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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마침표 대신 물음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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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8일에 서울연극센터에서는 칾-다운 아카데미 2019 ‘예술가의 젠더 연습-리플레이와 리허설(강사 권김현영)’이 진행되었다. 지면상 7시간 동안 진행된 모든 내용을 옮길 수는 없지만, 새 판을 짜는 동료들과 나누고픈 마음에 현장의 내용을 일부 공유하고자 한다.
젠더의 용법
‘젠더(Gender)’는 같은 것 사이에서의 구분을 뜻하는 말이다. 한국어는 Sex와 Gender를 똑같이 성(性)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개념적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장르(Genre), 유형(Kind), 범주(Category)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유독 젠더라는 말은 낯설게 느낀다. 젠더는 특별히 ‘인간들 사이에서’의 차이를 설명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젠더라는 용어가 낯설다는 것은 우리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개별적인 인간들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뜻이며, 곧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익숙하게 느낀다는 뜻이다.
현실(Real)은 차이의 집합이지만 현실성(Reality)은 익숙한 것의 집합이다. 우리가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그림’에 감탄할 때 그것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정교하게 선별된 무엇’일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차이 가운데서 선택된 것들만을 드러낼 때 선택되지 않은 것들은 마치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취급된다.
의열단을 다룬 영화 『밀정』은 봉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혜석의 역할을 지워버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연극 『데모크라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정치극이지만 남자들만 등장한다. 이야기는 작가가 선택한 요소들로 구성된다. 그것에 이견을 갖는 것은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한 일일까? 연극 『비평가』는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원작의 언어를 더 풍부하게 확장해냈고,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영화 원작을 과감히 틀어 혼성캐스팅을 해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예술가의 젠더 연습 -리플레이와 리허설>에서 리플레이(Re-play)는 익숙한 것을 반복 재현하는 것을 말하고, 리허설(Re-hearsal)은 낯선 것을 보고 듣는 연습을 말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자리에서 강조하는 것은 ‘연습’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 때 정당성(Justification)이란 표현을 자주 한다. 내 인물과 그 행동이 믿을만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 정당성을 기존의 이분법적 규범에서 찾는 것은 기존체제에 대한 동의를 말하며, 더 이상의 의문을 갖지 않겠다는 의지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을 합리적인 결정 과정이라 믿어왔었다.
낯선 것들을 바라보는 일은 인식의 범위를 풍부하게 만든다. 정답을 찾고 마침표를 찍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숨어있는 것을 발견하도록 한다. 생명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젠더 연습은 하양 바깥에 있는 검정 안에서 n개의 색깔을 추출해 내는 일이다. 젠더를 드러내는 것은 인간이 운명에 저항하는 일이다.
저항의 역사
남성(Man)은 오랫동안 인간과 동의어였다. 여성(Woman)은 남자, 인간 바깥의 범주를 구분하기 위해 발명되었다. 남성이 정신, 이성, 문명을 차지하는 동안 여성은 육체, 감정, 자연으로 하위주체화되었다.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는 인간의 조건을 자율성과 내면, 그리고 도덕성으로 정의했지만 여성들이 이 조건을 가졌다는 것을 말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참정권을 얻어야 했고, 압도적인 실력을 키워야 했고,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여성은 남성이 아닌 존재, 남성성이 결여된 존재로 표현되어 왔다. 1972년 목성탐사선 파이오니어호에는 혹시 존재하고 있을지 모르는 외계 생명체에게 지구인들을 설명할 자료들을 싣고 있었다. 그중 남성과 여성의 나신을 그린 도판이 논란이 됐다. 여성의 성기가 선명한 세로줄로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포르노를 제외한 공식적인 자료에서 여성의 성기는 묘사된 적이 없었다. 결국, 최종 도판에서 ‘세로줄’은 삭제됐다. 황당한 해프닝처럼 보이겠지만 검열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월경혈과 가슴은 필터링 되고 있고 여성들은 싸우고 있다. “내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라고
재현과 대상화
최근 대법원은 섹스 용품 리얼돌에 대한 수입허가를 했다. 이에 대해 20만이 넘는 반대 청원이 달렸지만, 리얼돌이 성폭력을 조장한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법적인 근거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앞서 그럴듯하게 표현된 무엇은 선별된 무엇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리얼돌은 정말 사람과 똑같아서 문제일까? 리얼돌은 주문품이다. 키, 몸무게, 가슴과 허리, 힙의 둘레 등은 성적 기호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분명한 표준이 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주름진 피부, 늘어진 살집, 불규칙하게 난 체모 등을 커스텀 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리얼돌이 재현하는 성애화된 몸은 다른 몸들을 탈락시킨다. 남성들이 리얼돌에 거부감을 갖는 여성에게 “하다 하다 인형도 질투하냐.”라고 말하는 것은 남성들이 살아있는 여성을 리얼돌처럼 훈육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과잉재현의 시대에 사실적인 재현물은 사실 자체를 압도한다.
남아있는 문제
파커 J. 파머는 “낯선 자들과 함께하는 삶이 민주시민으로서의 공적인 삶이라면, 여성은 어떻게 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이미 낯선 존재로 분류된 사람들이 그들 사이에서 낯섦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여성과 난민, 여성과 퀴어, 여성과 장애는 어떻게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너의 일부고 너는 나의 일부다. 너로 인해 나는 더 확장된다. 우리는 서로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각자의 몸을 연결하는 실을 짜는 일인지도 모른다. 마침표 없는 끝없는 질문은 분명 우리를 모이게 만들 것이다.
서울연극센터 칾-다운 아카데미 https://www.sfac.or.kr/opensquare/notice/notice_list.do?bcIdx=104489

태그 칾-다운 아카데미,예술가의 젠더 연습, 문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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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호

문재호 연극연출가
한없이 극장이 되는 걸 꿈꾸는 연극노동자입니다. 
moonjaeho0301@gmail.com
제166호   2019-08-2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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