영상이 벽면 가득 천천히 흘러간다. 한쪽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현장음 같은 사운드가 귀를 간간히 때린다. 자리를 잡고 앉는다. 빈 곳을 채우는 영상과 사운드는 상실의 비어있음을 공간적으로 드러내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그곳을 채울 수 있는 여백을 허락한다. 허란12)안정윤13), 주황14)은 세월호와 관련이 없지만 세월호 이전과 이후 나도 모르게 달라진 시선의 방향을 문득 느끼게 한다. 아이들과 바다, 교복은 이전에 떠올렸던 것과는 다른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조도'의 중고등학교 학생과 교사가 매년 4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그린 그림

전시장을 나오는데 들어갈 때 미처 보지 못한 그림판으로 눈길이 갔다. 조심스럽게 안내를 하던 분이 곁에 와서는 그림에 담긴 사연을 말하며 찬찬히 보기를 권했다. 그림의 주인공은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바다에 있는 '조도'의 중고등학교 학생과 교사가 매년 4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그리고 있으며, 올해는 그 그림을 4.16재단으로 보내왔다는 사연이었다. 마음이 다시 아이들로 인해 따뜻해진다.

나는 아직도 애도의 방식을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고작 걷는 것이다. 머리나 가슴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아직도 모르겠다. 길을 걸으며 내 몸을 힘들게 하는 방법 외에는 여전히 적절한 애도의 방식을 찾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걷다 보면 깨닫게 된다.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를. 소중한 것은 누가 대신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세월호는 매번 일깨워 준다.
[사진: 이미경]
  1. <기억프로젝트 5.0_공간에서 시간으로> 2019.4.5.금 ~ 2019.10.4.금
  2. 김성희, 학교 가는 길_학교 앞 건널목
  3. 심흥아, 조각들, 2015
  4. 김서린, 2014년 4월 15일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 2014
  5. 이의록, 침묵의 거리 20140423, 2015
  6. 김지영, 4월에서 3월으로, 2015
  7. 노순택, 허송세월 #CEI2601, 2014
  8. 노원희, 청와대 길목 1, 2014
  9. 주용성, 소리 없는 밤, 2015
  10. 윤동천, 위대한 퍼포먼스10-촛불시위, 2017
  11. 김흥구×이승배, 기억 교실, 2019
  12. 허란, 2014.2.19., 제주, 2014
  13. 안정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을 합니다. 제가, 2017
  14. 주황, 상록시 #7, 2008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
안산
일정
2019. 4. 3 ~ 4. 16
장소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서울
일정
2019. 4. 9 ~ 4. 21
장소
공간:일리, 통의동보안여관, HArt, 공간291, 아트스페이스 풀

태그 안전사회,세월호,참사 5주기 추념전,이미경,안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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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이미경 드라마투르그
미술과 거리예술비평을 하고 있고, 2016년 이후 창작그룹 노니의 드라마투르그와 리서처로 공연예술 현장에서 활동 중이다.
sealove502@hanmail.net
제157호   2019-04-1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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