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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장벽까지 찾아내고 응시하는 사람들의 작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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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시선 ― 장애예술과 극장” 포스터

'생태계'라는 단어가 수년 전부터 공공사업 영역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걸 보게 된다. 특정 어휘가 공공의 영역에서 자주 쓰인다는 건, 바로 그 어휘가 뜻하는 의미가 해당 사회에서 심각한 결핍 상태에 놓여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생태계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매끈하다. 그 매끈함은 종의 다양성을 허락지 않으며, 일정 기준 이상의 속도를 강제하는 컨베이어벨트로 작용한다. 이러한 매끈함은 누군가에겐 치명적 장벽(barrier)이 된다.
지난 4월 18일(목)부터 20일(토)까지 신촌문화발전소에서는 "또 다른 시선 - 장애예술과 극장"이라는 주제 하에 강연이 진행되었다. 이 중에서 [강연-2 :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가]의 일부와, [강연-3 : 예술작품의 배리어프리 버전 알아보기]를 참관했고, 이 두 개의 강연에서 ‘barrier’가 공통의 키워드로 다가왔다.

신재 연출가의 “극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는 19일에 참관했다. ‘0set프로젝트’라는 팀을 결성해 활동 중인 신재 연출가는 2016년부터 장애인 창작자들과 함께 시설/문화/감각의 접근성에 관해 질문하는 작업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내 경우엔 작년 4월에 열린 [걷는 인간 : 대학로 공연장 및 거리 접근성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0set프로젝트를 처음 알게 되었다. 덕분에 수많은 공연장의 장벽을 체감할 수 있었고, 같은 해 10월에 열린 참여워크숍 <없는 사람>에서는 장애와 장애인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을 선명하게 자각해볼 수 있었다.
신재 연출가는 창작활동과 노들장애인야학 근무를 병행하고 있는데,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노들장애인야학 공간에 있다 보면 ‘이곳은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했다. 장애인/비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관계 맺음에 있어서 서로에게 매우 조심스럽게 대하면서도 동시에 그로 인해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두 가지의 극단적 느낌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즉, 나와 다른 완전한 타인이므로 어떤 선입견도 없이 서로를 대하는 조심성과, 그러면서도 저마다의 영역을 차지하며 머물 수 있는 편안함이라고. 이처럼 평화롭게 공존하는 룰과 안정적 에너지가 흐르는 곳이라면 기꺼이 생태계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장애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는 흔히 외국인이나 어린이를 대할 때와 같은 부자연스러움이 동반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장애인 이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만큼 비장애인의 삶은 장애인의 삶과 괴리되어 있다. 장애인을 어떤 ‘정체성 집단’으로만 인식하는 것, 구체적/개별적 존재로서 인식하는 것이 아닌 추상적 집단으로 카테고리 화하는 모습이 수많은 배리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신재 연출가는 장애인 활동 지원 실습을 처음 나갔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그가 “내일 처음 실습 나가는데, 제가 만약에 장애인이 싫어지게 되면 어떻게 하죠?”라고 걱정하며 묻기에 “그건 그 사람이 싫은 거죠, 장애인이 싫은 게 아니라.” 하고 답을 해주었다고. 그리고 한 친구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10년여 근무한 친구는 어느 날 ‘이제는 장애인이 추상적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만의 고유한 리듬이 느껴진다며.
강연 중 언급했던 배리어프리(barrier-free)와 배리어컨셔스(barrier-conscious)의 개념에 대해 관객이 질문했다. 신재 연출가는 어느 시각장애인 미술작가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소리/냄새/촉각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마을이 나타난다는 확장현실 작업을 구상하던 당시 배리어프리라는 말이 스스로 와 닿지 않아 대체할 단어를 고민한 끝에 ‘배리어컨셔스(barrier-conscious)’라는 말을 찾았다고 했다. 문턱을 없애는 것이 배리어프리라고 불리지만 눈에 보이는 배리어를 없앤 곳에도 여전히 배리어는 남아있는데, 그처럼 ‘있음에도 없다’고 말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배리어를 ‘의식’하고 그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더 건강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신재 연출가는 어떤 배리어는 물리적으로 제거함으로써 해결되는 게 아니라, 구체적/개별적/경험적으로 이해되는 것이라고 덧붙이며, 어떤 배리어를 없앤다는 것,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너무나 간단한 공정으로 치부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강연을 하고 있는 강내영

