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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물
국립극단 인문학강좌 ‘삼국유사 인물열전’

김옥진_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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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정 교수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공연의 시작은 작가가 펜을 들어 첫 글자를 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제목이 될지, 등장인물이나 시대 배경이 될지, 지문이나 대사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작가의 손에서 새로이 시작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온전히 새로운 작품을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시작은 바로 ‘영감’. 100% 창작자의 상상력으로 시작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생활 속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모티브가 되어 시작되는 작품도 있다. 그리고 역사와 시대의 기록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작되는 작품들이 아주 많이 있다.

    최근 국립극단에서 제작하고 있는 ‘삼국유사 프로젝트’는 반만년의 한국 역사 속에 손에 꼽히는 역사서 중 하나인 『삼국유사』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제작된 작품들이다. 작품을 제작함에 앞서 관련 인문학자들과 워크숍을 가진 국립극단에서는 공연과 동시에 『삼국유사』를 주제로 연극인과 일반인을 위한 인문학 교실 ‘월요일 오후 다섯시’를 열었다.

    ‘우리가 삼국유사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총 4회 강좌 중 마지막 강의는 ‘삼국유사 프로젝트 인물열전’이었다.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출강하는 오세정 강사의 인사로 시작된 강의는 왠지 내용이 무거울 것 같다는 걱정과는 달리 매우 경쾌하게 진행되었다. 『삼국유사』라는 거대한 서사집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또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하여 현실과 접목된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강의는 시작되었다. 신화와 설화, 역사가 버무려진 이야기 속에 숨은 의미들을 ‘선녀와 나무꾼’과 같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쉬운 소재들을 통해 재치 있게 설명해준다.

    『삼국유사』는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역사와 환상, 사실과 허구가 만난 일종의 팩션(faction)이라고 해석한다. 일연 스님이 썼다고 알려지는 이 책은 신라시대의 이야기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단군설화로 시작하는 고조선의 근거이며 그 이후의 다양한 역사와 그 사이사이 알려지지 않은 야사들을 문서화 시킨 책이다. 소설과 드라마로 잘 알려진 ‘미실’같은 인물은 『삼국유사』 속 단 한 줄의 설명에서 시작한다. 공연에 사용된 모티브인 에피소드들과 그 안에 들어간 인물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시사점들은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오세정 교수
  • 강연을 듣는 청중들은 오세정 교수의 재치 넘치는 설명에 집중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세정 교수는 『삼국유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원천적인 상징은 다양성에 있다고 말한다.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인물이 가장 고귀한 깨달음을 얻는다는 불가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역사와 역사 사이의 빈틈을 신화적 이미지와 메타포로 채워 오늘날 창작자들에게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삼국유사』 속 이야기가 가진 특수성 뿐 아니라 보편성에 대해서도 창작자들에게는 큰 의미를 시사한다. 실제로 많은 영화나 소설, 드라마 등에서 『삼국유사』 속 인물들이 역사적으로 재해석되어 등장하곤 하는데, 이는 때로는 대중들에게 잘못된 상식을 전하는 역할이 되기도 하지만 창작 작업에 중요한 모티브로 끊임없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연에 참여한 사람들의 연령, 성별은 비교적 다양해 보였다. 문학, 무용, 연극 등에 두루 관계된 이들의 참여는 물론이고 학생과 승려도 있었다. 김포 중앙승가대학에 다니고 있는 담준 스님은 “우연한 계기로 이 강좌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는데, 삼국유사에 대한 종교적 접근 뿐 아니라, 서사적, 문학적 관점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고 참가후기를 전했다.

    강사의 말에 따르면, 일반 시민 대상 강의의 경우 흔히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들, 대중매체나 드라마, 소설 등을 통해 잘못 알려진 이야기들을 바로잡아주는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강연을 준비함에 있어서는 삼국유사가 가진 다양성, 서사성에 대해 제시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창작 작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데 의의를 두었다고 한다. 창작의 모티브가 된다는 점에서 강의 내내 청중들의 집중도 역시 남다르게 느껴졌다고 한다.

    인문학 강의가 매우 지루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우리가 알고 있던 많은 이야기들이 『삼국유사』와 같은 고(古)서적들을 통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천년 전 일연 스님이 쓰신 이야기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 한 권의 책으로 얼마나 많은 작품이 태어나게 될 지 궁금해진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뿐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도 무심결에 흘려보냈던 이야기들의 기원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설화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공연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국립극단의 인문학 강좌 ‘월요일 오후 다섯시’는 10월 ‘불친절한 현대미술 따라잡기’, 11월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12월 ‘끝나지 않는 이야기-주역(周易)’ 등의 주제로 연말까지 계속되며, 강좌명 그대로 매주 월요일 오후 5시에 열린다. 국립극단의 인문학 강좌는 연극인을 우선 대상으로 하지만 참여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다. 이메일(academyntck@gmail.com)혹은 전화(02-3279-2221)로 신청 가능하며 무료로 진행된다.

    [사진제공] 국립극단

태그 오세정, 국립극단, 삼국유사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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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진

김옥진 프리랜서
대학로 소극장 공연 중심으로 활동 중이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 전문사 과정 중에 있다.
jin42nd@hanmail.net
웹진 9호   2012-10-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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