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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남명렬을 맛있게 읽다
서울연극센터 ‘연극인의 서재’

오세혁 _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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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의 서재

‘리영희의 대화, 털 없는 원숭이, 창조의 제국, 피로사회, 만들어진 신, 사토 리얼리스트, 은교’

빔프로젝트로 쏘아진 책 제목을 보자마자 식은땀이 난다. 은발과 코트, 면바지와 스니커즈에 속았다. 큰 키와 긴 다리와 작은 얼굴과 우수에 젖은 눈에 속았다. ‘GQ’나 ‘에스콰이어’에 조지 클루니와 나란히 표지모델로 나올법한 미중년의 배우. 그런 배우가 즐겨 읽는 책은 소설이나 시집에 국한되어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 내가 바보였다. 배우 남명렬의 책읽기는 문학에서 철학으로 사회학에서 종교학으로 종횡무진 내달렸다. 그가 좋아하는 소설 『은교』의 표현을 빌자면 ‘이승과 저승만큼’ 넓었다.

솔직히 고백하자. 나는 그가 추천한 여덟 권의 책 중에 『은교』 한 편 만을 읽었다. 그것도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소설을 읽었다. 그러나 배우 남명렬은 ‘소설이 너무 좋아서 영화를 일부러 보지 않는다’고 한다. 소설에서 받았던 감흥과 인상이 영화를 봤을 때 깨질까 두려워서란다. 제대로 걸렸다. 명색이 작가라고 많이 읽었노라 폼을 잡고 다닌 필자였는데 오늘 소개된 여덟 권 중에 단 한권만을 읽고 나타나다니. 계속 책 내용만 얘기하면 어쩌지? 읽어보지도 않은 내가 현장리포트를 쓸 수 있기는 한가?

시작 된지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나의 식은땀은 함박웃음으로 변했다. 한 마디로, 너무 재미있었다. 사회자를 맡은 배우 전현아와 오늘의 주인공 남명렬은 눈앞의 관객을 아랑곳 하지 않고 시종일관 깨알 같은 만담을 주고받았다. 관객들 또한 ‘관객을 아랑곳 하지 않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 깨알 같은 만담에 빠져 들었다.
연극인의 서재

“남명렬 배우님을 생각하면 항상 예쁜 카페 창가에 그 긴 신장으로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요.”
“창가에 앉는 이유는, 눈에 잘 띄기 위해서죠.”

“행동하는 지식인이 리영희 선생님이라면 대학로의 지식인은 남명렬 배우님이라는 소문도 있어요.
그래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늘 배우님을 찾아가 물어본다고… 그렇게 많이 아세요?”
“얇고 넓게 압니다.”

“언제나 깔끔하시고 스타일리시한 모습이세요.”
“살면서 냉장고는 없어도 세탁기랑 다리미는 꼭 있었죠.”
리영희의 대화, 털 없는 원숭이, 창조의 제국, 피로사회, 만들어진 신, 사토 리얼리스트, 은교
  • 그러나 ‘깨알’만 있었다면 오늘의 자리가 ‘깨알’로만 끝났을 터. 시간이 지날수록 ‘깨알’을 넘어 ‘밀알’이 되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회사에 취직해 열심히 다녔지만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오직 물량을 달성했느냐 아니냐로 정해지는 비인간적인 직장생활을 견디기 힘들어 연극의 길로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대학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대학로 안에서는 고고하게 살자. 하지만 대학로 밖에서는 뭐든 닥치는 대로 하자’라는 각오로 나이 서른아홉에 고등학생들이 주로 했던 주유소 알바까지도 알아보고 다녔다는 이야기. 남들이 뜨겁게 보낸 80년대를 아무런 의식 없이 보냈던 것이 부끄러워 최소한 바른 생각만이라도 하면서 살아가자는 결심으로 책읽기에 몰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연극 인생과 책읽기에 관한 에피소드로 가볍게 시작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어떻게 동물 상태를 벗어나 인류로 거듭났을까’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학살이 종교에서 일어났을까’ ‘유럽에서는 타인에 의해 압박당하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압박하는 사회로 되어가고 있다는데 우리나라는 어떨까’ 같은 무겁고 깊은 이야기들로 발전되어 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무리 무거운 이야기를 해도 절대 무겁지 않게 들리는 매력이 남명렬 배우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시간을 책읽기와 사색으로 보내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여유와 확신이 그에게는 있었다. 사회를 맡은 전현아 배우도 그에 못지않은 내공으로 본인이 읽은 책의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훌륭한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었다.

    관객들 또한 정말로 모범적일 정도로 적극적인 분들이었다. 1시간 30분으로 예정된 프로그램이 2시간 30분을 넘어가는데도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듣고, 웃고, 감탄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이어진 질문 쇄도 또한 너무나도 훌륭했다. 책읽기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데 추천을 해달라’는 기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해서 ‘폭넓은 책읽기를 하고 계신데 그걸 관통하는 독서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묻는 예리한 질문으로 이어지다가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 나 또한 그런 고민이 있다. 하지만 행복은 고통이 있어야만 행복이라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 행복과 고통이 뗄 수 없는 관계이듯, 시련 또한 신이 뜻하는 어떤 것이지 않을까’ 라는 아주 솔직하고 깊은 질문까지 이어졌다.

    7시에 시작한 프로그램은 밤 10시가 가까워져서야 끝났다. 아무리 재밌는 공연도 2시간이 넘으면 힘든 법인데 이야기만으로 3시간에 가깝도록 즐겁게 보냈다니. 행복했다. 관객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끝나고 나서도 쉽사리 돌아가지 않고 여운을 즐겼다. 확신하건데, 오늘 온 관객들의 절반 이상은 21일 7시에 열리는 ‘연극인의 서재 3번째-극작가 최창근 편’에 반드시 출석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들도 꼭 오시길. 여러분이 사랑하는 연극인들을 ‘보는 것’을 넘어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백 하나.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한달 전에 사놓고 한번도 펼쳐보지 않았던『리영희의 대화』를 3일이 지난 지금 절반 넘게 읽었다. 질 수 없다는 각오로 열심히 읽을 것이다. 아무쪼록 연극인의 서재 프로그램이 계속 돼서, 언젠가는 필자 또한 초청받을 수 있기를 소원하며.

    [사진] 김성훈 기자

  • 연극인의 서재
  • 서울연극센터 개관5주년 특별프로그램

    연극인의 서재

    12월 7일 연출가·배우 장두이의 서재
    12월 14일 연극배우 남명렬의 서재
    12월 21일 극작가 최창근의 서재

    낭독공연
    12월 20일(목) 22일(토) 저녁 7시
    낭독공연 <자전거> (오태석 작/박해성 연출)
    장소 : 서울연극센터

태그 남명렬, 연극인의 서재, 서울연극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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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혁

오세혁 작가, 연출, 배우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에서 작가 연출 배우로 활동중.
트위터 @gulpanart
홈페이지 www.gulpan.com
웹진 14호   2012-12-20   덧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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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송
“살면서 냉장고는 없어도 세탁기랑 다리미는 꼭 있었죠.” ㅎㅎ 그 자리에서 없었던 게 유감이네요. ^^

2012-12-20댓글쓰기 댓글삭제


대학로의 지식인 남명렬 배우님 ^^*

2012-12-21댓글쓰기 댓글삭제

구름을벗어난달
가벼운 연극 일색인 대학로에 남명렬 배우처럼 지성파 배우가 보석처럼 콕 박혀 있는게 다행입니다^^ 올해 김동훈 연극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2012-12-21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