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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소박한 삶을 만나는 곳
마르쉐@혜화

남수정(말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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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칙칙폭폭 칙치리릭…….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압력솥이 밥이 다 되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밤새 '마르쉐@혜화'(이하 마르쉐)에서 판매할 냉이된장비빔밥 재료인 냉이를 다듬다가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눈 비비며 창밖을 보니 동이 트기 시작, 하늘이 이미 청바지 빛이다.

     

    마르쉐 개장은 11시부터이니, 비빔밥에 들어 갈 재료를 완성시킬 수 있는 여유시간이 아직 3시간 정도 남았군. 이제 비빔밥 고명으로 올라갈 냉이, 버섯을 데치고, 두부와 당근만 볶으면 비빔밥 준비는 완료. 사실 밥이랑 비빔밥 고명 재료는 전날 완성을 해 두어도 되지만, 건강한 음식을 판매하는 마르쉐를 찾는 손님들께 조금이라도 더 신선한 맛을 선사하고자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이번 마르쉐에선 내가 만든 냉이된장비빔밥 이외에도, 문래도시텃밭 식구들이 지난 한달 동안 자투리 나무토막을 활용하여 만든 씨앗통, 문래도시텃밭 식구의 친정 어머니가 자식 주려고 직접 농사지어 만드신 재래식 집된장, 문래동 아낙이 한 땀 한 땀 장인 정신으로 가내수공업 한 앞치마와 가방을 출점하기로 했다.

핸드메이드 앞치마와 가방, 텃밭씨앗통, 된장소스와 집된장
(왼쪽부터) 핸드메이드 앞치마와 가방, 텃밭씨앗통, 된장소스와 집된장
  • '문래도시텃밭? 뭐하는 곳인고?' 하시는 분 많겠다.

    문래도시텃밭은 2011년부터 문래동의 한 철공소 옥상에 자리를 잡은, 올해 3살 된 동네 옥상텃밭이다. 동네 텃밭인 만큼, 문래동 주민, 작가, 철공소 사장님들이 다 같이 씨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여 나눈다. 정말이지 요즘처럼 조금이라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도시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공동 경작 텃밭이 가능할까?’ 할 정도로 자발적이며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현재 마르쉐를 이끌어 가고 있는 홍대 수카라 주인장 김수향 씨도 여성환경연대의 이보은 씨도 우리 옥상텃밭 식구다. 마르쉐를 준비하는 지난해부터, 유기농, 무농약으로 재배되는 문래도시텃밭 작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해 보자고 제안하셨다. 아직은 텃밭 작물이 무성히 자라는 시기가 아니어서 텃밭식구들이 정직하고 착하게 만든 수제 음식과 가공품으로 마르쉐에 출점하고 있지만, 텃밭 작물이 쑥쑥 자라나는 6월 즈음엔 텃밭 작물을 수확하여 마르쉐에 선보일 예정이다.

     

    마르쉐@혜화에 판매 할 아이템을 택시에 바리바리 싣고, 한숨을 돌린다. 몸은 택시 안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마르쉐 현장에 가 있다. 정성을 다한 우리 옥상텃밭 판매물건을 마르쉐 손님들에게 어떻게 잘 설명할 것인가, 마르쉐는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니 챙겨온 그릇은 충분한가, 직접 농사지어 출품하시는 농부님을 만나 식자재 납품이 가능하신지도 여쭈어 봐야 겠다……. 이 생각, 저 궁리에 잠겨 있는 동안 이미 택시는 마르쉐 현장, 혜화동 예술가의 집에 도착했다.

