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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유심히 바라보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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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을 받는 데에 비상한 감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사 고병권은 장애를 가진 이들이 터득하는 그 고유한 감각에 관해 적었다. 이들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을 보는 타인에게서 "반사된 자신을 보는 동시에 타인을 꿰뚫어 그 속을 들여다본다". 고병권에 의하면 그 비상한 눈을 가지는 것은 때로 "처분을 기다리는 가련한 사물"의 비참함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러한 눈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은, 그 눈만이 드러내는 앎이 있기 때문이다.1)

지난 17년 동안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눈이 되어왔다. 차가운 시선에도 좀처럼 감기지 않고, 세상이 보지 않으려 하는 삶을 기록하며 편협한 시선들을 되받아쳤다. 전염병의 그 모든 위협 속에서도 영화제가 개막을 결단한 이유는 이 전염병의 최전선에 내몰렸던 몸들을 증언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올해로 18회를 맞이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지난 5월 28일부터 30일까지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렸다. 이번 영화제가 내건 슬로건은 "나를 보라"다. 가련한 사물도, 숭고한 영웅도 아닌 그저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이곳 혜화에 모여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고(故) 박종필 영상활동가에 의해 2003년 처음 만들어진 영화제로서, 이후 한국의 진보적 장애인운동과 함께해왔다. 특히 이 영화제는 2014년부터 줄곧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려왔다. 한국의 장애인권운동사를 생각할 때 ‘혜화’라는 장소가 갖는 정치적, 역사적 의미는 적지 않다. 혜화는 휠체어리프트 추락사고를 계기로 하여 장애인이동권 투쟁이 시작되고 전개된 최초의 장소이면서, 오늘날의 주요한 장애인운동단체들이 모여있는 진보적 장애인권운동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의 모든 행사가 그러했듯이 장애인인권영화제 또한 개최에 난항을 겪었다.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듯했던 코로나 사태가 다시금 서울 내에서 확산 추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당초 5월 초순으로 예정되어있던 행사는 중반으로, 5월 말로 거푸 미뤄졌다. 영화제의 첫날인 28일 정부는 수도권 내 다중이용시설의 운영 중단을 권고했으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영화제 운영진은 개막을 포기하지 않았다. 영화제는 종로구청과 긴밀히 소통하며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체온을 측정하는 적외선 카메라가 설치되었고, 제한된 출입구로만 상영 공간에 오갈 수 있었으며, 방명록 작성, 체온 체크, 마스크 착용, 물리적 거리두기 등의 수칙들이 시행되었다. 예방팀 스태프들은 방역지침이 잘 실천되고 있는지 확인을 거듭했으며 수시로 손소독제를 들고 다니면서 이동이 어려운 관객들까지 무리 없이 손을 소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갖은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제가 감행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전염병이 드러낸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드시 외부에 들려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제의 첫 부대행사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전염병의 무게>는 대구 코로나 사태 속 장애인들이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현장을 드러냈다. 한국의 방역시스템, 이른바 'K-방역'은 감염병 대처에 대한 모범 사례로서 세계적 찬사를 받았지만 사실상 복지시설 입소자, 중증장애인 등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는 몸들은 전혀 보호하지 못했다. 다큐 상영 이후 이어진 토크쇼에서 패널들은, 이러한 현 상황은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부터 이미 예견된 바였음을 상세히 설명했다. 지금부터 구체적인 방안이 제출되지 않으면 앞으로의 비상상황에서도 장애인은 국민으로서 전혀 고려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부대행사 <전염병이 드러낸 사람들>이 잘 보여준 것처럼,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장애인인권영화제가 끝내 취소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암담한 현실을 폭로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장애계의 저항 의지를 반영한다.
제18회 장애인인권영화제는 해외초청작 및 연대작 이외에 총 10편의 출품작을 선정, 상영했다. 장애인 인권운동의 투쟁과 의제를 기록하는 영화가 주를 이뤘던 과거에 비해, 올해는 장애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는 영화들이 두각을 보였다. 영화제의 심사위원장 박김영희는 장애인 인권운동을 증언하는 영화가 더 많이 제작되지 않은 것, 그리고 공모 영화들 중 일부가 여전히 장애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재생산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영화제 집행위원장 장호경은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보다 다양해지고 풍부해졌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장애인 주체들이 피해당사자, 혹은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서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채롭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 자체가 인권 의식의 향상이며 그간의 영화제가 기울인 노력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장호경의 말처럼 10여 편의 상영작들은 주로 장애라는 소재 및 장애인 당사자 주체를 한결 복잡하고도 풍요롭게 그리려 시도했다. 대표적으로 개막작 <김다예 선언>은, 정신장애에 관한 기존의 관념들을 거부하며 자신의 장애를 자신의 일부로 선언하고 가까운 주변인과 가족에게 드러내는 과정을 담았다. 심사평에 따르면 이 영화는 "부서져 있다고 여겼던 세계를 복구"하려 시도하며, 그로써 "공개적으로 자신을 통합해내는 과정"을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내게는 이 영화가 오히려 통합이나 총체성보다는 오히려 어긋남이나 분열, 결렬 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김다예 선언>은 벌어진 틈새들을 굳이 봉합하지 않고, 그곳에서 실망, 단절감, 서운함이 흐르도록 내버려 둔다. 비록 어떤 총체성 속으로 합쳐지지는 못하더라도, 그 모습들 또한 김다예가 발견한 낯선 자신이면서 관객이 김다예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올해 영화제에서 새로이 시도되었던 변화들도 있다. 작년까지는 개막작과 폐막작만 배리어프리 버전 영화로 제작되어왔다면, 이번 영화제에서는 선정작 모두에 수어통역과 문자자막, 오디오 화면해설이 포함되었다. 영화제 측은 계속해서 더 나은 배리어프리의 조건과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수어통역 화면의 변화다. 이번 영화제의 수어통역 화면은 일반적인 수어통역 화면보다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블루스크린 배경을 지우고 화면을 통합하는 등 가시성을 한결 더 높이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덧붙여, 올해 영화제에서는 '박종필상'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수여되기도 했다. 1997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종필은 2017년 사망 직전까지 억압받고 차별받는 이들의 저항과 투쟁을 헌신적으로 기록한 영상활동가로서, 이 상은 그의 저항 정신을 기리고 앞으로의 영상 활동을 지지하고자 만들어졌다. 첫 수상의 영광은 장애인의 배움에 관해 질문하는 다큐멘터리 <장애인 왜 배워야 하나>에게 돌아갔다.
영화제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포스터에 실린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을 읽었다. 올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얼굴이 되어 메인이미지를 장식한 주인공들은 장애인 인권운동을 오가며 살아가는 각각의 노동자, 생활인들이었다. 인상적인 문장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이들이 품은 바람들에 유독 눈이 갔다. "검정고시 합격하기"나 "가족과 여행가기"부터 "무장애 공방 카페 열기", "시간여행",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평등해지는 세상" 등, 바람은 각기 다양했고 또 평범했다.