19일~20일 이틀에 걸쳐서는 강내영 화면해설 작가의 “예술작품의 배리어프리버전 알아보기” 강연을 참관했다. 화면해설 작가라는 직종은 아직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화면해설(audio description)이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화면에 나오는 인물들의 표정, 행동, 자막 등의 시각 정보와, 화면만으론 유추할 수 없는 정보를 음성으로 설명하여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가령, 시각장애인의 경우 소리만으로는 화면 속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인물의 대사와 대사 사이 공백 부분에 해설 멘트를 삽입해 제공하는 것이다.
강연 시작 단계에서 관객들은 입장 시 나눠 받은 안대를 쓰고 10초씩의 자기소개와, 만약 자신이 시각장애인이 된다면 어떤 준비와 생각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고, 몇 편의 발췌된 영화 장면의 소리를 들으며 배우를 맞히는 퀴즈를 풀어보는 등 워밍업 시간을 가졌다. 소리만 듣고 난 후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영화 장면이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장면임을 확인하면서 화면해설의 필요성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강내영 작가는 강연 서두에서 시각장애인은 전맹과 저시력으로 나뉜다며 각 증상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시각장애인에 대해 갖기 쉬운 오해 몇 가지-시각장애인들도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것, 모든 청각장애인이 수어를 쓰진 않으며, 경우에 따라 구어/필담으로 소통하기도 하는-를 알려주었다.
강내영 작가는 화면해설이 필요한 이유는 ‘재미’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화면을 보며 웃을 때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함께 웃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만큼 정보량과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기에 영상보다 해설이 먼저 나가지 말아야 하며, 참고로 코미디 장르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타이밍과 뉘앙스가 중요하므로)
강내영 작가 본인이 저시력이기 때문에 학생 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고민을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함께 나누었고, 그런 생각들을 담아 재치 있는 영상클립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는 일화도 영상과 함께 소개했다.
화면해설을 요하는 장르는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미드 등의 영상 콘텐츠들인데, 창작자에 따라 화면해설을 요구하는 성향이 매우 다르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화면해설 작업을 하던 당시 어떤 감독은 최대한 많은 해설을 담고자 했는가 하면, 어떤 감독은 여백을 중요시하는 등 감독마다 극명한 성향 차이를 경험했다는 사례를 들으며, 화면해설에 담기는 정보량에 대한 스탠다드를 만드는 동안 겪어왔을 고민들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화면해설 편집 양식

이틀째 강연에서는 화면해설 대본이 어떤 형식으로 작성되는지 관객 중 몇 명이 샘플을 보며 직접 해설을 입혀보는 실습을 했다. 설명으로만 듣던 해설의 타이밍과 제작기법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강내영 작가는 ‘사운드플렉스 스튜디오(SOUNDPLEX STUDIO)’라는 화면해설 제작 스튜디오를 운영 중인데, 사운드플렉스는 현재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 중인 <7번국도>를 비롯하여, 수년 전부터 연극 해설 작업을 해오고 있다. (참고로 강내영 작가는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양식을 강연의 참고 자료로 나눠주었다) 연극 장르의 경우 많은 발품을 요하며, 리허설/공연 단계에서도 대사가 수정되는 등 장르 특유의 특성이 갖는 어려움이 있다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효율적 방식 역시도 함께 고민해나가야 하는 숙제임을 이야기했다.
강내영 작가는 ‘배리어프리’는 건축에서 비롯된 개념이며, 이것이 제도적/법률적/문화적 장벽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배리어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개념에 대해 덧붙였다. 배리어프리가 기존의 어려움을 없애는 것이라면, 유니버설은 당초 그러한 어려움이 없게끔 제작하는 접근방식인데, 그렇게(유니버설 디자인) 작업할 경우, 자칫 창작자들에게 있어서 표현의 제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약간의 고민이 남는다고 한다. 화면해설과 같은 배리어프리 작업이 창작자에게 제약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들을 통해 확장되고 실험되며 진화해 나갈 거라고 본다.
이틀간의 강연을 참관하고 보니, 세상을 점점 더 미시적으로, 개별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남는다. 참고로 올해 서울장애인권영화제 부대행사로 열린 토크쇼 주제가 ‘장애와 질병의 이분법을 넘어서’였는데, 토크쇼를 보며 장애와 질병의 경계에 대한 담론과 고민의 양이 느껴졌다. 어떤 현상이나 특정 존재들에 대해 ‘이해했다’라거나 ‘해결했다’라는 말을 간단히 해버릴 수는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면 세상은 단지 인싸(인사이더)와 아싸(아웃사이더)만으로 나뉠 수도 있겠다만, 유감스럽게도 사람과 환경, 즉 이 생태계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빅데이터로, 통계수치로, 특정 카테고리로 환원할 수 없는 문제들로 가득하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좀 더 미시적으로 개별적으로 응시하는 것, 예술적 시도들을 좀 더 유연하게 가져가는 것, 그리고 사라져가는 투쟁 본능을 조금씩 일깨우는 것 아닐까.

[사진제공: 신촌문화발전소, 정소은]

태그 신촌문화발전소,정소은,장애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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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은

정소은 독립기획자
과거 몇 년간 근무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예술교육프로그램과 축제를 담당했었고, 지금은 간간이 독립기획자로 활동 중. 작년에 진행한 파인텍 굴뚝농성 펀딩 프로젝트 <마음은 굴뚝같지만>이 계기가 되어 최근에는 문화예술의 정치.사회적 효용성 및 가능성을 주로 고민 중.
제158호   2019-04-25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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