마르쉐 개장 전 준비모습
마르쉐 개장 전 준비모습

  • 날 제일 먼저 반겨주는 건, 예술가의 집 앞에 드리워져 있는 ‘마르쉐@혜화’ 현수막. 매월 둘째주 일요일에 농부와 요리사, 예술가들이 함께 여는 마르쉐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접 만나 판매하는 물건에 대한 이야기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을 나누는 도시형 직거래 시장이다. 최근 서울에서는 빈 땅, 땅이 없으면 옥상에서도 각종 작물을 키우는 도시농부들이 늘고 있다. 마르쉐는 이런 도시농부들에게 땀 흘려 가꾼 작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선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도시농부에게 마르쉐는 단지 가꾼 작물을 소비자에게 판매 하고 수익을 얻는 곳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통해 작물을 도시에서 가꾸었는지를 소비자에게 설명하고, 도시에서 작물을 가꾼다는 것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니 도시농부를 응원하는 마르쉐는 작물을 키우는 도시농부와 그 결과물을 공유하는 소비자의 삶도 풍요롭게 하는, 만남의 장인 격이다. 마르쉐엔 도시농부 뿐만 아니라 느리지만 정직한 방법으로 직접 요리를 하고 바느질, 그릇 등의 수공예품을 만드는 이들도 참여하고 있다. 손수 디자인하고 만든 수공예품과 맛을 낸 다양한 먹을거리들을 둘러보면 빠르게 달려가는 삶의 구조에서 비켜서서 느리지만 소박한 삶의 방식을 택한, 만든 이들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마르쉐 개장을 준비하는 옥상텃밭 식구들, 문래도시텃밭에서 만든 먹거리를 시식하는 손님들의 모습
(왼쪽부터) 마르쉐 개장을 준비하는 옥상텃밭 식구들, 문래도시텃밭에서 만든 먹거리를 시식하는 손님들의 모습
  • 드디어 마르쉐 개장시간 11시다. 삼삼오오 다정하게 시장을 둘러보는 손님들을 뵈니 두근두근. 개장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준비한 냉이된장비빔밥을 주문하시는 손님들이 줄을 서고, 같이 참여한 옥상텃밭 식구는 씨앗통 설명에 바쁘다. “이 씨앗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동네 목공소에서 버려지는 나무토막에 구멍을 뚫어 씨앗을 넣은 뒤, 옥상텃밭 식구들이 모여(어린이와 어른) 함께 사포질 하고 씨앗 이름을 적은, 옥상텃밭 식구들의 100% 수공예품입니다. 씨앗을 다 쓴 다음엔 연필꽂이로도 활용 할 수 있어, 실용성까지 갖춘 옥상텃밭의 야심작입니다.”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찍어내는 물건이 아닌,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진 소량의 물건이다 보니 비빔밥도 씨앗통도 금세 다 팔려 버렸다. 특히 냉이된장비빔밥을 드셔보시고 된장비빔소스만을 따로 구입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된장소스의 기본이 바로 어머니께서 자식 주려고 직접 콩을 재배하여 만든 된장이다 보니, 죄송하지만 앞으로도 다시 판매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음식은 재료가 좋고 만드는 이의 정성이 담기면, 판매자의 백 마디가 필요 없고, 드셔 보신 분들이 그 진가를 바로 알아차린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음식이든 수공예품이든, 만드는 사람의 진심이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맛보고 만져보고 만든 이의 수고를 자연스레 표현해 주시는 손님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가능한 곳이 마르쉐다.
냉이된장비빔밥 만드는 모습, 완성된 냉이된장비빔밥
(왼쪽부터) 냉이된장비빔밥 만드는 모습, 완성된 냉이된장비빔밥
  • 물건이 다 팔려도, 마르쉐 판매자들은 폐장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판매한 물품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손님들께 성실한 답변을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손님과 직접 만날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의 판매 물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겠다는 마르쉐 친구들(판매자들) 끼리의 최소한의 약속이다.

     

    폐장을 하고 집에 돌아갈 땐, 훨씬 가벼워진 짐을 들고 지하철에 오른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완판完販한 뒤에 느끼는 희열감에 마음은 날아갈 듯 하다. 오늘도 좋은 물건이 그 가치를 아는 소비자에 전달되었으니…… 부디 맛나게 드시고 예쁘게 쓰시기를. 그리고 나는 벌써 다음 달 마르쉐 출점 아이템을 무엇으로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아직 집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마르쉐@혜화동

[마르쉐@혜화동]은 농부, 요리사, 예술가가 만드는 도시장터로 매월 둘째주 일요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립니다.


www.marcheat.net

태그 마르쉐@혜화, 말랑씨, 문래도시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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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정(말랑씨)

남수정(말랑씨) 문래옥상텃밭에서 ‘말랑씨’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
문래동에서 음식관련 지역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각종 요리체험행사를 진행해 왔다. 잔치를 열려는 업체나 주민들께 잔치메뉴 자문을 하고 직접 만들기도 한다. 현재 문래동에 '쉼표말랑'이라는 작은 작업실 겸 부엌에서 간단한 차와 식사를 판매하고 있다.
-블로그 http://eunjaeyang.blog.me/ -페이스북www.facebook.com/commamallang
웹진 24호   2013-05-16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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