그러나 고병권은 그 바람들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사회 전체를 이동시키지 않고서는 학교조차 갈 수 없다는 것, 사회 전체를 새로 배우게 하지 않고서는 야학에서의 작은 배움도 불가능하다는 것."2) 노들의 또 다른 오랜 교사 홍은전 역시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교실은 바깥세상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온 세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매일 뼈아프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떤 이에겐 절망이었고 어떤 이에겐 희망이었을 테지요."3)

우리 사회 곳곳에는 단지 학교에 가기 위해 사회 전체를 이동시켜왔던 몸들, 단지 자신으로 있기 위해 세계를 모두 움직여야만 했던 몸들이 살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의 고통도 버거워 자주 눈을 감지만, 이 몸들은 시선들을 되받아치며 몸과 삶을 드러낸다. 그들은 절망 속에서도 타인의 고통을 발견하고 기꺼이 감응한다. 나는 소박한 삶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을 흔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나의 절망이 조금 작아지는 것을 본다. 어떤 이들에게 희망이란, 서로를 유심히 바라보는 얼굴들이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http://www.420sdff.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제공: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1. 고병권, 『묵묵』, 돌베개, 2018, 65-67쪽.
  2. 위의 책, 26쪽.
  3. 홍은전, 『노란들판의 꿈』, 봄날의책, 2016, 29쪽.

태그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 나를 보라, 하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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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빈

하은빈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에서 활동했다.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한다. 글을 쓰고 공연을 하는 삶을 모색한다.
제180호   2020-06-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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